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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74화목차

제74화 심법의 부활

지지직――!

신서울 중앙 플라즈마 에너지 타워의 제어실.

공기를 가득 채우던 고압 플라즈마의 전류음이 불규칙하게 일그러졌다. 푸른빛과 붉은빛이 뒤섞인 공간 속에서 강진혁의 시야가 미세하게 떨렸다.

[Warning! 마기 감쇄 필드(Anti-Ma-Gong Suppression Field) 전개율 95% 돌파.]

[경고: 단전 내부 마기 압축률 저하. 나노머신 동기화율 88%로 하락.]

[시스템 보조 연산 회로의 속도가 60% 이상 제한됩니다.]

시스템의 경고음은 이제 진혁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이미 3화 전에 자발적으로 HUD의 자동 보조 기능을 끄고 오직 자신의 감각과 육체에만 의존해 온 그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한 연산 지연이 아니었다.

슈우우우――!

타워의 바닥재를 녹이며 피어오르는 냉각수와 함께, 제2의 최종 그릇이 서 있는 원형 유리 캡슐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장이 공간 전체를 무겁게 짓눌렀다.

마치 중력이 수십 배로 불어난 것처럼 혈관 속을 흐르던 마기가 끈적하게 엉겨 붙었다.

'이건 단순한 물리적 압력이 아니다.'

진혁의 검은 눈동자가 가라앉았다.

티타늄 그룹의 수석 과학자 이현도가 남긴 마지막 프로그래밍. 그것은 단순한 기계적 락(Lock)이 아니었다. 1,000년 전 천마의 유골 데이터에서 추출한 ‘마기 역류 파장’을 현대의 고주파 전자기력과 결합해 인간의 단전을 강제로 굳게 만드는 특수 주파수였다.

현대 무인들이란 결국 거대 기업이 심어준 '생체 코어'와 '나노머신'의 출력을 빌려 싸우는 기계의 부속품에 불과하다. 그들의 강함은 자본과 기술이라는 거대한 시스템 위에 세워진 모래성과 같다.

시스템이 멈추면 그들도 멈춘다.

콰아앙――!

그릇의 이마에 박힌 붉은 바코드가 번쩍이며 압도적인 기류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눈앞에 버티고 선 블랙 가드 정예 편대 4기가 진혁을 향해 일제히 고주파 블레이드를 치켜들었다. 감쇄 필드의 영향으로 진혁의 움직임이 둔해졌다고 판단한 것이다.

"죽어라, 실험체 07호."

기계음이 섞인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네 개의 은빛 섬광이 사방에서 진혁의 사각을 파고들었다.

초고속으로 좁혀져 오는 참격의 궤적.

일반적인 무인이었다면 이미 신경 회로가 마비되어 반응조차 하지 못했을 사선(死線).

하지만 강진혁은 그 자리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웅-.

외부의 시스템 보조가 차단되고 나노머신이 굳어지며 찾아오는 극심한 정적.

그 순간 진혁의 내면에서 다른 차원의 감각이 눈을 떴다.

'기계가 멈추면, 몸이 멈춘다?'

입꼬리가 비틀리며 냉소가 그려졌다.

천마 프로토콜은 도구일 뿐이다. 1,000년 전의 천마에게 이런 최첨단 시스템 따위는 없었다. 그들이 의존한 것은 오직 자신의 심장과 단전, 그리고 천지를 뒤흔드는 의지 단 하나였다.

[심법(心法)의 재정의.]

진혁의 심장이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툭, 툭, 투두둑――!

마치 거대한 북소리처럼 울리는 심장박동 소리가 제어실의 전자기 노이즈를 압도했다. 단전의 최저구역, 시스템의 간섭이 미치지 못하는 가장 깊은 심연에서 잠들어 있던 원천 마기가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크아아아!

진혁의 전신에 얽혀 있던 은빛 회로 선이 칠흑 같은 묵색(墨色)으로 물들었다.

감쇄 필드가 마기를 짓누르려 할수록 진혁은 오히려 그 억압을 역이용해 마기를 한 점으로 압축했다.

분석, 이해, 수련, 융합, 창조.

그 모든 과정을 거쳐 마침내 도달한 경지.

시스템의 눈이 멀어도 무인의 눈은 멀지 않는다.

"우매한 놈들."

진혁이 눈을 번쩍 떴다.

