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8화 저항군의 확장과 무기 재구현
타오르는 불길이 신서울 제2계급 공업지대의 밤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거대 메가 코퍼레이션 ‘티타늄 그룹’의 철옹성 같던 방위선이 무너진 자리에는, 더 이상 기업의 사육 가축처럼 살아가기를 거부하는 이들의 거친 함성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열어라! 방화문을 완전히 부숴버려!”
“저항군 만세! 니르바나가 상층부의 개들을 몰아내고 있다!”
쿠구구구궁—!
지축을 울리는 폭음과 함께 티타늄 그룹의 기계화 부대가 남긴 거대 장갑차들이 연쇄적으로 폭발했다. 그 잔해 사이로 수천, 수만 명의 하층 슬럼가 주민들과 불법 개조체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그들은 더 이상 햇빛조차 들지 않는 지하 500층의 시궁창에 갇힌 폐기물이 아니었다.
강진혁이라는 절대적인 존재가 열어젖힌 핏빛 길을 따라, 스스로의 손으로 목줄을 끊어낸 진짜 무인(武人)들이자 해방군이었다.
“송수연 총수! 제2구역의 메인 가스관과 전력 공급망이 완전히 우리 손에 들어왔습니다!”
니르바나 저항군의 간부 하나가 숨을 몰아쉬며 가죽 자켓을 휘날리며 달려왔다.
그의 앞에 선 송수연은 화염에 그슬린 붉은 머리를 쓸어넘기며 차가운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손에 들린 군용 대형 도검에서는 아직도 적들의 시꺼먼 생체 마기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방심하지 마라. 상층 마천루의 본대가 움직일 시간이다. 백무현의 블랙 가드가 완전히 소멸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야. 티타늄 그룹의 뿌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고 더럽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응이 폭발적입니다. 슬럼가 전체가 우리를 따르고 있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만 명의 자원자들이 의용군으로 합류하겠다고 줄을 섰습니다.”
송수연의 시선이 멀리 신서울의 최상층, 구름을 뚫고 솟아오른 티타늄 타워를 향했다.
그곳에서는 지금 강진혁이 전신 사이보그 총사령관 백무현을 상대로 인류의 상식을 초월한 사투를 벌이고 있을 터였다. 시스템의 지원 없이, 순수하게 자신의 오감과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만으로 세계를 부수고 있는 괴물.
‘진혁…….’
그녀는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강진혁이 위에서 세상을 찢고 있는 동안, 아래에 남겨진 그들이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단순한 폭동을 넘어, 신서울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거대한 세력의 그릇을 다지는 것.
“좋다. 합류하겠다는 자들은 전부 받아들여라. 단, 기업의 스파이나 잔당일 가능성이 있는 녀석들은 철저하게 스캔해. 천우진 교관이 있는 기술 지원 부스로 통솔을 맞추고.”
“알겠습니다!”
저항군의 확장은 비단 병력의 증가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티타늄 그룹이 수십 년간 독점해 온 희귀 광물, 플라즈마 에너지원, 그리고 군사 나노머신의 제조 공정들이 고스란히 니르바나의 수중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 공업지대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거대 테크니컬 베이스.
쾅! 콰앙—!
“거기 용접 불꽃 좀 더 세게 당겨! 온도가 3,000도를 넘어야 이 티타늄-카바이드 합금이 녹을 거 아니야!”
한쪽 눈에 안대를 찬 채, 몸 전체에 사이보그 의수를 두른 거구의 사나이가 거칠게 고함을 질렀다.
전(前) 티타늄 그룹 특수공작대 팀장이자, 현재는 강진혁의 전용 무기를 도맡아 제작하는 무기 장인, 천우진이었다.
