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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96화목차

제96화 고주파 마검강(高周波 魔劍剛)

승강기의 철문이 요란한 파열음을 내며 양옆으로 찌그러졌다.

구식 기계 장치와 최첨단 나노 회로가 엉겨 붙어 내지르는 비명 같은 굉음. 그 틈새로 뿜어져 나오는 유압 가스와 냉각수는 영하의 타워 내부 공기와 만나 순식간에 짙은 백색 수증기로 변해 시야를 집어삼켰다.

슈우우우—!

백색의 증기 장막 속에서 칠흑 같은 그림자 하나가 걸어 나왔다.

강진혁.

그의 보시는 흔들림이 없었다. 은빛 회로 선이 목덜미와 뺨을 타고 펄스처럼 번쩍였고, 칠흑의 흑안은 수증기 너머의 어둠을 꿰뚫듯 차갑게 빛났다.

[SYSTEM WARNING: 사용자 생체 코어 출력 한계 초과. 70,000 MW 돌파.]

[경고: 뇌혈관 및 미세 신경계에 과부하 발생. 강제 냉각 시스템 구동 요망.]

시야 한구석, 프로토콜의 잔재가 자율적으로 띄워 올린 경고창 따위는 눈곱만큼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미 시스템의 보조 따위는 장식에 불과했다. 70,000 MW를 상회하는 에너지는 단전의 심장부를 태울 듯 요동쳤지만, 진혁은 그 폭발적인 열기를 오직 자신의 의지력과 기혈 운행만으로 억누르고 있었다.

쿠구구구……!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바닥의 티타늄 강화 합금이 진혁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魔氣)의 압력에 못 이겨 미세하게 금이 갔다.

바로 그때였다.

“타겟 확인! 회랑 진입 구역, 제압 개시!”

촤아아악-!

상층부 회주랑의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은빛 섬광들이 날아들었다.

티타늄 그룹의 정예 살인 병기, 체이서 팀 6인.

일반적인 군사 나노머신으로는 흉내도 낼 수 없는 A급 전술 개조체들이었다. 그들의 팔뚝과 다리는 이미 고주파 진동 칼날과 플라즈마 블레이드로 변형되어 있었고, 공기를 찢는 고음의 진동음이 회주랑 전체를 울렸다.

슈우우웅! 쾅-!

바닥을 박차고 도약한 체이서 팀의 선두가 진혁의 사각을 노리고 검강을 내리꽂았다.

단 0.1초의 망설임도 없는 살해 기동.

하지만 진혁의 눈은 이미 그들의 궤적을 낱낱이 읽고 있었다.

‘느려.’

[천마마안(天魔魔眼)].

심법의 극의로 개안한 통찰의 안광은 적들의 코어 출력, 근육의 수축 방향, 그리고 나노 회로의 신호 전달 속도까지 정지 화면처럼 낱낱이 분해해 보여주었다.

진혁의 오른손이 자루를 움켜쥐었다.

천우진이 직접 재제련해 준 개량형 천마검.

적의 에너지를 베어낼수록 검신 자체의 고주파 진동률이 기하급수적으로 폭증하도록 설계된, 세상에 단 하나뿐인 마검(魔劍)이었다.

오투두두두—!

진혁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온 칠흑 같은 마기가 검신을 타고 흘렀다.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체내 나노머신의 출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발생시킨 초고속 물리적 진동, 그리고 이전에 흡수한 [뇌전마강]의 푸른 뇌전 에너지가 검끝으로 응축되었다.

지직- 지지지직!

검신 주변의 공간이 고주파 진동과 마기의 압력 때문에 비틀리며 일그러졌다.

빛조차 빨아들이는 듯한 칠흑의 검광 위로, 푸른 뇌전의 스파크가 기괴하게 얽혔다.

이것이 진혁이 완성해 낸 새로운 경지.

[고주파 마검강(高周波 魔劍剛)].

“크윽…… 저 검은 뭐지? 출력이……!”

공중에서 도약하며 검을 내리꽂던 체이서 팀의 리더가 경악에 찬 비명을 질렀다. 이미 눈앞까지 다가온 진혁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괴적인 압박감이 그의 생체 코어를 비명 지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혁은 대답 대신 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회전 베기.

