제58화 첫 계약
서늘한 밤바람이 월식의 잔해를 쓸고 지나갔다.
머리 위를 짓누르던 거대한 흑월의 화신이 갈라져 허공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걷힌 자리에는 시린 은빛 여명이 밀려들고 있었다. 강호 전체를 뒤덮었던 무명병의 안개는 이미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이름을 찾았고, 잃어버렸던 얼굴을 기억해 냈다.
그러나 그 모든 기적의 중심, 붕괴하는 달의 제단 위에는 단 두 사람만이 남아 있었다.
서무현.
그리고 무림맹주, 남궁청.
무현의 손에 들린 검은 이미 빛을 잃어 잿빛 쇳조각처럼 변해 있었다. 하지만 그 검끝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미세한 균열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달이 닫히기 위해선 대가가 필요했다.
검은 달의 계약은 스스로 닫히지 않는다. 한 번 세상을 향해 열린 빚의 문은, 그 빚의 가장 원초적인 고리를 끊어내야만 비로소 완전히 소멸할 수 있었다.
제단 바닥에 펼쳐진 낡고 거대한 양피지 장부.
그 마지막 장, 황금색 잉크로 빽빽하게 적힌 수많은 이름들 사이에 가장 첫 번째로 새겨진 글자가 고요하게 빛나고 있었다.
[ 서무현 (徐武泫) ]
그것은 계약의 시작이었다.
십 년 전, 흑월문이 청월장을 습격하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던, 강호의 모든 비극의 근원이자 열쇠.
설원 무녀 설야가 태어난 지 백일도 되지 않은 자신의 갓난아이를 제단 위에 바치며 적었던 최초의 이름이었다.
"……이것이 네가 가진 빚의 정체였다."
남궁청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비틀거렸다.
그의 온몸은 이미 계약의 역류로 인해 반쯤 투명하게 바래고 있었다. 무림맹주로서 강호의 정상을 탐하고, 설야를 되살리겠다고 발버둥 치며 수많은 이들의 이름을 짓밟았던 그였다. 그러나 장부의 진실 앞에 선 남궁청의 눈에는 더 이상 오만함도, 집착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오직 허탈함과 씁쓸한 회한만이 깃들어 있을 뿐이었다.
"내가 쫓던 것은 환상이었다. 설야를 되살리려 발부둥쳤지만…… 결국 나는 이 거대한 빚의 톱니바퀴를 더 세게 돌렸을 뿐이야."
남궁청이 쓴웃음을 지으며 무현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비친 무현의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평온했다. 삿갓은 이미 부서져 날아갔고, 얼굴의 화상 흉터가 은빛 여명 아래 그대로 드러났지만, 그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스승님은 알고 계셨겠지. 청월장의 장주가 왜 그토록 이 장부를 감추려 했는지."
남궁청이 바닥에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이것은 누구의 빚도 아니야. 강호가 살아남기 위해 달과 맺었던 최초의 목숨값. 그리고 그 열쇠는…… 태어날 때부터 네 목에 걸려 있었다."
무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조용히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가슴 깊은 곳에 박혀 있던 통증, 이유를 알 수 없는 허전함의 정체가 비로소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빼앗긴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살아남기 위해, 아니, 이 땅의 모든 이들이 숨을 쉴 수 있도록 스스로 내어준 이름이었다.
"내가 사라지면 달은 완전히 닫힌다."
무현의 목소리가 텅 빈 제단 위에 낮게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이름을 되찾고, 기억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흑월의 계약은 더 이상 누구에게도 빚을 지우지 않아."
"그럼 너는?"
남궁청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너는 어떻게 되는 거지? 네가 그 이름의 주인이자 열쇠라면, 네가 소멸하는 순간 너라는 존재는 강호의 역사에서 완전히 지워진다. 아무도 너를 기억하지 못해. 소연이도, 그곳에 살아남은 이들도 모두 너를 잊을 것이다."
남궁청의 말이 제단 위를 차갑게 적셨다.
그것은 단순한 소멸이 아니었다. 세상에 존재했던 흔적 그 자체를 지우는 일. 타인이 기억하는 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규칙의 반대편에서, 스스로 기억의 연결고리를 끊어냄으로써 완성되는 구원이었다.
