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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10화목차

제10화 지휘관 바이퍼

지하 격투장 '콜로세움'의 V.I.P 박스.

천장이 무너져 내린 부서진 난간 위로, 짙은 핏빛의 마기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스윽-.

강진혁의 검끝에서 툭, 툭, 검붉은 액체와 잔해의 파편이 떨어졌다.

그는 방금 전까지 눈을 부라리며 자신을 가로막던 광마의 잔해를 등진 채, 시선을 정면으로 향했다.

치이익-!

어둠이 지배하던 V.I.P 박스의 안쪽, 가장 깊은 그림자 속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살과 금속이 마찰하는 소리, 그리고 공기를 날카롭게 가르는 고주파의 파열음.

"흐으음……."

나지막한, 그러나 음산하게 찢어지는 목소리였다.

그림자 속에서 걸어 나오는 자의 실루엣은 일반적인 인간의 그것과 달랐다.

길게 늘어진 사지, 인공 근육으로 부풀려진 상체, 그리고 목덜미를 따라 흐르는 푸른빛의 네온 회로.

티타늄 그룹 특수전 후사대 선발대이자, 지하 격투장의 총책임자.

코드네임 ‘바이퍼(Viper)’.

그가 어둠을 찢고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괴물 새끼 하나 치워놨더니, 또 다른 괴물이 굴러들어왔군. 그래, 네놈이 하층을 뒤집어엎었다는 그 실험체 07호인가?"

바이퍼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비틀렸다.

그의 가슴팍, 단전 부근에 이식된 2세대 튜닝 코어가 맹렬한 회전음을 내며 파란색의 과부하 아크를 뿜어냈다.

우웅-! 우웅-!

코어의 출력이 상승함에 따라 바이퍼의 눈동자가 기계적인 붉은빛으로 점멸했다.

그의 손에 쥐여진 무기는 평범한 검이나 총이 아니었다.

손목에 장착된 척추형 하드포인트에서 흘러나온 고에너지 플라스틱 합금이, 공기 중의 습기를 만나며 치명적인 보라색 광채를 뿜어내는 채찍의 형태로 변형되고 있었다.

파지지직-!

초고주파 플라즈마 채찍.

주변의 공기가 고열에 타들어가며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단 한 번의 스치기만 해도 인간의 육체는 물론, 웬만한 방어구까지 원자 단위로 분해해 버리는 살인적인 무기였다.

"내 펫이었던 광마를 쓰레기 치우듯 치워버린 건 흥미롭지만……."

바이퍼가 채찍을 가볍게 허공으로 휘휘 저었다.

공기가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V.I.P 박스의 단단한 강화유리가 두부처럼 슥- 갈라져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내 플라즈마 바이퍼 윕(Viper Whip) 앞에서도 그 오만한 눈빛을 유지할 수 있을까, 진혁 군?"

말이 끝나는 순간.

콰아아앙-!

바닥이 박살 나며 바이퍼의 형상이 지우개로 지워진 것처럼 시야에서 사라졌다.

지독할 정도로 빠른 가속.

2세대 튜닝 코어가 뿜어내는 출력이 순간적으로 음속의 문턱을 두드렸다.

슈우우우욱-!

눈에 보이지 않는 궤적.

공기를 베고 나간 잔상만이 허공에 보라색 띠를 남겼다.

강진혁의 홍안(紅眼)이 미세하게 경직되었다.

'빠르다. 1세대 코어 따위와는 출력의 질이 달라.'

바이퍼는 단순한 짐승이 아니었다.

현대 군사 기술의 정점에 선 고출력 코어와, 인간의 신경계를 한계까지 끌어올린 2세대 나노머신의 결합체.

그것이 바로 티타늄 그룹이 기른 사냥개였다.

챙-!

진혁이 급하게 검을 들어 가로막았지만, 채찍의 궤적은 직선이 아니었다.

바이퍼의 손목 스냅 한 번에, 플라스마 채찍은 살아 움직이는 독사처럼 꺾이며 진혁의 검날을 타고 흘러내렸다.

찌르르륵-!

