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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86화목차

제86화 짝퉁 마공의 한계

콰광-!

85층의 강화 티타늄 바닥이 두 쪽으로 갈라지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이현도의 잔존 의식이 심어 놓았던 '신마격차 개조체'의 거대 잔해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불꽃이 파직거리며 튀어 오르는 그곳에서, 칠흑 같은 검은 머리의 청년이 서늘한 눈빛으로 전방을 응시했다.

강진혁.

그의 목과 손목을 따라 흐르던 은빛 회로 선은 이미 완벽한 흑금색(黑金色) 마기로 물들어 있었다. 인공지능 '설화'의 보조 HUD는 오래전에 꺼졌지만, 진혁의 육체는 그 어떤 시스템보다 정교하고 정확하게 우주적인 연산을 수행하고 있었다.

단전의 코어 출력, 51,000 MW.

인간의 육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압도적인 에너지 규격이 그의 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요동쳤다. 하지만 진혁의 얼굴에는 미소 한 조각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의 흑안은 더욱 깊고 차가워져 있었다.

"후……."

낮은 숨을 내쉬자, 입술 새 틈으로 실같은 핏빛 검기가 흩어졌다. 진혁의 시선은 85층의 잔해를 넘어, 90층 이상으로 이어지는 대형 승강구와 수직 샤프트를 향하고 있었다.

지이잉— 콰아아앙!

그 순간이었다. 머리 위, 88층과 89층을 잇는 회랑 전체가 뒤흔들리는 거대한 진동이 울렸다. 빌딩 전체의 뼈대를 이루는 고강도 마그네슘 합금이 비명을 질렀고, 천장 환풍구 사이로 붉은색 경고등이 번갈아 깜빡였다.

[경고. 89층 메인 격리실 에너지 압력 상승.]

[실험체 등록 코드: '천마(天魔) - 프로토콜 00호'의 생체 반응 감지.]

[출력 한계 초과. 자동 방위 시스템 개시.]

기계음이 끊이지 않는 상층부에서, 묵직하고 기괴한 저음의 진동이 대기를 타고 전해져 왔다. 마치 짐승의 숨소리 같기도 하고, 혹은 거대한 고압 보일러가 터지기 직전 울부짖는 소리 같기도 한 불길한 울림이었다.

"나왔나."

진혁이 낮게 중얼거리며 개량형 천마검을 가볍게 털어냈다. 검신에 묻어 있던 이현도의 검은 피와 기계 윤활유가 허공으로 흩어지며 타르처럼 증발했다.

콰아아앙-!

정면의 두꺼운 방폭문이 안쪽에서부터 종이장처럼 구겨지며 박살 났다. 그 부서진 철판 무더기 사이로, 거대하고 기괴한 형상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계와 생체 조직이 뒤틀린 채 융합된 형상. 일반적인 블랙 가드나 엑소스트 수트와는 차원이 달랐다. 온몸이 군용 티타늄 아머로 무장되어 있으면서도, 그 틈새마다 흉측한 핏줄 같은 은빛 나노 회로와 검붉은 마기가 흉물스럽게 엉겨 붙어 있었다.

지르르륵-!

그것들의 손톱 부위에서 고주파 레이저의 청색 섬광이 번뜩였다.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으나, 그 움직임은 기계적인 오작동과 짐승의 포악함이 기괴하게 뒤섞여 있었다.

"크르릉……."

목소리인지, 혹은 내부 냉각 팬이 마찰하는 소리인지 알 수 없는 기괴한 음성이 새어나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앞에 선 거대한 개체는 일반 인간의 두 배에 달하는 체구를 자랑하며, 양팔의 레이저 손톱을 교차했다.

슈우우우- 팟!

그 순간, 개체는 빛의 잔상조차 남기지 않고 진혁의 앞으로 사출되듯 파고들었다. 속도 자체는 웬만한 A급 초인을 아득히 상회했다. 공간을 찢는 듯한 고주파음과 함께, 청색 레이저 손톱이 진혁의 목을 향해 무자비하게 짓쳐들었다.

"오오……."

진혁은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흑안에 비친 것은 그 개체의 놀라운 속도가 아니었다. 그 속도 이전에 선행되어야 할 '기혈의 흐름'과 '회로의 딜레이'였다.

