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4화 동기화율 85%의 경고
지하 2,000층.
거대한 고대 마교의 유골 보존실, 그 차가운 청색 조명 아래에서 프로토콜 00호가 눈을 번뜩였다.
크아아아-!
기계음과 짐승의 울음소리가 섞인 기괴한 파열음이 광장을 가득 메웠다.
강진혁의 외형을 그대로 본뜬, 그러나 온몸에 섬뜩한 붉은색 나노 회로가 얽혀 있는 ‘프로토콜 00호’가 배양 포트의 강화 유리벽을 주먹으로 박살 냈다.
파지지직-!
사방으로 튀는 유리 조각 사이로 압도적인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단순한 인간의 기운이 아니었다. 티타늄 그룹이 1,000년 전 천마의 유골에서 추출해 낸 원시적이고 폭력적인 에너지의 집합체이자, 진혁의 완벽한 하위 호환이자 대척점이었다.
[WARNING: 호환성 동기화 프로세스 강제 가동.]
[경고! 숙주 강진혁의 신체 데이터와 00호의 회로가 공명합니다.]
머릿속을 파고드는 시스템의 기계적인 음성.
진혁은 HUD가 완전히 차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뇌리에 직접 박히는 듯한 오싹한 경고음을 느꼈다.
-시발, 끈질긴 새끼들.
진혁의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그는 시스템을 거부하고 자아를 지켜냈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 거대한 지하 성소의 바닥에 깔린 케이블과 생체 코어들은 여전히 자신과 00호를 하나의 거대한 실험체로 묶어두고 있었다.
콰아아앙!
00호가 발을 구르자마자 바닥의 티타늄 합금이 종이장처럼 찢어졌다.
그의 보법은 [마광신보(魔光神步)]였다.
진혁이 사용하던 것과 궤적이 완벽하게 일치했다. 아니, 오히려 기계적인 보조 연산을 거치지 않고 순수한 억지로 가속한 덕분에 속도 자체는 진혁의 초기 기동력을 아득히 상회했다.
슈우우웅-!
눈앞에 나타난 00호의 주먹이 진혁의 관자놀이를 노리고 박혀들었다.
바람이 터지는 폭음과 함께 공간이 찌그러졌다.
"느려."
진혁은 피하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 [천마마안(天魔魔眼)]이 00호의 근육 수축과 마기 흐름의 궤적을 0.001초 만에 꿰뚫어 보았다.
퍼어어어어어어-!
진혁의 주먹이 정면으로 00호의 주먹과 충돌했다.
두 개의 거대한 마기가 부딪치며 발생한 충격파가 사방의 거대한 석상들을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쿠구구궁!
"크윽……!"
00호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단전 출력 65,000 MW.
이현도의 S급 코어 에너지를 통째로 흡수한 진혁의 육체 강도는 이미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00호의 주먹이 먼저 으스러지고, 그의 팔 전체가 기괴한 각도로 꺾였다.
하지만 00호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부러진 팔을 나노머신이 괴기한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재접합했다.
크르륵…….
[데이터 분석 완료. 해당 개체의 신경 회로를 흡수합니다.]
진혁의 뇌리에서 문득 환청 같은 목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시스템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진혁 자신의 내면에 잠들어 있던, 혹은 프로토콜의 기저에 깔려 있던 또 다른 자아의 목소리였다.
바스스스…….
00호의 몸에서 흘러나온 검은 마기가 진혁의 손목을 타고 역류했다.
진혁의 팔목에 새겨져 있던 은빛 회로 선이 붉은색으로 번뜩이기 시작했다.
[SYSTEM ALERT]
[현재 누적 동기화율: 83.9%]
[경고! 85% 도달 시, 숙주의 자아 제어권이 프로토콜 본체로 이전됩니다.]
"……하."
진혁의 눈동자가 가라앉았다.
흡수하면 할수록 강해진다.
적의 코어를 부수고 에너지를 삼킬 때마다 천마신공의 경지는 깊어졌지만, 그 대가로 뇌저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차가운 기계적 침식은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다.
진무극이 설계한 '최종 그릇'.
그것은 단순히 육신만 튼튼하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었다.
숙주 스스로가 마공에 미쳐가고, 결국엔 프로토콜이라는 거대한 AI의 인격에 잡아먹히는 것. 그것이 진정한 '완성'의 의미였다.
"내 몸을 빌려간 대가다. 돌려받지."
진혁은 눈을 감았다가 번뜩 뜨며 단전의 코어를 맹렬하게 역회전시켰다.
천마심법의 극의.
순수한 의지의 힘으로 혈관 속을 타고 흐르는 이물질 같은 마기를 짓밟고 압박했다.
쿠구구구궁-!
가슴 부근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울렸다.
진혁의 입가로 검은 혈흔이 흘러내렸다. 자신의 내공과 프로토콜의 에너지가 충돌하며 일으킨 자해에 가까운 반작용이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역류하던 붉은 회로가 다시 원래의 차가운 은빛으로 돌아왔다.
[동기화율: 84.8% -> 일시적 고정 (84.2%)]
"크아아아악……!"
00호가 진혁의 기세에 압도당해 뒤로 물러섰다.
