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전용 사이트예요. 댓글·로그인·좋아요는 준비 중이에요.
‹프로토콜: 천마 · 91화목차

제91화 크로노스 타워 기습

92층 헤븐리 챔버의 격전이 끝난 후, 아폴론의 회주랑에는 짙은 파괴의 냄새만이 남아 있었다.

지붕 위로 쏟아지는 차가운 신서울의 야공기 속에서, 강진혁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단전에서 요동치는 생체 코어의 출력은 이미 60,000 MW를 아득히 상회하고 있었다. 온몸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칠흑 같은 마기는 더 이상 시스템의 보조 헤드업 디스플레이(HUD)나 인공지능의 연산에 의존하지 않았다. 그것은 오직 진혁 자신의 의지이자, 본능이었으며, 하나의 거대한 진리 그 자체였다.

"후우……."

낮게 뱉어낸 숨결이 허공에서 짙은 안개처럼 흩어졌다.

손에 쥔 개량형 천마검의 날에는 적들의 에너지를 베어내며 축적된 미세한 뇌전과 고주파의 진동이 뱀의 혓바닥처럼 가늘게 얽혀 있었다.

그의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부상당한 채 신음하며 쓰러져 있는 진세린이 있었다. 티타늄 그룹의 후계자이자 검귀로 불리던 그녀였지만, 진무극이 자신을 영생을 위한 '아폴론의 그릇(숙주)'으로 쓰려 했다는 참혹한 진실을 알게 된 이후, 그녀의 자존감은 완전히 박살 나 있었다.

진혁은 말없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눈앞의 여자는 적이었고, 악의 축의 일부였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과 마찬가지로 거대 기업이 빚어낸 거대한 비극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끼익— 쿵!

진세린이 떨리는 손으로 패드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녀의 은빛 전투복은 군데군데 찢어져 있었고, 가슴 부근의 생체 코어는 간헐적으로 스파크를 튀기고 있었다.

"이동…… 하세요."

피투성이가 된 입술을 악물며 진세린이 중얼거렸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의 적대감은 없었다. 오직 허무와 씁쓸함만이 묻어났다.

"여기를 지나면…… 크로노스 타워로 직행하는 메인 하부 승강장이 나옵니다. 이현도 그 미치광이가 네놈을 기다리고 있어. 그 영감탱이는 내 조부보다 더한 괴물이야. 스스로의 육체를 버리고 완전한 기계로 거듭났지."

진혁은 묵묵히 바닥에 떨어진 보안 패드를 집어 들었다.

패드의 화면에는 신서울 최하단, 절대 감시구역으로 지정된 [크로노스 바이오 제3연구소 - 크로노스 타워]의 실시간 내부 구조도가 붉은색 해독 코드와 함께 떠올랐다.

"죽이러 가는 게 아니다."

진혁의 낮고 무거운 음성이 회주랑의 잔해 속으로 울려 퍼졌다.

"끝내러 가는 거다."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었다.

진혁은 발을 구르는 것조차 생략한 채, [마광신보 - 극(極)]을 전개했다.

콰아아앙!

공기가 폭발하는 섬광과 함께 그의 잔상이 90층 테라스의 강화 유리벽을 산산조각 내며 수직으로 낙하했다. 신서울의 밤하늘을 가르는 한 줄기 칠흑 같은 유성처럼, 진혁은 크로노스 타워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크로노스 타워.

신서울의 지하자원 채굴 구역과 맞닿아 있는 이곳은 티타늄 그룹의 숨겨진 심장이자, 모든 생체 실험과 '천마 프로토콜'의 데이터가 최초로 유기적으로 결합된 금단의 영역이었다.

지하 800층 깊이의 거대한 하부 승강장.

슈우우우—!

고압의 증기가 터져 나오고, 사방을 둘러싼 거대한 티타늄 합금 격벽이 요란한 기계음을 내며 좌우로 갈라졌다.

콰광!

천장의 콘크리트 잔해를 뚫고 낙하한 강진혁의 두 발이 바닥에 박히며 거대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타일이 가루가 되어 날리고, 사방의 보안 센서들이 붉은 경보음을 토해내며 미쳐 날뛰었다.

[SYSTEM ALERT: 미인증 외부 침입자 감지.]

[보안 레벨: OMEGA. 구역 내 모든 방어 시스템 가동.]

[경고! 단전 코어 출력 60,000 MW 이상 감지. 자동 소화 프로토콜 실행 불가.]

타워 내부의 스피커에서 기계적이고 날카로운 경고음이 귓가를 때렸지만, 진혁의 표정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눈에 비친 크로노스 타워의 하부 승강장은 과거 슬럼가의 폐기장이나 티타늄 타워의 화려한 마천루와는 결이 달랐다. 생물학적 유기물과 차가운 기계 부품이 기괴하게 융합된 거대한 도살장 같았다. 벽면마다 파란색 배양액이 가득 찬 실린더들이 늘어서 있었고, 그 안에는 아직 형태를 갖추지 못한 인조 근육과 기계 의수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여기가 이현도의 본거지인가.'

