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지하 격투장과 광마(狂魔)의 소문
어둠이 지배하는 신서울의 지하, 그중에서도 가장 밑바닥에 위치한 7구역의 대형 수력 발전소 잔해는 이미 인간의 유적이 아니었다.
고철과 폐기된 유압 파이프, 그리고 자본가들이 버린 유독성 폐수가 엉겨 붙어 악취를 뿜어내는 곳. 그 심장부에 티타늄 그룹의 비자금 창구이자 신마교의 본거지인 지하 격투장, 이른바 ‘콜로세움’이 도사리고 있었다.
콰아아앙!
귀를 찢는 듯한 폭음과 함께 거대한 철문이 안쪽으로 찌그러지며 무너져 내렸다.
시뻘건 스파크가 사방으로 튀는 폐허 속에서, 칠흑 같은 검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걸어 나오는 남자가 있었다.
강진혁.
그의 목과 손목을 따라 흐르던 은빛 회로 선은 이제 붉은 마기와 엉겨 붙어 기괴한 생명체처럼 맥동하고 있었다.
바닥을 디딜 때마다 차가운 살기가 공기를 얼어붙게 만들었고, 그의 등 뒤로는 방금 전까지 하층의 치안을 담당하던 신마교의 경비병들과 개조인간들의 시체가 쓰러져 있었다.
"허……."
진혁의 뒤를 바짝 쫓으며 작은 단말기를 두드리던 윤아영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의 분홍빛 숏컷 머리가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지만, 눈동자만큼은 흥분과 경외로 번뜩이고 있었다.
"진혁 씨, 데이터 분석 완료했어. 이 아래는 일반적인 슬럼가 마피아의 수준이 아니야. 티타늄 그룹 제3연구소의 하부 네트워크와 직접 연결되어 있어. 그리고……."
윤아영이 홀로그램 화면을 진혁의 시야 쪽으로 밀어 넣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여기에 수감된 녀석들 중 일부는, 과거 천마 프로토콜 초기형 실험에서 도망쳤거나 버려진 실패작들이야. 그중 가장 위험한 놈의 코드네임이 바로 ‘광마(狂魔)’야."
광마.
진혁의 걸음이 순간 멈췄다.
[SYSTEM INFO: 천마 프로토콜 (HEAVENLY DEMON PROTOCOL) v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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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용자: 강진혁 (실험체 07호)
■ 경지: 2단계 [마기융합 (魔氣融合)]
■ 생체 코어 출력: 1,350 MW (상승 중)
■ 경고: 전방 500미터 이내 고밀도 마기 반응 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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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 구석에 떠오른 푸른빛의 HUD 위로 경고 문구가 깜빡였다. 시스템은 단순한 기계적 반응을 넘어, 과거 자신의 동료들이나 혹은 자신과 같은 처지였던 실험체들의 파편이 이 거대한 지하 격투장 구석에 버려져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광마인가."
진혁의 입술이 낮게 호선을 그렸다. 그것은 웃음이 아니었다. 살육과 고통을 유희로 소비하는 자들에 대한 차가운 경멸이자, 원초적인 분노의 발현이었다.
"거기엔 관객들도 있겠군."
"지하 격투장이야. 상층부의 특권층들이 가상현실 중계로 돈을 걸고, 하층민들은 이 생체 개조 괴물들의 싸움을 보며 환호하지. 인간의 목숨을 도박의 칩으로 쓰는 쓰레기들의 축제야."
아영의 목소리에 치를 떠는 듯한 분노가 묻어났다.
티타늄 그룹과 연결된 자본가들은 지상의 마천루에서 안전하게 술잔을 기울이며, 이 더러운 지하에서 벌어지는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을 관전용 엔터테인먼트로 소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좋군."
진혁이 피투성이가 된 검을 바닥에 툭툭 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숨어 있는 간부들을 밖으로 끌어내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들이 가장 아끼는 무대와 돈줄을 박살 내는 거다."
지하 수력 발전소의 거대한 터빈실을 개조하여 만든 콜로세움의 내부는 환호성과 악취로 가득 차 있었다.
쾅! 쾅! 쾅!
"죽여라! 찢어버려!"
"저 새끼 코어 출력이 3천이야! 이번 판은 내가 전 재산을 걸었어!"
수백 명의 관중이 철창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원형 링을 향해 고함을 질러댔다. 상층부에서 원격 접속한 V.I.P들의 아바타 홀로그램들이 공중에 떠서 시시각각 배당금을 확인하고 있었고, 링 위에서는 전신을 티타늄 합금으로 개조한 거구의 투사가 상대의 사지를 뜯어내는 잔혹한 처형식이 벌어지고 있었다.
바로 그때.
쾅—————!
콜로세움의 메인 출입구를 가로막고 있던 두께 30센티미터의 방폭 철문이 안쪽으로 박살 나며 날아갔다.
"뭐야?!"
"지진이야?"
수백 명의 시선이 일제히 먼지가 폭풍처럼 피어오르는 입구 쪽으로 쏠렸다.
함성과 환호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그 자리에 기괴할 정도로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먼지 속에서 걸어 나오는 자는 단 한 사람이었다.
