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흑월의 그림자 — 문주의 진면
1.
쿠구구구구—!
수만 자루의 비수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박동하는 거대한 강철의 심장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연무장에 깔린 두꺼운 청석판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반토막으로 솟구쳐 올랐다. 짓눌린 공기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압사당하는 극압(極壓)의 공간. 그 천지를 짓누르는 파멸 한가운데에서, 삿갓을 깊게 눌러쓴 서무현의 녹슨 철검이 천천히 호를 그렸다.
스르륵.
철검의 금이 간 검신 끝에서 짙고 시커먼 먹물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지상의 모든 빛을 거부하는 절대적인 어둠이자, 사방의 형체와 기운을 집어삼키는 기괴한 자력의 늪이었다.
"월식(月蝕)."
낮게 읊조린 단어 하나가 연무장의 시공간을 기묘하게 비틀어 버렸다.
콰아아아앙—!
공중을 메운 강철 구체와 검은 중력장이 충돌한 순간, 천지를 진동하던 소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일순간 강호의 모든 소리가 검은 달의 구멍 속으로 먹혀든 것처럼 기괴하고 참혹한 정적이 사방을 덮쳤다. 이윽고 연무장 전체가 흑백의 단색화처럼 뒤흔들리더니, 거대한 영인비수진의 핵심인 '살진의 심장'이 미세한 쇠가루가 되어 사방으로 폭발하듯 흩어졌다.
칠흑의 강철 비가 내렸다. 핏빛 보름달 아래에서 검은 가루가 눈처럼 흩날리는 와중에도, 무현은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은 채 검을 세우고 있었다.
"하아… 하아…"
무현의 등 뒤에서 소연이 거친 숨을 내뱉었다. 부러진 늑골을 옥죄는 격통에 이가 하얗게 깨질 듯 떨렸지만, 손에 쥐어진 단검만큼은 여전히 무현의 사각을 완벽히 호위하고 있었다.
"오라버니… 방금 그 초식은…."
소연의 떨리는 목소리가 차가운 공기 중에 번졌다. 무현이 방금 펼쳐 보인 무공은 십 년 전 청월장의 맑고 쾌활했던 순수한 검법이 아니었다. 도저히 인간의 혈경에서 나올 수 없는, 기괴하고도 매혹적인 어둠의 궤적. 그것은 장원을 잿더미로 만들었던 흑월문의 금기 무공이자 저주받은 계약의 힘이었다.
무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수 없었다.
'월식'을 일으킨 대가는 곧바로 그의 자아를 갉아먹으며 찾아왔다. 머릿속 깊은 곳에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던 어떤 기억의 조각이 차갑게 식어 가며 바스러졌다. 어린 시절 스승님이 머리를 듬직하게 두드려 주시던 따뜻했던 손길인가, 아니면 소연과 함께 밟았던 겨울날 청월장 뒤뜰의 눈밭인가. 정체 모를 허기짐과 아득한 허무가 뇌수를 사정없이 갉아먹었다. 검은 달의 힘을 끌어쓸수록, '서무현'이라는 존재 자체가 세상의 기억과 인연에서 조금씩 삭제되어 가고 있었다.
"후후후… 훌륭하구나. 정말로 훌륭해."
붉은 안개 속, 높은 누각의 난간 위에 서 있던 자가 나지막이 손뼉을 쳤다.
흑월문주, 혁련오.
죽은 스승 서문 월청의 목소리와 완벽히 똑같은 억양으로 성대를 울리며 기만하던 그가, 천천히 자신의 머리를 덮고 있던 깊은 칠흑색 후드를 벗어 던졌다.
각진 턱, 정수리에서부터 왼쪽 뺨을 길게 가로지르는 흉측한 불자국, 그리고 타오르는 숯불처럼 번뜩이는 두 눈.
달빛 아래 완벽히 드러난 그 얼굴을 확인한 순간, 무현의 검기가 순간적으로 일렁이며 사방으로 격렬하게 산란했다.
"사형…."
무현의 목에서 피비린내 섞인 쇳소리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2.
"오래간만이구나, 무현아. 아니… 이제는 이름마저 잃어버린 무명(無名)의 개라 불러야 하려나?"
혁련오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스승의 목소리를 모사하던 기괴한 음공(音功)이 거두어지자, 그 자리에는 피와 쇠붙이 냄새가 물씬 풍기는 진짜 사형의 목소리가 들어찼다.