그의 흑안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사방을 집어삼킬 듯이 타오르는 순수한 마기의 불꽃이 눈동자 속에서 소용돌이쳤다.

콰아아아궁――!

진혁이 단 한 걸음을 내딛었을 뿐인데 발밑의 강화 콘크리트 바닥이 사방으로 방사형으로 붕괴했다.

감쇄 필드의 파장이 진혁의 몸 주변에서 으깨지며 비명을 질렀다.

쿠두둑, 쿠웅!

"크윽……?! 이게 무슨……!"

돌진해 오던 블랙 가드 중 한 명의 안면 모니터에 에러 코드가 폭발하듯 떴다.

시스템이 계산할 수 없는 출력이었다. 프로토콜의 도움 없이 순수하게 인간의 육체와 의지만으로 27,500 MW에 달하는 출력을 단전에서 다이렉트로 끌어올린 것이다.

진혁의 손에 쥐인 [천마검]이 시퍼런 뇌전과 칠흑의 마기를 동시에 토해냈다.

"만법귀마(萬法歸魔)."

나지막이 읊조린 음성과 함께 검이 가로로 스윽 그어졌다.

슈아아아아아악――!

거대한 파동 형태의 마기 감쇄 필드가 진혁의 검끝에서 뿜어져 나온 순수한 마기 파동과 부딪쳤다.

기계가 만들어낸 억압의 장벽은 인간의 극한 의지가 뿜어낸 원시적인 무공의 파도 앞에서 유리조직처럼 무력하게 산산조각 났다.

챙그라아아방!

감쇄 필드가 깨어지는 순간 사방으로 튀어 오른 충격파가 제어실의 천장 유리창을 전부 박살 냈다.

외부의 차가운 밤바람이 쏟아져 들어오며 타워 내부의 경보음이 귀가 찢어질 듯 울려 퍼졌다.

[경고! 마기 감쇄 필드 완전 소멸.]

[시스템 오류: 사용자 통제권 회복 불가. 대상의 출력이 규격 외 수치를 기록합니다.]

"시끄러워."

진혁은 잔해 속에서 멍하니 멈춰 선 블랙 가드들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 방벽은 이제 방어용이 아니었다. 그것은 접촉하는 모든 기계 회로와 생체 코어를 태워버리는 파괴의 오라였다.

콰직-!

가장 가까이에 있던 블랙 가드의 흉부 장갑이 진혁의 손에 그대로 붙잡혔다.

생체 코어를 보호하던 티타늄 합금 아머가 종이장처럼 찌그러지며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색 코어 에너지가 진혁의 손바닥을 타고 흡수되기 시작했다.

-흡원천공(吸元天功).

"크아아아악……!"

블랙 가드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그 소리는 진혁의 압도적인 기세에 묻혀 금세 사그라들었다.

코어의 출력이 강탈당하며 그의 몸은 순식간에 바짝 마른 미라처럼 변해갔다. 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 에너지를 자신의 단전으로 밀어 넣었다.

[단전 출력 상승: 27,500 MW → 28,100 MW.]

[신체 동기화율 100% 돌파.]

단 한 명의 코어를 흡수했을 뿐인데 진혁의 육체는 한계치를 아득히 넘어서는 폭발적인 활력을 얻었다.

이것이 바로 시스템의 도움 없이 스스로 완성한 신천마신공의 진면목이었다.

"다음."

진혁이 고개를 돌리자 남은 세 명의 블랙 가드는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그들의 시야에 비친 강진혁의 모습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천 년 전 신서울의 밤하늘을 공포로 물들였다는 전설 속의 '천마', 그 자체였다.

-콰광!

타워의 천장을 뚫고 치솟은 푸른 플라즈마 기둥 속에서 '제2의 최종 그릇'이 완전한 형태의 눈을 뜨며 포효했다.

그릇의 등 뒤로 신서울 전체의 전력이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며 세상이 암전되었다.

빛이 사라진 어둠 속에서 진혁의 천마검이 푸른 뇌전을 머금고 서서히 들어 올려졌다.

"기계가 부서진다고 무인이 죽는 줄 알았나."

진혁의 입가에 잔인하고도 매혹적인 미소가 걸렸다.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다."

쿠구구구궁――!

신서울 중앙 타워의 흔들림이 극에 달했다.

