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외눈의 문지기
어둠을 찢고 터져 나온 폭음과 함께 자욱한 연무가 사방으로 번져 나갔다. 독기를 품은 백색 안개와 흙먼지가 뒤섞여 시야를 삼켰으나, 그 장벽 너머에서 다가오는 기척들은 결코 흐릿하지 않았다.
스스스숙.
장대비를 뚫고 젖은 풀잎을 짓밟는 서슬 퍼런 발소리들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었다. 적어도 서른, 아니 마흔이 넘는 기척이었다. 붉은 가면을 쓴 사내 월소한이 연막과 독무를 남긴 채 어둠 속으로 퇴각하자마자, 숲의 검은 그림자 속에 도사리고 있던 흑월문의 살수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들은 소한이 남겨 두고 간 사냥감을 살려 보낼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본단의 지척까지 칼을 들이민 삿갓 쓴 불청객과, 이미 배신자로 낙인찍힌 초승달 문양의 소녀를 이 자리에서 진흙 속에 파묻어 버리겠다는 맹목적인 살의가 축축한 공기를 짓눌렀다.
"죽여라! 가면의 명이다!"
낮게 으르렁거리는 파열음과 함께 십수 개의 암기가 장대비 속을 가르며 쇄도했다. 독침과 칠흑색 수리검이 빗줄기를 베어 넘기며 비명 같은 파공음을 울렸다. 칠흑의 먹물을 뿜어내듯 쏟아지는 살진(殺陣)이었다.
그러나 삿갓 사내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소한이 사라진 북쪽의 검은 어둠에 멎어 있었으나, 손은 이미 번개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촤르륵!
사내의 도포 자락이 거센 바람을 일으키며 둥글게 원을 그렸다. 그가 손을 뻗어 아직 칼집 속에 잠들어 있는 흑철검을 가로로 비껴 쥐자, 검집 끝에서 뿜어진 무형의 패도적인 진경(眞勁)이 거대한 암벽 같은 장벽을 이루었다.
채채채채챙!
허공에서 빗발치던 쇠붙이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강기(罡氣)의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부서진 쇳조각들이 비 오듯 진흙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기도 전에, 그림자 속에서 살수들이 일제히 쇄도했다. 그들의 검날은 묵빛으로 벼려져 있었고, 칼끝마다 빗물을 증발시키는 검붉은 살기가 감돌고 있었다.
"흡!"
가장 먼저 파고든 삼 인의 살수가 상단과 하단, 그리고 심장을 향해 삼재살진(三才殺陣)을 펼치며 칼을 내질렀다. 망설임 없는 살초. 오직 숨통을 끊기 위해서만 연마된 살벌한 칼질이었다.
그러나 삿갓 사내의 검은 여전히 칼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쿵!
사내의 짚신이 젖은 진흙탕을 가볍게 디뎠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일보에서 일어난 파장은 대지를 뒤흔들었다. 진흙과 빗물이 거센 파도처럼 치솟아 살수들의 시야를 가로막은 찰나, 검집의 끝이 먹물처럼 궤적을 그리며 허공을 후려쳤다.
파아아앙!
둔탁하면서도 뼈를 부수는 소리가 빗소리를 집어삼켰다. 선두에서 달려들던 살수의 흉골이 검집에 정통으로 얻어맞으며 함몰되었다. 사내는 뒤로 튕겨 나가지도 못했다. 검집에 실린 가공할 회전력이 그의 신형을 강제로 비틀어 뒤따라오던 두 명의 살수를 향해 집어던진 탓이었다.
쿠웅! 세 구의 신형이 얽혀 바닥을 뒹굴었으나, 사내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빗속을 미끄러지듯 유영했다. 삿갓 아래로 번뜩이는 차가운 눈동자는 이미 적들의 동선을 손바닥 보듯 꿰뚫고 있었다. 검집이 쳐올려지며 우측에서 덮쳐오던 살수의 턱을 박살 냈고, 사내의 왼손 장포가 채찍처럼 휘감기며 쇄도하던 세 자루의 살검을 한꺼번에 낚아채 비틀어버렸다.
와지끈!