십 년 전, 청월장 수제자이자 장주의 첫 번째 제자였던 혁련오. 스승 서문 월청의 가장 두터운 신뢰를 받았으며, 어린 소연과 무현에게는 산처럼 든든했던 사형. 그가 바로 청월장을 흑월문에 팔아넘긴 배신자이자, 검은 달의 총애를 받는 흑월문의 문주였다.
"어째서냐…."
무현이 녹슨 철검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하얗게 질리고, 검신에 흐르던 먹물 같은 마기가 불안정하게 요동쳤다.
"스승님께서는… 스승님께서는 너를 친아들처럼 아끼셨다. 청월장의 모든 검보와 비전을 네게 넘겨주려 하셨어.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 흑월문의 개가 되어 장원을 핏빛으로 물들인 것이냐!"
무현의 분노가 담긴 일갈이 연무장을 울렸지만, 혁련오는 그저 가소롭다는 듯 허허롭게 웃을 뿐이었다.
"친아들? 비전? 크하하하! 속지 마라, 불쌍한 내 사제야. 서문 월청 그 늙은이가 아낀 것은 오직 그 자신의 깨끗한 명예와, 여기 있는 네놈의 '근골'뿐이었다!"
혁련오가 손가락을 뻗어 무현을 차갑게 가리켰다.
"너는 네가 왜 청월장에 거두어졌는지 아느냐? 왜 그 늙은이가 이름도 없는 전쟁터의 고아를 거두어 무공을 가르쳤다고 생각하지? 그 늙은이는 이미 알고 있었던 거다. 네놈의 피 속에 흐르는, 검은 달과 계약할 수 있는 '열쇠'로서의 가치를!"
"헛소리!"
무현이 차갑게 일갈하며 단숨에 지면을 박차고 나갔다.
스웩—!
녹슨 철검이 보이지 않는 속도로 혁련오의 목을 향해 창공을 갈랐다. 단순한 직선 찌르기였으나, 십 년간 벼려온 집념과 흑천월식검의 중력장이 더해져 공간 자체가 찢겨 나가는 기분 나쁜 마찰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혁련오는 피하지 않았다. 그가 가볍게 오른손 손가락을 튕겼다.
파아앗—!
혁련오의 소매 끝에서 시커먼 먹물 형태의 잔상이 흘러나오더니, 무현의 철검을 완벽히 얽어매어 공중에서 멈춰 세웠다.
"뭣이…!"
무현의 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자신의 검을 막아선 것은 다름 아닌 흑천월식검의 중력장이었다. 그것도 무현이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짙고, 훨씬 묵직한 어둠의 기운.
혁련오가 잔상을 따라 무현의 귓가에 얼굴을 바짝 대고 섬뜩하게 속삭였다.
"착각하지 마라, 무현아. 흑천월식검은 청월장의 무공이 아니다. 십 년 전, 그 늙은이가 계약을 비틀어 빼앗으려 했던… 우리 흑월문의 금기이자, 검은 달의 지배자에게 바쳐진 잔혹한 핏빛 사슬이다."
3.
콰앙—!
두 개의 검은 중력장이 정면으로 충돌하며 발생한 폭풍이 무현과 혁련오를 동시에 뒤로 튕겨 냈다. 무현은 바닥을 세 번 굴러 겨우 착지했고, 혁련오는 가볍게 무너져가는 누각 난간 위에 다시 내려앉았다.
소연은 숨이 턱 막히는 광경에 손을 하얗게 떨었다.
무현이 펼친 검과 혁련오가 가볍게 받아낸 무공은 완벽히 같은 뿌리를 두고 있었다. 빛을 삼키는 어둠, 공간을 비트는 중력, 그리고 타인의 존재를 갉아먹는 차가운 오한.
"그렇다면… 오라버니가 쓰고 있는 그 무공도…."
소연의 눈가에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무현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휘두르던 그 강력한 힘이, 실은 그의 자아와 기억을 조금씩 파멸로 이끄는 검은 달의 저주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무현은 입가에 흘러내리는 검붉은 피를 손등으로 거칠게 문질러 닦아냈다. 가슴 내부에서 내장이 뒤틀리는 극심한 고통이 밀려왔다. 혁련오의 말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흑천월식검을 쓸수록 자신의 존재가 세상에서 깎여 나간다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사형… 그렇다 해도 네 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무현이 다시금 철검을 고쳐 잡았다. 검신을 따라 금빛 한자가 미세하게 떠올랐다가, 검은 먹물에 삼켜져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장원에 횃불을 던지고, 스승님의 목을 베어 문주 자리를 탐한 것은 바로 너다. 네놈의 피로 청월장의 억울한 혼을 위로하겠다."
