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전용 사이트예요. 댓글·로그인·좋아요는 준비 중이에요.
‹프로토콜: 천마 · 9화목차

제9화 일격필살(一擊必殺)

끼익- 쾅!

지하 격투장 ‘콜로세움’의 바닥이 거대한 진동과 함께 갈라졌다. V.I.P 박스 유리를 깨고 시선을 집중시킨 간부 바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광마(狂魔)라 불리던, 뇌 개조를 거쳐 마공의 폭주를 온몸으로 떠안고 있던 괴물이 단 한 톨의 저항도 하지 못한 채 허무하게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가슴팍은 뻥 뚫려 있었고, 단전 부근에 박혀 있던 3세대 전투용 생체 코어는 이미 강진혁의 손에 들어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으깨어져 있었다.

"미친…… 저 괴물을 단 일격에?"

"괴물 새끼……!"

구경꾼들이 토해내는 비명과 탄식은 오색 네온사인의 섬광 속에서 허공으로 흩어졌다.

진혁은 피 묻은 오른손을 툭 털어냈다.

지직-.

혈관을 타고 흐르는 나노머신의 미세한 떨림과 함께, 뼛속까지 스며들던 과열감이 단숨에 가라앉았다. 흡원천공(吸元天功)을 통해 강탈한 광마의 생체 코어 에너지가 단전의 융합로를 채우며 폭발적인 출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SYSTEM INFO: 천마 프로토콜 (HEAVENLY DEMON PROTOCOL) v3.04]

------------------------------------------------------------------

■ 사용자: 강진혁 (실험체 07호)

■ 경지: 2단계 [마기융합 (魔氣融合)]

■ 생체 코어 출력: 1,650 MW (↑ 300 MW 상승)

■ 나노머신 동기화율: 68.5%

■ 보유 마력(내공): 15년가량 [마검기(魔劍氣) 정밀 제어 가능]

------------------------------------------------------------------

[Warning] 생체 코어 출력 상승으로 인한 신경계 안정화 완료.

[Notice] 흡수된 데이터의 일부를 분석하여 신규 전투 궤적을 연산합니다.

------------------------------------------------------------------

시야 구석에 떠오른 푸른빛의 HUD를 진혁은 무심히 흘겨보았다. 시스템은 언제나 그렇듯 차가운 숫자로 그의 상태를 나열할 뿐이지만, 그 힘을 쥐고 휘두르는 것은 오롯이 그의 의지였다.

진혁이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V.I.P 박스의 난간이었다.

"바론."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였음에도 격투장 전체의 소음이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진혁의 흑안이 번뜩였다.

바론은 진땀을 흘리며 허리춤에 차고 있던 통신 장비를 찾으려 애썼다.

"이, 이 자식……! 당장 저놈을 죽여라! 콜로세움의 모든 경비대를 풀어! 저 미친놈의 가슴을 뚫어버리란 말이다!"

그 외침에 반응하듯, 격투장 구석의 거대한 철문들이 일제히 굉음을 내며 열렸다.

쿠구구구궁-!

지축이 울렸다. 단순히 인간의 발소리가 아니었다. 중장갑을 두른 기계 장치와 압축 유압 가동음이 섞인, 철저한 살인 마누버의 기동음이었다.

"오셨군."

윤아영이 화이트 섀도의 기지 단말기를 두드리며 진혁의 귀에 경고를 꽂아 넣었다.

"진혁 씨! 위쪽 센서에 잡혔어. 티타늄 그룹이 이 콜로세움에 숨겨둔 최종 안티-휴먼 유닛이야. C급 전투 코어를 듀얼로 박아 넣은 유압식 중장갑 챔피언, 코드네임 ‘거거철인(巨巨鐵人)’이야. 일반적인 마검기로는 장갑의 합금 밀도를 뚫기 힘들 거야!"

아영의 목소리에는 미열 어린 긴장감이 묻어났다. 하지만 진혁의 입꼬리는 냉소적으로 말려 올라갈 뿐이었다.

"밀도?"

진혁이 낮게 중얼거렸다.

