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화 천상관문의 포화
치이익—!
신서울의 밤하늘은 구중궁궐의 암흑보다 깊고 차가웠다. 하층 슬럼가의 형광빛 네온사인과 시뻘건 공업지대의 화염은 아득한 아래로 밀려나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상층 마천루를 지탱하는 거대한 철근과, 눈이 멀 정도로 찬란한 은빛 합금의 장벽뿐이었다.
그 정중앙.
제1계급의 특권층들이 거주하는 마천루의 현관이자, 하층민의 접근을 영구히 차단하기 위해 세워진 철옹성 같은 요새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름하여 천상관문(天上關門).
[SYSTEM WARNING: 경고. 고고도 대공 방어망 및 대기갑 요격 레이더 가동 중.]
[현재 위치: 신서울 상층부 제1계급 진입로 - 천상관문 전면.]
[목표와의 거리: 1,200m.]
HUD는 꺼져 있었다.
강진혁의 망막에 반짝이던 인공지능의 시각 보조 유저는 영구히 셧다운된 지 오래였다. 시스템의 냉정한 목소리도, 잔여 전력량을 계산하던 기계적 경고음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 상관 없었다.
오히려 홀가분했다.
부웅—!
관문 상공의 거대한 회전식 철갑 돔이 열리며, 티타늄 그룹의 정예 대기갑 수송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초대형 제트 엔진의 출력을 백분 활용해 수직으로 부양한 수송정들의 하단부에서 기갑 배기구의 화염이 이글거렸다.
콰아아앙!
기체 문이 열리며 쏟아져 나온 것은 단순한 보병이 아니었다.
일반 전차의 장갑판을 맨손으로 찢어버릴 수 있는 중장갑 사이보그 처형수들과, 허공을 자유로이 활주하며 고주파 레이저를 난사하는 스텔스 드론 군세였다.
"침입자 확인! 궤멸시켜라!"
"목표는 생체 코어 출력 4만 MW를 상회하는 괴물이다! 화력을 아끼지 마라!"
드론들이 일제히 붉은색 조준점인 락온(Lock-on) 레이저를 진혁의 눈앞에 박아 넣었다.
수천 발의 유도 미사일과 고주파 탄환이 빗발치듯 날아오며 사방의 공간을 완전히 메웠다. 거대한 불의 장벽이 진혁의 퇴로를 사방에서 조여 들었다.
공간이 찢어지는 듯한 기압의 변동.
보통의 초인이라면 그 탄막의 압도적인 화력에 짓눌려 형체도 없이 증발했을 터였다.
그러나 강진혁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맺혔다.
"시끄럽군."
투둑.
진혁의 목덜미와 손목을 따라 흐르던 은빛 회로 선이 짙은 흑색 마기로 물들었다.
단전에서 요동치는 42,500 MW의 폭발적인 에너지가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시스템의 제어가 사라진 자리를 메운 것은, 순수한 무인으로서 단련해 온 경지의 극점이자 육체적 본능이었다.
보법이 발동했다.
[마광신보(魔光身步) - 극(極)]
슈우우웅!
잔상이 남았다. 아니, 잔상조차 남을 수 없을 만큼 빛의 궤적이 지워졌다.
진혁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치는 순간, 그가 서 있던 자리의 대리석 바닥이 수만 톤의 기압을 이기지 못하고 거대한 분화구처럼 함몰되며 박살 났다.
쾅-! 쾅쾅쾅쾅-!
날아오르던 수천 발의 유도 미사일이 허공에서 서로 충돌하며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불티가 비처럼 쏟아지는 그 한가운데를, 강진혁은 오직 맨몸과 칠흑의 마기 방벽 하나만으로 뚫고 들어갔다.
"저, 저 자식 어디 갔어?!"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다! 속도가 음속을 초과했다!"
수송정 내부에서 당황한 대기갑 병사들의 목소리가 통신망을 타고 새어 나왔다.
그들의 시야에 포착된 것은 이미 거대한 사신(死神)의 형상이었다.
피융-! 피융-!
스텔스 드론들이 일제히 푸른색 고주파 레이저를 발사해 진혁의 사각을 노렸다.
장갑을 순식간에 녹여버릴 수 있는 고열의 에너지 포격.
하지만 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시시하군."
손에 쥔 개량형 천마검(天魔劍).
천우진이 직접 깎아 만들고, 진혁이 적들의 에너지를 흡수하며 진화시킨 그 검신 위로 칠흑의 마기와 푸른 뇌전이 동시에 얽혀들었다.