그러자 혁련오가 광기 어린 눈빛으로 핏빛 하늘을 향해 폭소를 터뜨렸다.
"하하하하! 위로? 청월장의 혼을 위로한다고?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무현아! 아직도 네 기억 속의 장원이 성역으로 보이더냐?"
혁련오가 웃음을 싹 거두고, 나직하고 섬뜩한 음성으로 뱉어냈다.
"그날 밤, 장원에 직접 횃불을 들고 들어간 건 내가 아니다."
"무슨…!"
"판을 짠 건 나다. 흑월의 장부에 적힌 빚을 청산하기 위해 장원을 넘긴 것도 나지. 하지만… 스승의 침소에 직접 불을 지르고, 십 년 전 그 온화했던 장원을 잿더미로 만든 손은… 다른 누구의 손도 아니었다."
혁련오의 핏빛 시선이 무현의 뒤편, 석판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소연에게로 향했다.
"그 손은 바로… 네가 그토록 목숨 걸고 지키려는 저 아이의 피붙이, 너희가 죽었다고 믿고 있는 소한(小寒)이의 손이었다!"
4.
"거짓말—!"
소연의 절규 어린 비명이 연무장을 찢발겼다.
"거짓말이야! 오라버니는… 소한 오라버니는 그날 나와 함께 스승님의 방 뒤에 숨어 있었어! 날 살리기 위해… 날 피신시키고 장원에서 죽은 거라고!"
소연은 온몸의 뼈가 부러져 나가는 통증도 잊은 채 바닥을 기며 소리쳤다. 십 년 동안 그녀를 버티게 한 것은 오빠의 희생이었고, 청월장이라는 안식처를 잃은 슬픔이었다. 그런데 그 장원을 불태운 범인이 자신의 친오빠라니. 그것은 그녀가 살아온 인생 전체를 부정하는 잔혹한 선언이었다.
"거짓말이 아니다, 소연아."
혁련오가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네 친오빠 소한이는 말이다, 병들어 죽어가던 너를 살리기 위해 검은 달에게 계약을 바쳤다. 그리고 대가로 장원을 바치라는 흑월의 명을 받아들였지. 그 녀석은 속았던 거다. 장원을 바치면 동생을 살릴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제 손으로 아버지 같은 스승의 침소에 불을 질렀지!"
"그만해라!"
무현의 고함과 함께 칠흑의 참격이 공기를 찢고 뻗어나갔다.
쿠우웅!
혁련오가 서 있던 누각이 반통막이 나며 사방으로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혁련오는 이미 신법을 펼쳐 공중으로 몸을 날린 뒤였다.
"진실이 두려우냐, 무현아! 네가 기억을 잃어가는 이유도, 저 아이가 오라버니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도! 모두 그날 밤에 시작된 검은 달의 계약 때문이다!"
공중에 떠오른 혁련오가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의 손목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오더니, 연무장 사방의 암벽과 바닥으로 번져 나갔다.
기이잉—!
연무장 외곽을 둘러싼 거대한 협곡의 암벽에서 핏빛 귀화(鬼火)가 일제히 타올랐다. 그리고 그 붉은 불꽃 속에서 굵직하고 녹슨 쇠사슬들이 꿈틀거리며 솟구쳐 올랐다.
명부혈쇄(冥府血鎖).
흑월문 본단의 외곽을 완벽히 봉쇄하는 태고의 살진이자, 한번 갇히면 산 자의 영혼과 이름까지 꿰매 버린다는 혈빛 사슬의 그물망이었다.
수천 자루의 비수를 꿰뚫듯, 수수께끼의 붉은 사슬들이 하늘을 가로지르며 서로 복잡하게 교차했다. 핏빛 달빛조차 사슬의 틈새에 걸려 지상으로 내려오지 못했다. 연무장은 순식간에 거대한 철창에 갇힌 격전장이 되었다.
5.
"이곳은 이제 너희의 무덤이다."
혁련오가 붉은 사슬이 얽혀 만든 허공의 발판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너희는 여기서 나갈 수 없다. 무현아, 네놈이 가진 흑천월식검의 마지막 초식을 꺼내어 이 사슬을 끊어보아라. 하지만 그 초식을 쓰는 순간, 네놈은 네 이름도, 저 아이의 존재도 완전히 잊은 채 영혼 없는 무명병(無名病)의 껍데기가 될 테니!"
무현은 사방을 짓눌러 오는 지독한 마기 속에서 천천히 소연의 앞으로 다가갔다.
