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화 수호자, 블랙 가드 정예 편대
중앙 제어실의 거대한 원형 유리 캡슐이 산산조각이 나며 사방으로 튀었다.
슈우우우-!
영하의 냉기와 함께 고압의 액체 질소가 증발하며 하얀 안개가 로비 전체를 집어삼켰다. 그 자욱한 백색 기류 속에서, 이마에 붉은색 바코드가 선명하게 새겨진 형체가 걸어 나왔다.
단단히 다물린 입술,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공허한 회색 눈동자, 그리고 강진혁 자신의 것과 소름 돋을 정도로 닮아 있는 얼굴.
‘제2의 최종 그릇.’
이현도가 숨겨둔 마지막 비수이자, 티타늄 그룹이 영생을 위해 빚어낸 또 하나의 육체적 정점이었다. 하지만 진혁의 흑안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이미 시스템의 보조 HUD 없이 자신의 의지만으로 심장을 뛰게 만드는 그에게, 껍데기뿐인 복제품은 그저 부숴야 할 장애물에 불과했다.
진혁이 천마검을 가볍게 치켜들려는 순간이었다.
지—————익!
천장과 사방의 벽면 매립형 터미널에서 일제히 기괴한 고주파음이 울려 퍼졌다.
타워 전체의 배선이 붉은색 경보등으로 물들며, 공간의 공기가 눈에 보일 정도로 무거워졌다. 마치 수만 톤의 수압이 전신을 짓누르는 듯한 중압감.
단전에서 요동치던 27,500 MW의 마기가 미세하게 삐그덕거렸다.
“……?”
진혁의 눈썹이 가볍게 으스러졌다.
단순한 물리적 압박이 아니다. 공기 중에 살포된 보이지 않는 파장이 혈관 속을 흐르는 마기의 공명 주파수를 강제로 어지럽히고 있었다.
스으으…….
그때, 제어실의 사방에 설치된 중장갑 엘리베이터의 문이 무거운 기계음과 함께 일제히 열렸다.
쿵, 쿵, 쿵.
지축을 울리는 중저음의 발소리.
티타늄 그룹의 공포 그 자체인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블랙 가드(Black Guard).
백무현이 직접 육성하고 개조한 최정예 사령관 직속 편대였다. 일반 군사형 사이보그나 특수공작대 따위와는 격이 달랐다. 온몸이 고강도 티타늄 합금과 특수 복합 나노 장갑으로 뒤덮인 그들의 외형은 그 자체로 걸어 다니는 요새였다.
총 4기.
그들이 제어실의 네 모퉁이를 점유하며 진혁을 포위하듯 섰다.
“표적 확인. 강진혁. 생포 및 회수 코드가 즉시 실행된다.”
가장 앞에 선 블랙 가드 대장의 음성은 인간의 성대가 아닌, 금속성 노이즈가 섞인 기계음이었다. 그의 가슴팍에 내장된 대형 출력 코어가 붉은빛을 번뜩이며 출력을 끌어올렸다.
콰아앙-
그들이 발을 디딜 때마다 바닥의 강화 플라스틱 타일이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블랙 가드 정예 요원 4인이 동시에 거대한 중화기를 전개했다. 팔뚝에 내장된 플라즈마 캐논과 어깨에 장착된 련발형 고주파 미사일 포드. 하지만 그보다 더 위협적인 것은 그들이 펼쳐낸 투명한 역장(力場)이었다.
찌릿-!
공간을 사각형으로 가두는 듯한 푸른빛의 결계.
그 결계가 펼쳐지는 순간, 진혁의 주변에 감돌던 칠흑의 마기가 눈에 띄게 둔화했다.
[SYSTEM WARNING]
[경고: 고도화된 '마기 감쇄 필드(Anti-Mana Suppression Field)'가 감지되었습니다.]
[사용자의 마력 운용 효율이 40% 이상 강제 제약됩니다.]