[뇌전마강(雷電魔剛)]
지직- 지지직-!
검끝에서 터져 나온 뇌전의 파동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스텔스 드론들의 전자기 회로를 일순간에 마비시켰다.
드론들의 스텔스 기능이 해제되며 은색 기체들이 허공에 본모습을 드러냈다.
진혁의 손목이 가볍게 호선을 그렸다.
스으윽- 툭.
공간을 가르는 검풍(劍風)이 사방으로 폭발하듯 뻗어나갔다.
단 한 번의 휘두름. 그 궤적에 스친 수백 대의 스텔스 드론이 종이 쪼가리처럼 두 동강이 나며 불타는 유성처럼 아래로 추락했다.
콰아아앙! 콰지지직-!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드론의 잔해 속에서, 진혁의 시선이 천상관문의 거대한 철갑 문을 향했다.
"다음은 너희 차례인가."
아수라 마장과 처형 병기들이 포진해 있는 관문의 안쪽.
그곳에서부터 대지를 뒤흔드는 무거운 기계음과 함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중압감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진혁은 검을 치켜들며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상층 마천루를 향한 진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쾅-! 콰앙-!
추락하는 스텔스 드론의 잔해들이 천상관문의 두꺼운 강철 바닥에 부딪히며 사방으로 시뻘건 파편을 튀겼다.
불티가 흩날리는 와중에도 티타늄 그룹의 대기갑 수송대들은 물러설 줄 몰랐다.
"포격 중단하지 마라! 잔해를 뚫고서라도 저 괴물을 분쇄해!"
"중장갑 사이보그 처형수, 전방 돌격 전개!"
수송정의 후미 출입구가 굉음과 함께 열리며, 인간의 형태를 아득히 초월한 거구의 기계 병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일반인의 몇 배에 달하는 근육 조직 대신 고밀도 티타늄 합금 프레임과 고출력 유압 실린더로 전신을 도배한 사이보그들이었다. 그들의 가슴팍에 박힌 생체 코어는 각각 6,000 MW를 상회하는 출력을 뿜어내며 주변의 공기를 뜨겁게 달구었다.
쿠구구구구-!
지면이 진동했다.
수십 기의 처형수들이 일제히 발을 구르며 진혁을 향해 돌진했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의 대리석 바닥은 거대한 폭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움푹 파여 나갔다. 단순한 이동만으로도 소형 지진을 일으키는 수준의 물리력이었다.
하지만 진혁의 표정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을 뿐이었다.
"기계 덩어리들에 영혼을 집어넣어 봤자, 결국 쓰레기는 쓰레기일 뿐이다."
진혁의 눈동자가 암흑보다 깊은 칠흑빛으로 번뜩였다.
시스템의 보조 없이, 오직 자신의 심장박동과 단전의 기혈 흐름만으로 세상을 인지한다.
공기의 유동, 적들의 근육 수축 타이밍, 그리고 그들이 장착한 생체 코어의 미세한 공진 주파수까지 전부 감각의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직관적으로 머릿속에 박혀 들어왔다.
쉬익-!
정면으로 돌진해 오던 첫 번째 처형수가 거대한 철퇴를 치켜들며 내리꽂았다.
공기를 찢는 폭음과 함께, 철퇴의 헤드에 장착된 고주파 진동 부스터가 작동했다.
방어막이든 육체든 분자 단위로 으깨어 버리겠다는 의도가 담긴 일격.
그러나 진혁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공격의 정중앙으로 몸을 던졌다.
[천마무상체(天魔無相體)]
쿠우우웅-!
처형수의 거대한 철퇴가 진혁의 어깨에 직격했다.
지면이 쩍 갈라지며 엄청난 충격파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고, 터져 나온 풍압이 주변의 드론 잔해들을 먼지처럼 날려버렸다.
"명중했다! 적의 쇄골이……!"
처형수의 입에서 환희에 찬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도 잠시였다.
뚜둑, 우두둑-!
철퇴를 쥔 처형수의 거대한 유압 의수가 멈춰 섰다.
진혁의 어깨를 강타한 철퇴의 헤드가, 반대로 찌그러지며 사방으로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진혁의 몸을 감싼 것은 단순한 나노 장갑이 아니었다.
42,500 MW의 출력을 온전히 압축해 밀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린 칠흑의 마기와, 근골격계와 완벽하게 동기화된 마기 방벽의 일체화였다.
