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5화 이현도의 집착
신서울 상층부의 밤은 불빛으로 가득했으나, 그 아래 흐르는 공기는 얼어붙은 철판처럼 차가웠다.
휘황찬란한 마천루들의 꼭짓점이 구름을 찌를 듯 솟아 있는 1계급 구역. 그곳은 일반적인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오직 티타늄 그룹의 특권층과 최고위 임원들만이 거니는 자본의 성전(聖殿)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성전의 심장부가 흔들리고 있었다.
콰아아앙-!
천상관문을 넘어 상층부 외각의 거대한 보급 물류 요새로 진입한 강진혁의 발걸음마다 대지가 비명을 질렀다.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는 이미 5만 MW의 경계를 아득히 넘어서고 있었다. 그 폭발적인 에너지는 주변의 공기를 이온화시키며, 그의 검은 머리칼을 맹렬하게 흩날리게 만들었다.
시스템의 보조 HUD는 오래전에 꺼졌으나, 진혁의 감각은 그 어떤 인공지능의 연산보다도 선명하고 날카로웠다.
“……주인공 녀석, 기어코 상층부 메인 회주랑을 돌파했어!”
하층 도시의 테크니컬 베이스에서 모니터를 응시하던 윤아영의 입술이 바짝 말라 들어갔다. 그녀의 손가락은 키보드를 미친 듯이 두드리며 타워 내부의 방어 회로를 교란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동자에는 짙은 경외와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시스템 경고: 메인 타워 78층 구역의 전력 공급 라인이 비정상적으로 요동칩니다.]
-[방어 프로토콜: 불명(不明)의 자율 개조체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저건…… 뭐야? 진무극 회장이 직접 보낸 친위대도 아니야. 이 신호는……!”
아영의 화면 속에서, 타워의 가장 깊숙한 지하 연구실 구역의 전력이 한곳으로 급격히 빨려 들어가는 것이 포착되었다.
그것은 티타늄 그룹의 정규 군사 체계가 품을 수 없는, 기괴하고도 불길한 생체 에너지의 파동이었다.
티타늄 그룹 본사 타워, 지하 120층.
최고 보안 구역인 ‘크로노스 바이오 메인 랩’.
스으으윽- 쾅!
거대한 방탄 유리관이 깨어지며 안에 고여 있던 보존액이 사방으로 쏟아졌다.
그 안에서 비틀거리며 걸어 나오는 존재가 있었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그 육체는 이미 정상적인 생명체의 범주를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목과 팔다리의 피부 위로는 은빛 기계 회로가 흉물스럽게 얽혀 있었고, 심장 부근에는 거대 고출력 생체 코어가 푸른색의 불안정한 광채를 뿜어내며 흉곽을 짓이기듯 뛰고 있었다.
“……크윽…… 크하하하……!”
쉰 목소리로 웃음을 흘리는 자.
그의 이름은 이현도.
본래 티타늄 그룹의 수석 연구원이자 ‘천마 프로토콜’의 설계자였던 그는, 이미 육체의 대부분을 버리고 자가 생체 개조를 거친 ‘신마격차 개조체(神魔格差 改造體)’로 전락해 있었다.
수석 연구실의 대형 모니터 너머로, 강진혁이 상층부 회주랑을 가로지르며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방어 병기들을 무참히 짓부수는 광경이 송출되고 있었다.
“어째서지……?”
이현도의 눈 혈관이 터질 듯 충혈되어 있었다. 그의 손이 떨리며 모니터 화면을 움켜쥐었다.
“어째서 진무극 저 노인네는 가만히 있는 거지? 저 괴물이 타워의 심장부까지 치고 올라오는데도, 왜 저토록 태평한 거야!”
진무극 회장은 100층 최상단 집무실에서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진무극의 입장은 명확했다. 강진혁이 자신을 찾아오든, 혹은 타워를 부수든 간에 결국 그 끝은 ‘최종 그릇’으로서의 육체를 완성하는 과정일 뿐이었다. 진혁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그 육체에 담길 숙주의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고 믿는 오만함의 극치였다.
