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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달의 검객 · 57화목차

제57화 달의 화신

하늘이 갈라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강호의 하늘을 덮고 있던 밤하늘 그 자체가 거대한 입을 벌렸다. 검붉은 달의 화신. 그것은 단순한 천체(天體)가 아니었다. 십 년 전 청월장을 집어삼켰던 잿더미의 기억과, 그 불길 속에서 태어난 왜곡된 욕망이 엉겨 붙어 만들어낸 거대한 업보의 응어리였다.

수만 개의 눈이 하늘에서 깜빡였다. 눈꺼풀이 깜빡일 때마다 세상의 색채가 한 겹씩 지워졌다. 대지의 풀잎이 빛을 잃고 잿빛으로 바스러졌고, 멀리서 울던 풀벌레 소리마저 허공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멎어버렸다.

“존재가… 지워지고 있어.”

누군가의 절규가 바람에 흩어졌다.

남궁청의 부서진 육신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아지랑이는 이미 거대한 화신의 하반신과 완전히 결합해 있었다. 남궁청은 이제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강호 전체의 이름을 담보로 잡고 세상을 껍데기로 만들려는 계약의 대변자이자, 검은 달이 지상에 내린 주인이 되어 있었다.

꾸르릉—!

대지가 요동쳤다. 화신이 거대한 팔을 들어 올렸다. 칠흑 같은 그림자의 팔이 허공을 내리치자, 그 압력만으로도 사방의 바위들이 모래처럼 곱게 부서져 사방으로 흩어졌다.

“물러서지 마라!”

고함과 함께 붉은 섬광이 그 궤도를 가로질렀다.

월소한이었다. 그는 자신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붉은 핏빛 기운을 전부 칠흑 대검에 쏟아부었다. 십 년 전, 문주의 거짓말에 속아 스스로 장원에 불을 질렀던 그 아이는 이제 속죄의 검을 쥐고 거대한 화신의 팔뚝을 향해 뛰어올랐다.

콰아아앙!

소한의 대검이 화신의 팔목을 강타했다. 단단한 흑요석 같은 피부가 갈라지며 굵은 검붉은 피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그 피는 땅에 닿기도 전에 허공으로 증발해 버렸다. 화신의 몸은 실체가 없는 허상이자, 동시에 강호 전체의 기억을 먹어 치우며 실체화되는 괴물이었다.

“크윽…!”

소한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그의 검에 묻어 있던 어린 시절의 기억 한 조각—어머니와 함께 웃던 단란한 한때의 풍경이 화신의 숨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소한의 눈빛이 한순간 흐려졌다.

“오라버니!”

그 순간, 월소연의 목소리가 전장을 가르며 울려 퍼졌다.

소연의 두 눈에서 금빛 섬광이 쏟아져 나왔다. 그녀가 뽑아 든 명인(名刃)은 이제 단순한 칼이 아니었다. 그것은 강호에 남은 이들의 희미해진 기억과 이름을 엮어내는 거대한 바늘이자 실이었다.

슈우우우욱—!

소연의 손끝에서 자라난 금빛 실들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쓰러져가는 동맹들의 몸을 단단히 붙잡았다.

“정신 놓지 마세요! 우리가 기억하고 있어! 당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여기에 서 있는지 내가 전부 기억하고 있으니까!”

소연의 외침과 함께 금빛 실—봉명사(封名絲)의 변형된 형상들이 흩어지던 소한의 등 뒤를 단단히 꿰매었다. 흐릿해지던 소한의 눈빛에 다시 붉은 투지가 차올랐다. 소한이 거칠게 숨을 몰쉬며 다시 대검을 짚고 일어섰다.

“고맙다, 소연아…….”

이것은 단순한 무력의 싸움이 아니었다. 기억을 지우려는 자와, 그 기억을 지키려는 자들의 총력전이었다.

“내버려 둘 줄 아느냐!”

당문(唐門)의 가주 당하린이 비뢰(飛雷)의 기세로 날아올랐다. 그녀의 양손에서 뿜어져 나온 수천 개의 자줏빛 독침이 화신의 얼굴을 향해 폭우처럼 쏟아졌다. 독은 단순한 신체 파괴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억의 흐름을 엉키게 만드는 특제 무형독(無形毒)이었다. 화신의 눈가에 닿은 독침들이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그 거대한 시선을 잠시 동안 흐트러뜨렸다.

