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배신의 불꽃과 검은 달의 포효
지독한 안개 사이로 쇳소리가 긁혀 나왔다. 비릿한 녹 냄새와 기름에 찌든 살가죽 타는 악취가 뒤섞인 음산한 공기였다. 계곡의 가파른 암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검붉은 이끼는 마치 오래전에 말라붙은 핏물 자국 같았다. 바람조차 숨을 죽인 그 협곡의 정점에 우뚝 서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차라리 지옥 밑바닥에서 기어 올라온 거대한 악귀의 형상이었다.
외눈의 문지기.
흘러내린 한쪽 눈두덩을 굵은 무명실로 기괴하게 꿰맨 거한이 제 키를 훌쩍 넘는 흑철 추(鎚)를 묵직하게 메고 서 있었다. 드러난 상반신 곳곳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칼자국과 불에 덴 흉터가 지네처럼 꿈틀거렸고, 살결마다 시커먼 기름때가 눌어붙어 번들거렸다.
쿵―!
거한이 흑철 추를 바닥으로 사정없이 내리찍었다. 흑월곡의 단단한 청석 암반이 거미줄처럼 쩍쩍 갈라져 나가며, 그 균열 사이로 칙칙한 마혈(魔血)의 기운과 함께 음산한 귀화가 치솟았다.
“크흐흐…… 쥐새끼들이 문주님의 살진에 발을 들이기도 전에, 내 쇠사슬에 뼈마디부터 갈려 나가야 제맛이지!”
철그렁! 채애앵!
거한의 등 뒤와 굵직한 양팔에 칭칭 감겨 있던 육중한 쇠사슬들이 마침내 똬리를 틀며 생명을 얻은 독사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보통의 강철 사슬이 아니었다. 사슬의 고리마다 수많은 이들의 살점과 골수, 마혈이 엉겨 붙어 푸르스름한 귀화(鬼火)를 피워 올리는 흑월문의 흉물, 명부혈쇄(冥府血鎖).
스르릉, 촤르르륵!
사슬이 허공을 채찍질하듯 휘감아 돌자 흑월곡 전체가 붉은 궤적으로 옭아매졌다. 그 기세는 단순한 둔기나 강철 채찍이 뿜어내는 파괴력이 아니었다. 사슬이 스쳐 지나가는 자리마다 허공의 습기가 핏빛 안개로 증발했고, 억울하게 죽어간 원귀들의 비명이 환청처럼 고막을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명부의 아귀들이 지옥의 문턱을 부수고 쏟아져 나오는 듯한 끔찍한 살기였다.
소연은 부러진 갈비뼈를 움켜쥔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비틀거렸다. 폐부가 찢겨 나가는 격통 속에서도 눈앞의 괴물이 뿜어내는 살의에 목구멍이 바짝 말라붙었다.
“명부혈쇄…… 저건 본단의 살수들조차 공포에 떨게 만드는 문지기의 마병(魔兵)……!”
외눈 문지기는 소연의 창백한 얼굴과 떨리는 탄식을 놓치지 않았다. 목젖을 울리는 거친 웃음소리가 계곡의 바위벽을 타고 음산하게 메아리쳤다. 피고름이 누렇게 엉겨 붙은 외눈이 삿갓을 눌러쓴 무현의 전신을 핥듯이 훑어내렸다.
“어설픈 계집년은 이미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구나. 하지만 저 삿갓 놈, 네놈은 제법 눈빛이 벼려져 있어. 하긴, 십 년 전 그 지옥 같은 화염 속에서 스승의 핏물을 밟고 겨우 기어 나온 살아남은 쥐새끼답군 그래!”
무현은 대꾸하지 않았다. 삿갓의 챙 아래로 드리워진 짙은 그림자 속에서, 그의 입술선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굳게 닫혀 있었다. 거센 사슬의 풍압이 삿갓 끝과 낡은 도포 자락을 사정없이 펄럭였으나, 단단히 딛고 선 그의 두 발은 대지에 깊게 뿌리박힌 고목처럼 미동조차 없었다.
그 서늘한 침묵이 오히려 문지기의 잔학한 흥미를 더욱 자극했다. 거한은 명부혈쇄의 고리들을 허공에 둥글게 감아 올리며, 십 년간 썩어 문드러진 진실을 독 묻은 비수처럼 쏘아붙였다.
“십 년 전, 네놈들이 그토록 성역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청월장이 왜 하룻밤 사이에 잿더미가 되었는지 아직도 모르는 모양이구나? 무림맹의 위선자들이 쳐들어와 불을 질렀다고 생각했나? 아니면 검은 달의 저주가 하늘에서 그대로 벼락처럼 떨어졌다고 믿었나!”