HUD가 꺼진 상태였음에도, 진혁의 뇌리에 직접 박히는 듯한 경보음이 울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강력한 억제력이었다.
“크로노스 박사가 남긴 유산을 파괴한 죄는 무겁다.”
블랙 가드 대장이 거대한 건틀렛 형태의 무기를 맞부딪치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네놈이 아무리 27,500 MW의 출력을 손에 넣었어도, 이 감쇄 필드 안에서는 그저 평범한 육신을 가진 인간에 불과하다. 마기를 쓸 수 없는 무인이 검을 휘둘러 무엇을 하겠는가?”
오만함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
그들의 확신은 근거가 없지 않았다. 티타늄 그룹이 고대 마교의 유골 데이터를 분석하며 가장 공을 들인 기술 중 하나가 바로 이 '마기 감쇄 필드'였다. 마공을 익힌 자의 기혈 흐름과 내단의 공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여, 그 어떤 고수라도 일개 사병 수준의 육체적 한계에 갇히게 만드는 사기적인 장치였다.
실제로 진혁의 단전에서 끓어오르던 거대한 마기의 흐름이 뻑뻑하게 엉키기 시작했다. 마치 점성이 높은 아스팔트 속을 헤엄치는 것처럼, 몸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강진혁의 입꼬리가 묘하게 말려 올라갔다.
차가운 흑안에 비친 블랙 가드 4인의 움직임은 경이로울 정도로 느리게 보였다. 시스템의 보조 연산이 없어도, 수많은 생사의 고비를 넘으며 단련된 그의 감각은 그들의 관절 구동음과 미세한 체중 이동을 완벽하게 꿰뚫고 있었다.
“마기를 못 쓰면, 검을 못 쓴다고?”
진혁의 나지막한 음성이 제어실의 무거운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졌다.
스으윽.
진혁이 오른손에 쥐어든 천마검을 가볍게 비틀었다.
푸른 뇌전과 칠흑의 마기가 뒤섞여 타오르던 검신이 감쇄 필드의 영향으로 잠시 주저하는 듯하더니, 이내 미세한 진동을 시작했다.
위이이이잉—!
“방심하지 마라! 사격 개시!”
블랙 가드 대장의 명령과 동시에, 4인의 요원이 일제히 방열을 뿜어냈다.
콰광- 콰아아앙!
사방에서 쏘아 올려진 고주파 플라즈마 탄환과 입자포가 진혁이 서 있는 공간을 완전히 벌집으로 만들었다.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제어실의 바닥이 통째로 무너져 내리며 엄청난 자재 파편과 먼지가 사방으로 튀었다.
폭풍의 중심.
그곳에 서 있어야 할 진혁의 형체가 보이지 않았다.
“적중했다. 표적의 생체 반응 소실…….”
대장이 통신을 날리려던 그 순간이었다.
파앗—!
검은 잔상 하나가 폭풍의 화염을 뚫고 대장의 시야 측면으로 파고들었다.
“뭐……?!”
마기 감쇄 필드 안에서 어떻게 저런 속도가 나올 수 있는단 말인가? 그것은 마기의 폭발력이 아니었다. 순수하게 뼈와 근육의 탄력, 그리고 대지의 반발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무인의 육체적 기동력이었다.
[마광신보 - 극(極)]의 진면목.
시스템의 보조 없이, 오직 강진혁 자신의 감각만으로 재현된 극한의 보법이었다.
챙—!
천마검이 블랙 가드 대장의 어깨 관절을 강타했다.
고강도 티타늄 합금 장갑이 찢어지며 불꽃이 튀었다. 감쇄 필드 때문에 마기의 위력은 반으로 줄어들었지만, 진혁의 완력과 검끝에 실린 고주파 진동 파쇄력은 그 장갑의 내구 임계점을 가볍게 초과하고 있었다.
“크윽……!”
대장이 황급히 팔을 휘둘러 건틀렛으로 진혁의 복부를 가격하려 했다.