두두두두 둥!

개체의 심장 부근에 박힌 3세대 생체 코어가 과열되며 미세한 역류 현상을 일으켰다. 기계적으로 주입된 마기와 인공 혈관 속 나노머신이 동기화되는 과정에서 찰나의 '0.03초'의 공백이 발생하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수련으로 얻은 내공이 아니라, 차가운 반도체와 데이터 코드로 강제 주조된 '가짜 마공'이 가진 치명적인 결함이었다.

"하."

진혁이 코웃음을 쳤다. 스스로 통찰하고 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 완성한 진짜 무공의 경지에서 바라보기에, 저것은 공장에서 찍어낸 장난감에 불과했다.

파앗-!

진혁의 몸이 미끄러지듯 옆으로 비껴났다.

[마광신보 - 극(極)].

빛의 궤적조차 남기지 않는 극한의 보법이 발동되는 순간, 개체의 레이저 손톱은 진혁의 잔상만을 가를 뿐이었다.

"느려."

진혁의 입에서 짧은 단호함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그의 오른손에 쥐인 개량형 천마검이 허공을 갈랐다.

파지지직-! 콰광!

칠흑의 마기와 푸른 뇌전이 얽힌 거대한 십자 형태의 참격.

[뇌전마강 - 십자참(十字斬)].

기계 회로의 딜레이를 정확히 후벼 파고 들어간 참격은 개체의 방어막 주파수를 완벽하게 공진시키며 무력화시켰다.

콰아아앙-!

"끄아아아악-!"

기괴한 비명인지 기계의 단선음인지 모를 소리와 함께, 거대 개체의 양팔이 숄더 가드 채로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단면에서는 붉은 마기와 고압 엔진 오일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개체는 고통을 모르는 듯, 절단된 팔 대신 남은 몸통을 그대로 밀어 넣으며 진혁을 향해 박치기를 시도했다.

"끈질기군."

진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저것들은 자아가 없다. 이현도가 남겨 놓은 무자비한 명령 코드와 티타늄 그룹의 메인 서버에서 하달된 '침입자 제거'라는 단 하나의 지시만을 수행하는 일회용 장기말에 불과했다.

"기계로 흉내 낸 마공 따위가 천마의 이름을 더럽히는구나."

진혁의 단전에서 51,000 MW의 출력이 폭발적으로 요동쳤다. 그의 전신에 둘러진 [천마무상체]의 마기 방벽이 더욱 짙고 어두운 빛으로 굳어졌다.

투두둑, 두두둑!

피부 표면을 감싸던 나노머신 회로가 칠흑의 갑옷처럼 결합하며 진혁의 상반신을 완벽한 방어 형태로 감쌌다.

콰아아앙-!

개체의 박치기가 진혁의 가슴팍에 직격했다. 엄청난 충격파가 85층의 바닥을 완전히 무너뜨리며 아래층으로 내려앉게 만들었지만, 진혁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두 발은 마치 대지에 뿌리를 박은 철근처럼 굳건했다.

"흡(吸)."

진혁이 낮게 뇌까리며 왼손을 뻗어 개체의 가슴팍, 즉 폭주하는 생체 코어를 그대로 움켜쥐었다.

찌릿- 지지지직-!

[흡원천공 - 개량(改)].

"크아아아아……!"

개체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던 붉은 마기와 고압의 전기 에너지가 진혁의 손바닥을 통해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기계 회로가 과열되며 내지르는 비명이 사방을 메웠다. 단순한 에너지 흡수가 아니었다. 그것은 개체가 품고 있던 '가짜 마공의 데이터 구조'와 '군용 나노머신의 제어 프로토콜'을 강제로 해체하고 흡수하는 작업이었다.

[경고! 알 수 없는 데이터 스트림이 단전 코어로 유입됩니다.]

[정제 프로세스 가동. 마기 동기화율 89.2% -> 93.5%로 상승.]

[단전 출력: 51,000 MW -> 52,800 MW 돌파.]

손바닥 안에서 개체의 거대한 육신이 마른 장작처럼 바짝 쪼그라들었다. 생체 코어의 에너지를 전소당한 개체는 몇 번 파르르 떨리더니, 이내 완전히 힘을 잃고 잿더미처럼 바닥에 주저앉았다.