군더더기 없는 완벽한 원을 그리며 검신이 회전하는 순간, 공간을 가르는 엄청난 폭음과 함께 칠흑빛 반원이 회주랑 전체를 삼켰다.

파지지직-! 콰콰쾅!

체이서 팀 6인이 펼쳐낸 방어막과 플라즈마 블레이드는 진혁의 [고주파 마검강]과 부딪치는 순간, 방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유리 조각처럼 박살 났다. 고주파 진동 파쇄 능력이 적들의 나노 장갑 분자 결합을 근본부터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컥……!”

“어…… 어째서, 장갑이……!”

단 한 번의 회전 베기.

그것으로 끝이었다.

체이서 팀 6인의 신체와 무기, 그리고 그들의 단전에 내장된 생체 코어까지 완벽하게 이등분되었다. 절단면은 고주파 마검강의 고열과 진동에 의해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매끄러운 쇳물처럼 변해 바닥으로 떨어졌다.

툭, 투두둑-.

토막 난 잔해들이 바닥에 나뒹굴며 검붉은 피와 타버린 기계 부품의 스파크를 사방으로 흩뿌렸다.

진혁은 그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현장 속에서 숨소리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슈우우-.

검신에 엉겨 붙어 있던 적들의 잔류 에너지를 [흡원천공]의 원리로 남김없이 빨아들였다.

[생체 코어 출력 상승. 현재 출력: 71,500 MW.]

단전 속에서 요동치던 열기가 한층 더 묵직한 힘으로 변해 혈관을 타고 흘렀다. 육체의 한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던 감각이, 오히려 굳건한 철갑처럼 진혁의 몸을 감싸 안았다.

진혁은 피가 묻은 개량형 천마검을 가볍게 툭툭 털어내며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회주랑의 끝, 상층부 특권층 거주구로 통하는 거대한 이중 방화문이었다.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기계음과 긴장한 경비병들의 발소리.

그들은 아직 모른다. 자신들이 쌓아 올린 자본과 기계의 성채가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져 내릴지를.

“……시작에 불과하다.”

진혁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말려 올라갔다.

그는 다시 한번 마광신보를 전개하며 칠흑의 잔상을 남긴 채, 상층부의 심장부를 향해 도약했다.

쿠구구궁!

강진혁이 도약하며 남긴 발자국 소리가 회주랑 전체를 뒤흔들었다. [마광신보 - 극(極)]의 보법은 단순한 고속 이동이 아니었다. 공간의 공기를 압축하고 터트리며 나아가는 무자비한 충격파의 연속. 칠흑의 잔상이 수십 미터의 공간을 단 한숨 만에 주파하자, 대리석과 티타늄 합금으로 마감된 벽면들이 그 여파만으로 거미줄처럼 갈라지며 무너져 내렸다.

“이, 적색 경보! 타겟이 회주랑 3구역을 돌파했다!”

“방어막 최대 출력! 비상 차단벽을 내려라! 당장!”

이중 방화문 너머에서 다급하게 소리치는 경비병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티타늄 그룹 상층부의 정예 경비대, 일명 ‘아폴론 가드’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대피 명령이나 방어 태세 따위는 진혁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콰아아앙-!

진혁은 망설임 없이 개량형 천마검을 정면으로 내질렀다.

검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주파 마검강]이 두께만 수십 센티미터에 달하는 특수 합금 방화문을 직격했다.

파지직, 지지직-!

강력한 전자기 방어막과 고밀도 티타늄 장갑이 결합되어 전차의 포격조차 버텨낸다는 방화문이었으나, 고주파 진동 파쇄 능력 앞에선 무력하기 그지없었다. 장갑의 분자 결합이 진동 주파수에 동화되어 붕괴되더니, 중앙부터 뻥 뚫리며 거대한 구멍이 틔었다.

“크윽……! 사격해! 사격!”

구멍 너머로 플라즈마 라이플과 고출력 빔 캐논의 포신들이 일제히 빛을 발했다.

수십 발의 에너지탄이 폭우처럼 쏟아지며 진혁을 짓이기려 했다.

하지만 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만법귀마(萬法歸魔).”

그가 낮게 속삭이며 검을 가로로 스윽 그었다.

[만법귀마]의 연산 원리가 날아오는 에너지탄의 주파수와 궤적을 순식간에 분석해 냈다. 칠흑의 마기가 파동 형태로 퍼져 나가며 쏟아지는 플라즈마 탄환들의 흐름을 억지로 비틀었다.

