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5화 블랙 가드 체이서 팀의 포위
슈우우우-!
크로노스 타워 최하층 배양 포트 구역을 빠져나온 강진혁의 시야로 무기질적인 회색빛 통로가 끝없이 펼쳐졌다. 기계와 생체 조직이 기괴하게 엉겨 붙어 있던 지하 2,000층의 열기가 멀어질수록 공기는 급격히 차가워졌고, 멸균 처리된 오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단전에서 요동치는 에너지는 이미 68,200 MW의 고점을 향해 치달았다. 온몸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칠흑의 마기는 푸른빛의 뇌전과 뒤엉켜 거대한 파동을 뿜어냈다.
- [WARNING: 단전 코어 출력 임계점 초과 위험.]
- [SYSTEM ADVICE: 육체적 부하가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운기조식을 권장합니다.]
머릿속에 떠오른 경고 문구를 진혁은 가차 없이 시야에서 지워버렸다. 시스템의 보조 없이, 오직 자신의 육감과 [천마마안]으로만 세상을 직시하는 지금. 그에게 시스템의 경고는 그저 낡은 유물처럼 귓가를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오라."
진혁의 입술이 낮게 으스러지듯 읊조렸다. 그의 손에 들린 개량형 천마검이 미세하게 진동하며 검붉은 기류를 토해냈다. 천우진의 손을 거쳐 재제련된 검은 적의 에너지를 흡수할수록 더욱 깊고 묵직한 살기를 띠고 있었다.
바로 그때.
콰아아앙-!
진혁의 발 바로 앞, 정면의 강화 티타늄 바닥재가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과열된 플라즈마 파편이 사방으로 튀며 자지러지는 고주파음을 토해냈다.
"……!"
진혁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좁아졌다. [천마마안]이 격렬하게 수축하며 공간의 미세한 왜곡을 포착했다.
공간 도약 회로.
일반적인 이동 속도를 아득히 초월한, 티타늄 그룹 최정예 암살 부대만이 다룰 수 있는 하이엔드 공간 이동 기술이었다.
파지지직!
공간의 찢어진 틈새에서 여섯 개의 검은 형상이 불쑥 튀어나왔다.
블랙 가드 직속, 초고속 암살 정예.
일명 ‘체이서 팀(Chaser Team)’이었다.
"표적 포착."
"제거한다."
건조하고 기계적인 음성이 통로의 사방에서 겹쳐 들렸다. 그들의 전신을 감싼 4세대 은빛 외골격 수트는 주변의 빛을 완벽하게 흡수하며 투명한 잔상만을 남기고 있었다. 보통의 초인이라면 눈치조차 채지 못했을 사각지대. 그 완벽한 사각에서, 여섯 자루의 고주파 나노 단검이 일제히 진혁의 급소를 향해 쇄도했다.
목덜미, 심장, 관자놀이, 그리고 단전.
치명적인 혈도만을 노린 완벽한 동시 포위 공격이었다.
콰아아아-!
공기가 압축되며 터지는 폭음이 진혁의 고막을 때렸다. 체이서 팀의 연산 속도는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어 있었다. 그들은 진혁의 이동 궤적을 0.001초 단위로 예측해 퇴로를 완전히 차단한 상태였다.
하지만.
"네놈들의 계산은 너무 단순하군."
진혁의 입꼬리가 비틀리며 기괴한 미소를 그려냈다. 그의 눈동자 속에서 푸른빛의 뇌전이 폭발하듯 번져나갔다.
둥—! 둥—! 둥—!
심장 박동 소리가 마치 거대한 북소리처럼 통로 전체를 울렸다. 68,200 MW의 출력이 폭발적으로 요동치며 진혁의 육체를 순식간에 강화했다. [천마무상체 - 마기 방벽].
카아아아앙-!
여섯 자루의 고주파 단검이 진혁의 몸에 닿는 순간, 불꽃이 번개처럼 사방으로 튀었다. 나노머신으로 재구성된 피부와 칠흑 같은 마기 방벽이 단검의 고주파 진동을 그대로 받아내며 단단한 철갑처럼 버텨냈다.
"……뭐지? 방어막의 밀도가 비정상적이다!"
"출력 상승! 관통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라!"
체이서 팀의 대장으로 보이는 개조체가 당황한 듯 음성 변조된 목소리로 외쳤다. 그들은 단검을 빼내어 다시 한번 궤적을 비틀려 했다. 하지만 진혁이 그보다 한 박자 빠르게 움직였다.
파지지직-!
[마광신보 - 극(極)].
빛의 잔상조차 남지 않았다. 진혁의 몸이 공간을 가르며 미끄러지듯 회전했다. 그것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었다. 공간의 흐름을 읽고 그 틈새를 짓밟고 나아가는 마공의 극의였다.
