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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84화목차

제84화 상층부 거점 확보

스으으- 쾅!

신서울 1계급 상층부의 관문, 속칭 '천상관문(天上關門)'의 거대한 합금 성문이 반쪽으로 쪼개져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티타늄 그룹이 수십 년간 수조 원을 들여 구축한 최후의 방어선이었다. S급 중장갑 엑소수트를 입은 수호대장 바르바토스의 뼈와 살이 진혁의 검 끝에서 터져 나온 뇌전마강에 의해 잿더미로 변한 지 오래였다.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회주랑 한가운데, 강진혁이 서 있었다.

그의 단전 부근에서 이글거리는 검푸른 기류는 이미 5만 MW라는 수치를 아득히 넘나들고 있었다. 시스템의 지원 HUD조차 스스로 꺼버린 상태였으나, 그의 오감은 신서울 상층부의 모든 미세한 공기 흐름까지 완벽하게 포착하고 있었다.

"……하아."

진혁이 낮게 숨을 내쉬자, 대기 중의 잔류 마기가 파도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발치에는 진세린이 주저앉아 있었다. 온몸의 신경망이 마비되어 더 이상 일어설 수도 없는 그녀는 멍한 눈으로 부서진 천장 너머의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진무극이 숨겨둔 '아폴론의 그릇'이라는 잔혹한 진실.

조부에게 자신의 육체를 빼앗길 뻔했다는 절망감 속에서 진세린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했다.

진혁은 쓰러진 그녀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닥의 강화 플라스틱 타일이 미세하게 금이 갔다.

그때, 진혁의 귓가에 귓속말처럼 익숙한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진혁 씨! 제 목소리 들려요?]

윤아영이었다.

천마 프로토콜의 메인 네트워크는 셧다운되었지만, 그녀가 수십 개의 우회 채널을 통해 심어둔 개별 디코더가 진혁의 귓속에 남은 나노 칩과 연결되어 있었다.

"들린다. 상황은?"

[대단해요! 지금 상층부 외각 물류 요새의 중앙 방화벽 82%를 뚫었어요. 당신이 천상관문을 박살 내준 덕분에 하층부와 연결되는 보안 루프가 완전히 열렸다고요!]

윤아영의 목소리에는 흥분과 환희가 가득했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쿠구구구구-!

거대한 진동과 함께 천상관문 외곽의 수직 승강기 레일이 울어대기 시작했다.

하층 슬럼가에서부터 올라온 거대한 중장갑 트럭들과, 니르바나 저항군의 마개조된 돌격 장갑차들이 마침내 1계급 상층부의 아스팔트 바닥을 밟았다.

"여기는 송수연! 전 부대, 천상관문 돌파 완료! 상층부 외각 물류 요새 진입을 개시한다!"

무전기를 통해 들려오는 송수연의 목소리는 쇳소리가 섞여 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고 또렷했다.

수십 년간 빛 한 줄기 들지 않는 슬럼가에서 신서울의 지배자들을 향해 이를 갈아온 민중 저항군 '니르바나'의 본대가 마침내 상층부의 땅을 밟은 것이다.

꽈아아앙! 쾅!

"쏴라! 저 아래 잡것들이 올라온다! 방어선을 구축해!"

"미쳤어? 천상관문이 뚫렸다고? 바르바토스 대장마저 당했어!"

상층부의 특수 경비대인 블랙 가드 잔당들이 기겁하며 플라즈마 라이플을 난사했다.

그러나 이미 대세는 기울어 있었다.

슈우우욱- 팟!

칠흑 같은 잔상을 남기며 진혁의 몸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마광신보 - 극(極)].

그가 검을 휘두를 것도 없었다. 단지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블랙 가드들의 고출력 생체 코어가 장착된 흉갑이 종잇장처럼 찢어지며 사방으로 튀었다.

"크아아악!"

"괴물……! 저건 인간이 아니야!"

진혁이 단숨에 요새의 정문 통제실 앞까지 도달해 문짝을 발로 차 부수었다.

철컥, 끼익-!

두께 삼 센티미터의 티타늄 합금 문이 종이 인형처럼 날아가며 안쪽의 메인 콘솔 박스가 드러났다.

진혁의 손바닥이 콘솔의 마스터 단자에 척 얹어졌다.

지이잉-!

진혁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순도의 마기와 흡원천공의 잔류 흡수력이 콘솔의 전력망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단순한 해킹이 아니었다. 물리적인 에너지 출력으로 시스템의 메인 프레임을 강제로 굴복시키는 무식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이었다.

[오오…… 놀라워라. 상층부 외각 물류 요새의 메인 방어 회로가 완전히 우리 손에 들어왔어요!]

윤아영의 손가락이 키보드를 미친 듯이 두드리는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잠깐만요, 진혁 씨. 요새의 내부 데이터베이스를 스캔하는 중인데…… 재미있는 게 잡혀요.]

"뭐지?"

