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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달의 검객 · 28화목차

제28화 이름을 잃는 검

새벽의 한기가 뼈속까지 파고드는 잿더미 폐허.

스산하게 부서진 청월장의 터는 마치 거대한 무덤처럼 침묵에 잠겨 있었다.

지붕의 잔해 사이로 새어 나오는 희뿌연 연기 위로, 밤의 잔재가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서무현은 땅에 박힌 검을 짚은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온몸은 방금 전 휘둘렀던 '월식(月蝕)'의 반동으로 인해 찢겨 나간 것처럼 아파왔다. 그러나 육신의 고통보다 더 끔찍한 것은 영혼의 밑바닥부터 파여 나가는 듯한 극심한 허전함이었다.

"……."

무현의 시선이 자신의 손바닥을 향했다.

검을 쥐고 있던 손등의 굳은살, 그 익숙하던 감각이 낯설게 느껴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선명하게 떠올랐어야 할 스승의 얼굴이, 십 년 전 그날 밤 타오르던 붉은 불길이, 마치 물에 젖은 먹물처럼 흐릿하게 번져 있었다.

기억이 가라앉고 있었다.

강물 속으로 가라앉는 조약돌처럼, 이름과 기억이 묵직한 늪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오라버니."

작고 떨리는 손길이 무현의 소매를 쥐었다.

돌아보자, 잿빛 재를 뒤집어쓴 채 눈물마저 말라버린 얼굴의 소연이 서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정신 차려요. 오라버니, 제 목소리 들려요?"

소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 때마다, 무현의 뇌리에서 희미해져 가던 선들이 가까스로 제자리를 찾았다.

기억. 내가 누구였던가.

나는 서무현. 흑월문의 추적을 피해 검을 쥐었던 자. 그리고…… 소연의 의오라비.

무현은 거칠게 마른기침을 토해내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소연아."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소연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그의 품으로 무너져 내릴 듯 기대어 왔다.

하지만 무현의 가슴속은 가라앉는 두려움으로 차가워지고 있었다. 알 수 있었다. 방금 그 한 번의 참격, '월식'을 펼친 대가로 그의 내면에 새겨진 '계약'의 족쇄가 한 칸 더 조여들었다는 것을.

‘검은 달의 계약…….’

힘을 쓸수록 이름이 지워진다.

그것이 흑월문의 금기이자, 그들이 이 강호에서 짊어진 저주의 본질이었다. 대모가 웃으며 말했던 진실이 귓가를 맴돌았다.

— 네가 휘두르는 그 검은 힘은 강해질수록 네가 누구였는지 잊게 만들 것이다. 결국 마지막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껍데기만 남겠지.

무현은 꽉 쥐었던 주먹을 떨었다.

눈앞의 적을 베기 위해 사용한 힘이, 역으로 자신을 지탱하던 자아를 갉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몇 번 더 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서무현'이라는 이름 따위는 강호의 모래알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터였다.

그때, 조용히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소한이 천천히 일어섰다.

붉은 가면을 벗어 든 그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 있었고, 그 눈빛에는 형언할 수 없는 결연함이 서려 있었다.

"소한아."

무현이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소한은 대답 대신 자신의 칠흑 대검을 어깨에 메었다. 십 년 전, 문주의 거짓말에 속아 이 장원에 불을 지폈던 소년은 이제 속죄의 지옥을 걷는 사내가 되어 있었다.

"형, 그리고 소연아."

소한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으나 단호했다.

"더 이상 이렇게 끌려다닐 수는 없어. 대모가 어디로 갔는지, 그년이 숨어 있는 진짜 본거지가 어딘지 나는 알고 있다."

소연이 놀란 눈으로 소한을 돌아보았다.

"오라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어디로 간다는 거야?"

"흑월곡(黑月谷)."

소한이 낮게 뇌었다.

그 이름이 나오는 순간, 주변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는 듯했다. 흑월문의 진짜 심장부이자, 계약의 장부가 보관되어 있다는 저주받은 협곡.

"거긴 함정이야! 대모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소연이 다급하게 소리치며 소한의 앞을 가로막았다. "방금 본 그 괴물을 상대하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오라버니 혼자서 거릴 들어갔다간……!"

"내가 저지른 일이다."