지하 제어실의 바닥을 지탱하던 강화 철근이 비명을 지르며 뒤틀렸고, 천장 위에서는 콘크리트 파편이 눈 내리듯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그 어떤 소음도 강진혁의 귓속에 닿지 않았다.

그의 온 감각은 눈앞에 버티고 선 세 명의 블랙 가드, 그리고 그 뒤편에서 완전히 부화하려는 '제2의 최종 그릇'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

"이…… 이럴 리가……!"

블랙 가드 중 하나의 음성 변조기에서 당황스러움이 가득 묻어나는 기계음이 새어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의 무기인 마기 감쇄 필드는 티타늄 그룹이 수십 년간 연구해 온 최고 걸작이었다. 어떤 고위급 무인이라도 그 필드 안에 들어서는 순간 단전이 굳고 벙어리가 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강진혁은 달랐다.

그는 시스템이 멈춘 순간 오히려 더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육체의 본능과 마기의 원류를 끌어냈다.

"잔챙이부터 치워주지."

진혁의 입가에서 냉소가 사라졌다.

눈앞의 적들에게 자비를 베풀 시간은 없었다. 타워 전체의 전력을 흡수하며 각성하는 제2의 최종 그릇이 완전한 형태를 갖추기 전에 주변의 잡동사니들을 모조리 정리해야 했다.

슈우우웅――!

진혁의 발밑에서 공기가 압축되었다가 터져 나가는 폭음이 울렸다.

[마광신보 - 극(極).]

눈에 보이지 않는 잔상만이 허공에 흩어졌다.

빛의 속도에 가까운 기동력. 시스템의 보조 연산 없이 오직 강진혁의 두 다리와 척추가 뿜어내는 폭발적인 근력만으로 구현된 극한의 보법이었다.

"어……?!"

블랙 가드의 동공이 극한으로 수축했다.

반응할 새도 없었다. 시야가 사선으로 쪼개지는 충격과 함께 그의 목덜미를 감싸고 있던 티타늄 장갑이 종잇장처럼 박살 났다.

퍼벅――!

"크헉……!"

진혁의 손아귀가 블랙 가드의 가슴팍을 그대로 관통했다.

단단한 방탄 아머와 인공 갈비뼈가 마기에 의해 부서져 내리며 그 속에서 펄스(Pulse)를 내뿜는 고급 생체 코어가 진혁의 손에 움켜쥐어졌다.

-흡원천공(吸元天功).

두 번째 흡수였다.

직전의 코어보다 훨씬 고출력인 군용 특수 코어의 에너지가 진혁의 팔뚝을 타고 맹렬하게 역류했다. 혈관이 터질 듯한 고통 속에서도 진혁의 표정은 일그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에너지를 마기로 정제해 단전의 심연으로 밀어 넣으며 쾌감에 가까운 전율을 느꼈다.

[단전 출력 상승: 28,100 MW → 29,800 MW.]

[마기 압축률 한계치 돌파. 육체 동기화율 100% 유지.]

"괴물……!"

나머지 두 명의 블랙 가드가 공포에 질린 함성을 내지르며 고주파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사방을 난도질하는 무차별적인 참격. 제어실의 벽면이 두부처럼 잘려 나가며 사방으로 파편이 튀었다. 하지만 진혁은 그 참격들을 피하조차 않았다.

챙강, 챙가방――!

블레이드가 진혁의 어깨와 옆구리에 내리꽂혔으나 그곳에는 이미 칠흑 같은 마기가 장갑처럼 두껍게 얽혀 있었다.

[천마무상체]. 나노머신과 마기의 유기적 결합으로 완성된 무적의 육신은 고주파 진동조차 흡수해 버리며 단 하나의 흠집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끝이다."

진혁이 낮게 으조리며 검을 치켜들었다.

[천마검]의 검신에 얽혀 있던 푸른 뇌전이 폭발하듯 뻗어 나가며 제어실 전체를 푸르게 물들였다.

콰아아아앙――!

뇌전마강(雷電魔剛) - 십자참(十字斬).

세로와 가로로 교차된 거대한 십자 형태의 검강이 맹렬한 회전음과 함께 뻗어 나갔다.

남은 두 명의 블랙 가드는 그 압도적인 파공성에 압도되어 방어 자세를 취할 겨를조차 없었다.

쿠구구구궁――!