하지만 진혁은 이미 그의 품 안으로 깊숙이 파고든 뒤였다.
마기가 막혔다면, 육체의 물리적 타격으로 뼈와 관절을 분쇄하면 그만이다.
우득- 우두둑!
진혁의 왼손이 대장의 투구 옆면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대로 회전력과 함께 바닥에 내리꽂았다.
쾅——!
수백 킬로그램에 달하는 거구의 사이보그가 제어실 바닥을 피투성이가 되도록 찍어 내렸다. 바닥이 움푹 파이며 주변의 콘크리트 가루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나머지 3인의 블랙 가드가 경악하며 일제히 진혁을 향해 총구를 돌렸다.
“이 자식……! 감쇄 필드 내에서 어떻게 마기를 쓰지 않고 이 정도 출력을……!”
“마기를 쓰지 않는 게 아니다.”
진혁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들을 돌아보았다.
그의 흑안 깊은 곳에서 푸른 뇌전의 잔광이 일렁이고 있었다.
“너희들이 가둔 것은 단지 내 몸을 흐르는 에너지의 흐름일 뿐이다.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무도의 본질까지 가둘 줄 알았느냐.”
두둥- 두둥-
진혁의 심장이 거칠게 요동쳤다.
단전에서부터 밀려오는 뜨거운 열기가 감쇄 필드의 푸른 파장을 조금씩 밀어내기 시작했다. 시스템의 HUD가 없어도 상관없었다. 오히려 불필요한 데이터 창이 사라진 지금, 진혁의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맑고 예리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위잉.
멀뚱히 서 있던 '제2의 최종 그릇'이 진혁의 살기를 느꼈는지, 회색 눈동자에 붉은빛을 번뜩이며 진혁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본체와 복제품, 그리고 최정예 블랙 가드 편대.
중앙 제어실의 공기가 완전히 얼어붙었다.
진혁은 천마검을 가볍게 한번 털어내며, 입가에 잔혹한 미소를 띠웠다.
“좋다. 그 가짜 그릇이 어떻게 부서지는지, 똑같이 보여주지.”
콰아아앙!
진혁의 선언이 끝나기도 전에, 블랙 가드 요원 중 하나가 소형 플라즈마 런처의 방아쇠를 당겼다. 좁은 제어실 안에서 폭발하는 고에너지 탄환은 피할 공간조차 없어 보였다.
하지만 진혁은 물러서지 않았다.
슈우우욱—
오히려 반 걸음 앞으로 파고들며 [마광신보 - 극(極)]을 전개했다. 마기 감쇄 필드의 억압으로 인해 궤적이 이전보다 조금 둔해졌지만, 무인의 극한까지 단련된 동체시력과 반사 신경은 폭발의 허를 찌르기에 충분했다. 진혁은 쏟아지는 화염의 파도 속을 유령처럼 미끄러지듯 파고들었다.
“이 미친 놈이……!”
두 번째 블랙 가드가 거대한 플라즈마 블레이드를 뽑아 들며 진혁의 목을 가로로 베어 가르려 했다. 고주파 진동으로 푸르게 빛나는 검신은 공기마저 찢어발기는 예기(銳氣)를 품고 있었다.
챙-!
진혁의 천마검이 그 궤적을 정확하게 튕겨냈다.
충돌 지점에서 격렬한 스파크가 튀며 제어실 전체가 번쩍였다. 마기가 제한된 상태였기에 맞부딪친 검끝에서 엄청난 반동이 진혁의 손목을 타고 흘러들었다. 뼈가 삐그덕거리는 파열음이 울렸지만, 진혁의 표정은 일그러지기는커녕 더욱 차가워질 뿐이었다.
‘오히려 좋다.’
시스템의 보조 없이, 오직 자신의 육체와 신경, 그리고 뼛속까지 박힌 무공의 감각만으로 이 압박을 뚫어낸다.