그의 주변에는 수십 대의 자동 용접 로봇들이 쉴 새 없이 스파크를 튀기며 기괴한 형상의 금속 덩어리를 두드리고 있었다. 바닥에는 공업지대 전역에서 긁어모은 최상급 희귀 금속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교관님! 진혁 님이 상층부로 진입한 이후로 나노머신 회로의 데이터 피드백이 이상합니다. 출력이 너무 높아져서 일반적인 합금으로는 검이 견디지 못해요!”
옆에서 모니터를 두드리던 윤아영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다급하게 외쳤다.
그녀의 핑크빛 숏컷 머리는 며칠 밤낮을 서버실과 공단 베이스를 뛰어다닌 탓에 헝클어져 있었지만, 그 눈빛만큼은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천우진이 콧방귀를 뀌며 거대한 철제 망치를 바닥에 쿵 내리찍었다.
“당연하지. 그 녀석의 단전 출력이 지금 4만 MW를 향해 치닫고 있는데, 평범한 군용 나노 회로가 버텨낼 재간이 있겠나? 자칫하면 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자가 호흡 붕괴로 팔뚝이 터져 나갈 거다.”
“그럼 어떻게 해요? 이대로라면 다음 페이즈에서 무기가 버티질 못해요.”
“걱정 마라. 애초에 평범한 무기를 만들 생각은 없었으니까.”
천우진이 작업대 중앙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강진혁이 슬럼가에서부터 사용해 온 [천마검]의 잔해와, 이번에 중앙 타워의 원자로에서 흡수한 고순도 플라즈마 코어의 파편이 엉겨 붙어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기계 장치가 아니었다. 고대의 마공과 현대 군사 공학이 충돌하며 빚어낸,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파괴의 아티팩트였다.
‘천마검(天魔劍) - 개량형(改).’
천우진은 자신의 의수를 움직이며 세밀한 레이저 커터로 검신에 새로운 회로를 각인하기 시작했다.
“진혁 그 놈은 시스템의 안내 따위는 이제 보지도 않는다더군. 오직 자기 심장의 박동과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마기만으로 싸우고 있어. 그렇다면 무기 역시 기계의 논리가 아니라, 그 놈의 살과 뼈처럼 움직여야 해.”
“살과 뼈처럼이요?”
“그렇다. 나노머신 회로를 단순히 전류를 전달하는 통로로 쓰는 게 아니야. 진혁의 흡원천공과 융합해, 적의 에너지를 베어낼 때마다 검 자체가 스스로 진화하고 재구현되도록 만드는 거지.”
이른바 [무한연성(無限鍊成)]의 원리를 하드웨어 수준에서 구현하는 작업이었다.
윤아영은 천우진의 설계를 모니터로 전송받아 실시간으로 양자 암호화 알고리즘을 입히기 시작했다.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홀로그램 키보드 위를 폭풍처럼 두드릴 때마다, 공중에 떠 있는 3차원 설계도 위로 시뻘건 마기와 푸른 뇌전의 궤적이 겹쳐졌다.
“좋아, 방화벽 프로토콜 연동 완료! 회로 동기화율 99.8%…… 이대로 가면 진혁 님이 다음 전투에서 마주할 그 어떤 방어막이라도 원자 단위로 분해할 수 있어요!”
“크흐흐, 그래야 내 제자답지.”
천우진의 입가에 흉터가 씰룩이며 거칠고 호쾌한 웃음이 번졌다.
그가 만든 것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티타늄 그룹이 수백 년 동안 쌓아 올린 과학의 폭력에 정면으로 맞서기 위해, 한 인간의 의지를 담금질하여 만든 ‘신들의 도살용 검’이었다.
바로 그때,
삐리리리- 삐리리리-!
작업대 구석에 놓여 있던 비상 통신용 터미널에서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윤아영이 즉시 고개를 돌려 화면을 확인했다. 그녀의 얼굴에서 장난스러운 기색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핏기가 싹 가셨다.
“이게 뭐야……?”
“무슨 일이지?”
