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7화 상층부에 울려 퍼진 도발
슈우우우— 쾅!
최상층으로 향하는 95층 로비.
공기마저 고압 플라즈마로 달궈져 타오르는 듯한 공간 한가운데에 강진혁이 서 있었다. 그의 등 뒤로는 S급 자율형 섬멸 병기 ‘아르카나-01’의 거대한 잔해가 불타며 잿더미로 변해 가고 있었다.
강철 합금으로 단조된 장갑이 무참히 찢기고, 코어부의 핵융합로가 멜트다운을 일으키며 터져 나간 자리.
진혁의 전신은 방금 전까지 터져 나온 적의 생체 에너지를 과도하게 흡수한 탓에 미세한 붉은 광채와 칠흑빛 마기가 뒤섞여 기괴하게 울렁거리고 있었다.
“……흐읍.”
단전의 출력은 이미 73,000 MW를 아득히 상회하고 있었다.
인간의 육신이 감당할 수 있는 치사량을 몇 번이고 돌파한 수치였다. 뇌혈관과 신경계는 극한의 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터져 나가기를 반복했고, 그럴 때마다 진혁의 나노머신과 천마무상체가 강제로 세포를 재조합하며 생명을 연장했다.
고통 따위는 감각의 경계 바깥에 있었다.
그의 시야는 푸른 시스템 UI 따위가 아니라, 오직 적들의 기혈과 코어의 약점을 꿰뚫어 보는 [천마마안(天魔魔眼)]의 핏빛 시야로만 가득했다.
치지지직—!
손에 쥔 개량형 천마검의 검신에서 튀는 뇌전과 고주파 진동이 사방의 공기를 잘게 찢어발겼다.
진혁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시선을 위로 향했다.
95층. 그 위로는 신서울의 진짜 지배자들, 즉 티타늄 그룹의 특권층과 이사회 임원들이 거주하는 최상층 마천루인 ‘아폴론의 성문’이 버티고 있었다.
“기어코 올라왔군, 실험체 07호.”
잔해 속에서 겨우 살아남은 S급 친위대 패럴라이저 하나가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진혁을 노려보았다.
그의 손에는 아직도 상층부 관제실과 연결된 비상 통신 마이크가 들려 있었다.
진혁은 말없이 걸어가 그 녀석의 멱살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크윽……!”
“통신을 열어라.”
“뭐……?”
“상층부 전체로.”
진혁의 흑안에 서린 살기가 녀석의 척추를 타고 흘러내렸다.
패럴라이저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벌벌 떨면서도 마이크의 전송 버튼을 누를 수밖에 마땅찮았다.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녀석의 중추신경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치직, 끼이익—.
그 순간, 95층을 넘어 신서울 상층부의 모든 특권층 거주구, 그리고 마천루를 수놓고 있던 초대형 홀로그램 전광판들의 화면이 일제히 지직거리며 암전(暗電)했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기업 광고가 송출되던 도시의 하늘이 단숨에 칠흑 같은 어둠으로 물들었다.
콰아아앙—!
상층부 100층에 위치한 마스터 돔, 그리고 VVIP들이 모여 있는 아폴론의 회주랑.
그곳의 모든 거대 스크린에 핏빛 잔상을 남기며 한 남자의 모습이 투영되었다.
은빛 회로 선이 뺨을 타고 흐르고, 칠흑 같은 장발이 마기에 날리며, 손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시뻘건 검을 쥔 사나이.
티타늄 그룹의 생체 실험체 07호.
강진혁의 얼굴이었다.
“……이게 뭐야? 전원이 왜 이래?”
“외부 해킹인가? 아니, 방화벽을 어떻게 뚫은 거지?!”
상층부 마천루의 최정점, 값비싼 와인과 시가 향이 진동하는 아폴론의 회주랑.
0계급 및 1계급에 속하는 티타늄 그룹의 고위 임원들과 이사회 멤버들이 술잔을 든 채 일제히 천장의 대형 스크린을 올려다보았다.
그들의 얼굴에 완벽한 당황과 경악이 스쳤다.