멀리, 무너지는 제단 아래쪽에서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라비——!"
월소연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채 간신히 제단 쪽으로 기어오르던 소연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의 손에는 명인의 검이 들려 있었지만, 그 검은 이제 빛을 내지 않았다. 오직 무현을 향한 절규만이 그녀의 목을 타고 흘렀다.
"안 돼…… 가지 마! 오라버니, 제발……!"
소연의 외침이 바람에 흩어졌다.
무현은 고개를 돌려 멀리서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 소연을 바라보았다.
눈이 부실 정도로 투명한 은빛 머리카락, 그리고 십 년 전 그날 밤처럼 잿더미 속에서 자신을 향해 울던 소녀의 얼굴이 겹쳐 보여았다.
'미안하다, 소연아.'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마음은 고스란히 전해졌는지, 소연은 주저앉아 목을 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때, 남궁청이 불쑥 손을 뻗어 바닥에 펼쳐진 장부를 움켜쥐었다.
"잠깐."
무현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남궁청의 얼굴은 이미 반쯤 투명해져서 그 뒤편의 풍경이 비칠 정도였다.
"남궁청."
"내가 하마."
남궁청이 핏기 없는 입술을 굳게 다물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일그러진 자존심 대신, 기묘한 결연함이 깃들어 있었다.
"내가 이 장부의 마지막 채무자가 되겠다. 무림맹주라는 이름, 강호를 지배하려 했던 그 오만한 이름. 그 모든 빚을 이 장부에 적어 넣으면…… 이 계약은 닫히지 않겠나?"
무현은 남궁청을 말없이 응시했다.
"너는 설야를 만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그래. 그리고 실패했지."
남궁청이 자조적으로 웃었다.
"내가 저지른 죄는 네가 짊어질 것이 아니다.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채워진 족레이긴 하나, 이 계약을 완성시킨 것은 내 욕심이었어. 장부를 채운 것도, 수많은 이들의 이름을 먹어치운 것도 나다."
그는 황금색 잉크가 남은 펜을 집어 들었다. 손이 덜덜 떨렸지만, 그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내 이름을 적는다. 남궁청. 무림맹의 주인이자, 흑월의 가장 탐욕스러운 거래자."
스윽, 스윽.
장부의 첫 번째 줄, 서무현의 이름 바로 아래에 새로운 글자가 거칠게 새겨졌다. 황금빛 섬광이 번쩍이며 남궁청의 서명을 감싸 안았다.
[ 남궁청 (南宮淸) ]
"……!"
장부가 격렬하게 요동쳤다.
흑월의 계약이 반응했다. 남궁청의 몸에서 흘러나온 찬란한 금빛 입자들이 장부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달빛이 순식간에 붉은색에서 새하얀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되잖아……!"
남궁청의 입에서 피가 왈칵 쏟아졌지만, 그는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보아라, 무현아. 내 이름 하나면 충분하다. 이 장부는 내 빚으로 채워질 수 있어. 그러니 너는——"
그러나.
소용돌이가 절정에 달한 순간, 장부의 첫 번째 줄에 새겨진 '서무현'이라는 이름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쿠구구구구—!
제단 전체가 경악할 정도로 흔들렸다.
남궁청이 쓴 서명은 장부의 표면에서 튕겨 나가듯 부서져 흩어지고 있었다. 황금빛 불꽃이 타오르다 이내 잿더미처럼 바스러졌다.
"어째서……?"
남궁청이 눈을 크게 뜨며 장부를 내려다보았다.
"내 이름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인가? 이 묵직한 업보와 빚이, 이 강호의 모든 피가 담긴 장부인데……!"
무현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의 발끝부터 이미 투명한 빛이 번지고 있었다.
"남궁청. 너는 이 계약의 '집행자'였을 뿐이다. 빚을 낸 자가 아니라, 빚을 거두어들이며 스스로 눈을 감은 자에 불과해."
무현의 손이 자신의 가슴께를 스쳤다.
