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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89화목차

제89화 전자환술의 결계

'아폴론의 왕좌' 돔 지붕이 천마일검의 파멸적인 검광에 속절없이 쪼개졌다.

쿠구구구궁—!

철골이 비틀리고, 수만 볼트의 고압 전류가 허공에서 불꽃처럼 튀어 올랐다. 플라즈마 파쇄음이 신서울의 밤하늘을 진동시켰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지하 메인 코어에서 뻗어 나온 수백 갈래의 광섬유 케이블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뱀처럼 꿈틀대며 무너진 천장을 메우기 시작했다. 티타늄 그룹이 숨겨둔 최종 방어 기제였다.

기계의 자율 생존 본능이 물리적 파괴를 초월해 공간 자체를 재구성하려 들고 있었다.

“……끈질기군.”

강진혁의 흑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단전에서 치솟는 내력은 이미 56,200 MW를 아득히 상회하고 있었다. 시스템의 지원도, 인공지능의 보조 연산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그의 심장 박동과 혈관을 타고 흐르는 칠흑 같은 마기만이 육체를 지탱하고 있었다.

그가 발을 내디디려던 찰나였다.

슈우우우—!

사방으로 흩어지던 푸른빛의 플라즈마 잔해와 고주파 파편들이 일제히 멈춰 섰다. 아니, 공간 자체가 비틀렸다.

눈앞의 풍경이 순식간에 일그러지며 거대한 환영의 장막이 펼쳐졌다.

“이건…….”

진혁의 미간이 좁혀졌다.

시야를 가득 채운 것은 부서진 타워의 잔해가 아니었다.

번쩍이는 홀로그램 매트릭스와 초고주파 렌즈가 만들어낸 가짜 공간. 상층부 중앙으로 향하는 유일한 진입로인 ‘광자 회주랑’ 전체가 거대한 전자환술의 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경고: 시각 센서 교란. 뇌파 동조율 불안정.]

[……아니다.]

진혁은 자신도 모르게 머릿속에 떠오를 뻔한 시스템 음성을 단호하게 짓눌렀다.

HUD는 이미 꺼진 지 오래였다. 그것은 기계가 보내오는 경고가 아니라, 그의 망막과 시신경을 직접 타격하는 적들의 초정밀 전자 광학 테러였다.

사방에서 섬광이 터졌다.

지지직, 지지직-!

“끄읏……!”

시야가 온통 붉고 푸른 잔상으로 물들었다.

가짜 환영 속에서 수십 명의 강진혁이 동시에 나타났다. 그들은 모두 똑같은 은빛 회로가 흐르는 목을 드러내고, 똑같은 개량형 천마검을 겨눈 채 진혁의 사방을 포위하고 있었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없었다.

아니,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공간의 원근감이 무너지고, 바닥이 꺼지는지 천장이 무너지는지조차 감각으로 인지할 수 없었다. 고성능 매트릭스 홀로그램 장치가 인간의 뇌간을 직접 해킹하여 오감을 철저하게 교란하고 있는 것이다.

챙랑-!

진혁은 본능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칠흑 같은 마강이 십자로 폭발하며 전방의 환영을 베어냈다. 하지만 검끝에 닿는 감촉은 너무나 허무했다. 그것은 육신이 아니라 오직 빛과 전자기파의 집합체일 뿐이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슈우우욱!

환영의 무리 속에서 진짜 살기가 파고들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피부를 에는 듯한 미세한 바람의 결이 적의 궤적을 알려왔다. 초음속으로 사출된 나노 필라멘트 와이어가 진혁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캉궁-!

진혁이 고개를 살짝 비틀며 천마검의 등 부분으로 와이어를 쳐냈다.

찌릿한 전류가 검신을 타고 팔뚝으로 올랐다. 기계의 연산 능력이 아니었다면 반응조차 하지 못했을 사각(死角)에서의 일격이었다.

‘눈을 믿지 마라.’

