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화 공업지대 중앙 에너지 타워
지지직, 지지직-!
신서울 제2계급 공업지대.
하늘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고압 송전 케이블 위로 스파크가 튀었다. 철판을 짓밟는 중장비의 기계음과 매캐한 연기가 사방을 메우고 있는 이곳은, 온갖 기계 부품과 양산형 로봇들이 쉴 새 없이 찍혀 나오는 거대한 공장의 바다였다.
그 한복판, 지면에서 수백 미터 높이로 솟아오른 거대한 실린더 형태의 철탑이 눈에 들어왔다.
신서울 전체 전력의 40퍼센트를 공급하고, 상층부 마천루로 이어지는 고압 에너지를 송출하는 중추.
‘중앙 플라즈마 에너지 타워.’
티타늄 그룹의 심장부로 향하는 전력의 맥관(脈管)이었다.
“진혁 씨, 데이터 분석 끝났어.”
타워 외곽의 거대한 셔터 앞.
은색 위장막 뒤에 몸을 숨긴 채 빔톱(Beam-Top) 단말기를 두드리던 윤아영의 목소리가 통신망을 타고 흘러 들어왔다. 숏컷의 머리칼이 차가운 공기에 살짝 날리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현란한 홀로그램 코드들이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타워의 외곽 방어망은 양자 암호화 방화벽으로 이중 삼중 잠겨 있어. 일반적인 해킹으로는 최소 삼십 분은 걸리겠지만…… 이현도의 메인 서버 룸을 날려버린 여파로 방어 시스템의 중앙 코어가 빈틈을 드러냈어. 지금이라면 3초 만에 뚫을 수 있어.”
“해라.”
짧고 낮게 떨어진 강진혁의 목소리.
그의 칠흑 같은 흑안은 거대한 철탑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스-윽.
진혁의 목과 손목을 따라 흐르던 은빛 회로 선이 희미한 푸른 광채를 발산했다. 단전 부근에서 소용돌이치는 27,500 MW의 압도적인 에너지가 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시스템의 보조 HUD는 이미 영구 차단된 지 오래였다. 인공지능의 차가운 음성 지원 따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진혁 자신의 의지, 그리고 육신으로 체득한 감각만으로 기혈의 흐름과 출력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비록 화면은 꺼졌을지언정, 그가 다루는 마기의 밀도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순수하고 무거웠다.
“좋아, 방화벽 해제 코드 주입 완료. 카운트다운 들어간다. 3, 2, 1…… 오픈!”
카아아아앙-!
윤아영의 손가락이 엔터 키를 내리치는 순간, 거대한 철제 셔터를 잠그고 있던 수십 개의 전자식 락(Lock)이 일제히 붉은색에서 푸른색으로 바뀌며 해제되었다.
쿠구구구구-!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수십 톤에 달하는 강철 문이 안쪽으로 스르륵 열리며, 타워 내부의 거대한 전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와, 엄청난 규모네…….”
셔터 뒤편에 대기하고 있던 니르바나 저항군의 총수 송수연이 대형 도검을 고쳐 잡으며 감탄 섞인 숨을 내뱉었다. 그녀의 가죽 자켓 위로 핏자국과 전장을 검게 물들인 화약 냄새가 묻어났다.
“여기가 티타늄 그룹의 전력 허브야? 이 안의 에너지를 차단하면 상층부로 가는 방어막의 반 이상이 무력화되겠군.”
“그래.”
진혁이 앞장서며 걸음을 옮겼다.
그의 손에는 마기 전도율 99.9%를 자랑하는 EX급 전용 검, [천마검]이 들려 있었다. 검신을 따라 흐르는 칠흑의 기운이 주변의 공기마저 잘게 찢어발기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움직인다.”
처엉!
타워 내부로 진입하자마자, 사방의 어둠 속에서 푸른색 광학 센서들이 일제히 빛을 발했다.
위이이잉-!
“적이다! 방어 프로토콜 작동! 침입자를 섬멸하라!”