"아무리 단단한 철판이라도, 하중이 집중되는 결합부는 존재한다."

콰아아앙!

철문 안쪽에서 거대한 형체가 튀어나왔다.

키가 삼 미터에 달하는 거구였다. 온몸이 티타늄 합금과 티타늄 카바이드 복합 장갑으로 중무장되어 있었고, 두 팔에는 각각 고주파 진동소환기와 압착 유압 실린더가 장착되어 있었다. 걸을 때마다 바닥의 강화 콘크리트가 바스러지며 깊은 움푹 패인 자국이 생겼다.

"키히히히! 실험체 07호라지? 회장님이 버린 쓰레기 새끼가 어디서 건방을 떨어!"

거거철인의 가슴 중앙에 박힌 듀얼 C급 코어가 푸른색 과열광을 내뿜으며 터빈을 돌렸다.

두둥- 두둥-!

심장 박동 소리가 격투장 전체를 진동시켰다.

거거철인이 거대한 양팔을 번쩍 치켜들었다. 압착 유압 실린더가 최대치로 압축되며 공기를 찢는 듯한 풍압이 발생했다. 그대로 내리꽂는다면 어지간한 장갑차도 종이장처럼 구겨질 만한 일격이었다.

"깔려 죽어라!"

콰아아궁-!

거거철인이 그대로 지면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거대한 그림자가 진혁의 머리 위를 완전히 덮쳤다.

사방에서 구경꾼들의 환호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죽었다!"

"저 덩치에 깔리면 원자 단위로 다져질걸!"

바로 그 순간.

진혁의 눈동자에 붉은빛의 마기가 서렸다.

[SYSTEM ALERT: 적 대상의 기계적 구조 분석 완료.]

[Target: '거거철인' (C급 듀얼 코어 유닛)]

[Weak Point Analysis: 우측 어깨 관절부 3번 실린더, 그리고 명치 하단 15센티미터 지점의 나노 회로 접합부.]

설화의 차가운 음성과 함께 진혁의 시야 속에서 거거철인의 온몸이 투명한 와이어프레임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단 한 점, 에너지가 역류하며 유압이 잠시 끊기는 사각지대가 붉은색 점멸등처럼 선명하게 드러났다.

진혁은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후우-.

폐부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짙은 마기를 입김처럼 토해냈다.

그것은 단순한 호흡이 아니었다. 마기융합 2단계에 도달한 자만이 구사할 수 있는, 내공의 극한 압축이었다.

탁.

발을 구르는 소리는 기괴할 정도로 가벼웠다.

마광신보(魔光神步).

빛의 궤적을 비틀어 공간의 잔상을 만들어내는 극한의 보법이 진혁의 하체를 감쌌다.

슈우욱-!

거거철인이 내리꽂은 거대한 철퇴 주먹이 바닥을 강타하며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콘크리트 조각들이 탄환처럼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하지만 그 주먹이 닿은 곳에 진혁의 육체는 없었다. 남아 있는 것은 오직 공기를 태우며 일그러진 잔상뿐이었다.

"어……?"

거거철인의 멍청한 목소리가 울릴 새도 없었다.

이미 그의 사각, 정확히는 우측 어깨의 유압 실린더 측면에 진혁의 형체가 나타났다.

진혁의 오른손이 검은 마기를 휘감은 채 날카로운 손날 모양으로 변형되어 있었다. 나노머신이 세포와 결합해 강철보다 단단한 경도를 띠는 [천마인(天魔印)]의 형태였다.

"네 녀석의 출력은 허상이다."

진혁의 입에서 차가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푸드득-!

마기를 두른 손날이 거거철인의 어깨 장갑을 그대로 관통했다. 티타늄 합금 장갑이 종이장처럼 찢겨 나가며 고압의 유압유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크아아아악?!"

거거철인이 비명을 지르며 반대쪽 주먹을 휘둘렀지만, 진혁은 이미 그 공격의 궤적을 완벽하게 예측하고 있었다. 시스템의 분석 따위가 아니었다. 1,000년 전 마교의 지존이 완성했던 무도의 본질, 적의 살기와 호흡의 결을 읽어내는 경지.

