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전용 사이트예요. 댓글·로그인·좋아요는 준비 중이에요.
‹프로토콜: 천마 · 80화목차

제80화 상층부 진입로 '천상관문'

붉은빛으로 물든 티타늄 타워의 상층부.

공기의 질감부터가 달랐다. 하층 슬럼가의 매캐한 매연과 화학 약품 냄새는 찾아볼 수 없었다. 철저하게 정화된 무균 공기, 그리고 하층에서는 사치품으로 취급받는 순수한 산소가 1계급 특권층의 폐를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고결한 향유도 잠시뿐.

콰아아앙-!

강진혁의 발길질 한 번에 100층으로 통하는 강화 티타늄 방화문이 종이장처럼 구겨지며 안쪽으로 튕겨 나갔다.

[시스템 간섭: 영구 차단.]

[단전 코어 출력: 40,000 MW (유지 중).]

인공지능의 보조 HUD가 꺼진 지 오래였다. 이제 강진혁의 시야를 채우는 것은 차가운 시스템 문구가 아니라, 오롯이 자신의 눈으로 포착한 현실의 시각 정보와 핏속에서 들끓는 마기(魔氣)의 흐름뿐이었다.

그것은 불편하기는커녕, 오히려 완벽한 자유였다.

"후우……."

진혁이 낮게 숨을 내쉬자, 입술 사이로 검붉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단전에서 요동치는 4만 마력의 출력은 그의 심장을 거쳐 전신의 혈관을 폭발적인 속도로 순환하고 있었다.

챙그랑, 챙강!

부서진 문지방 너머로 수십 구의 잔해들이 바닥을 굴렀다. 백무현과의 사투, 그리고 이현도가 남긴 그릇의 잔해들을 짓밟고 올라온 그에게 남은 것은 단 하나였다.

티타늄 그룹의 심장부, 그리고 이 모든 디스토피아의 뿌리.

탁.

진혁의 군화가 1계급 상층부의 대리석 바닥을 밟았다.

그 순간이었다.

슈우우우- 콰아아앙!

정면으로 뻗은 수백 미터 길이의 거대한 회주랑(回主廊). 양옆의 화려한 조각상들이 일제히 뒤로 젖혀지며, 그 안에서 차가운 금속 광채를 번뜩이는 포신들이 튀어나왔다.

--목표물 식별 완료. 침입자 강진혁.

--제1계급 방어 프로토콜 [천상관문(Sky Gates)] 가동.

--생체 코어 출력 100% 개방. 사살 허가 승인.

기계적인 음성이 타워 전체에 울려 퍼졌다.

티타늄 그룹의 마지막이자 최강의 방어선, '천상관문'이 그 거대한 틀을 드러냈다.

기존의 블랙 가드나 공업지대의 병력과는 차원이 달랐다. 천상관문 전역에 배치된 것은 4세대 생체 코어를 탑재한 '아스모데우스' 시리즈 중장갑 기갑 보병들이었다. 높이 3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기갑병들은 온몸에 고주파 플라즈마 실드가 칭칭 감겨 있었고, 그들의 손에는 도시 하나를 순식간에 재로 만들 수 있는 대전차 플라즈마 개틀링건이 들려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슈우우웅-!

공기와의 마찰음을 지우며 머리 위 공중으로 은빛의 무수한 그림자들이 흩어졌다.

스텔스 암살 드론 '팬텀 레이븐' 군단이었다. 레이더망에도 잡히지 않는 광학 미채를 두른 채, 수천 마리의 강철 까마귀들이 진혁의 사방을 촘촘하게 포위했다.

-삐비빅, 삐비빅!

시야에 보이지 않는 공기 속에서 적외선 레이저 유도선들이 진혁의 몸을 난도질하듯 겨누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사형(死刑)의 진형.

이곳은 돌파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철벽의 요새였다.

하층민들이 꿈꿔 마지않는 상층부의 낙원은, 실상은 인간을 도살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대한 처형장이었던 것이다.

"……하."

진혁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서늘하고도 잔인한 미소였다.

그는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손에 쥔 '천마검'의 검병을 더 강하게 움켜쥐었다. 검신을 따라 흐르는 푸른 뇌전과 칠흑의 마기가 서로를 물어뜯듯 거칠게 요동쳤다.

"낙원 따위를 꾸며놓고 숨어 있더니. 결국 밑바닥에 있던 쓰레기들보다 더 추악한 살인 기계들을 모아놓은 꼴이군."

-휭-!

찬바람이 회주랑을 쓸고 지나갔다.

천상관문의 대기갑 중장갑 군단이 일제히 총구를 겨눴다. 그들이 내뿜는 플라즈마의 고열 때문에 주변의 대리석 바닥이 녹아내리며 끈적한 액체로 변해 흘러내렸다.

아스모데우스 기갑병 중대장이 거대한 스피커를 통해 고압적인 목소리를 토해냈다.

--강진혁. 네가 아무리 초월천마경에 도달했들, 이곳은 신서울의 전력이 집중된 천상관문이다. 4만 마력 따위의 출력이 무슨 소용인가. 네 육체는 곧 플라즈마 증기와 함께 기화될 것이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투항.