진혁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손에 쥔 개량형 천마검의 날끝이 바닥을 스치며 타일 위에 날카로운 스파크를 흩뿌렸다.

스읍, 하-

길고 깊은 호흡 한 번에, 단전 속에 잠들어 있던 60,000 MW의 출력이 폭발적인 기류가 되어 온몸의 혈관을 달궜다. 인공지능의 보조나 시스템의 연산 가속 따위는 없었다. 오직 자신의 심장 박동과 마기의 흐름이 하나로 동기화되어 온몸의 세포를 팽창시켰다.

바로 그때.

지하 승강장 정중앙의 거대한 철문이 요란한 파열음과 함께 안쪽으로 밀려났다.

쿠구구구구—!

"크하하하하! 크하하하하하!"

기괴하고도 날카로운 금속성의 웃음소리가 타워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것은 인간의 성대로는 도저히 낼 수 없는, 수십 개의 철판이 갈리는 듯한 고주파의 합성음이었다.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걸어 나왔다.

아니, 걸어 나온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그것은 전형적인 인간의 형태를 완전히 벗어난, 거대한 강철의 괴물이었다.

높이 3미터에 달하는 거구.

온몸은 항공우주 등급의 티타늄-카바이드 합금 장갑으로 뒤덮여 있었고, 그 장갑의 틈새마다 펄스 에너지를 품은 붉은색 유압 실린더가 심장 박동처럼 거칠게 고동치고 있었다. 특히 상체는 인간의 척추와 늑골을 모사한 기계식 프레임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그 중심부에는 일반적인 생체 코어의 수십 배에 달하는 거대한 '플라즈마 반응로'가 푸른색 폭발음을 내며 회전하고 있었다.

머리 부위는 더욱 기괴했다. 생체 조직은 완전히 소멸하고, 수십 개의 광학 센서와 신경 접속 케이블이 얽혀 있는 거대한 금속 구체가 360도로 회전하며 주변을 스캔하고 있었다.

"강진혁……! 이 건방진 실험체 07호 녀석!"

메카 크로노스(Mecha-Kronos).

이현도의 잔존 의식과 타워의 메인 컴퓨터가 완전히 융합되어 탄생한 첫 번째 기계 대리인이, 흉측하게 일그러진 금속 턱을 움직이며 목소리를 토해냈다.

"네놈이 내 평생의 연구를, 내 완벽한 그릇들을 모조리 박살 낼 줄이야! 감히 프로토콜의 신성한 영역에 발을 들여? 네놈은 단지 내가 만든 데이터의 파편에 불과하다!"

쾅!

메카 크로노스가 거대한 강철 주먹으로 바닥을 내려찍자, 승강장 전체가 종이장처럼 구겨지며 거대한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요동쳤다.

슈우우우웅—!

그의 가슴 중앙에 박힌 거대한 플라즈마 반응로가 급격하게 회전하며 주변의 공기를 태우기 시작했다. 반응로 주변의 온도가 순식간에 수천 도로 치솟으며 푸른빛이 백색으로 변해갔다.

[SYSTEM ALERT: 타워 내 고에너지 반응 감지.]

[경고! 적의 중심 코어에서 대규모 열에너지 집약 중. 즉각적인 회피 기동 권장.]

시스템의 경고음이 진혁의 머릿속을 스쳤지만, 진혁은 시스템의 창을 아예 보지도 않았다. 그의 [천마마안]은 이미 메카 크로노스의 기계식 관절과 플라즈마 반응로의 미세한 에너지 흐름, 그리고 그 중심에 흐르는 이현도의 왜곡된 의식의 파동을 낱낱이 꿰뚫고 있었다.

"시끄럽군."

진혁이 입술을 말아 올리며 차갑게 웃었다.

칠흑 같은 마기가 그의 전신을 타고 피어올랐다. 머리카락이 역립하고, 은빛 회로 선이 목과 손목을 따라 타오르듯 빛났다.

"그 껍데기 쪼가리를 걸치면 네가 인간이라도 된 것 같나, 이현도."

"이 건방진 자식……! 그 오만한 목소리를 짓밟아주마! 모든 에너지를 집약해 이 타워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져라!"

메카 크로노스가 거대한 양팔을 앞으로 뻗었다.

그의 가슴팍에 장착된 플라즈마 반응로가 견딜 수 없는 압력을 내뿜으며 타워 내부의 모든 조명을 꺼뜨렸다.