신서울의 모든 네트워크와 자율 보안망을 총괄하는 티타늄 본사의 마스터 프로토콜이 외부의 침입자에 의해 자공 해킹(Self-Hacking)당한 것은 창립 이래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그 스크린 속에서, 진혁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마이크를 통과하며 신서울 상층부 전역의 스피커를 통해 천둥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들리고 있나.]
낮고 차가운 저음.
하지만 그 속에는 수십만 명의 생체 코어를 집어삼키고 올라온 자의 압도적인 살기와 마기가 서려 있었다.
[네놈들이 만든 그 역겨운 마천루 아래에서, 짓밟히고 버려진 자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미쳤어…… 저 괴물이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온 거지? 백무현 총사령관은 뭘 하고 있는 거야!”
“당장 블랙 가드를 전개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녀석의 목을 베어 와라!”
임원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 고함을 질렀다.
그들은 자본과 기술로 세상의 신이 된 이들이었다. 인간을 단지 소모품, 혹은 영생을 위한 그릇(숙주)으로 여기며 아래를 내려다보던 자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내려다보던 '실험실의 폐기물'이 지금, 그들의 안방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진혁은 스크린 너머의 그들을 똑바로 응시하며 피식 실소했다.
[신이 되고 싶었겠지. 돈으로 인간의 육신을 개조하고, 코어를 박아 넣고, 100년 전 마교의 유골 데이터 따위를 훔쳐와 불멸을 꿈꿨겠지.]
치지지직—.
화면 속 진혁의 눈동자가 [천마마안]의 핏빛으로 번뜩였다.
[지독하게 오만한 놈들. 네놈들이 쌓아 올린 이 찬란한 마천루는, 결국 너희가 파묻힐 거대한 무덤에 불과하다.]
“저, 저 자식이 감히……!”
“당장 저 방송을 차단해! 회장의 공백을 틈타 어디서 건방진 개 짖는 소리를!”
[차단해 보시지.]
진혁의 입가에 잔혹한 웃음이 걸렸다.
[네놈들이 보낸 그 어떤 병기도, 어떤 개조수들도 내 검을 막지 못했다. 이현도 그 늙은 미치광이도 내 손으로 직접 지옥에 처넣어 주었지.]
탁!
화면 속에서 진혁이 들고 있던 개량형 천마검을 허공으로 가볍게 치켜들었다.
그 순간, 검신을 따라 흐르던 73,000 MW의 출력이 폭발적으로 요동치며 상층부 전체의 공기를 짓눌렀다.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는 마기의 파동만으로도 상층부 회주랑의 값비싼 강화 유리창들이 '쩌정-' 소리를 내며 거미줄처럼 금이 갔다.
[잘 들어라, 티타늄의 개들.]
진혁의 목소리가 상층부 하늘을 두 쪽으로 갈라놓듯 선언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이 거대한 신서울의 꼭대기에 피의 심판이 시작된다.]
콰아아앙—!
방송이 끊어짐과 동시에, 95층에서부터 최상층 아폴론의 성문으로 이어지는 메인 엘리베이터 샤프트와 통행로가 진혁의 참격에 의해 일제히 박살 났다.
붕괴하는 철골 구조물 위로, 칠흑의 잔상을 남기는 마광신보가 펼쳐졌다.
“진짜로 올라오고 있어……!”
“막아라! 모든 자율형 방어 포탑과 가드들을 전부 회주랑 입구로 배치해!”
상층부 통제실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인간의 감정을 지운 채 오직 명령에만 복종하던 최정예 블랙 가드 부대들이 일제히 무기를 장전하며 회주랑의 거대한 티타늄 문 앞에 진을 쳤다.
그들의 코어 출력은 평균 8,000 MW 이상.
티타늄 그룹이 보유한 최후의 인간형 살인 병기들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진혁이 뿜어내는 마기의 압박감 앞에서 진심으로 안도하지 못했다.
그것은 기계의 출력이 아니었다.
수많은 생명과 기술의 원리를 흡수하고, 스스로의 의지로 한계를 부수어 마침내 도달한 '초월자'의 영역이었다.