"크읏……!"

진혁의 어깨를 감싸고 있던 나노 장갑 표면이 순식간에 하얗게 기화했다.

고주파의 진동 에너지가 장갑의 방어막을 짓이기며 피부 속의 근육과 혈관을 파고들었다.

단 한 번의 스침만으로도 살이 타들어 가는 극심한 고통이 전신을 엄습했다.

"하하하! 어때? 티타늄 그룹의 기술이 선사하는 이 작열하는 맛이!"

바이퍼가 허공에서 몸을 비틀며 채찍을 다시 거두어들렸다.

그의 입가에 잔인한 조소가 걸려 있었다.

채찍이 지나간 자리마다 허공이 지글지글 끓어올랐다.

파지직, 파직-

진혁의 어깨 부근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나노머신들이 파괴된 세포를 복구하기 위해 비상 회복 신호를 보내왔지만, 플라즈마의 잔여 고열 때문에 재생 속도가 턱없이 느렸다.

[SYSTEM WAR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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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고: 사용자 우측 견갑골 구역 나노 장갑 내구도 42% 손실.

■ 고주파 플라즈마 에너지 감지. 세포 조직 손상률 18%.

■ 대응 프로토콜 실행 중: 마기 실드의 밀도를 재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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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 구멍(HUD)에 붉은색 경고등이 요란하게 깜빡였다.

윤아영이 멀리서 숨을 죽인 채 그 광경을 지켜보며 이를 악물었다.

"진혁 씨! 저 채찍의 진동 주파수가 진혁 씨의 나노 마갑 공진점과 일치해요! 정면으로 맞받아치면 장갑이 채로 녹아내려요!"

윤아영의 다급한 목소리가 통신망을 통해 진혁의 고막을 때렸다.

하지만 진혁의 표정은 놀라울 정도로 차갑고 고요했다.

마치 타들어 가는 어깨의 고통 따위는 다른 사람의 일인 것처럼, 그의 흑안은 오직 바이퍼의 움직임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공진점……."

진혁의 입술이 낮게 읊조렸다.

그의 단전에서 이글거리던 붉은 마기가 심장의 박동에 맞춰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생체 코어 출력: 2,100 MW.

여기에 방금 전 광마와 바론으로부터 흡수한 미세 에너지가 가세하며 출력이 벼락처럼 치솟았다.

[SYSTEM INFO: 천마 프로토콜 (HEAVENLY DEMON PROTOCOL) v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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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지: 2단계 [마기융합 (魔氣融合)]

■ 생체 코어 출력: 2,350 MW (상승 중)

■ 적(敵) 무기 분석률: 67% -> 84% ->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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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오르는 꼴이 가증스럽군. 죽어라!"

바이퍼가 전신에 파란 불꽃을 휘감으며 다시 한번 돌격해 왔다.

이번에는 단 한 개의 채찍이 아니었다.

양손의 하드포인트에서 뿜어져 나온 두 줄기의 플라즈마 채찍이 거대한 X자 궤적을 그리며 진혁의 목과 심장을 동시에 노리고 날아왔다.

피할 곳은 없다.

공간을 완전히 봉쇄한 채찍의 폭풍.

이대로 맞으면 온몸이 조각나 흩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 순간, 진혁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스으읍…….

진혁이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검붉은 마기가 거짓말처럼 싹 사라지며, 온몸의 기혈이 단 한 점으로 응축되었다.

마치 폭풍 전의 깊은 해저처럼, 찰나의 정적이 콜로세움을 지배했다.

바이퍼의 얼굴에 일그러진 미소가 떠올랐다.

방어 자세를 버린 것인가? 포기한 것인가?

"죽어라, 실험체 찌꺼기!"

채찍의 끝자락이 진혁의 코앞까지 도달한 그 찰나.

진혁의 입술이 열렸다.

"분석 끝."

탁-.

진혁의 검이 움직였다.

정교하고, 군더더기 없으며, 철저하게 계산된 궤적.

그것은 화려한 무공의 형세가 아니었다.

