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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달의 검객 · 11화목차

제11화 흉터의 이름

연무장 천장을 뒤덮은 붉은 사슬이 기괴하게 꿈틀거렸다.

‘명부혈쇄(冥府血鎖)’.

허공에 얽히고설킨 수십 개의 핏빛 귀화 사슬이 비명을 지르듯 쇠마찰음을 내며 거대한 매듭을 틀었다. 그 자색(紫色) 사슬 눈 사이로 수천 개의 날을 세운 은빛 비수들이 떼를 지어 넘쳐났다.

진법의 핵인 ‘살진의 심장’이 고동치는 소리였다.

쿠구구구구—!

그것은 단순한 무공의 영역을 넘어선 마수(魔獸)의 집합체였다. 거대한 마수의 심장처럼 쿵쾅거리며 부풀어 오르는 형국. 한 번 박동할 때마다 수천 자루의 비수가 서로를 갉아먹는 금속음이 뇌수를 쪼개듯 울려 퍼졌고, 맥동이 가빠질수록 결계 안의 공기는 점차 진득한 핏빛으로 짙어졌다.

‘영인비수진(影刃匕首陣)’.

그 핏빛 심장이 박동을 멈추고 거꾸로 터져 내리는 순간, 비수 폭풍이 일시에 낙하하기 시작했다.

서걱! 서서서걱! 콰콰쾅!

허공을 갈라 찢는 음사한 비명이 연무장을 가득 채웠다. 바닥의 거친 석판들이 비수 세례에 마구 파헤쳐지며 칠흑 같은 먼지구름을 피워 올렸다. 단 한 점의 날밑조차 피할 곳 없는 완전한 살육의 공간이었다.

“크윽…!”

월소연은 부러진 늑골을 움켜쥐며 흙바닥을 굴렀다. 거칠게 숨을 쉴 때마다 날카롭게 부러진 갈비뼈 조각이 허파를 바로 찌르는 듯한 극통이 뇌리를 꿰뚫었다. 참지 못하고 입가로 울컥 토해낸 핏덩이가 잿빛 바닥을 점점이 적셨다.

하지만 육체를 가로지르는 고통보다 그녀를 더 지옥 같은 절망으로 몰아넣는 것은 시야를 가리는 붉은 안개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거대한 그림자였다.

핏빛 사슬이 붉은 궤적을 그리며 번쩍일 때마다, 흑월문주 혁련오의 얼굴에 드리워졌던 짙은 음영이 짧게 흔들렸다.

그의 파손된 백자 가면 틈새로, 불길에 짓이겨진 화상 흉터가 또렷하게 드러났다.

왼쪽 뺨에서 시작해 턱관절을 지나 목덜미까지 비틀리며 이어진 자줏빛 화상 자국. 뜨거운 불길에 그을려 죽어버린 피부가 붉은 결계의 빛을 받아 징그러운 뱀의 비늘처럼 번들거렸다.

‘저… 저 흉터는……!’

소연의 두 눈이 잘려 나간 듯 크게 벌어졌다. 찢어진 눈가로 피물결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십 년 전의 그 참혹했던 밤이 가슴속에서 선혈처럼 터져 나왔다.

전소되어 무너지던 청월장(靑月莊). 뜨거운 불길이 대들보를 뿜어내던 향나무 기둥 아래, 잿더미와 연기 속에서 정적을 깨고 서 있던 한 남자의 뒷모습.

당시 어린아이였던 소연은 사방이 불바다인 와중에도 그 남자의 얼굴 왼쪽에 새겨진 비틀린 화상 흉터를 똑똑히 보았었다. 어린 마음에도 저것은 단순한 불에 덴 자국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스승님의 필살검, 흑천월식검의 검기에 짓개어져 망가진 비명의 흉터였다.

“아…… 아아…….”

소연의 목에서 피 섞인 비명이 쇳소리로 터져 나왔다.

그녀의 친오빠 소한이 횃불을 들고 서 있었던 그 재앙의 밤, 그 횃불 뒤에서 붉은 눈으로 청월장의 종말을 지켜보며 모든 것을 조종하던 진짜 악귀.

십 년 동안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었던, 아니, 죽어도 잊어서는 안 되었던 장원의 도살자가 바로 저 자였다.

“네놈이었어……! 우리 장원을…… 스승님을……!”

소연이 피 칠갑이 된 손으로 바닥의 흙을 긁어모으며 일어서려 했으나, 비틀린 뼈가 허파를 압박하자 비명을 지르며 다시 거꾸러졌다. 절망과 분노로 그녀의 눈시울이 찢어질 듯 붉게 물들었다.