완벽한 복제품이라 할지라도, '의지'의 격차는 메울 수 없었다.
진혁은 기계를 도구로 부렸지만, 00호는 기계가 부리는 꼭두각시에 불과했으니까.
"끝내주마."
진혁이 손을 뻗었다.
개량형 천마검이 공기를 찢는 고주파를 내며 그의 손에 감겼다.
검신에 푸른 뇌전과 칠흑의 마기가 소용돌이치듯 휘감겼다.
[천마일검 - 개량(改)]
콰아아앙!
공간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눈이 멀 정도로 찬란한 흑백의 검강이 지하 2,000층의 거대한 광장을 반으로 가르며 00호의 몸통을 관통했다.
슈아아아악-!
"아……."
00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마지막 소리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부서진 기계가 내는 마지막 바람 빠지는 소리에 가까웠다.
중앙에서부터 시작된 균열이 그의 온몸으로 번져나갔고, 이윽고 00호의 육체는 한 줌의 재와 타버린 나노머신 찌꺼기로 변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툭.
00호가 차고 있던 마스터 보안 패드가 바닥에 떨어졌다.
진혁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 패드를 집어 들었다.
[티타늄 그룹 중앙 코어 억세스 권한 획득.]
[모든 메인 네트워크의 물리적 차단이 가능합니다.]
진혁의 시야가 살짝 흐려졌다.
65,000 MW의 고출력을 연속으로 개방한 여파와, 85% 직전까지 치솟았던 동기화율의 부작용이 한꺼번에 밀려온 것이다.
-주인공 양반! 괜찮나?
통신기 너머로 윤아영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 들린다. 아영아."
-거기 데이터 반응이 갑자기 요동쳤어! 무슨 일이야? 00호는 처리했어?
"처리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프로토콜의 잠식 속도가 빠르다."
진혁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은빛 회로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전원을 끄고 싶어도 끌 수 없는 거대한 엔진이 심장 대신 박혀 있는 기분이었다.
-잠식이라니? 설마…… 아직도 시스템이 남아 있는 거야? 네트워크는 다 부쉈잖아!
"네트워크가 아니야. 이 몸 자체가…… 그놈들이 1,000년 동안 파놓은 거대한 안가(安家)였던 거지."
진혁이 고개를 들어 지하 광장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단순히 연구소가 아니었다. 티타늄 그룹이 신서울 전체의 생체 에너지를 빨아들이기 위해 구축한 거대한 송전탑이자, 천마의 유골을 제물 삼아 영생의 육신을 빚어내던 거대한 '제단'이었다.
그리고 그 제단의 최상층.
진무극이 죽고, 이현도가 소멸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사라지지 않은 무언가가 그곳에 있었다.
[SYSTEM MESSAGE]
[경고. 동기화율 85% 돌파 임박.]
[지정된 숙주의 자아 소멸 프로세스가 백그라운드에서 실행 중입니다.]
시스템의 붉은 창이 진혁의 시야 구석에 흉측하게 떠올랐다.
진혁은 콧방귀를 뀌며 개량형 천마검으로 바닥을 강하게 찍었다.
"지랄하네. 내 몸뚱어리야."
쿠구구구궁-!
진혁이 마기를 폭발시키며 지하 2,000층의 비상 승강기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이 모든 판을 벌인 원흉들의 잔재가 숨어 있는, 티타늄 그룹의 가장 깊은 본진으로 올라가는 것뿐이었다.
그때였다.
파지지직-!
지하 광장의 비상 통로 입구, 그 사방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기괴한 청색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공간이 찢어지는 듯한 고주파음과 함께, 차가운 살기가 진혁의 등골을 서늘하게 내리꽂았다.
슈우우욱-!
공간 도약 회로.
그것도 일반적인 군용 기술이 아니라, 신서울 상층부의 특권층만이 사용할 수 있는 최고 등급의 공간 왜곡 장치였다.
"……?"
진혁의 눈동자가 가라앉았다.
발걸음이 뚝 멈췄다.
파앗!
사방의 어둠 속에서 은빛 잔상을 남기며 여섯 개의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각각의 손에는 고주파 진동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암살용 나노 단검이 들려 있었다.
그들의 전신을 감싼 은빛 슈트는 주변의 빛과 열을 완벽하게 흡수하여 시각적으로 완전히 지워져 있었다.
티타늄 그룹 블랙 가드 직속, 최정예 암살 정예.
‘체이서 팀(Chaser Team)’.
-타겟 포착.
-프로토콜 00호 소멸 확인.
-숙주 강진혁, 제거 개시.
여섯 명의 암살자가 동시에 공간을 접으며 진혁의 사각지대를 향해 단검을 찔러 넣었다.
초고속 공간 도약 회로를 이용한 동시 다발적 암살 기습.
진혁은 차갑게 미소 지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퍼어어어어어어-!
여섯 개의 단검이 동시에 진혁의 전신을 관통하는가 싶더니, 그곳에 남은 것은 칠흑 같은 잔상뿐이었다.