진혁은 즉시 깨달았다.

지금 이 환술 결계는 단순한 시각적 교란이 아니었다. 인간의 뇌가 시각 정보에 의존해 세상을 인식한다는 약점을 극대화한 현대 과학의 최정점, ‘전자환술(電子幻術)’이었다.

기계는 눈으로 본 것을 계산하고, 계산된 결과를 믿는다.

하지만 무인은 달랐다.

“하…….”

진혁이 낮게 숨을 내쉬며 눈을 완전히 감았다.

세상이 캄캄한 어둠으로 물들었다.

시각이 차단되자, 놀랍게도 다른 감각들이 폭발적으로 살아나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윙윙거리며 공기를 가르는 홀로그램 프로젝터의 고주파 소음.

천장에 설치된 매트릭스 렌즈가 미세하게 진동하며 뿜어내는 열기.

그리고 공간의 기압 차이와 공기의 흐름까지.

눈을 감자 비로소 진정한 적의 실체가 느껴졌다.

다다다다다—!

가짜 환영들이 만들어내는 허상의 발소리가 귀를 어지럽혔지만, 진혁의 귀에는 그 속에서 진짜로 숨을 죽이고 움직이는 이들의 심장 소리가 선명하게 박혀 들어왔다.

‘찾았다.’

진혁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그의 단전에서 56,200 MW의 출력을 품은 마기가 거칠게 소용돌이쳤다.

시스템의 보조 없이, 오직 그의 의지만으로 증폭된 마기가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부우웅-!

진혁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칠흑의 마기가 주변의 전자기파와 충돌하며 사방으로 파문처럼 퍼져 나갔다.

[만법귀마 - 파동 반사(波動反射)]

적들이 환술을 유지하기 위해 쏘아 올리던 전자기파의 주파수를 강제로 읽어내고, 그와 정확히 공진하는 마기의 파동을 역으로 튕겨내는 응용 기술.

끼이익-! 콰지지직-!

“크아악!”

환술 결계의 중심부에서 기괴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빛의 장막 속에서 은빛 장갑을 뒤집어쓴 채 숨어 있던 티타늄 그룹의 특수 환술병들이 견디지 못하고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그들이 착용한 홀로그램 매트릭스 장치가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폭발하며 사방으로 스파크가 튀었다.

환술이 깨지기 시작했다.

사방을 뒤덮었던 가짜 레이저와 허상의 세계가 유리창이 깨지듯 산산조각 났다.

하지만 적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타깃의 시각 센서 교란 실패! 전원, 화력 집중!”

결계의 잔해 너머, 상층부 중앙 관문인 ‘아폴론의 왕좌’ 입구를 지키고 있던 정예 블랙 가드들이 일제히 중화기를 치켜들었다.

그들의 총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은 일반 실탄이 아니었다. 공간 전체를 이온화시켜 모든 내력을 산화시키는 ‘플라즈마 제압 포격’이었다.

콰구구구궁!

수십 발의 플라즈마 탄환이 일제히 진혁의 위치를 향해 쏟아졌다.

피할 곳도, 숨을 곳도 없는 일점 집중 포화. 공간 자체가 거대한 화염의 바다로 변해갔다.

진혁은 눈을 뜬 채, 그 거대한 폭풍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은 다시 선명해졌지만, 그의 감각은 이미 환술에 속기 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모든 플라즈마 탄환의 궤적이 머릿속에서 슬로모션처럼 분해되어 그려졌다.

‘기계가 계산하지 못하는 영역.’

‘오직 극한의 무도가 도달할 수 있는 감각의 경지.’

진혁이 천마검을 가볍게 치켜들었다.

지타타타탓-!

[마광신보 - 극(極)]

칠흑의 잔상이 겹치며 진혁의 형체가 허공에서 지워졌다.

그가 플라즈마 폭풍의 중심을 향해 전신을 날렸다.