"크윽……?!"
체이서 팀 중 하나의 시야에서 진혁의 형상이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것이 아니라 너무나 빠르게 움직인 나머지 그의 광학 센서가 진혁의 잔상을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탁!
진혁의 거친 손바닥이 그 체이서의 어깨를 으스러질 듯 움켜쥐었다.
"흡(吸)."
콰아아아-!
[흡원천공]의 강력한 소용돌이가 체이서 팀의 4세대 생체 코어를 강제로 후벼팠다. 기계와 생체 에너지가 뒤섞인 순수한 동력원이 진혁의 손바닥을 타고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아아악──!"
체이서의 입에서 기괴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단 1초 만에 그의 전신 회로가 하얗게 타오르며 기능이 정지했다. 방금 전까지 철통같은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던 체이서 팀의 진형에 거대한 균열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이 괴물 자식……!"
남은 다섯 명의 체이서가 일제히 물러서며 진혁을 향해 플라즈마 핸드 캐논을 겨누었다. 통로 전체가 순식간에 눈이 멀 정도로 찬란한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콰아아아아아-!
최대 출력의 플라즈마 광선이 진혁을 집어삼키듯 쏟아졌다. 통로의 벽면이 녹아내리며 거대한 열풍이 폭발적으로 확산되었다. 블랙 가드 정예의 합공은 신서울의 어지간한 요새 하나쯤은 흔적도 없이 지워버릴 수 있는 화력이었다.
그러나 폭풍의 중심에서 진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끝났나."
진혁의 나지막한 중얼거림과 함께,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폭풍을 역으로 밀어냈다. [만법귀마 - 파동 반사].
쏟아지는 플라즈마의 주파수를 완벽하게 분석해낸 진혁이 검을 크게 휘둘렀다. 사방으로 흩어지던 에너지가 역류하며 체이서 팀의 진형을 통째로 짓뭉개버렸다.
쿠구구구구궁-!
"크하윽!"
"회로가…… 타오른다……!"
폭발의 여파 속에서 체이서 팀의 잔해들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완벽한 포위, 초고속 공간 도약, 그리고 S급 암살자들의 치밀한 연계 공격. 티타늄 그룹이 숨겨둔 최정예의 자부심은 진혁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 단 몇 분 만에 박살이 나고 있었다.
진혁은 비틀거리며 일어섭니다. 아니, 일어서려는 남은 체이서들을 향해 차가운 시선을 던졌다. 그들의 시선에 닿은 개량형 천마검이 더욱 짙은 검붉은 빛을 토해내며 울부짖었다.
부르르릉-!
검신을 감싼 마기가 초고속으로 진동하기 시작했다. 공간마저 찢어버릴 듯한 기세로 출렁이는 검광. 그것은 다음 순간, 이 통로를 완전히 피로 물들일 예고편에 불과했다.
진혁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상층부로 이어지는 비상 승강기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그의 등 뒤로, 부서진 체이서 팀의 잔해들이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타오르는 살의와 함께, 진혁의 시선은 마침내 티타늄 타워의 진짜 심장부를 향해 고정되었다.
슈우우우-!
타오르는 열기와 냉각수가 뒤섞인 비상 통로에, 체이서 팀의 잔해들이 내뿜는 기계 유출유 냄새가 진동했다. 진혁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의 눈앞에는 오직 상층부로 이어지는 거대한 티타늄 합금 승강기 문만이 버티고 있었다.
- [SYSTEM WARNING: 생체 코어 출력 69,500 MW 돌파.]
- [WARNING: 마기 동기화율 임계치 근접. 뇌혈관 및 신경계 미세 파열 관측.]
아직도 머릿속을 찌르는 듯한 환청 같은 경고음이 울렸지만, 진혁은 그것을 완벽하게 무시했다. 시스템의 데이터 따위가 그의 의지를 재단할 수는 없었다. [천마마안]으로 투시한 승강기 샤프트의 구조는 복잡미묘했다. 단순한 기계적 도르래 방식이 아니라, 신서울 전역의 플라즈마 에너지 그리드와 직결된 자기부상 격리 튜브였다.
“기어오르는 데 지치지도 않는군.”
진혁이 낮게 뇌까리며 개량형 천마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검신에 서린 검붉은 기류가 공기와 마찰하며 날카로운 파열음을 냈다. 이미 몸 안의 칠흑 같은 마기는 혈관을 타고 돌며 그의 육체를 단단한 강철보다 단단한 [천마무상체]로 고정해 둔 상태였다.
바로 그때.
콰아아앙-!