거기에는 십 년 전, 아니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박혀 있던 최초의 인장이 새겨져 있었다.
"이 계약의 시작은 누군가의 탐욕이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약속이었다. 갓난아기였던 내가 세계의 무게를 대신 짊어지겠다고 마신 첫 번째 숨결."
무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므로 이 문은 내 이름이 아니면 닫히지 않는다. 다른 누구의 이름도 이 첫 번째 족쇄를 대신 끊을 수 없어."
"안 돼……!"
멀리서 소연이 다시금 악에 찬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오라버니! 안 돼, 제발 그만해! 그런 거 몰라, 강호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나한테는 오라버니가……!"
소연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제단 주변을 맴돌았지만, 무현의 귀에는 이미 바람 소리만 아득하게 들려왔다.
시린 여명이 제단의 바닥을 완전히 덮었다.
하늘 높이 떠 있던 흑월은 이제 그 형태를 잃고 눈부신 백색의 달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색채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흐릿해졌던 얼굴들이 선명해지고, 잃어버렸던 이름들이 각자의 입술에서 피어났다.
하지만 그 모든 기억의 환희 속에서, 오직 한 사람의 존재만이 지워지려 하고 있었다.
무현은 천천히 허리춤에 차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빛을 잃은 잿빛 검신.
십 년 전 장원의 화염 속에서도, 흑월문의 핏빛 암곡에서도, 그리고 이 먼 설원의 제단 위에서도 늘 그의 곁을 지켜주었던 단 하나의 무기.
검신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무현은 조용히 응시했다.
화상 흉터가 남은 뺨, 덤덤하게 가라앉은 눈빛.
그것은 강호가 기억하는 '검객'의 모습이자, 이제 곧 세상에서 사라질 한 인간의 마지막 초상이었다.
"오랜만이구나."
무현이 나지막이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것은 검을 향한 인사인지, 혹은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르는 자기 자신을 향한 호명인지 알 수 없었다.
남궁청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채 주저앉아 그를 바라보았다.
멀리서 달려오던 소연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그녀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제단 주변의 공기가 멈춘 듯 고요해졌다.
무현은 검을 들어 올렸다.
자신의 심장을 향해, 그 잿빛 검끝을 고스란히 겨눈 채.
강호 전역에 불어닥친 바람 속에서, 누군가 무심결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이름 없는 검객의 이름을.
——서무현.
그 순간, 무현의 눈동자에 달빛보다 더 환한 백색의 광채가 가득 차올랐다.
검신의 서늘한 감촉이 옷감을 뚫고 심장 부근의 살갗에 닿았다.
차가움이어야 마땅할 그 쇳조각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십 년 전 장원을 태웠던 횃불의 온도였고, 설원의 바람 속에서 품었던 어머니의 체온이었으며, 강호 전체가 토해낸 억겁의 숨결이었다.
"오라버니——!"
소연의 절규가 다시 한번 제단의 공기를 찢었다.
하지만 그 소리는 이미 물먹은 솜처럼 무현의 귀에 닿지 않았다. 그의 시야는 온통 눈부신 백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몸의 윤곽이 조금씩 흐려지며, 손에 쥔 검마저 빛의 입자로 부서져 흩어지고 있었다.
남궁청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맹주로서 강호를 틀어쥐려 했던 그의 손은 이제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을 만큼 투명해져 있었다.
"내가…… 틀렸어."
남궁청의 입에서 허탈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처음부터 빚 따위는 없었다. 우리가 누렸던 모든 기억도, 숨을 쉬며 살아가던 순간도…… 모두 이 아이가 짊어진 몫 덕분에 가능했던 거다. 강호 전체가 이 아이에게 빚을 지고 있었어."
그의 깨달음은 너무나 늦었지만, 동시에 완벽했다.
장부의 첫 번째 장에 새겨진 '서무현'이라는 세 글자가 황금빛 불길 속에서 천천히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소멸의 불꽃이 아니었다. 계약이 해제되는 순간 발생하는 순수한 해방의 광휘였다.
쿠구구구궁——!
하늘 높이 떠 있던 백색의 달이 거대한 진동과 함께 사방으로 빛을 쏟아냈다.