소연은 혼이 나간 표정으로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충격과 절망, 그리고 육체의 한계가 그녀를 깊은 어둠 속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무현은 왼손을 뻗어 소연의 가늘게 떨리는 어깨를 잡았다.
"소연아."
그가 부른 이름에 소연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사형의 말에 흔들리지 마라. 진실이 무엇이든… 십 년 전의 빚은 오늘 내가 전부 청산한다."
"오라버니… 제발… 무공을 더 쓰지 마세요… 그러다간 오라버니가… 정말로 사라져 버려요…."
소연이 무현의 옷자락을 쥐어짜듯 잡았다. 무현의 얼굴에서 조금씩 사라져 가던 생기와, 그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짙어지는 검은 달의 어둠을 그녀 역시 똑똑히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스스스스스—
명부혈쇄로 뒤덮인 붉은 안개 속에서, 짙은 흙먼지와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콰아아앙… 콰아아앙…
묵직하고 중중한 무언가가 바닥의 청석을 긁으며 걸어오는 소리가 정적을 깼다.
그것은 엄청난 무게의 칼날이 석판을 짓밟고 문지르는 기괴한 소리였다. 거칠고 날카로운 마찰음이 들려올 때마다 온몸의 소름이 돋아났다.
안개 너머에서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걸어 나왔다.
신장 칠 척이 넘는 거구.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몸에 칭칭 감긴 철쇄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의 얼굴은 반쯤 갈라진 붉은 가면으로 가려져 있었고, 오른손에는 사람 키보다도 큰, 지상의 모든 빛을 삼키는 칠흑 대검(漆黑 大劍)을 질질 끌고 있었다.
"저… 저 자는…."
소연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흑월문 입구를 지키고 서 있던 자. 무현에게 거대한 파동을 내뿜었던 그 '붉은 가면'이었다.
6.
붉은 가면을 쓴 사내가 무현과 소연의 십 척 전방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가 칠흑 대검을 천천히 들어 올리자, 바닥의 석판들이 무서운 중력을 견디지 못하고 잘게 부서져 공중으로 둥둥 떠올랐다. 그 역시 무현과 마찬가지로 흑천월식검의 기운을 다루고 있었다.
"쿠우우우…."
가면 너머에서 짐승의 것과 같은 기괴하고 억눌린 호흡음이 새어 나왔다.
혁련오가 사슬 위에서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두 사람을 가리켰다.
"인사해라, 무현아. 그리고 소연아."
혁련오의 목소리에 깊은 조소와 학대의 쾌감이 담겼다.
"십 년 전, 흑월의 계약에 자신을 바치고 영혼을 먹힌 사냥개. 제 손으로 장원에 불을 지르고 스승을 죽인 죄책감에 자아를 파먹힌… 너희의 형제다."
"아… 아아…."
소연의 입에서 비명조차 되지 못한 핏빛 탄식이 흘러나왔다.
붉은 가면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소연을 바라보았다. 반쯤 갈라진 가면의 틈새로, 피처럼 붉게 물든 눈동자가 드러났다. 그 눈동자는 이성과 자아를 잃어 멍하게 비어 있었지만, 핏빛 안개 속에서 명확하게 소연의 얼굴을 담아내고 있었다.
사내의 굳어버린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소… 연… 아…."
기계적이고 괴이하게 비틀린 음성이었지만, 그것은 분명 소연이 십 년 동안 꿈속에서조차 잊지 못했던 그 목소리였다.
소한.
잿더미 속에서 소연을 안고 울었던 친오빠. 십 년 전 죽은 줄로만 알았던 청월장의 또 다른 수제자.
그가 흑월문의 붉은 가면이 되어, 칠흑 대검을 든 채 동생과 의형제의 목을 노리고 서 있었다.
"오라버니…?"
소연이 손을 뻗으려 했지만, 소한의 칠흑 대검이 무서운 기세로 무현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쿠콰아아아앙—!
무현이 녹슨 철검으로 대검을 맞받아쳤으나, 무시무시한 중력의 파동이 연무장 전체를 분쇄했다. 두 자루의 검은 달 칼날이 충돌하며, 칠흑의 먹물이 비처럼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갈라진 가면 너머로 드러난 소한의 붉은 눈과, 삿갓 아래 감춰진 무현의 차가운 눈이 허공에서 진하게 부딪쳤다.
십 년 전의 불꽃이, 마침내 가장 잔혹한 형태의 그림자가 되어 세 사람의 운명을 삼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