그때, 소연의 앞을 가로막는 칠흑 같은 넓은 등판이 있었다.

삿갓을 푹 눌러쓴 검객.

서무현이었다.

스스스스—!

무현의 손에 쥐인 검에서 먹물 같은 칠흑의 검기가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주위의 모든 빛을 삼켜버리는 중력장. 흑월문의 금기이자 계약의 힘인 흑천월식검(黑天月蝕劍)의 기운이었다.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또 하나 사르르 사라져 갔다.

‘소연의…… 다정했던 웃는 얼굴이던가.’

월식의 초식을 끌어올릴 때마다 자아와 기억의 조각들이 모래알처럼 빠르게 빠져나갔다. 무명병(無名病)의 침식이었다. 그러나 무현의 검자루를 쥐어짠 손은 단 한 치도 요동치지 않았다. 기억을 잃어버릴지언정, 몸에 각인된 살귀의 본능과 소연을 지켜내야 한다는 지독한 집착은 오히려 더욱 날카롭게 벼려지고 있었다.

투확!

무현이 검을 사선으로 흩뿌렸다.

칠흑의 초승달 참격이 허공을 잘라냈다.

연무장 천장에서 빗물처럼 쏟아지던 수천 개의 비수가 검은 참격과 충돌했다.

깡! 깡! 까가가강—!

쇠와 쇠가 부딪쳐 내지르는 비명이 귓전을 파고들었다. 쇄도하던 비수들이 검은 중력장에 말려들어 가루처럼 파쇄되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흑백의 대치 속에서 먹물 튀김과도 같은 칠흑의 잔영이 붉은 비수 폭풍을 완벽하게 등분하며 갈라버렸다.

“호오.”

핏빛 사슬 위에 거만하게 서 있던 흑월문주 혁련오가 낮은 탄성을 내뱉었다.

그의 파손된 가면 뒤로 드러난 외눈에 지독한 흥미와 가학적인 즐거움이 가득 차올랐다.

“단 한 번 가르침을 받았을 뿐인 계집의 오라비 주제에, 흑천월식검의 진의를 그 정도까지 깨달았다니. 스승님의 눈이 아주 틀리지는 않았던 모양이구나.”

혁련오의 핏빛 손가락이 피의 사슬을 튕겼다.

팅—!

맑고도 기이한 파동이 연무장 전체를 휘감으며 흔들었다. 파쇄되던 비수들이 다시 사슬의 결계로 흡수되며 더 거대하고 둔중한 명부대쇄의 형상으로 뒤엉켰다.

무현은 칠흑의 검기를 거두지 않은 채, 차가운 눈빛으로 혁련오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삿갓 그늘 아래로 흐르는 무현의 숨결은 짓눌려 턱턱 막혀왔지만, 그 시선만큼은 문주의 염통을 당장이라도 꿰뚫을 듯 서슬 퍼랬다.

“네놈의 더러운 입에서…… 스승님의 함자를 올리지 마라.”

무현의 목소리는 만년 설원의 서리보다 차가웠다. 스승이라는 단어를 뱉는 순간,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게 아려왔다. 청월장주 서문 월청. 그 노인의 얼굴조차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었지만, 그가 남긴 묵직한 가르침과 온기만큼은 영혼에 뼛가루처럼 또렷이 남아 있었다.

혁련오는 무현의 분노에 기가 막히다는 듯 앙천대소했다.

“하하하하! 스승님? 스승님이라고 했느냐?”

웃음소리가 결계 내부를 비틀었다. 혁련오가 천천히 허공을 밟고 내려왔다. 핏빛 사슬들이 그의 발밑으로 붉은 주단처럼 펼쳐졌다.

파손된 백자 가면 뒤로 드러난 흉터가 그가 기괴하게 미소 지을 때마다 질척이게 일렁였다.

“어리석은 놈. 아무것도 모르는 껍데기 따위가 지껄이는 꼴이라니. 그 노인이 너에게 대단한 신의라도 베푼 것 같더냐?”

혁련오가 무현의 코앞 십 자 거리까지 느릿하게 다가섰다.

그의 손끝에 붉은 피의 기운이 모여들며 한 자루의 핏빛 단검 형상을 이루었다. 그 단검의 자루에는 흑월문의 금기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 노인은 선인(善人)이 아니었다. 단지 위선자였을 뿐이지. 검은 달의 계약에 손을 대고, 그 대가로 찾아온 재앙을 감당하지 못해 제자들의 이름을 장부에 꿰매어 바친 추악한 늙은이였다.”

“입 다물어라……!”