쇠가 뒤틀리고 뼈가 바스러지는 비명이 연쇄적으로 터져 나왔다. 튀어 오른 선혈이 장대비와 뒤섞여 흩뿌려졌으나, 사내의 도포 자락에는 단 한 방울의 핏물도 닿지 않았다. 흑과 백의 대비 속에서 오직 사내의 검집만이 하나의 거대한 먹선이 되어 허공을 유린하고 있었다.
"괴, 괴물이다……!"
"물러서지 마라! 저놈은 혼자다! 배신자 계집을 먼저 베어라!"
살수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바닥에 쓰러져 오열하는 소연을 가리키며 악에 받쳐 외쳤다. 그 악착같은 외침과 함께 다섯 명의 살수가 방향을 틀어 소연을 향해 비수를 쏘아보냈다.
소연은 진흙탕 속에 무릎을 꿇은 채, 손에 쥔 붉은 가면의 파편만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부러진 늑골이 폐를 찌르는 격통도,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서슬 퍼런 살기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넋이 나간 아이처럼, 그저 피 묻은 파편을 가슴에 품고 부들부들 떨고 있을 뿐이었다.
"어리석군."
삿갓 아래에서 지옥의 밑바닥을 긁는 듯한 낮고 서늘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쉬아악!
사내의 신형이 제자리에서 지워졌다. 잔영조차 남기지 않는 축지(縮地)에 가까운 신법이었다. 빗방울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 사내는 이미 소연의 앞을 가로막고 우뚝 서 있었다.
콰르릉!
사내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칠흑의 기도(氣度)가 허공을 짓눌렀다. 쏟아지던 빗줄기가 사내를 중심으로 둥글게 밀려나며 거대한 무풍지대가 형성되었다. 쇄도하던 다섯 살수는 그 압도적인 중압감에 짓눌려 허공에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피가 거꾸로 솟구치고 호흡이 턱 하니 막히는 진공의 지옥.
"크, 컥……!"
사내가 검집을 한 바퀴 회전시키며 바닥을 내리찍었다.
파천황(破天荒).
대지가 굉음을 내며 갈라졌다. 폭풍처럼 터져 나간 암흑의 충격파가 허공에 뜬 살수들을 모조리 휩쓸어버렸다.
콰아아앙!
비명조차 온전히 지르지 못했다. 대여섯 명의 살수가 마치 거대한 망치에 얻어맞은 짚인형처럼 사방으로 날아가 부러진 고목과 바위에 처박혔다. 그들의 손에서 튕겨 나간 비수들이 허공에서 맴돌다 진흙탕 속에 곤두박질쳤다.
숲은 순식간에 기괴한 정적에 휩싸였다. 쓰러진 삼십여 명의 살수들이 차가운 바닥 위에서 신음조차 내지 못한 채 널브러져 있었다.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살수들은 공포에 질려 사시나무 떨듯 떨며 뒷걸음질 쳤다.
사람의 무공이 아니었다. 진검을 뽑지도 않은 채, 오직 검집과 검기만으로 흑월문의 일급 살수들을 낙엽 쓸듯 쓸어버린 무력. 어둠 그 자체가 검집의 형상을 취해 강림한 것만 같았다.
"돌아가서 전해라."
사내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도, 흥분도 없었다. 오직 마른 장작처럼 바싹 타버린 지독한 건조함만이 배어 있었다.
"장부를 거두러 왔다. 문주에게 목을 씻고 기다리라 일러라."
남은 살수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칼을 내던진 채 숲속으로 도망쳤다. 거친 숨소리와 허겁지겁 내딛는 발자국 소리가 빗소리 너머로 멀어져 갔다.
마침내 숲에는 장대비 소리와 함께 두 사람만이 남았다.
사내는 몸을 돌려 진흙탕 속에 주저앉아 있는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소연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손에 쥔 깨진 붉은 가면 조각에서 배어 나온 핏물이 그녀의 가냘픈 손가락을 타고 흘러내렸다. 오라비의 피인지, 자신의 살갗이 찢겨 흘리는 피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일어나라."
사내의 무덤덤한 목소리가 허공을 울렸지만, 소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빗물에 젖은 그녀의 어깨가 주체할 수 없이 떨려왔다.
"……오라버니였어요."
소연의 입술 사이로 갈라진 핏빛 신음이 흘러나왔다.