“나무아미타불.”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소림의 방장이 지팡이를 허공에 내리찍었다.

쿵-!

지축을 울리는 파열음과 함께 황금빛 불교의 만자(卍字) 문양이 화신의 거대한 가슴팍에 박혔다. 방장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가 화신의 내면에 자리 잡은 '탐욕의 이름들'을 억누르기 시작했다. 화신이 괴기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상체를 뒤로 물렸다.

“지금이다!”

남궁설이 외쳤다. 그녀의 손에 들린 봉명사는 이미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 중 일부마저 실에 실어 화신의 움직임을 칭칭 동여맸다. 남궁청의 딸로서, 그리고 스스로의 의지로 속죄를 택한 그녀의 손끝에서 피가 흘러내렸지만, 그녀는 눈방울 하나 깜짝이지 않았다.

동맹들의 모든 공격이 하나의 정점을 향해 집중되었다.

당하린의 독이 시선을 빼앗고, 소림 방장의 금강력이 움직임을 묶었으며, 남궁설의 봉명사가 육신을 결박했다. 그리고 소연의 명인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기억의 조각들을 움켜쥐고 버텼다.

그 모든 이들의 노력이 만들어낸 단 하나의 빈틈.

거대한 화신의 가슴 한가운데,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심장이 뛰고 있었다. 그 심장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은 살육의 기운이 아니었다. 그것은 차갑고 질긴, 천 년 전부터 이어져 온 '계약' 그 자체였다.

“……무현아.”

어머니 설야의 목소리가 서무현의 귓가를 스쳤다.

더 이상 그녀의 눈동자는 혼탁하지 않았다. 완전히 정화된 백천월광검의 빛이 그녀의 전신을 감싸고 있었고, 그녀는 자신의 모든 남은 존재를 태워 무현의 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무현은 삿갓을 벗어던졌다.

화상 흉터가 드러난 그의 얼굴 위로, 차가운 빗방울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의 손에 쥔 검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흑천월식검(黑天月蝕劍)과 백천월광검(白天月光劍).

빛과 어둠, 그 두 가지 극단의 무공이 무현의 손 안에서 비로소 하나로 융합되었다.

월륜(月輪).

촤아아아아아-!

무현의 몸이 한 줄기 검은 섬광이자 하얀 달빛이 되어 허공으로 쏘아올라갔다. 화신이 거대한 팔을 휘둘러 그를 막으려 했으나, 소연이 엮어낸 금빛 실들이 그 팔을 사정없이 붙들어 매었다.

꿰뚫어라.

무현의 검끝이 화신의 방어막을 종이장처럼 갈라치며 그 심장부로 파고들었다.

콰아아앙!

세상이 멈춘 듯한 침묵 속에서, 무현은 화신의 심장 가장 깊은 곳에 도달했다.

거기에 있었다.

강호 전체를 집어삼키고, 수많은 이들의 이름을 앗아갔던 그 거대한 '이름 장부'의 원본.

열두 권의 검은 가죽으로 묶인 장부의 가장 마지막 장, 모든 계약의 뿌리가 되는 '첫 번째 계약서'가 그곳에서 찬란하고도 흉측한 금빛 글씨로 펄럭이고 있었다.

무현은 숨을 몰아쉬며 그 계약서의 첫머리를 응시했다.

화신이 마지막 발악을 하듯 무현의 멱살을 잡으려 했지만, 무현의 검이 먼저 그 장부의 표지를 꿰뚫었다. 계약서가 반으로 갈라지며 그 안에 적혀 있던 수백 년간의 빚들이 눈처럼 하얗게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강호 곳곳에서 잃어버렸던 기억들이 사람들의 머릿속으로 폭풍처럼 밀려들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얼굴, 친구의 이름, 잊고 있던 약속들.

세상이 다시 원래의 색채를 되찾아가는 환희 속에서, 무현은 마침내 그 계약서의 맨 마지막 줄, 붉은 낙인이 찍힌 서명란을 보았다.

거기에 적힌 글자는, 그가 평생토록 짊어져야 했던 십 년 전 빚의 주인이자,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을 알리는 이름이었다.

— [서무현]

무현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그것은 남궁청의 이름도, 혁련오의 이름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 서무현 자신의 이름이었다.