소한이 소연의 말을 단호하게 끊어냈다. 그의 목소리에는 물러설 곳 없는 단절감이 배어 있었다.

"십 년 전, 내가 이 손으로 장원에 불을 질렀지. 그 불길 속에서 너희를 버려두고 도망쳤던 그 순간부터, 나는 이미 죽어 있던 목숨이었어. 대모가 노리는 건 나와 형이야. 내가 미끼가 되어 그년 앞에 서겠다."

"안 돼! 오빠까지 잃을 순 없어!"

소연의 눈에서 다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두 오라비. 한 명은 기억을 잃어가고 있고, 다른 한 명은 스스로를 사지로 던지려 하고 있다. 남매가 겪어야 했던 비극의 잔해는 아직도 그들의 발목을 끈질기게 붙잡고 있었다.

소한은 눈을 감았다가 뜨며, 울부짖는 소연의 어깨를 조용히 감싸 안았다.

거칠고 굳은살 박힌 손길이었지만, 그 속에는 형으로서 줄 수 있는 마지막 온기가 담겨 있었다. 품에 안긴 소연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소연아, 울지 마라. 넌 청월장의 마지막 혈육이자, 명인을 이어받은 자다. 너마저 여기서 무너지면 우리가 겪은 모든 아픔이 의미를 잃어버려."

"……오라버니."

"형을 부탁한다."

소한의 시선이 무현을 향했다.

두 사나이의 눈빛이 공기 중에서 부딪쳤다.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과 빚이 그 짧은 눈빛 속에 오갔다.

무현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기억이 지워져 가는 두뇌 속에서, 소한이라는 존재가 희미해지려 할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뻐근하게 조여왔다.

"소한아."

무현이 겨우 입을 열었다.

"혼자 가지 마라."

"아니다, 형. 이건 내 싸움이야. 그리고…… 형의 이름이 지워지는 걸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소한은 더 이상 말을 섞지 않겠다는 듯 몸을 돌렸다.

그의 등 뒤로 거대한 칠흑 대검이 묵직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소한아!"

소연이 다급하게 손을 뻗었지만, 소한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잿더미를 밟으며 새벽 안개 속으로 멀어져 갔다.

남매의 엇갈림.

그것은 마치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장난처럼 잔인했다.

소연은 주저앉아 땅을 치며 오열했다.

그녀의 손에 쥐여진 작은 옥패가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십 년 전부터 지니고 있던, 서로를 알아보기 위한 유일한 증표.

문득, 소연은 멍한 눈으로 제 손에 들린 옥패와, 그 옆에서 비틀거리는 무현을 번갈아 보았다.

이름을 잃어간다.

자아가 지워지고 있다.

‘안 돼…… 오라버니를 잃을 순 없어.’

소연의 눈빛에 문득 광채가 서렸다. 그녀는 품에서 날카로운 단도를 꺼내어, 자신의 손가락을 과감히 그었다.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그녀는 피 묻은 손가락으로 옥패의 표면을 거칠게 문질렀다.

그리고는 무현의 손을 강하게 잡아끌어, 그의 손바닥에 옥패를 꾹 쥐어주었다.

"오라버니, 제발 정신 차려요!"

소연의 목소리는 울음 섞인 비명이 아니라, 벼려낸 칼날처럼 단호하고 간절했다.

"내 이름은 월소연이야. 그리고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의 이름은…… 서무현이야! 오라버니의 이름은 서무현이라고!"

"……."

"내가 기억할게. 오라버니가 전부 잊어버려도, 내가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절대 나를 잊지 마. 제발……!"

소연의 피와 눈물이 무현의 손등 위로 뚝뚝 떨어졌다.

그 순간이었다.

뇌리의 깊은 곳에서 아득하게 멀어지던 '서무현'이라는 이름의 세 글자가, 벼락처럼 그의 의식 속을 강하게 내리쳤다.

먹구름이 걷히듯, 흐릿했던 자아가 순식간에 선명한 빛을 되찾았다.

무현의 눈동자가 다시금 검푸른 빛으로 번쩍였다.

그는 제 손에 쥐여진 옥패를 꽉 움켜쥐었다. 피와 살이 엉겨 붙어 통증이 전해져 왔지만, 그 통증 덕분에 자신이 살아있음을, 그리고 자신이 누구임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소연아."