십자참이 그들의 몸을 통과함과 동시에 거대한 폭발이 제어실의 바닥을 뒤흔들었다.

블랙 가드들의 전신 장갑이 미세한 입자로 분해되며 사방으로 흩어졌고, 그들의 단전 속에 박혀 있던 마지막 생체 코어 두 개가 동시에 진혁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왔다.

[단전 출력 상승: 29,800 MW → 32,400 MW.]

투두두둑――!

3만 MW를 돌파한 단전의 출력이 진혁의 피부 밖으로 거대한 오라의 형태로 뿜어져 나왔다.

칠흑의 마기와 푸른 뇌전이 뒤섞인 불꽃은 마치 거대한 마신(魔神)의 형상을 연상케 했다. 숨이 턱턱 막히는 압박감 속에서 진혁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마침내 원형 유리 캡슐을 완전히 깨고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온 '제2의 최종 그릇'이 있었다.

스으으읍―― 하아아아――.

그릇의 입에서 기괴한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현도가 남긴 유전자 데이터와 1,000년 전 천마의 유골, 그리고 티타늄 그룹이 수십 년간 갈구해 온 영생의 기술이 융합된 육체.

그 이마에 새겨진 붉은 바코드가 불타오르듯 빛나고 있었다.

진혁의 흑안이 가늘어졌다.

'……느껴진다.'

저 그릇의 내부에 흐르는 기운은 단순한 인공 에너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1,000년 전 마교의 지존이 남겼던, 그러나 끝내 폭주하여 세상을 파멸 직전까지 몰고 갔던 '진짜 천마의 기운' 그 자체였다.

티타늄 그룹의 회장 진무극이 사전에 자신을 '그릇'으로 만들었던 이유가 바로 저것이었다. 자신의 정신이 붕괴하지 않도록 대신 마기를 버텨줄 완벽한 인간의 껍데기.

그 껍데기의 완성형이 지금 진혁의 눈앞에 서서 핏빛 눈동자를 번뜩이며 진혁을 응시하고 있었다.

"너는…… 내가 만든 완성품의 연장선에 불과하다."

제2의 최종 그릇의 입술이 달싹였다.

그 목소리는 이현도의 잔존 의식인지, 아니면 1,000년 전 유골에 남은 잔류 사념인지 알 수 없으나 뇌리를 직접 때리는 듯한 기괴한 울림을 담고 있었다.

그릇의 등 뒤로 신서울 전체의 전력을 흡수한 푸른 플라즈마 에너지 기둥이 타워의 천장을 완전히 뚫고 밤하늘로 치솟았다.

콰아아아아궁――!

신서울의 모든 불빛이 일시에 깜빡였다.

상층부의 마천루들과 하층 슬럼가의 가로등 할 것 없이 도시 전체의 에너지가 이 중앙 플라즈마 타워로 집중되고 있었다.

그 엄청난 에너지의 과부하 속에서 제2의 최종 그릇의 근육이 경련하듯 부풀어 올랐다.

-꾸드득, 우두둑!

그의 신체 스펙이 단 몇 초 만에 진혁의 3만 MW 출력을 아득히 상회하는 수준으로 치솟기 시작했다.

주변의 공간마저 비틀릴 정도로 거대한 마기와 플라즈마의 폭풍이 제어실을 휩쓸었다.

일반적인 무인이었다면 그 압박감만으로도 정신이 붕괴되어 주저앉았을 터였다.

하지만 강진혁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입가에 짙고도 서늘한 미소가 걸렸다.

"완성품?"

진혁이 천천히 천마검을 들어 올렸다.

검신을 타고 흐르는 칠흑의 마기와 푸른 뇌전이 서로를 삼킬 듯이 요동쳤다.

"웃기지 마라."

콰아아앙――!

진혁의 발밑에서 폭발적인 마기가 터져 나오며 강화 콘크리트 바닥이 수십 미터 아래로 꺼져 내렸다.

시스템의 도움도, 완벽한 프로토콜의 계산도 이제는 필요 없다.

오직 자신의 의지와 자신의 손으로 완성한 신천마신공의 경지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네가 어떤 찌꺼기든 상관없다."

진혁의 눈동자가 암흑보다 깊은 영지로 물들었다.

"원점부터 다시 부숴주마."

슈아아아아아악――!

진혁과 제2의 최종 그릇, 두 개의 거대한 마신(魔神)이 충돌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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