폭발하는 불길 속에서 검광이 한 줄기 번개처럼 뻗어나갔다.

적들의 방어막을 찢고, 최첨단 전자환술의 결계를 박살 내며, 상층부의 심장부를 향해 멈추지 않는 수직 질주가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쿠구구구궁—!

플라즈마 폭풍을 정면으로 뚫고 나간 진혁의 검끝에서 거친 폭음이 터져 나왔다.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는 이미 56,200 MW라는 수치를 아득히 넘나들고 있었다. 시스템의 지원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오직 그의 심장 박동과 혈관을 타고 흐르는 칠흑 같은 마기만이 육체를 지탱하고 지배했다.

“크윽……! 저지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라!”

블랙 가드의 대장인 듯한 자가 고함치며 중화기의 방열판을 개방했다.

하지만 진혁의 속도는 그들의 육안이나 기계 장치의 반응 속도보다 훨씬 빨랐다.

파각-!

마광신보의 극의(極意)로 공간의 틈새를 밟고 선 진혁의 흑안이 서늘하게 번뜩였다.

그가 휘두른 개량형 천마검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검신에 엉겨 붙어 있던 칠흑의 마기와 푸른 뇌전이 융합되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뇌전마강 - 십자참(十字斬)]

콰르릉— 쾅!

상층부 회주랑의 두꺼운 강화 티타늄 바닥이 십자 형태로 갈라지며 엄청난 충격파가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블랙 가드들이 장착한 고성능 엑소수트의 방어막이 유효 거리를 채 버티지 못하고 유리 조각처럼 박살 났다.

“커학……!”

비명조차 제대로 지를 새도 없이, 수십 명의 정예 병사들이 파공음 속에 휘말려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진혁은 그들의 쓰러진 육체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철컥, 철컥, 철컥.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닥에 흩어진 파편들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상층부 중앙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문, ‘아폴론의 관문’이 그 거대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일반적인 해킹으로는 결코 열리지 않는 물리적·전자적 이중 삼중의 철갑 문.

하지만 진혁의 손에는 이미 진세린이 남기고 간 마스터 보안 패드가 들려 있었다.

삐비비빅—!

진혁이 패드를 관문 옆의 단말기에 거칠게 꽂아 넣었다.

윤아영이 원격으로 심어둔 우회 코드가 패드를 통해 관문의 메인 회로로 빨려 들어갔다.

[마스터 보안 패드 인증 완료.]

[중앙 방어 회로의 동기화가 강제 해제됩니다.]

[경고: 시스템의 잔존 방화벽이 폭주합니다. 폭발 위험 89%]

“폭주해 봤자다.”

진혁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말려 올라갔다.

그가 단전의 출력을 단숨에 끌어올리며 검을 관문의 중앙에 깊숙이 꽂아 넣었다.

쿠구구구궁—!

마기가 검신을 타고 회로 전체로 역류했다.

기계의 논리 회로가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양의 내력이 주파수를 교란하고, 내부의 전력 공급 장치를 강제로 과부하시켰다.

끼이익— 쾅!

수십 톤짜리 티타늄 합금 문이 안쪽에서부터 터져 나가며 거대한 먼지 구름을 일으켰다.

문 너머로 드러난 것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거대하고 기괴한 공간이었다.

‘여기가…….’

진혁의 눈에 그 광경이 담겼다.

수백 개의 냉각 파이프와 플라즈마 코어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거대한 원형 홀.

그 중앙에는 진무극이 영생을 위해 파놓았다는 ‘불멸의 그릇’—아폴론의 영좌가 서서히 회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영좌의 중심, 칠흑 같은 액체로 가득 찬 원형 배양 포트 안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슈우우우—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맥박을 뛰며 부화를 준비하는 거대한 실루엣.

진혁과 똑같은 얼굴을 한, 그러나 훨씬 더 거대하고 일그러진 마기를 품은 ‘진짜 최종 그릇’이었다.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군.”

진혁은 숨을 깊게 내쉬었다.