적의 에너지 파동을 파악하고, 그 역상(逆相)의 주파수를 마기에 담아 정확히 급소를 타격하는 행위.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V.I.P 박스의 잔해가 사방으로 튀었다.

플라즈마의 고열과 붉은 마기가 충돌하며 만들어낸 충격파가 콜로세움의 천장을 완전히 박살 냈다.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전장 속.

바이퍼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크게 떠져 있었다.

그의 양손에 들려 있던 초고주파 플라즈마 채찍이, 거짓말처럼 허공에서 산산조각 나며 흩어지고 있었다.

파스스슥-

"크…… 윽? 내, 내 무기가…… 어째서?!

바이퍼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서려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진혁의 그림자가 그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진혁의 손바닥이 바이퍼의 단전, 2세대 튜닝 코어가 박힌 가슴팍에 정확히 박혔다.

퍼억-!

"크아아악!"

"시끄럽다."

진혁의 입에서 차가운 단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그의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온 검붉은 마기가 바이퍼의 가슴을 관통하며, 2세대 생체 코어의 메인 회로를 움켜쥐었다.

[흡원천공(吸元天功) - 가동.]

우르릉- 콰구구구궁-

바이퍼의 몸이 경련하며 비명을 질렀다.

그가 평생에 걸쳐 티타늄 그룹으로부터 하사받은 막대한 코어 에너지와 2세대 나노머신의 데이터가, 역방향으로 흐르는 흡원천공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진혁의 단전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커헉……! 아, 안 돼…… 내, 내 코어가……!"

"네놈들이 실험체들의 피와 목숨으로 채워 넣은 힘이다."

진혁의 흑안이 살기를 띠며 빛났다.

바이퍼의 눈동자에 점멸하던 붉은빛이 점점 희미해져 갔다.

그의 몸에서 빠져나간 에너지는 진혁의 혈관을 타고 흘러, 단전의 출력을 한계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SYSTEM 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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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체 코어 출력: 2,350 MW -> 3,100 MW 돌파!

■ 마기융합 2단계 심화 완료.

■ [만법귀마(萬法歸魔)]의 기초 궤적이 몸에 각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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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퍼의 육신이 껍데기만 남은 인형처럼 힘없이 늘어졌다.

진혁은 마지막 남은 기력을 짜내어 바닥에 쓰러져가는 바이퍼의 멱살을 잡았다.

"끄…… 윽……."

바이퍼의 입에서 검은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그는 죽어가면서도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진혁을 바라보았다.

"크하…… 하하…… 착각하지 마라, 쥐새끼……."

"……."

"네놈이 여기서 우리를 다 죽여도…… 소용없어. 이미……."

바이퍼의 시선이 콜로세움의 무너진 천장 너머, 신서울의 밤하늘을 향했다.

그곳에는 티타늄 그룹의 상징인 거대한 마천루들이 차가운 철탑처럼 불을 밝히고 있었다.

"이미…… 블랙 가드가 움직였다. 그 괴물들이 네놈을 찾기 위해…… 이 하층으로 내려오는 중이다……."

말을 마치며, 바이퍼의 고개가 툭 떨어졌다.

2세대 튜닝 코어의 불빛이 완전히 꺼졌다.

진혁은 죽은 바이퍼의 시체를 바닥에 내던졌다.

그의 등 뒤로, 흡원천공으로 흡수한 막대한 에너지가 온몸의 혈관을 타고 뜨겁게 요동쳤다.

슈우우-

진혁의 몸 주변으로 짙은 붉은빛의 마기가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그는 서서히 고개를 들어, 바이퍼가 바라보았던 상층부의 밤하늘을 응시했다.

블랙 가드.

티타늄 그룹의 절대적인 무력 집단이자, 인간의 형상을 버린 살인병기들의 총본산.

진혁의 입꼬리가 냉혹하게 올라갔다.

"기다릴 필요 없다."

피투성이가 된 검을 다시 고쳐 쥐며, 진혁이 발걸음을 옮겼다.

"먼저 찾아가 줄 테니까."

지하 격투장의 어둠을 뚫고, 새로운 사냥을 향한 발걸음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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