두두두두두—!
회주랑의 거대한 철문 너머에서 요란한 폭발음이 울렸다.
방어 포탑들이 쏘아 올린 고주파 플라즈마 탄막이 허공을 하얗게 불태웠지만, 그 불길 속에서 은빛 회로를 휘감은 칠흑의 검광이 일섬으로 모든 것을 베어 넘겼다.
촤아아악—!
방어벽이 두부처럼 갈라지고, 철제 바닥에 짓이겨진 경비 병기의 잔해가 사방으로 튀었다.
진혁은 피비린내 나는 공기를 들이마시며 상층부 중앙 대로로 발을 디뎠다.
그의 단전은 여전히 포효하고 있었고, 머릿속에서는 더 많은 피를 요구하는 마기가 끓어올랐다.
바로 그때.
끼이익— 쿵.
회주랑의 정중앙, 가장 두꺼운 티타늄 합금 문이 무거운 기계음을 내며 양옆으로 스르륵 열렸다.
그곳에서 풍기는 살기는 지금까지 마주했던 그 어떤 녀석들과도 결을 달리했다.
인간의 체온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기계음과 함께, 거대한 전신 사이보그의 거무튀튀한 장갑이 시야에 들어왔다.
티타늄 그룹 블랙 가드 총사령관.
살인병기 그 자체인 자.
백무현이 스스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시끄러운 벌레 한 마리가 꼬였다고 생각했는데.”
백무현의 한쪽 눈에 박힌 붉은 광학 렌즈가 진혁을 향해 번뜩였다. 그의 등 뒤로 압도적인 MW 출력을 상징하는 푸른 청백색 플라즈마 아크가 뿜어져 나왔다.
“그 꼬리가 결국 이 본사의 심장부까지 닿을 줄이야.”
진혁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개량형 천마검을 가볍게 고쳐 잡으며, 그의 흑안에 서린 살기가 백무현의 전신을 꿰뚫었다.
“시끄럽다.”
진혁의 입술이 차갑게 일그러졌다.
“네놈을 치우면, 그 위에서 기다리는 마지막 늙은이의 목을 벨 차례다.”
말을 마친 순간,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완벽하게 정면으로 충돌했다.
초당 200m가 넘는 속도로 맞부딪힐 준비를 마친 채, 상층부의 밤하늘 아래서 최후의 혈전이 개시되고 있었다.
슈우우웅— 콰광!
공간의 기압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백무현의 전신 사이보그 코어에서 뿜어져 나온 9,500 MW의 플라즈마 폭풍이 사방의 대리석 바닥을 유리 조각처럼 박살 냈다.
사령관이라는 타이틀은 명예가 아니었다. 그것은 티타늄 그룹이 보유한 수만 명의 살인 병기를 통솔하고, 직접 최전선에서 도시 하나를 지도상에서 지워버릴 수 있는 명실상부한 ‘재난’의 등급을 의미했다.
“건방진 실험체 07호. 네가 흡원천공인지 뭔지로 코어 몇 개를 긁어모았다고 해서, 우리 티타늄의 철옹성이 네 따위의 놀이터가 될 줄 알았나?”
백무현의 입에서 기계음이 섞인 금속성 목소리가 울렸다.
그의 오른팔이 쩍 갈라지며 고주파 진동 칼날과 플라즈마 캐논의 복합 병기로 변형되었다.
슈우우우— 쾅!
발을 구르는 것만으로도 상층부 회주랑의 바닥이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백무현의 몸이 인간의 동체 시력을 아득히 초월한 속도로 사선으로 꺾이며 진혁의 측면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진혁의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천마마안]의 핏빛 시야 속에서 백무현의 전신 나노 회로와 코어의 출력 흐름은 마치 정지 화면처럼 투명하게 투영되고 있었다.
스으윽.
진혁의 몸이 유령처럼 미끄러졌다.
[마광신보 - 극(極)].
빛의 잔상조차 남기지 않는 극한의 보법이 백무현의 일격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뭐……?!”