무현이 검을 틀어쥐며 쇄도하려 했다. 하지만 혁련오가 흘린 다음 한마디가 무현의 무릎을 강제로 꺾어놓듯 허공에 동결시켰다.

“십 년 전, 그 불타던 장원에서…….”

혁련오의 목소리가 뱀의 혀처럼 낮고 길게 늘어졌다.

“나를 ‘사형’이라 부르던 귀찮은 아이가 하나 있었지.”

……!!

무현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옆에서 피를 토하며 누워있던 소연의 숨통마저 턱 막혀버렸다.

사형(師兄).

청월장의 수많은 제자 중, 그 누구보다 뛰어나 장주의 수제자이자 첫 번째 제자로 불렸던 자.

십 년 전 장원이 불타던 그날 밤, 제일 먼저 마교의 살수들에게 목이 잘려 죽었다고 알려졌던 청월장의 으뜸사형.

혁련오가 손을 올려 자신의 왼쪽 뺨에 새겨진 화상 흉터를 느리게 쓸어내렸다.

“이 흉터가 무엇으로 보느냐? 십 년 전 그 밤, 스승이라는 늙은이가 제 손으로 직접 내 얼굴에 그어버린 흑천월식검의 흔적이다. 내가 흑월문의 계약 장부를 빼앗아 달아나려 하자, 나를 파문하고 이 흉터를 남겼지.”

혁련오의 외눈에 광기와 증오가 동시에 번뜩였다.

“하지만 노인은 몰랐지. 그가 나를 죽였다고 믿고 돌아선 그 순간, 내가 흑월문의 대모와 계약을 맺고 다시 살아 돌아왔다는 것을. 그리고 그의 진짜 친아들, 저 불쌍한 소한의 손에 횃불을 쥐여주어 청월장을 직접 잿더미로 만들게 했다는 것을!”

쿠쾅—!

그것은 어떤 칼날보다 더 깊게 무현의 심장을 찢어발기는 폭갈이었다.

혁련오.

그의 본명은 무림에서 사라진 지 십 년이 넘은 이름이었다.

청월장주 서문 월청이 가장 아꼈던 첫 번째 제자.

소연과 소한에게는 친오빠나 다름없었던 따뜻했던 사형.

무현에게는 검의 길을 처음 보여주었던 철벽 같던 선배.

그 자가 바로 흑월문의 문주이자, 청월장을 지옥으로 만든 모든 비극의 설계자였다.

“사…… 형……?”

소연의 떨리는 입술 사이로 피가 새어 나왔다.

절망의 깊이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어졌다. 친오빠인 소한이 횃불을 들었고, 자신들이 그토록 따르고 존경했던 사형이 흑월문의 수장이 되어 그 불길을 지휘했다.

청월장의 비극은 외부에서 찾아온 재앙이 아니었다. 안에서부터 썩어 문드러진 내부의 배신이자, 스승과 제자가 서로를 저주하며 얽힌 피의 업보였던 것이다.

혁련오가 무현을 내려다보며 차갑게 비웃었다.

“그래, 무현아. 이제야 그 멍청한 머릿속에 기억의 파편이 좀 떠오르느냐?”

“……!”

그 나지막한 세 글자가 무현의 뇌리를 망치로 후려치듯 무겁게 때렸다.

삿갓 그늘 아래 감춰져 있던 무현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동요했다. 십 년 동안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아니, 흑월의 금기 무공을 쓸 때마다 영혼 밑바닥으로 가라앉아 마침내 잊어가던 제 진짜 본명.

그 이름을 부른 자가 다른 누구도 아닌, 십 년 전 죽은 줄로만 알았던 첫째 사형이라는 사실이 무현의 염통을 얼음송곳처럼 찌르고 들어왔다.

‘무현(武鉉)…….’

기억의 둑이 터져 나가며 잿더미 속에 묻혔던 환영들이 뇌리 속에서 어지럽게 뒤얽혔다.

어린 날, 향나무 냄새가 가득하던 청월장의 연무장. 햇살 아래서 자신에게 목검의 궤적을 바로잡아 주던 다정한 손길. 스승님의 눈을 피해 밤마다 어린 소연과 무현에게 목기린을 조각해 주며 비단주머니를 쥐여주던 대범하고 든든했던 사형의 뒷모습.

‘무현아, 네 검은 유난히 곧구나. 그 곧음이 언젠가 너를 지켜줄 거다.’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머리를 쓸어 넘겨주던 사형의 따스했던 오른손.

하지만 지금 그 손에는 스승의 피로 물들었을 핏빛 단검이 쥐여 있었고, 다정하던 얼굴엔 흑천월식검의 검기에 문드러진 기괴한 화상 흉터만이 붉은 뱀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크윽! 으아아악!”