칠흑 같은 검은 머리, 옅은 은빛 회로가 흐르는 목, 그리고 손에 든 피투성이의 검.
진혁은 주변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차가운 눈빛으로 콜로세움의 전경을 훑어보았다.
"저기, 저기 경비병들 안 보여?!"
"침입자다! 당장 끌어내려!"
관중석 구석에서 신마교의 간부들을 보좌하던 무장 교관들이 황급히 소리쳤다. 그들의 명령에 따라, 링 주변을 지키고 있던 D급 및 C급 전투 코어를 장착한 사병들 수십 명이 일제히 진혁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어디서 기어들어온 벌레 새끼가……!"
사병 하나의 외침과 함께 고주파 진동탄과 플라즈마 실탄이 빗발치듯 진혁을 향해 날아들었다.
피할 생각조차 없었다.
진혁의 눈동자가 암전(暗電)처럼 번뜩였다.
"마기 실드(魔氣 Shield)."
콰아아아아앙!
진혁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마기가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들며 탄환들을 공중에서 산산조각 내었다. 플라즈마의 고열이 마기와 부딪치며 사방으로 화려한 폭죽 같은 스파크를 흩뿌렸다.
"크윽?! 저게 뭐야? 에너지 방벽이라고?!"
"일반적인 코어 출력으로는 저런 마기를 뿜을 수 없어! 대체 뭐야 저 괴물은!"
당황한 사병들이 재지전을 시도하려 했지만, 진혁의 보법은 이미 그들의 시야를 아득히 뛰어넘어 있었다.
파닷-!
[SYSTEM: '마광신보(魔光神步)' 운기 가속. 궤적 최적화 완료.]
빛의 잔상조차 남지 않았다.
진혁의 몸이 허공을 가로지르며 최전방에 있던 사병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퍼벅!
"커학……!"
사병의 가슴 부근에 장착된 C급 생체 코어가 진혁의 손바닥에 그대로 붙들렸다.
흡원천공(吸元天功).
"크아아아아아악——!"
사병의 비명과 함께, 그의 단전에 저장되어 있던 에너지가 붉은빛의 광선태(光線帶)를 이루며 진혁의 손바닥을 타고 흡수되기 시작했다.
[SYSTEM INFO: 에너지 흡수 확인.]
[생체 코어 출력: 1,350 MW ➔ 1,620 MW 상승.]
[나노머신 동기화율: 71.5% 돌파.]
단 한 번의 포옹으로 적의 생명력과 코어 출력을 통째로 강탈한 진혁은, 힘이 빠져 쓰러지는 시체를 발로 차버리며 콜로세움의 한가운데, 거대한 철창 링의 정중앙으로 걸어 들어갔다.
쿵.
그가 링의 철제 바닥을 밟을 때마다 지면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관중석은 완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상층부에서 홀로그램으로 관전하던 V.I.P들의 아바타들조차 데이터 오류가 난 것처럼 일시적으로 멈춰 섰다.
"누구냐, 넌."
관중석 상단 VIP 박스에서, 신마교의 실세 중 하나이자 이 지하 격투장의 총괄 책임자인 간부 '바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몸에는 3세대 개조 사이보그 의수가 번쩍이고 있었고, 얼굴의 절반은 기계 장치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층의 쓰레기들이 어디서 개수작이냐! 당장 저 녀석을 갈아버려라! 챔피언을 내보내!"
바론의 고함에, 격투장 지하 감옥과 연결된 거대한 철문이 양옆으로 덜컹이며 열렸다.
쿵! 쿵! 쿵!
지면을 뒤흔드는 지진 같은 발소리.
그곳에서 걸어 나온 것은 인간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거대한 덩치를 가진 괴물이었다.
두꺼운 티타늄 장갑판을 몇 겹이나 덧대어 만든 전신 중장갑, 그리고 머리에는 뇌 개조로 인해 시두(視頭) 회로가 사방으로 노출된 채 번뜩이는 눈을 한 거구의 사나이.
천마 프로토콜 03호 실패작, 그리고 지하 격투장의 절대강자.
‘광마(狂魔).’
그의 입에서는 통제 불능의 침과 함께 붉은 마기가 폭풍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아…… 마…… 킬……!"
광마가 미친 듯이 포효하며 거대한 유압식 해머를 진혁을 향해 내리쳤다. 공기마저 압축되는 듯한 엄청난 풍압이 콜로세움 전체를 뒤흔들었다.
관중들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하지만 진혁은 그 거대한 해머가 눈앞까지 다가오는 순간에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입꼬리가 냉혹하게 올라갔다.
"마침 잘 됐군."
진혁은 검을 비스듬히 치켜들며, 마기융합 2단계의 출력을 단전의 심장부까지 끌어올렸다.
"네 안에서 썩어가는 그 고대 마공의 파편부터 전부 회수해 주마."
지하 격투장의 열기가 최고조에 달한 순간, 두 괴물의 격돌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앙————!
광마가 휘두른 유압식 해머가 바닥을 강타하자, 콜로세움의 강화 콘크리트 바닥이 사방으로 거미줄처럼 갈라지며 파편이 비처럼 쏟아졌다.