철탑 내부의 천장과 벽면에 설치되어 있던 자동 개조형 가드봇들과, 자율형 사이보그 처형수 무리가 거대한 굉음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손에 든 플라즈마 개틀링 건과 고주파 진동 검이 일제히 진혁과 저항군을 향해 조준되었다.
슈우우우욱-!
수백 발의 고열 플라즈마 탄과 레이저 광선이 빗발치듯 쏟아졌다.
“흩어져라!”
송수연이 대형 도검을 휘두르며 부하들을 지휘했다. 니르바나 저항군 정예대원들도 즉시 엄폐물 뒤로 몸을 숨기며 반격에 나섰다.
하지만 최정예 방어 부대인 만큼 화력은 하층부의 잔당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플라즈마 탄이 바닥에 박힐 때마다 콘크리트가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거대한 구덩이가 파였다.
“진혁 씨!”
송수연이 다급하게 외쳤으나, 강진혁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터벅, 터벅.
그는 오히려 탄우(彈雨)가 쏟아지는 사선의 중심부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갔다.
“……저 미친 녀석이 저러다 벌집이 되겠어!”
저항군 대원 하나가 경악하며 소리쳤지만, 다음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파앗-!
진혁의 신형이 잔상조차 남기지 않은 채 허공으로 솟구쳤다.
[마광신보 - 극(極)].
빛의 궤적을 지우며 칠흑의 잔상을 남기는 극한의 고속 보법.
탄우가 쏟아지는 공간 속을 진혁은 마치 물 흐르듯 유유히 헤쳐 나갔다. 그 어떤 플라즈마 탄도, 그 어떤 레이저 포탑의 조준도 그의 옷자락 하나 스치지 못했다.
가드봇들의 센서가 당황한 듯 붉은빛으로 빠르게 점멸했다.
[목표물의 이동 속도가 예측 범위를 초과했습니다. 조준 재조정……!]
“시끄럽다.”
진혁의 입술 사이로 낮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르는 27,500 MW의 마기가 [천마검]의 검신을 타고 폭발적으로 증폭되었다. 인공지능의 보조 연산 따위는 필요 없었다. 적의 코어 출력과 에너지 궤적은 이미 진혁의 시각과 육감, 그리고 수많은 전투를 통해 새겨진 본능적인 감각 안에서 완벽하게 해부되어 있었다.
파스스릉-!
천마검의 검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칠흑의 마기와 푸른 뇌전이 융합되어 거대한 검강(劍剛)을 형성했다.
[뇌전마강 - 십자참(十字斬).]
콰아아앙-!
진혁이 가볍게 휘두른 검끝에서 사방으로 뻗어 나간 십자 형태의 검기(劍氣)가 타워 내부의 공간을 가로질렀다.
스으윽…….
소리도 나지 않았다.
진혁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수십 대의 가드봇과 사이보그 처형수들의 몸체가 완벽한 십자 모양으로 균등하게 잘려 나갔다. 그 절단면은 너무나 매끄러워서 잠시 동안 멈춰 있던 기계들이 뒤늦게 폭발을 일으키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쿠구구궁! 콰창창-!
사방이 불바다로 변하고, 부서진 철제 파편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괴물.”
송수연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항군이 수십 명이 달려들어도 고전하던 최정예 방어 부대가, 강진혁 단 한 사람의 검휘 한 번에 그야말로 '정리'되어 버린 것이다.
단전 출력 27,500 MW.
초월천마경에 도달한 무인의 무력이란 과연 어디까지가 한계란 말인가.
“멍하니 서 있지 마라.”
진혁이 발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차갑게 일갈했다.
“본진으로 가는 길이다. 더 강한 놈들이 나올 테니까.”
“……! 알았어, 진혁 씨 뒤를 따른다! 전원 진격해!”
송수연이 정신을 차리고 검을 치켜들며 저항군을 독려했다.