그것이 바로 강진혁이 스스로 깨달아가는 '무공'이었다.

진혁의 몸이 미끄러지듯 회전하며 거거철인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왼손을 뻗었다.

손바닥이 거거철인의 명치, 정확히는 듀얼 생체 코어의 메인 제어부가 박혀 있는 중앙 회로를 가격했다.

흡원천공(吸元天功).

콰아아앙-!

"크아아아아아——!"

거거철인의 비명이 격투장의 천장을 뚫을 듯 울려 퍼졌다.

진혁의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온 거대한 흡입력이 거거철인의 듀얼 C급 코어를 강제로 움켜쥐었다. 기계 장치와 생체 조직이 융합된 코어의 출력이 역류하기 시작했다. 푸른색으로 빛나던 코어의 안광이 붉은색으로 물들며 파열음을 냈다.

지직, 지지직- 파본!

"말도 안 돼…… 내 코어가…… 내 안의 동력이……!"

거거철인의 거대한 육체가 순식간에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했다. 근육이 수축하고, 철갑 속에 숨겨져 있던 생체 조직이 회색빛 재처럼 바스러졌다.

[SYSTEM INFO]

[적 대상의 생체 코어 에너지를 강탈합니다.]

[C급 듀얼 코어 출력 흡수 완료.]

[현재 생체 코어 출력: 2,100 MW (↑ 450 MW 상승)]

[나노머신 동기화율: 75.1%]

온몸을 타고 흐르는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불어났다. 단전의 융합로가 터질 듯 뜨거워졌지만, 진혁의 표정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쾅-.

진혁이 손을 거두자마자, 삼 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거거철인은 텅 빈 껍데기처럼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단 한 번의 교전, 일격필살(一擊必殺).

격투장은 완전히 얼어붙었다.

관중석에서 들리던 환호와 야유는 완전히 증발해 버렸고, 남은 것은 거친 숨소리와 기계 장치가 타들어 가는 매캐한 냄새뿐이었다.

V.I.P 박스의 난간을 붙잡고 있던 바론의 손이 사정없이 떨렸다.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며 간신히 소리를 쥐어짰다.

"저…… 저 괴물 새끼……! 당장, 당장 방위 시스템을 전부 가동해! 티타늄 본사에 연락해! 특수전 부대를 불러오란 말이다!"

바론이 공포에 질려 뒤로 물러서며 통신기를 집어 들려는 순간이었다.

슈우웅- 툭.

진혁의 손끝에서 흩어지던 마기가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V.I.P 박스의 부서진 유리창 너머, 바론의 얼굴을 정확히 관통했다.

"불를 필요 없다."

진혁이 피 묻은 검을 바닥에 질질 끌며 걸음을 옮겼다. 철판과 검날이 마찰하며 튀기는 스파크가 어두운 지하 격투장의 유일한 빛이었다.

"내가 직접 찾아갈 테니까."

진혁의 발걸음이 V.I.P 박스를 향해 한 걸음, 다시 한 걸음 다가갈 때마다 바론의 다리가 풀렸다.

그의 등 뒤로, 윤아영의 목소리가 단말기를 통해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진혁 씨. 티타늄 그룹 제3연구소의 하부 네트워크가 반응했어. 이 지하 격투장 아래에…… 진짜 '물건'이 숨겨져 있어."

진혁의 흑안이 더욱 깊고 어둡게 가라앉았다.

"물건이라."

진혁의 입술이 미미하게 호선을 그렸다.

바론은 더 이상 도망칠 곳도 찾지 못한 채 난간에 주저앉아 벌벌 떨고 있었다.

"살려…… 살려주라! 원하는 건 다 줄 수 있어! 돈이든, 코어든, 정보든……!"

구차한 구걸의 소리는 진혁의 귀에 닿지 않았다. 이미 그의 시선은 바론의 너머, V.I.P 박스 안쪽의 강화된 보안문과 그 아래로 끝없이 이어지는 중계 서버의 미세한 진동을 향해 있었다.