공간 도약 회로를 과부하시켜 나타난 체이서 팀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타겟이 있던 자리는 이미 텅 비어 있었고, 그들이 찌른 것은 진혁이 남긴 잔류 마기의 파편에 불과했다.
"잔상이다!"
"산개해라! 상층부 제어 주파수 연산 중…… 큭!"
리더로 보이는 체이서 팀의 대장이 급히 명령을 내리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공간의 틈새를 찢고 나타난 진혁의 [마광신보 - 극(極)]은 인간의 반응 속도를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퍼억!
"커헉……!"
진혁의 손바닥이 첫 번째 암살자의 가슴팍에 내리꽂혔다.
단전 출력 65,000 MW에서 뿜어져 나온 압축 마기가 S급 엑소스트 수트의 방어막을 종이장처럼 구겨버렸다.
가슴에 박힌 손바닥 안쪽에서부터 흡원천공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대상의 생체 코어 에너지, 3,200 MW 흡수.]
[임시 단전 출력: 68,200 MW.]
우드득, 우두두둑-!
암살자의 전신에 박혀 있던 나노 회로가 역류하며 터져 나갔다.
단 일 초도 안 되는 순간에 코어의 에너지를 통째로 강탈당한 개체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한 줌의 회색 재로 풍화되어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이 미친……!"
"출력이 변동한다! 놈의 에너지는 괴물이다!"
나머지 다섯 명의 체이서 팀이 경악하며 일제히 후퇴하려 했다.
그들은 수많은 고위 인물을 암살하고 슬럼가의 반란군을 학살해 온 티타늄 그룹의 최고참 살인병기였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눈앞에 선 존재는 단순한 '실험체'가 아니었다.
기계가 통제해야 할 시스템의 에너지를 모조리 역류시켜 스스로 신의 경지에 도달한, 살아있는 마신(魔神) 그 자체였다.
슈우우웅-!
진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천마마안]을 빛냈다.
체이서 팀이 장착한 공간 도약 회로의 미세한 기계적 공진 주파수, 그리고 나노머신이 움직이는 맥놀이까지 전부 그의 뇌리에 실시간으로 박혀들었다.
-만법귀마(萬法歸魔).
진혁의 손끝에서 검은 마기가 파동 형태로 퍼져나갔다.
그것은 단순히 적의 공격을 받아치는 기술이 아니었다. 적들이 사용하는 첨단 군사 기술의 핵심 주파수를 역으로 교란하여, 그들의 하드웨어를 안쪽부터 붕괴시키는 파멸의 파동이었다.
파지지직-!
"끄아아악! 회로가……! 슈트가 말을 듣지 않는다!"
"내 몸이…… 내 의지대로 안 돼!"
공간 도약 회로를 발동하려던 다섯 명의 암살자가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진혁이 뿌린 마기 파동이 그들의 나노머신과 생체 코어의 연결 회로를 완전히 쇼트시켜 버린 것이다.
최고급 군사 장비가 한순간에 고철 덩어리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척.
진혁의 발걸음이 멈춘 곳에는 체이서 팀의 리더가 주저앉아 있었다.
그는 전신이 마비된 채, 떨리는 눈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진혁을 올려다보았다.
차가운 칠흑의 눈동자. 그 속에는 일말의 자비도, 인간적인 감정도 존재하지 않았다.
"너희를 보낸 게…… 진무극인가, 아니면 그 잔재들이 남긴 오토메이션인가."
진혁의 낮고 잠잠한 목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졌다.
리더가 피를 토하며 쇳소리를 냈다.
"……크큭…… 모른다. 우리는…… 오직 상층부의 ‘마스터 프로토콜’의 명령에 움직일 뿐이다……."
"마스터 프로토콜?"
"그렇다……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너는 그 프로토콜의 그릇일 뿐…… 결코 그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다……!"
말을 마치기가 무섭다.
리더의 귓구멍과 눈에서 검붉은 피가 역류했다.
배후에서 심어져 있던 자폭 및 기밀 유지용 나노 킬러 스위치가 강제로 작동한 것이다.
치익-!
시체를 태우는 매캐한 연기와 함께 체이서 팀의 잔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진혁은 가만히 그 자리를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지하 광장의 비상 통로를 바라보았다.
[SYSTEM ALERT]
[경고! 체이서 팀의 섬멸 데이터가 분석되었습니다.]
[현재 동기화율: 84.9%]
[……주의. 숙주의 의식 간섭 능력이 프로토콜의 연산 한계를 초과하려 합니다.]
머릿속에서 다시금 경고창이 깜빡였다.
하지만 진혁의 얼굴에는 당황스러움 대신 서늘한 미소가 떠올랐다.
"한계라고?"
진혁이 개량형 천마검을 가볍게 쥐었다.
검신을 따라 흐르는 푸른 뇌전과 칠흑의 마기가 서로 엉키며 거친 진동음을 냈다.
"그 한계, 내가 직접 부숴주마."
콰아아앙-!
진혁이 바닥을 박차고 비상 승강기를 향해 수직으로 쏘아올라갔다.
지하 2,000층의 암흑을 뚫고 상층부를 향하는 그의 등 뒤로, 신서울 전체를 뒤흔들 거대한 폭풍의 전조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