무현이 낮게 읊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방금 전까지의 공허함 대신, 단단한 강철 같은 결기가 서려 있었다.

"오라버니……!"

"소한이가 위험하다."

무현은 땅에 박아두었던 검을 뽑아 들었다.

비록 계약의 족쇄가 여전히 목을 조여오고 있고, 이름을 잃을 위험은 사방에서 도사리고 있었지만, 더 이상 주저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흑월곡으로 간다."

소연은 눈물을 닦아내며 굳센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시선이 새벽안개를 뚫고 멀리 북쪽, 칠흑 같은 그림자가 드리운 협곡을 향했다.

한편, 사방이 기괴한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인 깊은 협곡.

그곳은 빛조차 제대로 닿지 않아 항상 밤처럼 어두운 곳, 흑월문의 본거지인 흑월곡(黑月谷)이었다.

협곡의 중앙, 거대한 흑요석 단상 위에 한 무리의 인영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 상석의 중심에는 핏빛 장막이 드리워진 가마가 놓여 있었고, 그 가마 앞에는 흉터 가득한 얼굴을 한 여인, 대모(大母) 월하가 서늘한 미소를 지은 채 서 있었다.

서걱, 서걱.

자갈을 밟는 무거운 발소리가 협곡의 침묵을 깨웠다.

안개를 헤치고 걸어온 자는 다름 아닌 월소한이었다.

그의 어깨에 메인 칠흑 대검에서는 검은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온몸은 상처와 피로 얼룩져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사납고도 단호했다.

소한은 흑요석 단상 아래에 멈춰 섰다.

그의 시선이 상석 위를 내려다보는 대모를 향했다.

대모는 기가 막히다는 듯 가소로운 웃음을 흘렸다.

"이거 보라. 제 발로 찾아올 줄이야. 그 똑똑하지 못한 머리로 형제를 구하겠다고 여기까지 기어들어 온 거냐, 소한아?"

소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그리고 무겁게 무릎을 꿇었다.

협곡의 차가운 바닥에 그의 무릎이 닿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칠흑 대검이 땅바닥에 툭 떨어지며 날카로운 파열음을 냈다.

단상 위에서 대모의 눈썹이 가늘게 틀어올라갔다.

"……호오?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 복수를 하겠다며 날뛰던 놈이, 내 앞에서 무릎을 꿇어?"

소한은 고개를 숙인 채, 묵직하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대모."

"말해봐라. 무슨 꿍꿍이지? 네가 목숨을 구걸할 위인은 아닐 텐데."

"구걸이 아니다."

소한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에는 비장함과 함께, 모든 것을 내려놓은 자의 광기가 서려 있었다.

"내 목숨을 가져가라. 그리고 내 기억도, 내 이름도 전부 가져가도 좋다. 그 대신……."

소한의 시선이 대모의 뒤편, 협곡 깊은 곳에 봉인된 거대한 장부를 향했다.

"내 동생들과 형을 건드리지 마라. 여기서 나와의 계약을 끝내라."

협곡의 차가운 바람이 그들의 사이로 휘몰아쳤다.

그것은 배신인가, 아니면 모든 것을 구하기 위한 가장 처절한 위장인가.

대모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계약을 끝내라……?"

대모 월하의 입술 사이로 실소를 머금은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는 핏빛 장막이 드리워진 가마의 기둥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녀의 얼굴에 새겨진 흉터가 일그러질 때마다, 협곡을 채운 칠흑의 기운이 더욱 짙게 요동쳤다.

"어리석은 녀석. 네놈이 뭔가를 착각하고 있구나. 흑월의 계약이란 게 네가 원할 때 맺고,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 집어던질 수 있는 장난감인 줄 아느냐?"

"……."

"네가 십 년 전 청월장에 불을 지킬 때, 그 불씨에 기름을 부은 게 누구였지? 바로 너 자신이다. 네 손으로 직접 판 무덤에 들어가 놓고, 이제 와서 누굴 구하겠다고 목을 내밀어?"

대모의 서늘한 시선이 소한의 짓밟힌 칠흑 대검을 훑었다.

하지만 소한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꺾이지 않는 강철처럼 단단했다. 비록 육신은 찢기고 피투성이가 되었을지언정, 그의 내면에서 타오르는 불꽃만큼은 꺼지지 않았다.