그 단어에 진혁의 눈빛이 더욱 깊고 어두운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투항이란 단어는, 그들이 실험체들을 폐기할 때 쓰던 낱말이었다.

"투항?"

진혁이 중얼거리며 천천히 오른발을 뒤로 물렸다.

마기가 그의 온몸을 감싸며 거대한 기류를 형성했다. 단전의 4만 MW 출력이 고요하게 진동하다가, 이내 심장박동과 하나로 동기화되었다.

둠-! 둠-! 둠-!

심장이 뛸 때마다 회주랑 전체의 조명이 파르르 떨렸다.

"내 사전에 그런 단어는 없다."

즈으으응-!

천마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뇌전이 공기 중의 수분을 순식간에 증발시키며 백색의 플라즈마 스파크를 사방으로 튀겼다.

"이 관문을 부수고, 네놈들의 목을 베어주마."

--전군 발사!

대대장의 명령과 동시에, 천상관문의 모든 방어선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콰아아앙-! 콰콰콰콰콰-!

수백 문의 플라즈마 개틀링건에서 쏟아진 고열의 광탄들이 회주랑 전체를 하얗게 메웠다. 공간이 왜곡될 정도의 엄청난 화력이 진혁이 서 있는 곳을 향해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스텔스 암살 드론 군세가 위를 가리며 일제히 초고주파 레이저를 발사했다.

도망칠 곳도, 숨을 곳도 없는 사방의 폭격.

신서울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그 어떤 무인도 이 천상관문의 일제 포화를 정면으로 받아내고 살아남은 자는 없었다.

하지만 강진혁은 물러서지 않았다.

사방을 채운 플라즈마의 홍수 속에서, 그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마광신보(魔光身步) - 극(極).'

파아앗-!

진혁의 형체가 순간적으로 두 개, 아니 세 개로 갈라졌다. 아니,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움직인 잔상(殘像)이 공간에 각인된 것이다.

쾅쾅쾅쾅쾅-!

진혁이 있던 자리가 대폭발을 일으키며 수천 도로 달궈진 쇳물과 파편으로 흩어졌다. 폭풍의 중심부, 그 사지의 포화 속에서 칠흑의 잔상이 일직선으로 수백 미터를 가로질렀다.

--목표물 소실?! 아니, 접근 중이다! 속도가 음속을 초과했다!

--요격해! 전부 밀어내라!

기갑병들이 당황하며 포신을 돌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진혁의 몸을 감싼 [천마무상체]의 마기 방벽이 플라즈마의 고열을 튕겨내며 그의 전진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을 강제로 밀어붙였다. 흡원천공의 응용 원리가 주변의 에너지장을 역으로 흡수하며 그의 단전 출력을 오히려 4만 2,000 MW까지 끌어올렸다.

쿠구구구구궁-!

"첫 번째다."

진혁의 입에서 나지막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그의 손에 들린 천마검이 허공을 갈랐다.

단 한 번의 휘둠.

하지만 그 궤적에는 칠흑의 마기와 푸른 뇌전, 그리고 4만 마력의 육체적 폭발력이 완벽하게 압축되어 있었다.

[뇌전마강 - 십자참(十字斬).]

스으으으윽- 펑!

가로세로로 뻗어 나간 거대한 검기(劍氣)가 천상관문의 중앙을 강타했다.

공간이 반으로 쪼개지는 듯한 파열음과 함께, 최중장갑을 두른 아스모데우스 기갑병 네 마리가 단숨에 십자로 양단되며 폭발했다.

철갑이 종이처럼 찢겨 나가고, 그 안에 장착되어 있던 생체 코어가 강렬한 스파크를 튀기며 터져 나갔다.

퍼엉-! 콰아앙!

천상관문의 단단한 철문과 장갑벽이 무너지며, 상층 마천루로 통하는 거대한 관문의 서막이 열렸다.

진혁은 흩날리는 쇳가루와 화염 속에서 서늘하게 검을 치켜들며 전방을 응시했다.

그의 시선 끝에는, 1계급 상층부의 화려한 불빛 속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진짜 적들의 기척이 묵직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방어선 붕괴! 아스모데우스 중대, 전멸!

--제2 방어 진형 구축! 모든 드론은 강진혁의 사각을 포착하라!

천상관문의 관제탑 내부에서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붉은 경보등이 미친 듯이 깜빡이며 회주랑 전체를 피투성이처럼 물들였다. 그 붉은 빛을 받으며, 강진혁은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스텔스 암살 드론 군세가 일제히 초고주파 레이저의 빗줄기를 쏟아부었다.

방어막을 찢고 살점을 도려내려는 악독한 궤적들. 하지만 진혁은 피하지도, 막지도 않았다.

오직 [마광신보 - 극(極)]의 경지로 공간을 짓밟으며 앞으로 질주할 뿐이었다.

슈우우우웅-!