하지만 이현도의 생각은 달랐다.
그에게 강진혁은 단순한 '그릇'이 아니었다. 자신이 수십 년간 연구해 온 고대 마공과 현대 생체 공학의 결합, 그 궁극의 결정체이자 자신의 유일무이한 예술품이었다.
그런 예술품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타워를 부수며 자신을 심판하러 오고 있다.
“안 돼…… 내 연구를, 내 완벽한 프로토콜을 저 애송이 따위가 부정하게 둘 순 없어!”
이현도의 입에서 검붉은 거품이 섞인 침이 튀었다.
그는 이미 이성적인 판단 능력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진무극의 방관과 오문에 대한 분노, 그리고 자신의 이론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겠다는 광기 어린 집착이 그의 남은 정신을 완전히 잠식하고 있었다.
“진무극, 그 늙은이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내 손으로 그 가짜 천마를 부수어 주마!”
이현도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가슴팍에 박힌 마력 증폭 장치를 움켜쥐었다.
지직- 지지직!
기계 회로와 혈관이 연결되는 부위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고대 마교의 유골 데이터에서 추출한 불완전한 마기(魔氣)와, 현대 군사 기술이 낳은 4세대 나노머신이 그의 육체 내부에서 억지로 융합을 시작했다.
격렬한 고통에 이현도의 전신 근육이 경련을 일으켰으나, 그의 입꼬리는 기괴하게 치솟아 있었다.
“가져와라! 내 모든 데이터의 정수가 담긴 ‘신마격차 개조체’들을 전부 활성화해!”
-[경고: 기체 내부의 마기 폭주 위험성 89%. 유기체 육체의 붕괴가 진행 중입니다.]
연구실 구석에 박혀 있던 자율 경보 시스템이 붉은 경고음을 울렸지만, 이현도는 그저 미친 듯이 소리칠 뿐이었다.
“상관없어! 놈의 앞을 가로막아라! 강진혁, 그 오만한 실험체 07호에게 진짜 ‘마공의 지옥’이 무엇인지 보여주마!”
콰아아앙-!
강진혁이 상층부 85층 구역의 철문을 단숨에 박살 내며 안으로 발을 디뎠다.
스으윽.
그의 손에 들린 [개량형 천마검]의 칼날 위에서 칠흑 같은 마기가 가늘고 매섭게 일렁였다. 검신 자체에 내장된 고주파 진동 모듈이 미세한 음역대의 소음을 내며 주변의 공기를 베어내고 있었다.
“여기가 본사 타워의 중추로 향하는 관문인가.”
진혁의 흑안이 서늘하게 빛났다.
하층부와 중층부를 거쳐 올라오는 동안, 티타늄 그룹이 숨겨두었던 수많은 비밀과 실험체들의 잔해를 마주했다. 그럴수록 진혁의 내면에 도사린 살의는 더욱 깊고 단단해졌다.
그것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었다. 인간을 오직 도구와 소모품으로만 재단해 온 이 거대한 자본의 신전에 내리는 냉혹한 심판의 의지였다.
그때였다.
투두둑- 투두둑!
천장의 환풍구와 벽면의 은빛 덕트들이 일제히 찢어지며 무언가 무더기로 떨어져 내렸다.
쿵, 쿵, 쿵!
묵직한 착지음과 함께 바닥이 울렸다.
진혁의 시선이 그곳을 향했다.
어두컴컴한 회주랑의 복도 끝에서, 인간의 형태를 아득히 상회하는 거대한 형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괴하게 부풀어 오른 근육, 피부를 뚫고 튀어나온 검은 기계 파이프, 그리고 일반적인 인간의 것보다 세 배는 더 커진 두 개의 심장 박동 소리.