툭, 툭-.

검신을 타고 흘러내린 핏방울이 바닥의 강화 플라스틱에 부딪히며 기분 나쁜 소리를 냈다.

"네가 가진 건 내 흥미를 끌지 못한다."

차갑게 내뱉어진 음성과 함께 진혁의 손이 가볍게 휘둘러졌다.

파앗-!

압축된 마기가 검강(劍剛)의 형태로 뻗어나가며 V.I.P 박스의 방탄유리를 종이장처럼 두 쪽으로 갈라놓았다.

챙그랑-!

유리 조각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소리와 함께, 바론의 목덜미를 스친 검풍이 뒤쪽의 철제 벽면에 깊은 흠집을 남겼다. 바론은 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눈을 흰자위만 보인 채 기절하듯 고꾸라졌다.

"진혁 씨, 바깥 상황이 심상치 않아."

그때, 윤아영의 목소리가 이어폰을 타고 급박하게 파고들었다.

"콜로세움의 보안등급이 자동으로 상향 조정됐어. 티타늄 본사 메인 프레임에서 직접 커맨드가 떨어졌어. 이 지하 격투장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감금 캡슐로 변하고 있어. 탈출구 전부가 차단됐어."

진혁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격투장 중앙의 바론을 지나쳐 V.I.P 박스 내부로 진입했다.

화려하게 꾸며진 집기들 사이로, 바론이 숨겨두었던 제3연구소 연결 단말기가 푸른색 비상등을 깜빡이며 작동하고 있었다.

"탈출할 생각은 없다."

진혁이 낮게 읊조렸다.

"애초에 나간다는 선택지는 없었어."

"하…… 이 광기 정말 못 말린다니까."

아영이 한숨을 쉬면서도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알았어. 방화벽은 내가 묶어둘 테니까, 그 안의 데이터를 뽑든 부수든 마음대로 해. 대신 경고하는데…… 다음 상대는 지금까지의 잡몹들완 결이 달라."

지직- 지지지직-.

단말기의 화면이 순식간에 붉은색 경고창으로 물들었다.

[SYSTEM ALERT: 침입자 감지.]

[티타늄 그룹 특수전 후사대 선발대, 그리고……]

[코드네임 ‘바이퍼(Viper)’의 접근을 확인.]

과연 아영의 경고대로였다.

쾅-! 콰아앙-!

V.I.P 박스 아래쪽, 지하 격투장의 관중석을 떠받치던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들이 일제히 폭발하며 부서져 내렸다. 자욱한 먼지와 함께 사방에서 형광등이 터져 나가며 콜로세움 내부는 순식간에 암흑과 붉은 비상등의 영역으로 뒤바뀌었다.

그 어둠 속에서, 척추를 오싹하게 만드는 기이한 고주파음이 울려 퍼졌다.

위이이이이—— 징!

공기를 매섭게 가르는 파열음.

진혁은 눈을 가늘게 뜨며 시선을 소리가 들려오는 어둠의 깊한 곳으로 던졌다.

시야 구석의 HUD가 미세하게 떨리며 새로운 위협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SYSTEM WARNING: 고주파 플라즈마 에너지 반응 감지.]

[주의: 2세대 튜닝 코어 탑재 및 특수 군사 나노와이어 장착 개체.]

어둠을 찢고 나타난 것은, 전신에 검은색 강화 잠수복 형태의 전술 슈트를 걸치고 손에 길고 유연한 채찍 형태의 무기를 쥔 인물이었다.

채찍의 끝부분에서는 모든 것을 녹여버릴 듯한 초고주파 플라즈마가 타오르며 허공에 보랏빛 잔상을 그리고 있었다.

"어머, 귀여운 벌레 한 마리가 온통 소란을 피워놨네."

나직하면서도 서늘한 여성의 목소리가 격투장의 잔해 속에 울려 퍼졌다.

바이퍼였다.

다음 화 바로보기 ›
이 작품, 여기까지 어떠셨나요? ★ 별점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