진혁의 머리 위, 승강기 샤프트의 천장이 종잇장처럼 박살 났다. 눈이 멀 정도로 찬란한 금빛 플라즈마 스파크가 쏟아지는 그곳에서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지축을 뒤흔드는 충격과 함께 바닥이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
진혁이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물렸다. 폭풍처럼 일어선 먼지와 파편 속에서 기괴한 형상의 존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사방으로 뻗어 나간 은빛 케이블, 그리고 인간의 형상을 아득히 초월한 거대한 척추 외골격. 그것은 앞서 처리했던 체이서 팀이나 메카 크로노스와는 결이 다른 존재였다. 전신에 티타늄 그룹의 마스터 보안 코드가 실시간으로 각인되는, 일명 ‘처형 집행자(Executioner)’ 시리즈의 완성형이었다.
“강진혁.”
기계음이 섞인 중저음의 목소리가 통로를 울렸다. 그것은 인간의 성대가 아니라 수많은 이들의 음성을 합성해 만든 인공적인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네놈이 파괴한 것은 티타늄 그룹의 껍데기에 불과하다. 이 층 위부터는 영생을 향한 진짜 프로토콜이 시작된다.”
집행자의 양팔이 스윽 소리를 내며 변형되었다. 순식간에 플라즈마 캐논과 고주파 진동 블레이드로 바뀌는 양손. 그 출력만 해도 앞서 제프로스가 쓰던 4세대 코어의 몇 배에 달하는 에너지가 감지되었다.
진혁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올라갔다.
“영생? 지랄을 하네.”
목소리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진혁은 다리를 넓게 벌리고 자세를 낮췄다. 단전에서 요동치는 69,500 MW의 에너지가 검은 불꽃이 되어 그의 전신을 휘감았다.
팟-!
[마광신보 - 극(極)].
공간이 두 번 꺾였다. 잔상조차 남기지 않는 극한의 속도로 진혁의 몸이 집행자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감히……!”
집행자의 플라즈마 블레이드가 사각지대를 베어내며 횡단으로 휘둘러졌다. 하지만 진혁의 눈은 이미 그 궤적의 0.001초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 [천마마안]이 포착한 집행자의 코어 중심부, 그 핵심 회로를 향해 개량형 천마검이 일직선으로 뻗어 나갔다.
카아아아앙-!
검과 블레이드가 부딪치는 순간, 신서울 전체가 울릴 듯한 거대한 고주파 진동이 폭발했다. 검신을 감싼 칠흑의 마기와 푸른 뇌전이 집행자의 외골격을 순식간에 잠식해 들어갔다.
“이, 이게…… 무슨 에너지지? 데이터베이스에 없다……!”
집행자의 광학 센서가 붉게 깜빡이며 경고를 띄웠다. 하지만 진혁은 그에게 자비로운 연산 시간을 줄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네 녀석들의 데이터에 없는 게 당연하다.”
진혁의 눈빛이 차가운 살기로 물들었다. 그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온 에너지가 검끝으로 응축되며 눈이 멀 정도의 검강(劍剛)을 빚어냈다. [고주파 마검강].
천우진이 쥐어준 검의 진정한 가치가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슈우우우욱-!
단 한 번의 회전 베기. 공간을 가르는 검광이 집행자의 거대한 몸통을 가로질렀다.
잠시 동안의 정적.
그리고—
콰아아앙-!
집행자의 전신에 새겨진 마스터 보안 코드가 일제히 붕괴하며 거대한 폭발이 터져 나왔다. 기계 조직과 생체 코어가 산산조각이 나며 사방으로 흩날렸다.
진혁은 폭풍 속에서 천천히 걸어나왔다. 그의 호흡은 거칠었지만, 그 눈빛은 더욱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단전의 출력은 이미 70,000 MW를 돌파하여 미지의 경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부서진 집행자의 잔해를 뒤로한 채, 진혁은 상층부로 통하는 비상 승강기의 제어 패드 앞에 섰다. 그의 손끝이 보안 패드를 강제로 짓이기자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굉음을 내며 열렸다.
치익-!
정화된 공기와 함께, 티타늄 타워의 최상층—진무극이 왕좌처럼 군림했던 ‘아폴론의 회주랑’으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이 진혁의 앞에 그 전모를 드러냈다.
거대한 백색 대리석과 금빛 기둥이 늘어선 회주랑의 끝. 그곳에는 티타늄 그룹의 진정한 비밀, 그리고 1,000년 전 마교의 유골과 천마 프로토콜의 모든 진실이 잠든 ‘마스터 돔’이 기다리고 있었다.
진혁은 망설임 없이 발을 내디뎠다. 그의 등 뒤로 신서울의 밤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타워 전체가 그의 분기(憤氣)에 반응하듯 거대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