적의 공격 에너지는 진혁의 몸에 닿는 순간, 흡원천공의 역류 원리에 의해 오히려 처형수 자신의 팔을 타고 거꾸로 흘러들었다.
"크아아악?!"
처형수의 생체 코어가 과부하로 인해 시뻘건 경고등을 깜빡였다.
진혁이 차갑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받아라."
슈우우욱-!
진혁의 손이 뱀의 혀처럼 뻗어나가 처형수의 가슴팍을 움켜쥐었다.
우드득-!
두꺼운 티타늄 장갑판과 인공 갈비뼈가 종이장처럼 구겨지며 생체 코어의 노출된 단자가 손에 잡혔다.
[흡원천공(吸元天功) - 개량(改)]
지이이지직-!
처형수의 코어 안에 응축되어 있던 6,000 MW의 에너지가 강제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단전의 출력이 요동쳤다. 42,500 MW였던 수치가 순식간에 43,200 MW, 44,000 MW를 향해 치솟았다.
"멈춰……! 내 코어가…… 흡수당하고 있어……!"
처형수의 눈동자에 내장된 붉은 광채가 순식간에 꺼져갔다.
단 몇 초 만에 체내의 모든 에너지를 강탈당한 거구의 기계 병사는 쇠잔한 고철 덩어리가 되어 바닥으로 털썩 주저앉았다.
주변에서 돌진해 오던 다른 처형수들과 블랙 가드들의 움직임이 일순간 멈췄다.
그들의 시선에 담긴 것은 경악이었다.
괴물.
저 남자는 단순히 무력이 강한 것이 아니었다. 적의 에너지를 마기로 정제해 자신의 것으로 삼는,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파괴의 화신 그 자체였다.
"목표의 에너지 출력이 또다시 상승했다! 비정상적이다! 저건 인간이 아니야!"
"사격해! 모든 화력을 집중해 소멸시켜라!"
관문 상공의 회전식 포탑들이 일제히 총구 방향을 돌렸다.
메가와트 급의 고출력 플라즈마포와 대전차 미사일들이 일제히 불을 뿜으며 진혁을 향해 쏟아졌다. 사방이 불바다로 변했고, 폭발의 섬광이 밤하늘을 대낮처럼 환하게 밝혔다.
쾅! 쿠구구구구-!
폭풍 속에서 진혁의 형상이 다시 한번 튀어나왔다.
지치지 않았다. 오히려 적의 에너지를 흡수할수록 그의 단전은 더욱 뜨겁게 타올랐고, 혈관 속의 마기는 폭포수처럼 거칠게 요동쳤다.
진혁은 눈앞을 가로막는 플라즈마 장막을 향해 개량형 천마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검신에 엉겨 붙은 칠흑의 마기와 푸른 뇌전이 융합하며 거대한 검강(劍剛)의 형상을 빚어냈다.
시스템의 도움 따위는 처음부터 필요 없었다. 오직 천년 전 마교의 유골 데이터 속에서 스스로 깨달은 운기의 궤적과, 이 시대의 철제 지배자들을 짓밟겠다는 단 하나의 의지만이 존재했다.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
[만법귀마(萬法歸魔) - 파동 반사(波動反射)]
지이잉- 웅!
진혁의 검끝에서 기묘한 주파수의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 파동이 관문 전면에 펼쳐져 있던 적들의 플라즈마 방어막과 부딪히는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방어막의 공진 주파수와 정확히 일치하는 파동이 적들의 시스템 내부로 역류한 것이다.
지지직- 쾅! 쾅쾅쾅-!
천상관문을 지키고 있던 거대한 방어 기제들과 포탑들이 스스로의 과부하를 이기지 못하고 연쇄적으로 폭발했다.
사방에서 불길이 치솟고, 관문의 철갑 문이 중앙부터 쩍 갈라지며 내부의 흉측한 실루엣을 드러냈다.
먼지 구름 속에서 걸어 나오는 진혁의 발소리가 쿵, 쿵, 하고 무겁게 울렸다.
그의 칠흑 같은 흑안은 이미 상층 마천루의 가장 깊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방어선은 끝이다."
진혁이 검을 가볍게 털어내며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는 관문 전체를 진동시키며 티타늄 그룹의 잔당들에게 공포의 서곡을 울리고 있었다.
콰아아앙-!
마침내 천상관문의 거대한 철갑 문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며, S급 중장갑 엑소스트 수트를 착용한 관문 수호대장 바르바토스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