진혁의 심장이 쿵쾅거릴 때마다, 억제 필드에 갇혀 굳어 있던 내단(內丹)의 마기가 혈관을 타고 뜨겁게 요동쳤다.
콰아지직!
감쇄 필드의 푸른 빛막에 미세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진혁의 내면에서 피어오른 의지의 마기가 기계적인 파장을 찢어발기는 신호탄이었다.
“뭐야? 필드의 출력이 떨어지고 있어?!’
나머지 두 명의 블랙 가드가 당황한 듯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가슴팍에 장착된 억제 장치의 코어가 과부하로 인해 붉은 경고음을 내며 튀어 오르고 있었다. 인간의 정신력이 기계가 만들어낸 물리적 억제장을 역으로 짓누르기 시작한 것이다.
“늦었다.”
진혁의 입가에서 냉소가 터져 나왔다.
그가 단전의 출력을 일시에 끌어올리며 천마검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감쇄 필드의 억압이 헐거워진 틈을 타, 칠흑의 마기와 푸른 뇌전이 다시 한 번 검신을 타고 미치도록 격렬하게 휘감겼다.
[뇌전마강 - 십자참(十字斬)]!
시스템의 자동 연산 없이, 진혁의 직관과 육체적 감각만으로 빚어낸 순수한 참격의 궤적이 십자(十字) 모양으로 공간을 갈랐다.
콰콰콰콰광—!
천지를 뒤흔드는 폭음과 함께, 블랙 가드 요원 2인의 전신 장갑이 속절없이 반으로 쪼개졌다. 고강도 티타늄 합금 나노 장갑이 종이짝처럼 구겨지며 사방으로 튀었고, 그 안에서 불꽃과 함께 요원들의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단 두 번의 검휘(劍揮).
최정예 사령관 직속 편대라 불리던 블랙 가드의 진형이 완전히 박살 났다.
바닥에 쓰러진 블랙 가드 대장이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덜덜 떨리는 손을 뻗었다.
“크…… 크윽…… 어떻게…… 인간의 몸으로…… 그 억제장을…….”
진혁은 쓰러진 그들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의 시선은 이미 제어실 한가운데, 멍하니 서 있는 또 하나의 존재에게로 향해 있었다.
스으…….
이마에 붉은 바코드가 새겨진 ‘제2의 최종 그릇’.
진무극과 이현도가 영생의 영혼을 갈아 끼우기 위해 완벽하게 주조해 낸 그 껍데기는, 진혁이 블랙 가드를 쓸어버리는 동안에도 아무런 감정 없이 그저 차가운 회색 눈동자로 진혁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은 기분 나쁜 착각.
하지만 그 눈에는 영혼이 없었다. 그저 프로그램된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빈 공백에 불과했다.
“네놈이 내 마지막 그릇이라고 했나.”
진혁이 천마검을 땅에 툭 끌며 걸어갔다. 검끝이 바닥을 긁으며 붉은 스파크를 튀겼다.
“썩은 목적으로 빚어진 껍데기라면, 여기서 완전히 태워주지.”
진혁이 검을 치켜들며 단전의 남은 마기를 전신으로 끌어올리던 그 순간이었다.
투두두둑-!
제어실의 메인 서버 터미널이 일제히 자가 진단 코드를 띄우며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화면 너머로, 이현도가 남긴 마지막 자동 음성 파일이 타워 전체의 스피커를 통해 기괴하게 왜곡되어 울려 퍼졌다.
[—실험체 07호의 폭주 확인. 프로토콜의 최종 페이즈를 강제 개시합니다. 신서울의 모든 코어 출력을 이 그릇으로 집결시킨다.……지금부터, 진정한 천마의 강림을 시작한다.]
음성과 동시에, ‘제2의 최종 그릇’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핏빛으로 물들었다.
그의 등 뒤에서 신서울 전체의 전력을 흡수한 푸른 플라즈마 기둥이 타워의 천장을 뚫고 하늘 높이 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