사방이 암흑에 잠긴 그 순간, 메카 크로노스의 가슴 중앙에서 세상을 태워버릴 듯한 초고온의 빛이 맹렬하게 응축되기 시작했다.

타워의 벽면이 녹아내리고, 바닥의 타일이 증발하며 거대한 열풍이 진혁의 옷자락을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이현도의 광기 어린 목소리가 승강장을 가득 채웠다.

"이것이 내가 완성한 마기와 기계의 궁극이다! 소멸해라, 강진혁!"

콰아아아아아아—!

메카 크로노스의 가슴팍에서 타워 전체를 날려버릴 기세의 치명적인 고주파 입자포가 거대한 광선을 내뿜으며 진혁을 향해 쏘아져 내렸다.

타오르는 백색의 광선이 승강장의 공간을 반으로 갈라놓으며 압도적인 파괴력으로 진혁을 집어삼키려 했다.

바로 그 순간, 진혁의 눈동자에 시퍼런 뇌전과 칠흑의 마기가 동시에 번뜩였다.

"내공을 기술로 착각하는 멍청한 늙은이."

진혁이 개량형 천마검을 머리 위로 번쩍 치켜들며 단전의 출력을 60,000 MW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공기가 찢어지고, 신서울의 밤하늘을 뒤흔들 핏빛 참격이 거대한 광선을 향해 정면으로 치솟았다.

콰아아아앙!

백색의 입자포와 칠흑 같은 마검기가 충돌하는 순간, 지하 승강장은 단숨에 진공 상태로 빨려 들어간 듯 극심한 압축음과 함께 폭발했다.

방어막의 경계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스파크는 사방의 철제 기둥을 종이장처럼 찢어발겼고, 타워 전체가 비명 같은 금속 마찰음을 토해냈다.

"크윽……! 이게 무슨 출력이냐?! 내 반응로의 출력이 한계를 초과하고 있어!"

메카 크로노스의 기계식 음성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게 흘러나왔다.

그가 믿었던 초고온 고주파 입자포는 진혁의 마기에 부딪히는 순간, 흡수되고 반사되며 오히려 자신의 코어를 압박해 오고 있었다.

[SYSTEM ALERT: 마기 동기화율 100%.]

[사용자 강진혁의 단전 출력: 61,200 MW 돌파.]

"네놈의 기계 따위가 천마의 궤적을 흉내 낼 수 있을 줄 알았나."

강진혁의 입가에 짙은 냉소가 걸렸다.

그는 손에 쥔 개량형 천마검에 실린 마기를 더욱 압축시켰다. 적의 에너지를 흡수할수록 검의 날은 더욱 예리해졌고, 뿜어져 나오는 뇌전은 푸른색에서 새하얀 섬광으로 변해갔다.

밀어붙인다.

더 이상 망설일 필요도, 연산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오직 진혁 자신의 의지대로 발현된 [천마일검 - 개량(改)]의 파동이 메카 크로노스의 플라즈마 반응로 중앙을 정통으로 타격했다.

콰아아앙! 쿠구구구궁!

"아…… 아니, 잠깐! 내 코어가…… 내 불멸의 그릇이……!"

메카 크로노스의 거대한 강철 몸체가 균열을 일으키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가슴 중앙에 박혀 있던 플라즈마 반응로가 연쇄 폭발을 일으켰고, 그 안에서 흘러나오던 푸른빛의 배양액이 사방으로 튀며 증발했다.

이현도의 잔존 의식이 담긴 메인 구체가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본체에서 떨어져 나와 바닥을 나뒹굴었다.

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 거대한 철제 잔해 사이를 걸어갔다.

바닥에 나뒹굴며 스파크를 튀기는 이현도의 메인 구체 앞에 멈춰 선 진혁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이현도."

👥 "커흑…… 크윽…… 가, 강진혁…… 네놈은 아직 끝을 모른다…… 티타늄 그룹의 진짜 주인은……!"

말을 잇지 못하고 구체가 파직거리며 꺼져갔다.

진혁은 더 이상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개량형 천마검을 가볍게 내리꽂아 이현도의 남은 의식과 메인 프로세서를 완전히 분쇄했다.

파식—!

기계가 완전히 침묵하고, 승강장 내부는 매캐한 연기와 함께 고요에 휩싸였다.

[SYSTEM ALERT: 크로노스 타워 하부 구역 제압 완료.]

[메인 대리인 '메카 크로노스' 소멸.]

진혁은 숨을 고르며 시선을 타워의 더 깊은 곳, 즉 '천마 프로토콜'의 원본 데이터가 봉인된 최상층 코어로 향했다.

모든 악의 근원을 뿌리 뽑기 위한 마지막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있었다.

다음 화 바로보기 ›
이 작품, 여기까지 어떠셨나요? ★ 별점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