"나를…… 나를 벼랑 끝에서 구해줬던 그 사람이었어요. 매화나무 아래서, 울지 말라고…… 널 두고 아무 데도 가지 않겠다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내 하나뿐인 오라버니였단 말이에요."
소연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려 차가운 빗물과 뒤섞였다.
그녀의 뇌리 속에 십 년 전의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청월장의 봄날. 따스한 바람이 불어오면 마당 한구석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흰 매화꽃. 어린 소연이 넘어져 무릎을 깨뜨렸을 때, 달려와 눈물을 닦아주던 소년의 손은 언제나 따스했다. 어린아이답지 않게 과묵했지만, 소연을 바라볼 때만큼은 봄 햇살처럼 부드럽게 번지던 그 미소.
'소연아, 내가 지켜줄게. 이 청월장도, 너도, 내가 다 지킬 테니까 넌 그저 웃기만 하면 돼.'
그렇게 말했던 소년이었다. 장원이 화염에 휩싸이던 그 아비규환의 밤, 불길 속에서 소연을 장벽 밖으로 밀어내며 살라고 울부짖던 소년이었다.
그런데 지금 마주한 사내는 무엇이었단 말인가.
핏발 선 눈동자, 살육에 굶주린 짐승처럼 번뜩이던 칠흑 대검, 그리고 자신의 친동생을 향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리꽂히던 잔혹한 살기. 심지어 십 년 전 장원의 백여 명을 불태워 죽인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들이었다며 짓던 그 소름 끼치는 비웃음까지.
"어째서…… 어쩌다가 그렇게 되어버린 거예요? 오라버니가 왜…… 왜 흑월문의 살귀가 되어 나를 죽이려 든단 말이에요……!"
소연은 깨진 가면 조각을 가슴에 품은 채 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절규했다.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찌르는 육체의 격통보다, 산산조각 난 기억의 파편이 영혼을 후벼 파는 고통이 천 배는 더 지독했다.
삿갓 사내는 소연의 절규를 묵묵히 내려다보았다.
그의 가슴속에서도 거대한 암흑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내부자가 문을 잠그고 횃불을 던졌다.'
소한이 남긴 그 한마디는 무현의 십 년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었다.
스승님. 자신의 아비나 다름없었던 청월장 장주 서문 월청. 그 올곧고 인자했던 어른이 진정 검은 달과 거래를 하고, 어린 제자들을 제물로 바쳤단 말인가? 그리고 그 횃불을 든 자가, 자신이 그토록 믿고 아꼈던 어린 소한이었단 말인가?
'아니다.'
사내는 삿갓 챙을 깊게 눌러썼다. 감정에 휘둘려 진실을 놓칠 수는 없었다. 가면 뒤에 숨겨진 소한의 눈동자는 정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제정신으로 살육을 즐기는 악귀의 눈이 아니었다. 거대한 저주, 무언가에 이름을 먹히고 자아를 잠식당한 자 특유의 썩어 들어간 동공이었다.
검은 달의 계약.
이름을 빚지고, 결국에는 자신조차 잊어버린 채 허깨비로 전락하는 무명병(無名病)의 그림자. 소한은 이미 그 지옥의 아가리 속으로 반쯤 끌려들어가 있었다. 십 년 전 그 밤의 진실 또한 그 저주의 장부 속에 봉인되어 있을 터였다.
"울음을 그쳐라."
사내의 목소리가 비정하리만치 차갑게 떨어졌다.
"네 오라비는 아직 완전히 죽지 않았다."
소연이 젖은 얼굴을 번쩍 들었다. 눈물과 진흙으로 얼룩진 그녀의 눈동자에 흔들리는 등불 같은 간절함이 떠올랐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놈의 눈에 서려 있던 것은 살의만이 아니었다. 절망이었다. 스스로가 무엇을 저질렀는지조차 잊어가며 지옥을 버티고 있는 자의 눈이었다."
사내는 품에서 마른 지혈포를 꺼내 소연의 어깨 위로 툭 던졌다.
"진실을 알고 싶다면 걸어라. 네 오라비가 왜 칼을 들었는지, 십 년 전 그 밤에 장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흑월문의 문주 놈이 쥐고 있는 장부를 펼치기 전까지는, 네 눈물조차 그놈에겐 사치다."