최초의 계약자.

흑월문의 가장 깊은 곳에서, 강호의 모든 운명을 담보로 첫 번째 빚을 졌던 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내가.”

무현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화신의 심장이 멎어가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달의 화신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공허 속에서, 무현은 자신의 손에 들린 검을 바라보았다.

이름은 빚이 아니라 선물이라 했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빚은, 과연 누구를 위해 쓴 것인가?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종말의 문턱에서, 무현은 자신의 이름이 적힌 계약서를 향해 마지막 검을 겨누었다.

화신의 심장이 찢어지며 터져 나온 검붉은 파편이 폭풍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꾸르릉—!

대지가 울고, 하늘에 걸려 있던 검붉은 달의 화신이 쩍쩍 갈라지며 균열을 일으켰다. 세상의 색채가 잿빛에서 원래의 푸르름과 붉음으로 되돌아오려는 과도기, 그 소란 속에서 무현의 심장은 오히려 얼어붙은 것처럼 쿵, 하고 가라앉았다.

장부의 맨 마지막 장.

그곳에 또렷하게 박힌 세 글자.

[서무현]

빛바랜 묵직한 먹물로 적힌 그 이름은 십 년 전 청월장의 잿더미 속에서 발견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조차 거슬러 올라간, 이 거대한 '검은 달의 계약' 그 자체가 태어난 날에 새겨진 최초의 낙인이었다.

“……내가, 빚을 진 게 아니었어.”

무현의 중얼거림은 폭풍우 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손에 쥔 흑천월식검과 백천월광검의 경계가 희미하게 떨렸다. 머릿속을 스치는 벼락 같은 기억의 파편들. 갓난아기였던 시절, 설원 무녀였던 어머니 설야가 왜 자신을 흑월문의 제단에 바쳐야만 했는지 비로소 모든 조각이 제자리를 찾아맞춰졌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빼앗긴 빚이 아니었다.

강호 전체가 무너져 내릴 대재앙의 시대, 다가올 파멸을 막기 위해 갓 태어난 아이의 이름과 영혼을 담보로 삼아 달과 맺었던 ‘선택’이었다.

—내 아이야.

가슴 깊은 곳에서 설야의 목소리가 아스라이 울려 퍼졌다.

—너는 빚을 지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 모든 어둠을 끝내기 위해, 스스로 이름을 걸고 달과 맞서기로 약속한 유일한 방패란다.

화신의 가슴팍에 박힌 열두 권의 이름 장부가 눈부신 금빛 불길에 휩싸였다.

카아아아아악—!

화신이 마지막 비명을 질렀다. 그 거대한 형태가 무너지며 수백만 개의 빛무리가 되어 강호 전역으로 흩어졌다.

“어……?”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소한이 멍한 눈으로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것은 재가 아니었다. 그것은 십 년 동안 강호의 사람들에게서 도둑맞았던 '이름'과 '기억'의 조각들이이었다.

누군가는 잃어버렸던 가족의 얼굴을 떠올렸고, 누군가는 자신의 본명을 되찾았다.

청월장의 무너진 기와 골목마다, 화산의 매서운 바람 속에도, 소림의 고요한 마당에도, 그리고 무림맹의 차가운 돌바닥 위에서도 사람들이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껍데기로 살아갈 뻔했던 이들이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 기적이 온 세상을 적셨다.

하지만 그 기적의 중심에 선 무현의 얼굴에는 서글픔 대신 깊은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다.

“오라버니!”

소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소연은 명인을 바닥에 짚은 채,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무현을 향해 달려왔다.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지만, 그 눈동자는 예전처럼 공허하지 않았다. 완전히 또렷하고 빛나는 금빛이 그녀의 홍채를 채우고 있었다.

“무현 오라버니! 끝났어요……! 장부가, 계약이 부서졌어요!”

소연이 무현의 품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녀의 따뜻한 온기가 무현의 젖은 갑옷을 적셨다. 소연은 무현의 허리를 꽉 끌어안은 채 몸을 잘게 떨었다. 십 년 동안 짊어졌던 원망과 복수심, 그리고 잿더미의 트라우마가 이 한 번의 포옹으로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무현은 소연의 등을 토닥여주지 못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허공에 흩어지는 금빛 계약서의 잔해, 그리고 자신의 손바닥에 남아 있는 희미한 묵직한 글자국을 향해 있었다.