[이 물류 요새, 단순한 보급고가 아니에요. 티타늄 그룹이 1계급 특권층에게 배포하려던 최신형 생체 코어와 '아폴론 프로젝트' 관련 기밀 데이터의 백업 서버가 여기에 숨겨져 있었어요. 이걸 열면……!]

윤아영이 무언가를 입력하자마자, 요새 전체의 거대한 철문들이 일제히 굉음을 내며 닫히기 시작했다.

콰더더더등-!

상층부 본부에서 파견된 증원 부대가 진입하려던 통로가 완전히 차단되었고, 요새 내부의 모든 포탑과 자동 방어 시스템의 조준선이 반대로 돌려졌다.

"여기서부터는 우리 구역이다."

진혁이 낮게 읊조리며 통제실 창가로 걸어 나갔다.

창밖 아래로는, 햇빛조차 차단된 채 영원한 밤의 디스토피아에 갇혀 있던 신서울 하층민들과 니르바나의 전사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상층부의 마천루 숲으로 밀려드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불야성을 이루던 상층 마천루의 네온사인들이 진혁이 장악한 물류 요새의 제어권에 의해 차례차례 꺼지기 시작했다.

거대 자본과 기술로 수백 년간 인류를 억압해 온 티타늄 그룹의 영광스러운 도시에, 마침내 최초의 거대한 균열이 가고 있었다.

삐비비빅-!

그때, 진혁의 소매 속에서 윤아영이 급하게 개조해 준 통신용 단말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진혁 씨! 이상해요. 중앙 메인 서버 룸 쪽의 에너지가 갑자기 비정상적으로 요동치고 있어요. 셧다운시켰던 네트워크의 잔존 프로토콜이…… 스스로 재부팅되려고 해요!]

"재부팅?"

[네! 이건 인간의 명령이 아니에요. 이현도가 남겨둔 최후의 자율 실행 코드…… 아니, 그보다 훨씬 거대한 무언가가 깨어나고 있어요!]

진혁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는 통제실 창가에 몸을 기대며, 상층부 가장 높이 솟아 있는 티타늄 그룹의 본사 타워를 올려다보았다.

구름마저 뚫을 듯이 솟아오른 그 거대한 철탑의 최정상에서, 무엇인가가 붉은빛을 번뜩이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진무극은 죽었으나, 그들이 수백 년간 파헤쳐 온 마교의 진실과 '천마 프로토콜'의 본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라고 해라."

진혁이 개량된 천마검을 가볍게 쥐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의 등 뒤로, 니르바나의 전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요새 내부로 물밀듯 밀려들고 있었다.

신서울의 왕좌를 부수기 위한 진격은,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었다.

쿠구구구구-!

지축을 울리는 진동과 함께 상층부 외각 물류 요새의 거대한 격벽들이 차례차례 완전 봉쇄되었다.

티타늄 그룹의 철권통치 아래 수십 년간 썩어 문드러졌던 신서울의 심장부로, 마침내 민중의 함성과 저항의 불길이 거세게 파고들고 있었다.

"좋아! 외각 물류 요새의 메인 게이트 완전 폐쇄 완료! 상층부 본사에서 파견된 진압 부대들은 전부 우회로로 밀려나고 있어요!"

윤아영의 목소리가 귓속말처럼 진혁의 고막을 울렸다. 그녀의 손길 아래서 신서울 상층부의 네트워크는 이미 반쯤 강탈당한 상태였다.

"비상 전력망도 우리 손에 들어왔어. 요새 내부의 레이저 포탑과 자동 방어 로봇들의 타겟팅 회로를 전부 재설정했다고요. 이제 이 구역 안에서 우리를 막을 수 있는 건 티타늄의 정예 팬텀 가드 외에는 없어요!"

송수연의 목소리도 뒤이어 무전기를 타고 날아왔다.

"진혁! 니르바나의 선발대가 요새 내부의 핵심 탄약고와 보급품 창고를 확보했다! 하층부에서 올라온 부상자들도 안전한 구역으로 전부 이송시켰어. 네가 열어준 이 거점 덕분에 우리에게도 비로소 싸울 만한 발판이 생겼다!"

목소리에는 벅찬 감격과 함께 뜨거운 투지가 서려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기업의 시설을 빼앗았다는 기쁨이 아니었다. 햇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하층 슬럼가의 쓰레기로 취급받던 이들이, 거대 자본이 지배하는 이 거대한 마천루의 허리를 직접 밟고 올라섰다는 역사적인 증거였다.

진혁은 요새 통제실의 거창한 유리창을 등지고 선 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시야에 가득 찬 상층부의 아스팔트 위로는 니르바나의 마개조 차량들과 저항군 전사들이 깃발을 흔들며 모여들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더 이상 두려움이 없었다. 오직 자신들을 짓밟았던 거대 악을 향한 분노와 해방의 열망만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진혁의 눈빛은 여전히 차갑고 예리했다.