그 빛이 강호의 구석구석을 적실 때마다, 사람들은 가슴속에서 무언가 무거운 짐이 툭, 하고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잃어버렸던 기억이 채워지고, 지워졌던 인연의 실타래가 제자리를 찾았다.
객잔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무인이 멈칫하며 창밖을 바라보았고, 산길을 걷던 나그네가 멍하니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누군가의 이름이, 온 세상의 바람을 타고 각자의 가슴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오직 제단 위 한 사람만을 제외하고.
"소연아."
무현의 입술이 아주 미세하게 달싹였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 눈빛만큼은 온전히 소녀를 향해 있었다.
제단 아래로 기어오르던 소연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녀의 두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바닥의 핏자국 위로 툭툭 떨어졌다. 명인의 검을 쥔 손이 하얗게 질리도록 떨렸다.
"가지 마…… 나 혼자 두지 마. 오라버니가 없으면…… 나는 또다시 그 잿더미 속에 남겨지는 거야."
소연의 목소리가 젖어 들었다.
십 년 전, 장원이 불타고 모든 것이 무너졌던 그 밤. 오빠 소한은 횃불을 들고 떠났고, 의오라비인 무현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피투성이가 되었었다. 그리고 지금, 세상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은 이 순간에 가장 소중한 사람이 또다시 눈앞에서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너는……."
무현의 가슴에 겨누어진 잿빛 검신이 완전히 백색의 광채로 휩싸였다.
자신의 손으로 찌를 필요도 없었다. 계약의 핵이 스스로의 중심을 무너뜨리며, 최초의 채무자를 강호의 기록에서 지워내기 시작한 것이다.
발끝부터 시작된 소멸은 순식간에 무릎을 지나 허리까지 차올랐다.
형체는 흐릿해지고, 살과 뼈는 투명한 빛의 입자로 화해 허공으로 흩날렸다. 아픔은 없었다. 다만 기나긴 여정을 끝마친 나그네가 마침내 누대에 걸친 짐을 내려놓을 때 느끼는 깊고 아득한 평온만이 찾아왔을 뿐이다.
무현은 마지막 남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더 이상 검은 달도, 붉은 피의 계약도 없었다.
오직 눈부시게 시린 하얀 달만이 강호의 밤을 고요하게 비추고 있었다.
"빚은 다 갚았다."
누구도 듣지 못할 나지막한 혼잣말과 함께, 무현의 상체가 완전히 빛 속으로 녹아들었다.
퍼지지 않는 묵직한 먹물처럼, 강호의 역사 속에서 '서무현'이라는 이름이 고요히 침잠했다.
장부의 첫 번째 페이지가 백지처럼 하얗게 바래며 허공으로 바스러졌다.
콰아아아——!
마지막 계약의 장벽이 무너내리며 거대한 은빛 파도가 강호 전역을 휩쓸고 지나갔다.
바람이 멈추고, 숲이 고요해졌다.
제단 위에는 더 이상 아무도 없었다.
남궁청은 완전히 투명해져 가며 바람 속으로 흩어지고 있었고, 제단 아래에 주저앉은 소연만 홀로 남겨져 있었다.
소연은 빈손을 허공으로 뻗었다.
방금 전까지 오라버니가 서 있던 그 자리를 향해.
하지만 그녀의 손끝에 닿은 것은 차가운 밤공기와, 어디선가 날아온 한 송이 하얀 눈꽃뿐이었다.
"오라버니……."
소연의 목소리가 비어버린 제단 위를 맴돌았다.
그 순간, 강호 전역의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잠에서 깨어난 듯 고개를 들었다. 그들은 누군가의 이름을 입에 올리려 했으나, 혀끝에 걸릴 뿐 온전한 음성으로 뱉어내지 못했다. 기억의 저편에서 사라져 간 단 하나의 이름.
그러나 바람은 알고 있었다.
비 그친 밤의 객잔도, 안개 낀 산길도, 낡은 장원의 잿더미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은 빚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이 가장 어두운 밤을 건너기 위해 서로에게 건넨, 가장 뜨겁고 찬란한 첫 번째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