거한의 비틀린 입술 사이로 터져 나온 비아냥이 흑월곡의 침묵을 찢어발겼다.
“틀렸어! 그 거룩하고 고결하던 장원에 불을 지른 건 다른 누구도 아니다! 네놈이 그토록 받들고 따르던 네 친사형…… 지금 우리 흑월문의 문주님이 직접 제 손으로 기름을 붓고 횃불을 던졌단 말이다!”
쩌정―!
마치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이 내리꽂혀 뇌수를 강타하는 듯한 충격이었다.
“……뭐라고?”
소연의 동공이 갈기갈기 찢겨 나갈 듯 격렬하게 흔들렸다. 온몸의 피가 일순간에 거꾸로 솟구치다 차갑게 식어 내리는 기괴한 오한이 등골을 타고 내달렸다.
사형이? 장원의 모든 이들이 우러러보던 장주의 첫 번째 제자, 과묵하면서도 언제나 어린 사제들을 따뜻하게 품어주던 그 사형이 청월장에 불을 질렀다고?
그 잔혹한 말 한마디는 소연의 뇌리 깊은 곳, 십 년 동안 피와 눈물로 봉인되어 있던 참혹한 기억의 빗장을 단숨에 부수어버렸다.
피비린내로 진동하던 그 여름의 밤. 하늘은 먹물을 통째로 쏟아부은 듯 칠흑 같았고, 장원의 푸른 기와와 붉은 누각들이 거대한 화마에 휩싸여 뼈대를 드러내며 무너져 내리던 그 밤이었다. 어린 소연은 불타는 대청마루 밑바닥, 숨이 턱턱 막히는 잿더미 속에 웅크린 채 피눈물을 흘리며 울부짖고 있었다.
그 화마(火魔)의 장벽을 뚫고 걸어오던 한 사내의 긴 그림자가 있었다.
그는 손에 기름을 듬뿍 머금은 거대한 횃불을 쥐고 있었다. 화염이 일렁일 때마다 언뜻 비치던 낯익은 옷자락, 그리고 청월장 수제자만이 허리춤에 찰 수 있었던 청동 패.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스승이 머물던 본채를 향해 거침없이 불길을 내던졌다. 어린 소연은 그자가 자신을 구하러 온 사형이라 굳게 믿으며 울며 손을 뻗으려 했으나, 횃불을 던지던 사내의 옆얼굴에 어리던 차갑고도 메마른 눈빛을 목격한 순간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소연의 메마른 입술 사이로 피 섞인 절규가 터져 나왔다.
“거짓말 마! 사형은…… 오라버니들은 우리를 지키려 했어! 그 끔찍한 불길 속에서 아버지를, 청월장을 지키려고 목숨을 걸었단 말이다!”
“크하하하! 지키기는 개뿔을 지켜! 그자는 장주라는 늙은이가 제 목숨보다 귀하게 감추고 있던 검은 달의 비밀과 무한한 권능을 독차지하기 위해 장원을 통째로 제물로 바친 거다! 스승의 목을 비틀고, 어린 사제들의 숨통을 끊어 바침으로써 계약의 문을 연 위대한 분이란 말이다!”
문지기의 조롱 어린 폭로가 협곡의 짙은 안개를 찢으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폭로가 공기를 가르고 멎는 찰나.
스스스스―.
흑월곡의 공기가 단숨에 얼어붙었다. 그것은 자연의 차가운 한기가 아니었다. 온 세상의 온기와 빛, 그리고 미약한 소리마저 집어삼키는 기이하고도 절대적인 암흑의 침묵이 무현의 발밑에서부터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무현의 삿갓 아래, 깊게 드리워진 그림자 속에서 두 눈이 서늘한 청백색의 안광을 뿜어냈다.
그것은 흔한 분노나 주체하지 못하는 격정이 아니었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심연의 바닥에서 건져 올린 절대적인 살의. 십 년 동안 심장 속 차가운 잿더미 밑에 봉인해 두었던 검은 불씨가 마침내 온전한 산소를 만나 폭발하는 순간의 기괴한 고요였다.
철컥.
무현의 오른손이 마침내 허리춤의 검자루를 틀어쥐었다.
그가 십 년의 세월을 지나 흑월문의 문턱에 들어선 이래, 단 한 번도 칼집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낡은 철검. 거칠고 투박한 검집에 갇혀 있던 칼날이 반 치쯤 모습을 드러냈다.
우우우웅―!
그 찰나, 비현실적인 이변이 협곡 전체를 뒤흔들었다.