“소연아.”

“네, 네 오라버니. 여기에 있어요. 저 여기 있어요.”

“내가…….”

무현의 목소리가 젖어 들었다.

“내가 바로 이 계약의 시작이었다.”

“……무슨 뜻이에요?”

소연이 고개를 들어 무현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화상 흉터가 가득한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소연의 손등 위로 툭 떨어졌다.

거대한 화신이 완전히 소멸한 하늘 위에는, 더 이상 검붉은 달도, 차가운 흑월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곳에 남은 것은 구름 사이로 은은하게 빛을 내뿜는 하얗고 맑은 초승달 하나뿐이었다.

수백 년간 강호를 옭아매었던 검은 달의 계약은 깨졌다.

하지만 계약의 마지막 규칙은 여전히 유효했다.

— [계약을 끊으려면, 마지막 남은 채무자의 이름을 지워야 한다.]

강호의 모든 이들이 이름을 되찾았지만, 그 대가로 최초의 채무자인 ‘서무현’이라는 이름은 이제 세상의 기록에서 지워질 운명이었다.

만약 그의 이름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를 기억하는 이들의 머릿속에서도 ‘무현’이라는 존재는 안개처럼 흩어져 버릴 것이다. 소연이 오라버니라 불렀던 기억도, 소한이 함께 검을 맞대었던 세월도, 설야가 품에 안아주었던 그 순간조차도.

“안 돼요…….”

소연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녀는 직감적으로 무현이 하려던 바를 깨달았다.

“안 돼요, 오라버니! 그런 짓 하지 마세요! 우리가 있잖아! 우리가 당신을 기억하고 있잖아! 규칙 따위가 뭐라고……!”

“소연아.”

무현이 낮게 웃었다. 그 웃음 속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자의 평온함이 담겨 있었다.

그는 삿갓을 주워 쓰지 않았다. 화상 흉터가 드러난 얼굴 그대로, 그는 자신의 손에 쥐인 흑천월식검을 들어 올렸다. 검신에 남아 있던 마지막 검은 기운이 스러지고, 오직 백천월광검의 눈부신 빛만이 칼날을 따라 흘렀다.

“이름은 빚이 아니라 선물이라고 했다.”

무현이 소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너희에게 이름을 돌려주기 위해, 내가 잠시 빌려왔던 것뿐이야. 이제 주인에게 돌려줄 때가 된 거지.”

“오라버니—!”

소연이 절규하며 그의 소매를 붙잡으려 했지만, 무현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백색의 광휘가 그녀를 부드럽게 밀어내었다.

멀리서 달려오던 소한과 당하린, 남궁설 역시 그 눈부신 빛에 눈을 감았다.

무현의 몸이 마치 하얀 모래성처럼 천천히 허공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발끝부터 시작된 붕괴는 단단했던 갑옷을 지나 그의 단전, 그리고 심장의 자리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무현의 표정은 평온했다.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늘에 떠 있는 하얀 초승달이 그를 향해 부드러운 빛을 내리쬐고 있었다.

십 년 전, 눈 내리는 설원의 밤.

어머니의 품 안에서 들었던 자장가가 바람결에 실려 오는 것 같았다.

—잘 가라, 내 아들아.

—너의 이름은 이제 강호의 모든 별들 속에 새겨질 것이다.

무현의 입술이 마지막으로 달싹였다.

소리 없는 그 말 속에는, 세상의 모든 짐을 내려놓은 한 검객의 마지막 고백이 담겨 있었다.

“……내 이름을, 기억해 다오.”

빛이 폭발했다.

눈이 멀 것 같은 백색의 섬광이 온 세상을 뒤덮었다가, 이윽고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바람이 불었다.

청월장의 오래된 돌담길 위로, 비 갠 뒤의 맑은 풀벌레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기에 더 이상 검은 삿갓을 쓴 검객의 모습은 없었다.

하지만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강호의 어디선가, 사람들은 문득 바람에 실려 오는 다정한 검광의 온기를 느끼며 나지막이 누군가의 이름을 입에 담고 있었다.

—서무현.

그 이름은 더 이상 빚이 아니라,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이 세상 가장 눈부신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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