"알고 있다. 내가 저지른 죗값 또한 내 손으로 치러야 한다는 것쯤은."

소한이 낮게 읊조리며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세우려 했다.

"하지만 내 동생들은 다르다. 소연이도, 그리고 형도…… 그들은 이 저주받은 장부에 이름을 팔 적이 없다. 네가 노리는 것이 그 빚의 정체라면, 나 혼자면 충분할 터."

"충분해? 하하하하!"

대모가 목을 뒤로 젖히며 기괴하게 웃어젖혔다.

그 웃음소리가 기암괴석의 협곡 사이를 메아리치며 귓가를 찢을 듯 울려 퍼졌다.

"소한아, 너는 아직도 모르는구나. 이 검은 달의 계약은 말이다…… 한 번 뿌리를 내리면 피를 마시고 자라나는 덩굴과 같은 법이다. 네가 목을 내놓는다고 해서 그 아이들의 이름이 무사할 것 같으냐? 아니. 네가 소멸하는 그 순간, 네가 남긴 인연의 끈을 타고 넘어가 그 아이들의 기억까지 차례로 갉아먹을 것이다!"

소한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크게 흔들렸다.

"뭐…… 뭐라고……?"

"형제의 피는 하나로 이어진 법. 한쪽의 이름이 완전히 지워지면, 그와 맺었던 모든 기억의 조각도 함께 썩어 문드러진다. 네가 여기서 죽는다면, 서무현도, 월소연도 너라는 존재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채 평생을 껍데기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래도 목숨을 바치겠느냐?"

대모의 말은 날카로운 비수처럼 소한의 심장을 관통했다.

자신의 희생으로 모든 것을 끝내려 했던 계산이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소한은 이를 악물며 바닥을 짚었다. 손바닥 아래로 차가운 돌가루가 으스러졌다.

‘나를 지우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거다…….’

그것은 배신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순수한 희생도 아닌, 완벽한 함정이었다.

대모는 처음부터 그들을 이 협곡으로 유인해 하나씩 갉아먹을 심산이었던 것이다.

"어쩔 테냐, 소한아? 일어설 테냐, 아니면 그 자리에서 비참하게 엎드려 내 발밑의 개가 될 테냐."

대모가 손을 들어 올리자, 협곡의 어둠 속에서 수십 명의 흑월 살수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손에 들린 단검과 쇠사슬이 달빛을 받아 시퍼런 살기를 뿜어냈다.

바로 그때였다.

쾅—!

협곡의 입구를 가로막고 있던 거대한 바위 무더기가 단숨에 산산조각이 나며 폭발했다.

사방으로 흙먼지와 돌무더기가 튀어 오르는 그 장막 속에서, 서슬 퍼런 검푸른 검기가 밤하늘을 두 갈래로 갈라놓았다.

"소한아—!"

벼락처럼 내리꽂히는 목소리.

안개를 찢고 나타난 검객의 삿갓 아래로, 타오르는 듯한 검푸른 눈동자가 번뜩였다.

서무현이었다.

그의 등 뒤로는 핏빛 재를 뒤집어쓴 채 명인을 손에 쥔 소연이 매서운 눈빛으로 협곡의 전경을 노려보고 있었다.

대모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스쳤다.

"어찌…… 이 가파른 협곡을 그새 돌파해 온 것이냐?"

무현은 대답 대신 손에 쥔 검을 바닥에 스윽 그었다.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칠흑 같은 바닥에 불꽃이 튀었다. 그의 손바닥에는 아까 소연이 건네준 옥패가 피투성이 살결과 함께 단단히 엉겨 붙어 있었다.

기억은 지워지려 할 때마다 옥패의 감촉과 소연의 목소리에 의해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무현은 눈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소한을 향해 걸어가며, 낮고 무겁게 읊조렸다.

"일어나라, 소한아."

"형……?"

"네 싸움이 아니다. 십 년 전의 빚을 갚는다면, 그것은 너 혼자만의 몫이 아니라…… 이 검을 쥔 나의 몫이기도 하다."

무현의 검 끝이 대모를 향했다.

검은 달이 협곡의 정중앙으로 떠오르며, 세 사람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검은 달의 계약을 끊기 위한 마지막 혈전이, 바로 이 저주받은 흑월곡의 심장부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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