검집의 틈새에서 흘러나온 기운은 강호의 무인들이 흔히 펼쳐내는 푸른 검기(劍氣)나 날카로운 검망(劍網) 따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주변의 희미한 달빛과 횃불의 잔영, 심지어 허공을 떠돌던 귀화의 빛마저 게걸스럽게 삼켜버리는 칠흑의 어둠 그 자체였다. 무현의 주위 수십 장 반경 안의 공간이 급격하게 일그러지며, 중력의 법칙이 뒤틀린 듯 바닥의 자갈과 흙먼지가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빛이 사라지고, 색채가 지워졌다.
붉은 핏빛도, 푸른 이끼의 색도 모두 표백되어 오직 흑과 백의 극단적인 명암만이 군림하는 절대의 공간.
검은 달의 금기. 소원을 빌어 제 이름을 잃어가는 자만이 다다를 수 있다는 궁극의 심연, 흑천월식검(黑天月蝕劍)이 마침내 세상에 그 거대한 아가리를 벌린 것이다.
“이, 이건 대체……?!”
외눈 문지기의 눈이 찢어질 듯 크게 떠졌다. 온몸을 감싸고 있던 두터운 호신강기가 뜨거운 불길 앞의 촛농처럼 허무하게 녹아내리는 생경한 공포. 살갗을 에는 듯한 무거운 중력장이 온몸의 뼈마디를 으스러뜨릴 듯 짓눌러왔다. 짐승에 가까운 본능이 거한의 등골을 타고 뇌수를 사정없이 강타했다.
지금 막지 못하면 죽는다. 아니, 죽음보다 더 끔찍한 무(無)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죽어라! 뒈져 버려라, 이 괴물 놈아!”
극단적인 공포에 사로잡힌 문지기가 단전의 모든 공력을 쥐어짜 내며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쿠구구구궁!
명부혈쇄가 거대한 핏빛 나선형 회오리를 이루며 쏘아져 나갔다. 수십 가닥의 사슬이 허공을 갈가리 찢으며 형성한 거대한 핏빛의 벽. 거대한 바위산을 통째로 갈아 마시고 성벽조차 흔적도 없이 무너뜨릴 수 있는 악귀의 파괴력이었다. 사슬 끝에 달린 무수한 강철 갈고리들이 살점을 뜯고 뼈를 부수기 위해 섬뜩한 궤적을 그리며 쇄도했다.
하지만 그 무시무시한 살진의 폭풍을 마주한 무현의 움직임은 기괴할 정도로 고요했다.
스륵.
반 치 뽑혀 있던 검이 마침내 허공을 향해 완전히 호를 그렸다.
검을 휘두르는 파공음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칼날이 허공을 베어 가르는 순간, 소리마저 그 칠흑의 궤적 안으로 게걸스럽게 빨려 들어가 완벽한 진공의 영역이 형성되었다.
파아아앗―!
칠흑의 초승달.
세상의 모든 빛을 집어삼킨 순수한 어둠의 참격이 거대한 초승달의 형상을 이루며 쏘아졌다.
그것은 물리적인 쇠붙이의 베기가 아니었다. 칼날이 지나가는 궤적을 따라 공간 자체가 도려내지고,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유형과 무형의 인과가 단절되는 검은 달의 포효였다.
채애앵! 콰드득! 콰과과광―!
핏빛으로 날뛰며 계곡을 메우던 명부혈쇄가 칠흑의 초승달에 닿는 순간, 거짓말처럼 맥없이 끊겨 나갔다. 단단한 강철 사슬이, 그 안에 깃들어 있던 수천 원귀의 마혈과 귀화가, 단 한 뼘의 저항도 해보지 못한 채 검은 허무 속으로 분해되어 흩어졌다.
“컥……?!”
문지기는 제 눈을 의심했다. 아니, 경악을 표할 찰나의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사슬을 갈가리 찢고 나아간 초승달의 참격은 거한의 육중한 가슴팍을 거침없이 스쳐 지나갔고, 그 뒤편을 가로막고 서 있던 수십 길 높이의 거대한 암벽을 두 동강 냈으며, 마침내 저 뒤편 흑월문의 입구를 굳게 봉쇄하고 있던 수만 근 무게의 흑철 대문을 향해 내달렸다.
쿠구구구구궁―!
단단한 화강암벽이 종잇장처럼 반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십 년의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외부인의 손에 부서지거나 뚫린 적이 없다는 흑월문의 철문이, 버터처럼 부드럽게 양단되며 굉음과 함께 좌우로 무너져 내렸다.
단 일격.
바닥의 암반을 가르고, 마병의 사슬을 부수었으며, 문지기의 숨통을 끊고, 본단의 강철 대문마저 베어 넘긴 단 한 번의 검격이었다.