“상층 마천루의 에너지 흐름이 완전히 뒤틀렸어요. 진혁 님이 지금 티타늄 타워 100층으로 진입했는데…… 그곳의 중앙 메인 서버에서 수십 개의 미확인 생체 코어가 동시에 반응하고 있습니다!”
화면 속 신서울 지도가 붉은색 경보음과 함께 난도질당하듯 깜빡였다.
그것은 단순한 적들의 증원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티타늄 그룹이 은폐해 왔던 가장 어두운 비밀, 1,000년 전 마교의 유골 데이터와 수많은 실험체들의 기억이 집약된 ‘진짜 최종 그릇’의 반응이었다.
천우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설마…… 회장 늙은이가 죽기 전에 숨겨둔 진짜 비상 스위치라도 건드린 건가?”
“아니요, 그보다 더 지독해요. 이 에너지는…… 신서울 전체의 하층민 320만 명의 생체 코어와 직결되어 있어요! 진혁 님이 그걸 끊어내지 못하면, 도시 전체가 공중분해되거나 혹은……!”
윤아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쿠구구구구궁-!
신서울 상층부의 하늘이 반으로 쪼개지듯 거대한 뇌명과 함께 시꺼먼 마기가 폭발했다.
그것은 땅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심장을 짓누르는 절대적인 압박감이었다. 공업지대의 철제 구조물들이 진동을 이기지 못하고 찢어졌고, 니르바나 저항군의 전사들조차 무릎을 꿇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 지독한 압도감 속에서, 천우진은 자신이 방금 다듬어낸 거대한 검을 번쩍 들어 올려 윤아영에게 던졌고, 동시에 창밖을 향해 소리쳤다.
“아영아! 당장 진혁 그 놈에게 이 무기를 올려보내라!”
“어떻게 요? 상층부는 지금 전면 봉쇄됐는데……!”
“내버려 두 마라. 그 놈은 이미 우리의 상상을 아득히 넘어선 곳에 있으니까.”
천우진은 찢어진 안대 너머로 시뻘겋게 타오르는 티타늄 타워의 정상을 노려보았다.
“이 검을 쥐는 순간, 그 놈은 비로소 진짜 ‘천마’가 될 테니.”
콰아아앙-!
공업지대의 하늘을 찢고 솟구친 한 줄기의 칠흑 같은 빛이, 상층 마천루의 거대한 어둠을 향해 사정없이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시각, 티타늄 타워 100층 최상층 집무실.
콰드득, 콰아아앙!
강철과 콘크리트가 종잇장처럼 구겨지는 소음이 타워 전체를 진동시켰다.
전신을 초고강도 사이보그 합금으로 개조한 백무현의 거대한 체구가 바닥에 처박히며 검은 피를 토해냈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중기관총은 이미 원자 단위로 분해되어 고철 덩어리로 전락한 지 오래였다.
“크큭…… 말도 안 되는…… 괴물 새끼…….”
백무현의 붉은 광학 눈알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티타늄 그룹의 블랙 가드를 이끄는 최정예 살인병기였다. 4세대 생체 코어와 특수 나노 장갑을 두르고 수많은 반란군과 무림 고수들을 도살해 온 그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가슴팍에는 강진혁의 손바닥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우두둑-!
“커헉……!”
“내게 남은 시간은 없다, 백무현.”
강진혁의 목소리는 감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얼어붙은 호수와 같았다.
그의 눈동자는 이미 인간의 그것이 아니었다. 시스템의 보조 HUD가 영구 차단된 채, 오직 2만 7천, 아니 4만 MW를 향해 폭등하는 단전의 마기만이 그의 시야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진혁은 백무현의 가슴에 박힌 손을 그대로 뽑아내며 흡원천공을 발동했다.
쭈우욱-!
“아아아악——!”
백무현의 몸속에 남은 마지막 생체 에너지와 나노 회로의 데이터가 시꺼먼 연기가 되어 진혁의 팔뚝으로 빨려 들어갔다. 전신 사이보그의 육신이 순식간에 바스러지며 회색 재로 변해 흩날렸다.