무현의 입에서 피 섞인 신음과 절규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이름이 불린 순간, 몸속에 잠들어 있던 ‘검은 달의 계약’이 미친 듯이 반응했다. 무명병의 고통이 스무 배, 서른 배의 극통이 되어 온몸의 경락을 휘감고 뒤틀었다.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보다 더한 지옥은, 잃어버렸던 가장 참혹한 진실을 되찾는 것이었다.

자신의 본명이, 사형이라 믿었던 살귀의 입을 통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하하하하! 그래! 바로 그 눈빛이다!”

혁련오가 미친 듯이 웃어댔다. 그의 손가락이 피의 사슬을 튕길 때마다 연무장 전체가 핏빛 진동으로 휘청였다.

“서문 월청 그 늙은이가 너를 어디선가 주워 와 무현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을 때, 너는 그 노인이 너를 구원했다고 믿었겠지! 하지만 아니었다! 그 이름이야말로 흑월문에 바쳐진 첫 번째 제물의 표식이자, 너를 옭아매기 위한 사슬이었다!”

“입 다물어라……! 입 다물라 했다……!”

무현의 목소리가 짐승의 포효처럼 폭발했다.

스스스스—!

무현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칠흑의 검기가 거대한 먹물 폭풍이 되어 연무장의 붉은 안개를 삼켜 들어갔다.

자신의 자아가 마모되고, 소연과의 소중한 기억들이 모래알처럼 파쇄되어 사라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무현은 검자루를 잡은 손에 뼈가 하얗게 드러나도록 힘을 주었다. 사형이라는 환영을 찢어발기지 않고서는, 이 지옥 같은 비극의 고리를 끊어낼 수 없었다.

“오라버니! 안 돼요! 더 이상 그 초식을 쓰면…… 정말로 전부 잊어버리게 돼요!”

바닥에 엎드린 월소연이 피를 토하며 절규했다.

소연의 눈에서 핏빛 눈물이 흘러내렸다. 친오빠 소한은 거짓에 속아 횃불을 들었고, 자신이 따르던 사형 혁련오는 악귀가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검을 든 의오라비 무현은 제 영혼과 이름을 태워 가며 마공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청월장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었다. 십 년 전 그 밤의 불길은 단 한 번도 꺼진 적이 없었다. 단지 그 불길이 사람들의 가슴속에 들어앉아 영혼을 검게 태우고 있었을 뿐.

“죽어라, 혁련오—!”

무현이 바닥을 차고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칠흑의 초승달 참격이 결계를 잘라냈다. 흑천월식검의 중력장이 혁련오가 펼쳐놓은 붉은 명부혈쇄를 쇄석기처럼 파쇄하며 직진했다.

콰가가가강!

핏빛 사슬들이 가루가 되어 사방으로 튕겨 나갔고, 연무장 바닥의 거친 석판들이 비산하며 솟구쳐 올랐다.

하지만 혁련오는 피하지 않았다.

그의 파손된 백자 가면 뒤로 드러난 외눈이 광기로 번뜩였다. 혁련오는 핏빛 단검을 가슴 앞에 세운 채, 쇄도하는 무현을 향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사제야, 네가 아무리 검을 높이 들어도 소용없다. 흑월의 장부에 새겨진 네 이름이 소멸하지 않는 한…… 너는 평생 내 손바닥 안이다.”

콰아아아앙—!

칠흑의 참격과 핏빛 단검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연무장 중앙에서 흑백과 붉은색이 뒤엉킨 거대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먹물이 사방으로 튀듯 검은 기운이 흑월문의 하늘을 물들였고, 그 사이로 붉은 사슬의 파편이 비처럼 내렸다.

폭발의 중심에서 무현의 삿갓이 산산조각이 나며 허공으로 산산이 날아갔다.

붉은 달빛 아래, 화상 흉터가 드리워진 무현의 진면목이 완전히 노출되었다. 그리고 그 시선 끝에, 사형이라 믿었던 자의 핏빛 단검이 무현의 왼쪽 어깨를 깊숙이 꿰뚫었다.

서걱!

선혈이 바닥으로 흩뿌려졌다.

그러나 무현은 아픔조차 느끼지 못했다. 단검이 살을 찌르는 물리적인 고통보다, 파문당한 사형의 입에서 흘러나온 제 본명이 영혼을 갈갈이 찢어발기는 극통이 훨씬 더 잔혹했기 때문이다.

이름이, 칼보다 먼저 그의 심장을 깊숙이 찌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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