사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북쪽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소연은 바닥에 떨어진 지혈포를 멍하니 내려다보다가, 떨리는 손으로 피 묻은 가면 파편을 품속 깊은 곳에 갈무리했다. 뼈마디가 비명을 질렀지만, 그녀는 악물린 잇새로 피를 삼키며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갈비뼈가 부서져 숨을 들이쉴 때마다 날카로운 비수가 폐를 헤집는 것 같았으나, 그녀는 걸었다. 사내의 뒤를 따라, 어둠이 짙게 깔린 북쪽의 능선으로 발을 내디뎠다. 진실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쓰러질 수 없었다.
비는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북쪽으로 향할수록 빗발은 거칠어졌고, 바람은 살을 발라내는 칼날처럼 차가워졌다.
두 사람이 다다른 곳은 흑월곡(黑月谷)이라 불리는 기괴한 협곡이었다.
양옆으로 수천 길 낭떠러지가 병풍처럼 솟아 있었고, 깎아지른 절벽의 기암괴석들은 마치 거대한 짐승의 흉포한 이빨처럼 기형적으로 돌출되어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오직 먹물 같은 먹구름과 찢어진 절벽의 틈새만이 보일 뿐, 한 줌의 달빛조차 스며들지 못하는 영구적인 암흑의 회랑이었다.
치이익, 치익.
발을 디딜 때마다 젖은 이끼와 진흙 속에서 썩어 문드러진 시취(屍臭)가 피어올랐다. 길가에는 부러진 녹슨 칼날과 오래전에 목숨을 잃어 살점이 삭아버린 백골들이 빗물에 씻겨 허옇게 드러나 있었다. 이곳에 발을 들였다가 살아 나가지 못한 무인들의 잔해였다.
"……공기가 달라요."
뒤를 따르던 소연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가슴을 부여잡으며 낮게 읊조렸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협곡 깊숙이 들어설수록 공기는 납덩이처럼 무거워졌고, 피부에 닿는 한기는 골수까지 시리게 만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계절의 추위가 아니었다. 인간의 생기와 기억을 갉아먹는 이질적인 기운, 검은 달의 마기(魔氣)가 안개처럼 협곡 전체에 깔려 있었다.
사내의 흑철검이 칼집 속에서 미세하게 전율했다.
우우웅……
검신에 깃든 어둠이 주변의 흉흉한 마기를 감지하고 반응하고 있었다. 사내는 말없이 검자루를 쥐었다. 이 음산한 협곡의 끝에, 십 년 동안 그토록 찾아 헤맸던 흑월문의 본단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휘몰아치던 비바람이 기이하게 잦아들며 협곡의 막다른 길목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곳에는, 인간의 필적으로는 도저히 세울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하고 괴괴한 건축물이 버티고 서 있었다.
협곡의 양 절벽을 통째로 깎아내어 세운 거대한 흑철문(黑鐵門)이었다.
높이만 수십 장에 달하는 문은 온통 칠흑빛 쇠로 뒤덮여 있었고, 표면에는 무수한 무인들의 피가 엉겨 붙어 말라비틀어진 검붉은 녹이 흉터처럼 슬어 있었다. 문 한가운데에는 빛을 집어삼키는 기괴한 검은 달의 문양이 거대하게 양각으로 새겨져 있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영혼과 이름을 통째로 빼앗길 것 같은 불길한 한기를 뿜어냈다.
흑월문의 관문. 이곳을 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흑월의 심장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
철문 앞에는 거대한 원형의 공터가 조성되어 있었고, 그 한가운데에 집채만 한 검은 바위가 비를 맞으며 솟아 있었다.
그리고 그 바위 꼭대기에, 한 사내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크흐흐…… 흐흐흐흐."
비바람을 뚫고 기괴한 웃음소리가 공터를 메웠다. 마치 녹슨 쇠붙이를 거친 숫돌로 문지르는 듯한 역겨운 파열음이었다.
바위 위에 앉아 있던 거한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거대한 신형이 어둠 속에서 드러나자 공기가 일순 얼어붙었다.