푸식, 푸지지직-!

진혁을 향하던 수십 발의 탄환들이 허공에서 방향을 꺾더니, 오히려 경비병들을 향해 되돌아갔다.

“커아악!”

“방어막이…… 왜 흡수되지 않고 튕겨……!”

자신들이 쏜 공격에 직격당한 아폴론 가드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뒹굴었다.

진혁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파열된 방화문 틈새로 몸을 구겨 넣듯 밀고 들어가며 단숨에 적진의 심장부로 파고들었다.

퍼퍽! 콰앙-!

주먹을 가볍게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중장갑을 걸친 경비병들의 흉갑이 움푹 꺼졌고,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단전 코어가 과부하를 일으키며 터져 나갔다.

[흡원천공 개량(改) 발동.]

경비병들이 쓰러질 때마다 그들의 생체 코어에서 흘러나오는 잔류 에너지가 붉고 검은 연기가 되어 진혁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생체 코어 출력 상승. 현재 출력: 73,000 MW.]

출력이 올라갈수록 뇌혈관과 신경계를 태우는 듯한 통증은 더욱 심해졌지만, 진혁의 의식은 오히려 수정처럼 맑고 차갑게 가라앉았다. 고통은 그저 육체가 살아있다는 증거일 뿐, 그의 전진을 막을 수는 없었다.

“괴물…… 이 새끼는 진짜 괴물이야……!”

남은 경비병들이 공포에 질려 총을 떨어뜨렸다. S급 개조 시술을 받고 자본의 힘으로 신인류라 자부하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인간은 기계의 힘을 빌린 게 아니라, 기계와 기술 그 자체를 발밑에 무릎 꿇린 진짜배기 ‘마(魔)’ 그 자체였다.

진혁은 도망치는 잔당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회주랑 끝에 우뚝 솟은 거대한 아치형 문, 즉 상층 특권층 거주구로 통하는 최종 관문인 ‘아폴론의 성문’을 향하고 있었다.

쿠구구궁…….

성문의 상단에 설치된 대형 스피커에서 기계적인 음성이 타워 전체를 울리듯 흘러나왔다.

[SYSTEM ALERT: 비상 사태. 침입자 강진혁의 위험도가 수치 한계를 초과했습니다.]

[마스터 프로토콜의 2차 방어선, 자율형 섬멸 병기 ‘아르카나’ 출격 준비 완료.]

[상층 특권층 거주구의 모든 생명 유지 장치 및 전력을 차단합니다. 방위 프로토콜을 실행합니다.]

타워의 인공지능이 진혁을 저지하기 위해 최후의 수단을 꺼내 든 것이다.

슈우우우-!

성문 양옆의 바닥이 갈라지며 거대한 원형 격납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안에서 올라오는 것은 일반적인 사이보그나 강화병과는 격이 다른 존재였다. 높이 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전신 아머. 표면은 플라즈마 에너지를 두른 고밀도 바륨 합금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양팔에는 공간을 찢어버릴 듯한 초고주파 진동 블레이드가 장착된 차세대 결전 병기.

아르카나 시리즈, 그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살육 병기인 ‘아르카나-01’이었다.

“흐음.”

진혁이 낮게 신음하며 걸음을 멈췄다.

지하에서부터 올라오며 쉼 없이 에너지를 흡수하고 전투를 벌인 탓에 육체적 부하가 한계치에 달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버티고 선 거대한 철옹성은 그에게 두려움이 아니라, 오히려 또 하나의 전리품으로 보일 뿐이었다.

“기계 쪼가리 몇 개 더 꺼내놓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진혁이 입꼬리를 비틀며 웃었다.

그의 손에 들린 개량형 천마검이 마치 주인의 살기를 알아채기라도 한 듯, 미친 듯이 떨리며 푸른 뇌전과 칠흑의 마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오투두두두—!

아르카나-01의 붉은 광채 눈알이 번뜩였다. 거대한 진동 블레이드를 치켜들며 진혁을 향해 돌진해 오는 병기.

진혁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광신보를 전개하며 정면으로 그 거대한 철갑을 향해 몸을 날렸다.

쾅-!

타워의 최상층이 터져 나갈 듯한 거대한 폭음과 함께, 신서울의 운명을 바꿀 최후의 충돌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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