털썩.
외눈 문지기의 거대한 몸집이 서서히 무릎을 꿇었다. 쇠사슬을 부여잡고 있던 그의 두 팔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가슴 한가운데를 비스듬하게 가로지른 가느다란 먹선 같은 상처에서는 핏방울 하나 배어 나오지 않았다. 대신 상처 주변의 살점이 검게 썩어 문드러지며, 존재 자체가 어둠 속으로 잠식당하고 있었다.
“흑…… 흑천…… 월식…….”
문지기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무현을 올려다보았다. 실로 꿰매어진 눈가 사이로 공포에 질린 진물이 피와 함께 흘러내렸다.
“네놈이…… 어떻게…… 장주의 금기를…… 문주님조차…… 끝내 완성하지 못했던…… 것을…….”
말은 끝내 맺어지지 못했다. 거한의 숨통이 완전히 끊어지는 순간, 그의 육신은 마치 오랜 세월 풍화된 잿더미처럼 바스러져 차가운 흙바닥 위로 허무하게 흩날렸다. 십 년 전 청월장의 불길을 목격했던 또 하나의 증인이 그렇게 영원한 침묵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스릉.
무현은 핏물 한 방울 묻지 않은 철검을 검집 속으로 도로 밀어 넣었다. 검날과 검집이 완전히 맞물리며 맑고 서늘한 쇳소리를 토해내자, 협곡을 집어삼키고 있던 비현실적인 암흑과 뒤틀린 중력장이 썰물처럼 물러났다. 세상은 다시 원래의 색채를 되찾았으나, 그 잔상은 지워지지 않는 낙인처럼 공기 중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소연은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 일어설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떨리는 눈으로 무현의 등 뒤를 멍하니 응시할 뿐이었다.
저 사내는 과연 누구인가. 삿갓 아래 흉측한 화상 흉터를 감춘 채, 불타버린 장원의 빚을 돌려받으러 왔다는 저 과묵한 사내는 도대체 어떤 지옥을 품고 살아왔기에 저토록 끔찍한 힘을 품고 있는 것인가. 방금 그가 허공을 갈라 펼쳐낸 검술은…… 장원의 맑고 고결하던 검결이 결코 아니었다. 그것은 빛과 생명을 먹어 치우는 악마의 칼날이었다.
“……오라버니.”
소연의 잘게 떨리는 목소리가 메마른 바람을 타고 번졌다.
무현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그저 낮게 가라앉은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일어서라.”
“…….”
“사형이 불을 질렀든, 스승이 장원을 통째로 팔아넘겼든…… 확인해야 할 진실은 저 문 너머에 있다.”
무현의 시선이 양단되어 처참하게 널브러진 거대한 흑철문 잔해를 향했다.
철문이 허물어지자, 흑월곡 깊숙한 심연에 웅크리고 있던 흑월문 본단의 음산하고도 장대한 위용이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때마침 계곡 위를 휘감고 돌던 검은 먹구름이 거센 바람에 찢겨 나가며 기괴한 빛이 지상으로 쏟아져 내렸다.
하늘에 걸린 것은 창백하고 은은해야 할 달이 아니었다.
핏빛으로 붉게 물든 거대한 보름달.
마치 하늘 한가운데 거대한 피웅덩이가 매달린 듯한 붉은 만월 아래, 무너진 철문 너머로 광활하게 펼쳐진 본단의 거대한 연무장이 그 속살을 드러냈다.
우우우우―.
기괴하고도 날카로운 공명음이 사방의 허공에서 피어올랐다.
철문 너머, 핏빛 달빛을 받아 차갑게 번뜩이는 수천 개의 흉기들.
바닥에 어지럽게 꽂혀 있던 비수들이, 공중에 매달려 있던 수많은 암기들이 일제히 푸른 마기(魔氣)를 뿜어내며 공중으로 스멀스멀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수십, 수백, 수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비수들이 거대한 군집을 이루며,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살인 물고기 떼처럼 허공을 유영했다.
영인비수진(影刃匕首陣).
불청객의 기척을 감지한 흑월문의 진짜 살진이, 핏빛 달 아래서 거대한 이빨을 드러내며 깨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 살진의 한가운데, 저 멀리 짙은 어둠이 깔린 본단 누각의 난간 위에 붉은 가면을 쓴 사내가 우뚝 서 있었다. 칠흑 같은 대검을 등에 멘 채, 차갑고도 메마른 눈빛으로 무현과 소연을 묵묵히 내려다보고 있는 자.
검객의 발걸음이 다시금 핏빛 달빛을 향해 묵묵히 내딛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