전장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아니,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슈우우우- 콰아앙!

문득, 신서울 상층부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본사 타워 최정상에서 비정상적인 에너지 파장이 뿜어져 나왔다.

하늘을 뒤덮은 인공 구름이 사방으로 찢어지며, 거대한 핏빛 뇌전이 마천루의 첨탑 사이를 휘감았다.

삐비비빅-!

윤아영의 통신 단말기가 다시 한번 요란한 경고음을 토해냈다.

[진혁 씨……! 이상해요. 방금 포착한 데이터인데, 중앙 메인 서버 룸의 리부팅 코드가 단순한 자동 실행 프로그램이 아니에요.]

"말해라."

[이현도가 죽기 직전에 남겨둔 최후의 명령어와 연결되어 있어요. 그 인간이 구축해 둔 '천마 프로토콜'의 원본 데이터가…… 신서울 전체의 메인 코어 전력과 강제로 동기화되고 있어요!]

윤아영의 목소리에 미세한 떨림이 묻어났다.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셧다운시켰던 네트워크의 잔존 데이터들이 스스로 자가 증식하면서…… 무언가 엄청난 규모의 생체 에너지 반응을 일으키고 있어요. 마치 누군가가…… 아니, 무언가가 태어나려고 하는 것처럼요!]

"태어난다?"

[네! 티타늄 그룹이 1,000년 전 마교의 유골과 이현도의 생체 공학 기술을 융합해 만들려던 '최종 그릇'의 프로토 타입 기억나죠? 진무극이 쓰려다 당신한테 박살 났던 그 숙주 말이에요.]

윤아영의 호흡이 가빠졌다.

[그게 아니에요! 진무극이 가졌던 건 완제품이 아니라 미완성형이었어. 진짜 '완성형'은 따로 있었던 거예요! 이현도는 처음부터 본사 타워 지하의 메인 격리실에 진짜 '최종 그릇'을 숨겨두고 있었어!]

두둥-!

그 순간, 진혁의 머릿속을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크로노스 바이오 제2연구소를 털 때 발견했던 수많은 클론 배양조와, 그들이 남긴 알 수 없는 에러 로그들. 그리고 진무극이 죽는 순간까지 집착했던 '불멸의 육체'에 대한 집념.

진무극은 죽었지만, 그들이 수백 년간 갈고닦아 온 마교의 사악한 기술과 자본의 광기는 아직 소멸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스템의 통제를 벗어난 채, 더욱 기괴하고 폭력적인 형태로 부활하려 하고 있었다.

"하."

진혁이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입꼬리가 비틀리며 섬뜩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내가 직접 부수고 올라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계 찌꺼기들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단 말이지."

[진혁 씨, 어떻게 할 거예요? 지금 중앙 타워 쪽의 에너지 출력이 초당 수천 MW씩 폭등하고 있어요! 이대로 두면 신서울 전체가 거대한 폭발에 휘말리거나, 혹은…… 그 괴물이 완전히 눈을 뜨고 말 거예요!]

윤아영의 다급한 목소리를 뒤로한 채, 진혁은 손에 쥐고 있던 개량형 천마검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검신을 따라 흐르는 칠흑의 마기와 푸른 뇌전이 얽히며 미세한 진동음을 토해냈다. 5만 MW를 넘나드는 단전의 에너지가 그의 혈관을 타고 맹렬하게 요동쳤다.

시스템의 도움 따위는 처음부터 필요 없었다.

천마 프로토콜이라는 거대한 족쇄는 이미 완전히 박살 낸 지 오래였다. 남은 것은 오직 자신의 의지, 그리고 적들의 목을 베어버릴 검뿐이었다.

"막을 필요는 없다."

진혁의 목소리가 통신망을 통해 윤아영과 송수연의 귀에 동시에 박혔다.

"그 기계 찌꺼기가 무엇을 꾸미든, 기어 나오고 싶다면 직접 끌어내 주면 된다. 그것이 마교의 잔재든, 천마의 유령이든 간에."

쿠구구구구-!

진혁의 발밑에서 폭발적인 마기가 터져 나왔다.

[마광신보 - 극(極)].

쾅-!

진혁이 서 있던 요새 통제실의 강화 유리창이 억억 조각으로 산화하며 박살 났다.

그의 몸이 거대한 칠흑의 유성과도 같은 잔상을 남기며 상층부 외각 물류 요새의 옥상을 박차고 올랐다. 목표는 단 하나, 신서울의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오른 티타늄 그룹의 본사 타워 최정상이었다.

"전군 진격한다!"

송수연의 악에 바친 함성이 무전기를 타고 울려 퍼졌다.

니르바나의 전사들과 저항군의 장갑차들이 일제히 포문을 열며 상층부 내부를 향해 거침없이 돌진했다.

빛과 자본의 도시, 신서울의 가장 어둡고 깊은 곳에서 태어난 '진짜 천마'의 검이, 이제 마지막 적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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