백무현의 붉은 광학 렌즈가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자신의 전신 가속 주행 궤적을 이토록 완벽하게 읽어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진혁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백무현의 품 안으로 파고들며 개량형 천마검을 곤두세웠다.
“느려.”
단 한 마디의 단단한 음성과 함께, 73,000 MW의 출력이 실린 검신이 백무현의 어깨 장갑을 가격했다.
콰아아아아방—!
고주파 진동 파쇄와 칠흑의 마기가 부딪치며 거대한 충격파가 회주랑의 천장을 뚫고 올라갔다.
백무현의 거대한 사이보그 육체가 밀려나며 바닥에 깊은 호선을 그렸다.
그러나 블랙 가드의 총사령관이라는 명칭은 허투루 붙은 것이 아니었다.
백무현은 밀려나는 반동을 이용해 곧바로 자세를 바로잡으며 왼손의 플라즈마 캐논을 영거리에서 발사했다.
쿠구구구궁—!
눈앞을 하얗게 채우는 고열의 플라즈마 폭풍.
진혁은 그 폭풍 속에서 물러서기는커녕, 오히려 [흡원천공]의 운기조식을 개방했다.
슈아아아악—!
사방으로 흩어지려는 플라즈마 에너지가 진혁의 검신과 단전으로 빨려 들어가듯 강제 흡수되었다.
단전의 출력이 73,500 MW…… 74,000 MW를 향해 치솟았다.
뇌혈관이 터져 나가며 입안에서 비릿한 피가 왈칵 솟구쳤지만, 진혁은 그 고통을 기꺼이 짓밟으며 눈을 번뜩였다.
“흡수해? 내 플라즈마를 흡수하겠다고?”
백무현의 얼굴에 광기가 서렸다.
그는 자신의 전신 코어 출력을 한계치까지 개방했다.
경고, 경고. 코어 과부하 임계점 도달.
내부 장갑 용융 확률 89%.
시스템의 경고음이 백무현의 뇌리에 울렸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티타늄 그룹의 충견으로서, 회장 진무극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던 그가 실험체 07호 따위에게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모욕이었다.
“죽어라, 진혁!”
백무현의 전신이 순식간에 푸른 청백색 불꽃에 휩싸였다.
그가 휘두른 복합 검기가 상층부의 대기를 통째로 베어 가르며 진혁의 목을 향해 쇄도했다.
그것은 회주랑 전체를 붕괴시키고도 남을 만한 최후의 일격이었다.
진혁은 그 거대한 참격을 똑바로 응시했다.
더 이상 시스템의 보조는 없다. HUD의 계산도, 인공지능의 조준 가이드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감각, 자신의 의지, 그리고 뼈를 깎아 만든 천마심법의 궤적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내 무공은…….”
진혁의 입술이 미소처럼 뒤틀렸다.
개량형 천마검에 칠흑의 마기와 푸른 뇌전, 그리고 방금 흡수한 플라즈마 에너지가 극한의 밀도로 압축되기 시작했다.
“네놈들의 계산 따위로 이루어진 게 아니다.”
콰아아아앙—!
천마일검 - 개량(改).
단 하나의 접점으로 압축된 파멸적인 검강이 백무현의 플라즈마 참격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지평선이 갈라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상층부 아폴론의 성문 구역이 완전히 두 쪽으로 쪼개져 나갔다.
파지직, 끄으으응…… 콰창!
백무현의 거대한 사이보그 몸체 중앙에 붉은 균열이 발생했다.
그의 광학 렌즈가 깜빡이며 꺼져 가고, 목에 박힌 메인 코어가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폭발했다.
“크아아아……!”
마지막마저 토해내지 못한 채, 백무현의 거대한 육체는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두 동강이 나 흩어졌다.
블랙 가드 총사령관의 패배.
진혁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피투성이가 된 검을 땅에 짚었다.
단전의 출력은 이미 75,000 MW를 돌파하여 폭주 직전의 진동을 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백무현의 잔해를 넘어, 마천루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거대한 돔—‘마스터 돔’을 향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모든 진실과 함께 마지막 적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