사내의 키는 팔 척에 달했고, 상체를 뒤덮은 흑철 갑주 사이로 울퉁불퉁하게 솟은 근육은 쇠판처럼 단단해 보였다. 그러나 가장 기괴한 것은 그의 흉측한 얼굴이었다.
오른쪽 얼굴 전체가 불길에 녹아내린 듯 끔찍한 화상으로 짓물러 있었고, 오른쪽 눈은 깊게 파여 거친 무명실로 기괴하게 꿰매져 있었다. 남은 왼쪽 눈 하나만이 탁하게 흐려진 채, 핏발을 번뜩이며 삿갓 사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외눈의 문지기.
흑월문의 관문을 홀로 지키며, 십 년 동안 이 문을 두드린 수백 명의 강호 무인들을 사료로 갈아버렸다는 문지기 악귀였다.
철그렁! 철그르륵!
문지기가 육중한 어깨를 비틀자, 그의 전신을 친친 감고 있던 거대한 쇠사슬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단순한 쇠사슬이 아니었다. 사슬의 고리마다 핏빛 귀화(鬼火) 같은 붉은 이채가 번뜩이고 있었고, 사슬 끝에 달린 거대한 세 닢의 갈고리에는 뜯겨 나간 인간의 살점이 말라붙어 있었다. 명부혈쇄(冥府血鎖). 지옥의 문을 지키는 귀졸의 사슬이라 불리는 흑월문의 흉물이었다.
"어디서 낯익은 쥐새끼 냄새가 난다 했더니……."
외눈 문지기가 바위에서 풀쩍 뛰어내렸다.
쿵!
그의 육중한 몸이 땅에 닿는 순간, 거대한 진동과 함께 바닥에 고여 있던 핏빛 빗물이 사방으로 거세게 튀었다. 문지기는 흐물거리는 흉터투성이 입술을 기형적으로 말아 올리며 누런 이를 드러냈다. 그의 단 하나뿐인 눈동자가 삿갓 사내의 얼굴과 그의 허리에 매달린 흑철검을 음험하게 훑었다.
"망령이 돌아왔군. 크하하하! 십 년 동안 장원의 잿더미 밑바닥에서 썩어 문드러진 줄 알았더니만…… 기어이 살아남아 이곳까지 기어 나왔어."
사내의 살기가 짙어졌다. 삿갓 아래로 드러난 턱선이 팽팽하게 굳어졌다.
문지기는 사내를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내의 검과, 사내가 짊어지고 온 십 년의 피비린내를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너를 기억한다."
삿갓 사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는 빗물보다 서늘했다.
"십 년 전, 청월장이 불타던 밤. 불길 밖에서 도망치던 아이들의 숨통을 끊던 짐승 중 하나였지."
"짐승? 크하하! 그래, 짐승이지! 검은 달의 피를 빨아먹고 자란 짐승!"
외눈 문지기가 명부혈쇄를 허공에서 붕붕 휘둘렀다. 사슬이 회전할 때마다 장대비가 증발하며 시뻘건 화염 같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가 공터를 가득 메웠다.
문지기의 외눈이 광기로 희번덕거렸다. 그는 마치 십 년 전의 그 참혹했던 밤을 눈앞에서 다시 마주하고 있다는 듯, 황홀경에 빠진 표정으로 혀를 길게 날름거렸다.
"그날 밤을 내가 어찌 잊겠느냐? 살이 타는 냄새, 뼈가 튀는 소리, 살려달라 울부짖으며 불길 속을 기어 나오던 청월장의 어린것들이 내지르던 그 달콤한 비명들을……!"
문지기가 피 묻은 갈고리를 들어 사내를 가리키며 기괴하게 낄낄거렸다.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온 다음 말은, 삿갓 사내의 십 년 묵은 심장을 단숨에 도려내는 독 묻은 비수와도 같았다.
"우리 문주님께서 애타게 찾으시던 그 불쌍한 사제 놈이 바로 네놈이었구나! 십 년 전 네놈의 스승이 제 손으로 질러댄 불길, 네 사형이 비틀어버린 계약의 냄새를…… 나도 바로 네 등 뒤에서 맡았거든. 똑똑히 보았지, 장원을 잿더미로 만든 진짜 주인이 누구였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