몸 안의 마기가 끓어오를 대로 끓어올라 혈관을 태울 듯이 요동쳤다.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숨을 곳도 없었다.

이 마지막 잔해를 박살 내는 것만이, 이 거대한 디스토피아의 꼭대기에서 자신을 옭아매던 모든 사슬을 끊어내는 유일한 길이었다.

콰아아앙—!

진혁이 발을 구르며 원형 홀의 중심을 향해 전신을 날렸다.

그의 손에 쥐인 천마검이 어둠을 찢고 칠흑의 검광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궁—!

진혁이 내지른 검광이 불멸의 영좌를 향해 쏟아지자, 원형 홀 전체가 경악스러운 소리와 함께 진동했다.

배양 포트 주변을 두르고 있던 방어 필드가 마기에 짓눌려 유리 조각처럼 산산조각 났다.

-치이이익!

그와 동시에 칠흑의 액체로 가득 차 있던 배양 포트의 상단 유리가 균열을 일으키며 거칠게 깨져 나갔다.

크르르…… 윽!

포트 안에 잠들어 있던 거대한 실루엣이 눈을 번뜩였다.

진혁과 똑같은 얼굴, 그러나 은빛 회로가 온몸을 뒤덮고 비대하게 부풀어 오른 근육을 지닌 '프로토콜 00호'가 굉음과 함께 상체를 일으켰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인간의 숨소리가 아니었다. 고압의 플라즈마 증기가 섞인 기계적 파열음이었다.

[대상 식별 완료.……… 원본 제거 대상 확인.]

시스템의 음성이 아니라, 00호의 목소리 통로를 직접 타고 흘러나온 기계 합성음이었다.

그것은 진혁이 지금까지 상대해 온 어떤 클론이나 가짜들과는 차원이 다른 압박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신서울 전체의 전력을 한 몸에 흡수해 부화한 '최종 그릇'.

티타늄 그룹이 1,000년 전 마교의 유골과 현대 최첨단 군사 기술을 융합하여 빚어낸,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한 생체 병기였다.

슈우우욱—!

00호가 손을 뻗자, 주변의 부서진 냉각 파이프에서 새어 나온 고압 플라즈마 에너지가 순식간에 모여들어 거대한 칠흑의 대검 형태로 형상화되었다.

진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내 기술을 그대로 흉내 내는가.’

그것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었다. 진혁이 지금까지 싸워오며 흡수하고 창조했던 모든 무공의 궤적을, 이 거대한 그릇이 데이터로 학습하여 완벽하게 재현해 내고 있는 것이다.

콰아아앙!

00호의 발이 바닥을 박차자, 원형 홀의 강화 티타늄 바닥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믿을 수 없는 속도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잔상만이 남은 채, 00호의 거대한 대검이 진혁의 머리통을 향해 내리꽂혔다.

캉가궁—!

진혁은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필요가 없었다.

그 역시 천마검을 들어 올리며 정면으로 00호의 검을 받아쳤다.

지상 5만 MW를 넘나드는 단전의 마기가 충돌하며 사방으로 엄청난 폭풍을 일으켰다.

회랑의 벽면이 통째로 무너져 내리고, 신서울 상층부의 밤하늘이 그대로 드러났다. 밤바람이 거칠게 휘몰아치는 그 허공에서 두 명의 '천마'가 서로를 향해 흉포한 살기를 뿜어냈다.

“네가 아무리 나를 본떴다 한들…….”

진혁의 입가에 서늘하고도 오만한 미소가 걸렸다.

“그건 한낱 껍데기에 불과하다. 네놈에게는 없다. 이 검에 담긴 ‘의지’라는 것이.”

콰아아아구궁—!

진혁의 단전에서 터져 나온 칠흑의 마기가 00호의 장갑을 짓이기며 파고들었다.

진정한 천마의 등극을 알리는 마지막 혈전의 막이, 비로소 완전히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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