탁, 타박-
그 무리들의 맨 선두에, 이현도의 미쳐버린 의식이 이식된 ‘신마격차 개조체’가 비틀거리며 걸어 나왔다. 그의 입가에는 검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고, 두 눈은 핏발이 선 채로 진혁을 노리고 있었다.
“……강…… 진…… 혁……!”
목구멍을 짓누르는 듯한 쉰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개조체의 손등 부위에서 기계음과 함께 치명적인 고주파 레이저 손톱이 촤르륵 소리를 내며 튀어나왔다.
그것은 고대 마교의 전설 속 괴수이자, 혈기(血氣)를 폭주시켜 적을 찢어발긴다는 ‘혈마수(血魔獸)’의 기동 방식을 현대의 나노 군사 기술로 억지로 모방한 형태였다.
“크하하하! 네놈이 흡수한 그 마기가 진짜 내 연구의 성과다! 네놈은 내 손에서 만들어진 장난감에 불과해!”
개조체의 입을 빌려 이현도의 광기 어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진혁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의 입꼬리가 차갑게 호선을 그렸다.
“장난감이라.”
단전에서 끓어오르는 5만 MW의 출력이 전신의 혈관을 타고 손끝까지 밀려들었다.
번지지직-!
칠흑의 마기 속에 파란색 뇌전이 얽히며 주변의 공기를 태우는 날카로운 소음이 터져 나왔다. 시스템의 보조 따윈 필요 없었다. 오직 자신의 의지와 뼈를 깎아 완성한 무공의 본질만이 그의 등 뒤에서 거대한 천마의 형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네놈이 만든 건 기계 장치와 찌꺼기 데이터뿐이다.”
진혁이 마광신보를 밟으며 허공을 박찼다.
슈우우욱-!
잔상조차 남지 않는 극한의 속도로, 진혁의 검신이 개조체를 향해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콰아아앙!
진혁의 검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85층 회주랑의 방탄 유리벽들이 일제히 미세한 균열을 일으키며 터져 나갔다.
기계 회로와 융합된 불완전한 마기를 두른 개조체들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들의 팔뚝에 내장된 고주파 레이저 손톱이 허공을 할퀴며 시뻘건 진동 파장을 만들어냈다.
슈우우욱!
"크오오오!"
개조체 중 하나가 마기를 억지로 압축하여 전개한 '유사(類似) 혈마수'의 형상을 휘두르며 진혁의 목을 노렸다.
하지만 진혁의 눈빛은 흔들림조차 없었다.
그의 시야에는 그 괴물의 움직임이 마치 정지 화면처럼 느릿하게 투영되고 있었다. 시스템의 연산 보조가 꺼진 지 오래였으나, 수많은 실전과 사선을 넘나들며 다져진 신체의 감각과 기혈의 흐름은 그 어떤 AI보다 정확하게 적의 빈틈을 짚어내고 있었다.
기계 회로로 흉내 낸 마공이란 부자연스럽기 그지없군.
진혁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이현도가 발버둥 치며 만들어낸 신마격차 개조체는 겉보기엔 엄청난 출력을 뿜어내는 듯했으나,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현대의 기계 회로가 고대 마공의 폭발적인 기혈 유동을 제대로 버텨내지 못해, 혈관이 교차하는 지점마다 미세한 ‘운기 지연(運氣遲延)’ 현상이 발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 0.1초의 틈.
무인에게 있어서 그것은 죽음과도 같았고, 진혁에게 있어서는 적의 목을 베기에 차고 넘치는 시간이었다.
지지직-!
진혁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5만 MW의 칠흑 같은 마기가 개량형 천마검의 검신을 타고 격렬하게 요동쳤다. 거기에 푸른 뇌전이 얽혀들며 검의 무게가 몇 배로 무거워졌다.
[뇌전마강 - 십자참(十字斬)]
콰아아앙!
진혁의 몸이 한 바퀴 회전하는 것과 동시에, 허공에 두 줄기의 십자형 검강이 폭발하듯 뻗어나갔다.