"크하하하! 죽어라! 부숴버려!"
"저 덩치에 맞으면 형체도 안 남겠는데!"
관중석에서 터져 나오는 환호성은 이미 광기의 영역에 접어들어 있었다. V.I.P 박스에 앉아 있던 바론 역시 흉측한 의수를 까딱이며 흥분한 표정으로 링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그 폭발적인 충격의 진원지에서, 강진혁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서 있었다.
콰직-!
해머의 거대한 헤드가 진혁이 서 있던 자리를 직격했음에도, 그곳에 진혁의 형체는 남아 있지 않았다.
잔상.
광마의 공격이 닿기 직전, 진혁은 이미 [마광신보]의 극한 궤적을 이용해 적의 사각으로 파고든 뒤였다.
"뭐지?!"
광마의 붉은 눈동자가 경직되며 거구의 몸이 훽 바깥쪽으로 돌아갔다. 뇌 개조로 인해 감각 처리 속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해 있었음에도, 진혁의 움직임은 물리적 반응 한계를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진혁의 검신에 이글거리는 붉은 마기가 뱀의 혀처럼 날카롭게 뻗어 나갔다.
"[마검기(魔劍氣)]."
푸스스슥!
광마의 등 뒤를 감싸고 있던 두꺼운 티타늄 장갑판이 종이장처럼 무력하게 찢겨 나갔다.
합금의 접합부, 즉 현대 군사 공학적으로 가장 취약한 응력 집중 지점을 AI 설화의 연산 없이도 진혁의 직관과 마기가 완벽하게 간파해 낸 결과였다.
"크아아아아윽……!"
장갑이 뜯겨 나가며 노출된 등 부위의 생체 코어에서 파란색 스파크와 함께 붉은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광마가 고통에 겨워 미친 듯이 몸부림치며 팔을 휘둘렀지만, 진혁은 이미 한 발 앞서 그의 품 안으로 깊숙이 파고든 뒤였다.
진혁의 손바닥이 광마의 맨살이 드러난 가슴팍, 정확히 생체 코어가 박혀 있는 심장 부근을 꿰뚫듯 짓눌렀다.
"네가 버려진 실험체든, 실패작이든 상관없다."
진혁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광마의 귓가에 박혔다.
"어차피 버려질 목숨이었다면, 내 힘의 밑거름이 되는 게 그나마 인간답게 쓰이는 길이다."
[SYSTEM INFO: '흡원천공(吸元天功)' 강제 기동.]
[대상으로부터 생체 코어 에너지 및 불순 마기 흡수 개시.]
"크아아아아아아아——!"
광마의 입에서 새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의 단전과 혈관 속에 엉겨 붙어 있던 10년 치의 고대 마공 잔여물과 C급 생체 코어의 폭발적인 에너지가, 마치 거대한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는 빗물처럼 진혁의 손바닥을 타고 역류하기 시작했다.
광마의 거대했던 육체가 순식간에 수분이 빠져나간 미라처럼 쪼그라들었다.
방금 전까지 콜로세움 전체를 압도하던 광포한 마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남은 것은 텅 빈 육신뿐이었다.
쿵.
광마의 거구가 링 바닥에 무력하게 쓰러졌다.
[SYSTEM INFO: 에너지 흡수 완료.]
[생체 코어 출력: 1,620 MW ➔ 2,150 MW 돌파.]
[나노머신 동기화율: 89.4% 도달.]
[Warning: 체내 마기 밀도 급상승. 혈관 및 신경계 오버클럭 경고.]
단숨에 2,000 MW를 돌파한 출력이 진혁의 전신을 태울 듯이 포효했다.
피부 아래로 흐르던 은빛 회로 선은 이제 완전한 혈색(血色)으로 물들어 사방으로 섬뜩한 압박감을 뿜어냈다.
단 한 명의 일격.
지하 격투장의 절대강자이자 불패의 챔피언이었던 광마가 단 몇 초 만에 살가죽만 남은 폐기물로 전락하는 광경을 본 콜로세움은 완벽한 진공 상태에 빠진 듯 조용해졌다.
환호성은 자취를 감추고, 관중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공포에 질린 신음뿐이었다.
"말도 안 돼…… 저, 저 괴물을 한 방에……?"
VIP 박스에 있던 간부 바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의 의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목격했는지 이해조차 할 수 없었다. 그것은 현대 과학의 기술력도, 티타늄 그룹이 연구하던 군사 강화 시술도 아니었다.
그것은 생명을 착취하고 지배하는, 원시적이면서도 절대적인 '마도(魔道)'의 현현이었다.
진혁은 쓰러진 광마의 시체에서 시선을 거두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바닥에 질질 끌며 관중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흑안이 V.I.P 박스를 향했다.
서슬 퍼런 살기가 허공을 가로질러 바론의 심장을 직접 짓누르는 듯했다.
"다음은 누구 차례지?"
진혁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는, 하층의 어둠 속에서 자본과 권력을 탐하는 모든 자들에게 내리는 사형 선고와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