슈우우우…….

진혁은 손바닥에 남은 검은 재를 툭툭 털어내며 시선을 다시 위로 올렸다. 85층을 넘어, 90층에 위치한 메인 격리실의 거대한 철문이 서서히 개방되고 있었다.

지이잉— 쾅!

철문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단순한 차가운 공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1,000년 전 구대 마교의 유골 데이터가 품고 있던, 세상의 모든 생명체를 태워버릴 듯한 압도적이고 원초적인 '혈마기(血魔氣)'의 파동이었다.

[최종 그릇 부화 페이즈 3단계 진입.]

[대상: 천마 프로토콜 00호 복제체.]

메인 관제탑의 스피커에서 끊어질 듯한 기계음이 흘렀다.

"드디어 본모습을 드러내겠다는 건가."

진혁의 입가에 짙고도 잔인한 미소가 걸렸다. 그가 쥐고 있는 개량형 천마검의 검신이 적멸(寂滅)의 칠흑빛 광채를 내뿜으며 부르르 떨렸다.

스스로를 신(神)이라 착각하는 자들이 만들어낸 가짜 마공의 끝판왕. 그 모든 허황된 기술과 껍데기를 완전히 박살 내기 위해, 진혁은 다시 한번 신화의 영역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콰아아앙-!

85층의 천장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며, 진혁의 검은 잔상이 상층부를 향해 수직으로 쏘아 올려졌다.

콰아아앙-!

폭음과 함께 진혁의 몸이 86층의 천장을 관통하며 솟구쳤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강화 콘크리트와 티타늄 합금 파편들은 진혁의 몸에 닿기도 전에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그를 감싼 [천마무상체]의 마기 방벽이 이미 물리적 방어의 차원을 넘어선 초고주파 공진 파동을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치이익-!

"크르륵……."

86층과 87층을 연결하는 나선형 수직 샤프트. 그곳에는 이미 수십 기의 '아수라 마장' 양산형 개체들이 진혁을 가로막기 위해 진을 치고 있었다. 인간의 형태를 완전히 상실한 채, 기계 장갑과 융합된 근육 덩어리들이 붉은 안광을 빛내며 일제히 포격 태세를 갖췄다.

슈우우우- 쾅!

수십 문의 플라즈마 캐논과 고주파 입자포가 동시에 불을 뿜었다. 사방이 순식간에 눈이 멀 정도로 찬란한 푸른 백색광으로 물들며, 공간 전체가 찢어지는 듯한 고막을 찢는 비명을 질렀다.

"어디 발악을 해라."

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의 흑안이 번뜩이듯 빛났다. 시스템의 보조 HUD는 꺼져 있었으나, 52,800 MW를 상회하는 단전의 출력이 전신의 신경망과 결합해 사방의 공간 구조를 완벽한 삼차원 벡터로 머릿속에 각인시키고 있었다.

[만법귀마 - 파동 반사.]

진혁의 검이 가볍게 원을 그리며 허공을 후려쳤다. 단순한 참격이 아니었다. 적들이 쏘아 올린 플라즈마 포탄의 주파수와 정확히 일치하는 공진 주파수를 마기에 실어 사방으로 방출하는 역학적 반사 기술이었다.

콰아아앙-! 콰바바방!

자신들이 쏜 화력이 그대로 튕겨 나갔다. 아수라 마장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사방에서 터져 나온 플라즈마 폭풍이 서로의 장갑을 내부에서부터 박살 냈다.

"크아아아악……!"

기계음과 비명이 뒤섞인 파멸의 합창. 진혁은 그 폭풍의 중심을 마광신보-극(極)의 보법으로 가로질렀다.

파앗-!

빛의 잔상조차 남지 않았다. 진혁이 스쳐 지나간 자리마다 아수라 마장들의 목이 톱날에 베인 듯 매끄럽게 떨어져 나갔고, 그 단면에서는 검붉은 마기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흡원천공의 본능이 단전 속에서 거칠게 요동쳤다. 진혁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은 채, 지나치는 개체들의 생체 코어를 스치듯 움켜쥐며 잔여 에너지를 모조리 빨아들였다.

[단전 출력: 52,800 MW -> 54,200 MW 돌파.]