꿰에에엑-!
개조체가 뿜어내던 시뻘건 마기 방벽은 진혁의 뇌전마강 앞에 종이장처럼 무력하게 찢겨 나갔다.
텅! 텅!
순식간에 교차한 참격은 개조체의 양팔을 완벽하게 절단해 버렸다. 기계 회로가 노출된 단면에서 스파크가 튀고, 시커먼 냉각액과 검붉은 피가 회주랑의 바닥을 적셨다.
"크아악……!"
팔이 잘려 나간 개조체, 즉 이현도의 잔존 의식이 이식된 괴물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진혁은 그에게 도망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슈슉-!
[마광신보 - 극(極)]
빛의 궤적조차 남기지 않는 극한의 보법으로 진혁의 잔상이 개조체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진혁의 왼손이 그대로 개조체의 가슴팍에 박혀 있던 거대 고출력 생체 코어를 움켜쥐었다.
[흡원천공 - 개량(改)]
우드득- 파지직!
"커헉……!"
괴물의 심장 부근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과 함께, 그 안에 내장되어 있던 수천 MW의 에너지가 진혁의 손바닥을 타고 역류해 들어왔다.
단순히 에너지를 빼앗는 것이 아니었다. 이현도가 발악하며 심어둔 불완전한 마기와 기계 회로의 데이터 조각까지 강제로 흡수·정제하여 진혁의 단전 속으로 흡수해 버렸다.
-[단전 코어 출력 상승: 49,200 MW → 51,000 MW 돌파.]
-[불완전 마기 데이터 정산 완료. 내공의 순도가 한 층 더 강화됩니다.]
시스템의 HUD는 꺼져 있었으나, 진혁의 뇌리에 직접 울리는 듯한 직관적인 감각이 단전의 변화를 알려왔다.
"이…… 이럴 수가…… 내 연구를…… 내 완벽한 공식을……!"
개조체의 눈구멍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자신이 수십 년간 집착해 온 연구의 정수이자, 스스로를 개조해 만들어낸 최종 병기가 강진혁의 손 앞에서 단 몇 합 만에 무력하게 유린당하고 있는 현실을 이현도의 의식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진혁은 차가운 눈으로 제 품 안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괴물을 내려다보았다.
"너는 착각하고 있었다, 이현도."
진혁의 낮고 무거운 목소리가 회주랑에 울려 퍼졌다.
"기계 따위로 인간의 육체를 가두고, 데이터를 조작하면 그것이 천마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나."
"크윽…… 가만두지 않겠다……! 진무극 회장님이 깨어나시면…… 네놈은 결국 내 숙주로……!"
"그 늙은이도 이미 지옥으로 보냈다."
진혁의 말에 개조체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진혁은 더 이상 대화할 가치도 없다는 듯, 손에 쥐었던 개량형 천마검을 위로 쳐들었다.
"네가 만든 프로토콜의 시대는 끝났다."
파아앗-!
검신을 감싸던 뇌전이 정점에 달하며 눈부신 섬광을 뿜어냈다.
[천마일검(天魔一劍)]
투우웅-!
공기가 압축되는 굉음과 함께, 단 하나의 접점으로 응축된 참격이 이현도의 개조체를 정중앙에서 두 쪽으로 갈라놓았다.
콰아아앙-!
폭발적인 충격파가 85층의 복도를 완전히 쓸어버리며 거대한 파편들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이현도의 의식이 담겨 있던 신마격차 개조체는 마침내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이 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타오르던 불완전한 마기와 스파크가 사그라들며, 지하 120층부터 이어져 내려온 이현도의 집착은 완전히 소멸했다.
진혁은 그 잔해를 뒤로한 채, 피투성이가 된 검을 가볍게 털어내며 시선을 위로 향했다.
본사 타워의 최상층.
그곳에서 신서울 전체의 전력을 흡수하며 웅크리고 있는 마지막 위협, '아수라 마장'과 진정으로 마주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