쿠구구구궁!
백무현이 소멸한 그 자리, 집무실의 안쪽에 숨겨져 있던 거대한 강화 유리 벽면이 저절로 스르륵 열렸다.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지금까지 진혁이 상대했던 어떤 적의 것과도 달랐다.
시퍼렇고 기괴한 푸른 뇌전과 핏빛 마기가 뒤엉킨 거대한 원형 플라즈마 배양액 탱크.
그 중심에, 진혁 자신의 얼굴과 완벽하게 똑닮은 형체가 잠들어 있었다.
‘……클론.’
아니, 단순한 클론이 아니었다.
이현도와 진무극이 1,000년 전 천마의 유골 데이터를 바탕으로 수십 년간 배양해 온, 영혼을 이식하기 위한 완벽한 ‘그릇’이자 최종 페이즈의 결정체였다.
배양액 탱크의 모니터가 붉은빛으로 깜빡이며 차가운 기계 음성을 뱉어냈다.
[SYSTEM ALERT: 최종 그릇 동기화율 89%.]
[신서울 하층 슬럼가 320만 명의 생체 코어 에너지를 연동, 각성 프로세스를 강제 가동합니다.]
위이이잉-!
타워 전체가 요동치며 바닥이 갈라졌다.
신서울 전역의 전력이 하층민들의 생체 코어로부터 빨려 올라와 이 거대한 배양 탱크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만약 이대로 저 그릇이 완전히 눈을 뜨고 진무극의 잔존 의식이나 이현도의 프로그래밍과 동기화된다면, 진혁이 지금까지 쌓아 올린 모든 무공과 복수의 서사는 한낱 도구의 부품으로 전락하게 될 터였다.
‘내 힘은 네가 준 기술이 아니다.’
진혁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말려 올라갔다.
그의 손에 쥐여진 천검(天劍)이 칠흑의 마기와 푸른 뇌전을 휘감으며 비명을 지르듯 떨려왔다.
바로 그때, 공업지대의 하늘을 찢고 날아온 한 줄기 검은 빛이 타워의 깨진 유리창을 뚫고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진혁의 손등에 정확히 감겨들었다.
파지지직-!
천우진이 깎아내고 윤아영이 양자 암호화로 연동한 [천마검 - 개량형(改)]이었다.
검신이 진혁의 손바닥과 맞닿는 순간, 그의 혈관을 타고 흐르던 4만 MW의 마기와 나노머신 회로가 완벽하게 하나로 동기화되었다.
더 이상 시스템의 허락도, 프로토콜의 계산도 필요 없었다.
오직 무인 스스로의 심장 박동과 의지만이 온 세상을 지배하는 순간이었다.
“오라.”
진혁이 낮게 읊조리며 검을 치켜들었다.
콰아아앙-!
배양 탱크의 유리가 산산조각이 나며, 그 안에서 눈을 뜬 '제2의 최종 그릇'이 시뻘건 살기를 뿜어내며 튀어나왔다.
도시 전체의 에너지를 등에 업은 그릇의 일격이 공간을 찢고 진혁을 향해 내리꽂혔다.
그러나 진혁의 눈빛은 흔들림조차 없었다.
그는 마광신보-극(極)의 보법으로 잔상조차 남기지 않고 공중으로 솟구치며, 단전의 모든 출력을 단 하나의 점에 집중시켰다.
“천마일검(天魔一劍).”
파지지직- 콰아아아궁!
칠흑의 마기와 푸른 뇌전이 융합된 거대한 검강이 신서울 상층부의 밤하늘을 두 쪽으로 갈라놓았다.
기계와 자본, 그리고 천 년의 음모가 얽힌 지옥 같은 디스토피아의 심장부가, 진짜 천마의 검끝 아래에서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