출력이 급상승할수록 진혁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마기의 순도는 더욱 짙어져 갔다. 그건 단순히 힘이 강해지는 것과는 달랐다. 육체와 기가 완벽히 하나로 융합되어, 숨을 쉴 때마다 대기의 마기를 자신의 호흡처럼 자연스럽게 통제할 수 있는 경지.

초월천마경(超越天魔經)의 진정한 심법이 그의 몸 안에서 스스로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콰아아앙-!

마침내 진혁의 발길이 도달한 곳은 신서울 본사 타워의 최정상 직전, 90층에 위치한 [메인 격리실 - 헤븐리 챔버]였다.

거대한 원형 홀의 중앙. 지상 수백 층 아래의 플라즈마 에너지 타워와 직결된 굵은 광케이블과 고압 관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그곳에, 믿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투명 배양 탱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지이잉— 웅……!

탱크 안을 가득 채운 고순도 영양액 속에서, 한 무리의 거대한 형체가 서서히 눈을 뜨고 있었다.

"……저게."

진혁의 발걸음이 멈췄다. 배양액 속의 존재는 놀랍게도 강진혁 자신과 완벽하게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만, 그 크기는 일반 인간의 세 배에 달하는 거구였으며, 온몸의 피부 위로는 은빛 나노 회로가 아니라 짙은 혈색의 고대 마교 문양이 살갗을 찢고 솟아나 있었다.

[프로토콜 00호: 최종 그릇 완성도 99.9%.]

[숙주 동기화 대기 중…….]

주변의 잔존 콘솔 화면들이 일제히 붉은 경고 문구를 띄우며 깜빡였다.

쾅-!

배양 탱크의 두꺼운 특수 유리 표면에 거대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안에서 눈을 뜬 복제체—진무극과 이현도가 1,000년 전 천마의 육체를 완벽하게 재현해 내기 위해 수십 년간 공들여 만든 최종의 그릇이, 마침내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크르르…… 콰아아앙!

복제체가 거대한 주먹으로 배양 탱크의 유리를 내부에서부터 무참히 가격했다. 유리가 산산조각 나며 고순도 영양액이 사방으로 해일처럼 밀려 나왔다.

철컥, 우두둑-!

복제체가 탱크 밖으로 발을 내디디며 거친 호흡을 토해냈다. 그가 내뿜는 압도적인 혈마기는 90층 전체의 중력을 짓누르는 듯한 중압감을 선사했다. 일반적인 A급 초인이라면 그 기운에 압도당해 단전이 박살 나고 피를 토하며 쓰러졌을 터였다.

하지만 진혁은 그 압박감 속에서도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피식 웃었다.

"그래. 내 껍데기를 이따위로 만들어 놓고 영생을 꿈꿨단 말이지."

진혁의 목소리는 서늘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두려움이나 경외감 따위는 조금도 느끼지 않았다. 오직 역겨움과, 그것을 완전히 박살 내버리겠다는 잔인한 살기만이 그의 흑안을 채웠다.

크아아아아-!

복제체가 입을 벌리며 짐승 같은 포화를 질렀다. 그 입안에서 응축된 칠흑의 마기가 소용돌이치며 진혁을 향해 직격으로 뿜어져 나왔다. 세상의 모든 생명을 거부하는 듯한 파멸적인 마교의 궁극기, [혈마멸천파(血魔滅天波)]의 모사였다.

슈우우우- 콰아아앙!

공간이 비명을 지르며 녹아내렸다. 진혁은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검을 거꾸로 쥐며 상체를 낮췄고, 54,000 MW의 출력을 단전의 한 점으로 극단적으로 압축시켰다.

"가짜가 본래의 주인 앞에서 어딜 난리인가."

진혁의 입에서 나지막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칠흑의 마기와 푸른 뇌전이 개량형 천마검의 검신 위로 폭발적으로 얽혀 들었다.

파지지직-! 콰광!

[신천마신공 - 천마일검(天魔一劍)].

진혁이 앞으로 한 발짝 내딛으며 검을 수직으로 밀어 올렸다. 압축된 마기의 홍수가 복제체가 뿜어낸 혈마멸천파의 정중앙을 문자 그대로 '반으로 쪼개며' 치고 올라갔다.

천지를 뒤흔드는 거대한 폭음과 함께, 신서울 상층부의 밤하늘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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