진혁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간 레이저 빔이 뒤쪽의 두꺼운 장갑벽을 종이장처럼 녹여버렸다. 살갗이 따끔거릴 정도의 고열이 스쳤지만, [천마무상체]의 유기적 재구성 능력이 즉각 세포를 재생하며 상처를 지워버렸다.

진혁의 눈앞에 거대한 방패를 든 두 번째 기갑병 소대가 나타났다.

그들의 손에 들린 고주파 진동 나이프가 푸른 빛을 내뿜으며 진혁의 목을 노리고 쇄도했다.

"방해다."

진혁이 낮게 뇌까리며 천마검을 가로로 뉘었다.

쿠구구궁-!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4만 2,000 MW의 마기가 검신을 타고 폭발적으로 흘렀다. 단순한 검격이 아니었다. 마기와 현대 공학적 플라즈마 원리를 강제로 융합한 [만법귀마]의 파동이 기갑병들의 방어 회로를 직격했다.

콰지지직-!

"크아아악……!"

기갑병들의 코어에 내장된 플라즈마 실드가 역류하며 내부에서부터 폭발을 일으켰다.

수십 톤에 달하는 거구의 기갑병들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다 이내 사방으로 산산조각 흩어졌다.

파편이 비처럼 쏟아지는 그 한복판을 뚫고, 진혁은 마침내 천상관문의 끝에 도달했다.

거기에는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오른 1계급 상층부의 거대한 철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 문 위쪽에는 티타늄 그룹의 상징인 거대한 은색 독수리 로고가 차가운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침입자 저지 실패.

--마지막 프로토콜, [오메가 디펜스]를 활성화합니다.

치이익-!

철문의 이음새에서 고압의 냉각 가스가 뿜어져 나왔다.

그와 함께 문 전체가 스르륵 갈라지며, 그 안에서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이질적인, 차원이 다른 기척이 흘러나왔다.

기계의 쇳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인간의 숨소리, 그것도 비정상적으로 증폭된 초인의 살기와 마기(魔氣)가 뒤섞인 불길한 기운이었다.

클릭, 컥-!

철문 안쪽의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걸어 나왔다.

키가 삼 미터에 육박하는 거구. 온몸에는 티타늄 합금 장갑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듯한 검붉은 근육 섬유와 고대 마교의 문양이 새겨진 생체 갑주가 융합되어 있었다.

그의 얼굴은 반쯤 기계화되어 있었으나, 드러난 한쪽 눈은 핏빛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강, 진혁.

--네놈이…… 마침내 여기까지 기어 올라왔구나.

쉰 목소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음압이 회주랑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것은 티타늄 그룹의 최고 사령관 중 하나이자, 이현도가 숨겨둔 최종 처형 병기인 '아수라 마장(魔裝)'의 현현이었다.

진혁은 그 거대한 존재를 바라보며 천천히 발걸음을 멈췄다.

숨이 턱 막힐 정도의 중압감. 하지만 진혁의 얼굴에는 두려움 대신 짙은 냉소가 떠올랐다.

"이현도가 남긴 마지막 장난감인가."

진혁이 천마검을 들어 올려 아수라 마장의 미간을 겨누었다.

검끝에서 튀는 푸른 뇌전이 어두운 복도를 환하게 밝혔다.

"지저분하게 꼬여 있는 그 썩어빠진 뿌리도, 오늘로 완전히 뽑아주마."

아수라 마장이 입꼬리를 비틀며 흉측한 웃음을 흘렸다.

그의 손에 쥐어진 거대한 양손 대검이 칠흑의 마기를 뿜어내며 바닥을 짓이기기 시작했다.

콰구구구궁-!

두 초인의 충돌을 앞두고, 상층부 전체가 거대한 진동에 휩싸였다.

[시스템 경고: 메인 타워 에너지 동기화율 99.9%.]

[전투 구역 한계 초과.]

윤아영의 목소리가 통신기를 통해 진혁의 귓가에 스치듯 울렸다.

--진혁 오빠! 상층부 전체의 에너지가 그 녀석의 코어로 몰리고 있어! 조심해, 출력 규격이 5만 MW를 넘었어!

5만 MW.

하층민 320만 명의 생체 에너지를 흡수하고도 모자라, 신서울 전체의 전력을 짜내어 만든 초인의 극한.

하지만 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5만이든, 10만이든 상관없다."

진혁이 단전을 강하게 조이며 마기를 폭발시켰다.

심장의 고동이 시계추처럼 정확하게 핏속의 혈류를 밀어올렸다.

단전 코어 출력: 42,500 MW.

그리고 그를 뛰어넘는 무인의 의지.

"내 검보다 무겁겠나."

푸스스스-!

진혁의 온몸을 감싼 칠흑의 마기가 기둥처럼 치솟으며 천상관문의 천장을 까맣게 물들였다.

두 개의 거대한 마기가 정면으로 충돌하기 직전의 정적.

그 찰나의 순간, 진혁의 검이 먼저 움직였다.

다음 화 바로보기 ›
이 작품, 여기까지 어떠셨나요? ★ 별점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