중앙 플라즈마 에너지 타워의 내부 깊숙한 곳, 거대한 원자로의 푸른 빛이 타오르는 중심부를 향해 그들은 거침없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타워의 최상층, 그리고 그 너머에 도사리고 있을 티타늄 그룹의 진짜 뿌리를 박멸하기 위해.
강진혁의 눈동자에 타오르는 칠흑의 마기가 더욱 진하게 빛났다.
타워 내부의 깊숙한 곳으로 발을 디딜수록, 공기의 온도가 급격히 상승했다. 사방의 철제 벽면을 따라 흐르는 냉각수가 끓어오르며 하얀 증기가 뿜어져 나왔고, 바닥은 미세하게 진동하며 거대한 원자로가 뿜어내는 저주파의 울림을 전해오고 있었다.
“출력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어. 타워의 코어가 이 근처야.”
송수연이 숨을 몰아쉬며 경계 어린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녀가 들고 있는 대형 도검의 표면에도 타워 내부의 고압 전기로 인해 미세한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터벅, 터벅.
진혁은 앞장서서 거대한 철제 복도를 걸었다.
그의 걸음걸이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27,500 MW라는 압도적인 출력이 단전에 밀집해 전신의 기혈을 끊임없이 순환시키고 있었기에, 이 정도의 고열과 압력은 그의 피부조차 스치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위이이잉-!
갑자기 복도 천장에 매달려 있던 비상등이 붉은색으로 바뀌며 경고음을 울렸다.
[경고. 중앙 코어 구역의 에너지 흐름에 이상 감지.]
[보안 레벨 1. 침입자 격리 프로토콜을 강제 실행합니다.]
스스슥-!
천장의 양쪽 벽면이 쩍 소리를 내며 갈라지더니, 그 안에서 지금까지의 가드봇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기계 장치들이 스물스물 기어 나왔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온몸이 액체 금속과 고주파 플라즈마로 이루어진 듯 형태가 끊임없이 일그러지는 형체.
티타늄 그룹의 최종 방어선이자, 최정예 암살 병기인 [플라즈마 미라지(Plasma Mirage)]였다.
“저건…… 레이저도 안 통한다는 액체 금속형 사이보그잖아!”
송수연이 얼굴을 굳히며 도검을 겨누었다.
과거 저항군이 상층부 진입을 시도할 때 저런 개체 하나 때문에 정예 부대 반 토막이 증발했던 기억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액체 금속이든 플라즈마든, 결국 에너지를 다루는 형태에 불과하다.”
진혁의 중얼거림과 동시에,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칠흑의 마기가 팟- 하고 진동했다.
슈우우욱!
플라즈마 미라지 수십 기가 동시에 형체를 지우며 진혁을 향해 쇄도했다.
그들의 이동 속도는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사방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진혁의 퇴로를 완전히 차단했다.
“진혁 씨-!”
송수연이 경악하며 검을 휘두르려던 그 순간.
콰아아앙-!
진혁의 몸에서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온 마기가 거대한 구형의 장막을 형성했다.
[천마무상체 - 마기 방벽].
플라즈마 미라지들이 일제히 진혁의 몸을 향해 날카로운 검지(劍指)를 찔러 넣었다.
수백만 볼트의 고압 전류와 고주파 진동이 진혁의 마기 장막과 부딪치는 순간, 찢어질 듯한 파열음이 타워 내부를 울렸다.
지기지직-! 파팟-!
“크흣……!”
하지만 진혁은 밀려나기는커녕, 오히려 입가에 서늘한 미소를 머금었다.
적의 공격에 담긴 에너지의 주파수.
그것이 단전의 27,500 MW 출력과 맞물려 완벽하게 분석되었다. 시스템의 보조가 없어도, 몸소 체득한 무공의 원리가 모든 것을 꿰뚫고 있었다.
“만법귀마(萬法歸魔).”
진혁의 낮은 목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콰구구구궁-!
진혁의 단전에서 역류하듯 뿜어져 나온 마기가 플라즈마 미라지들의 에너지 회로 속으로 거꾸로 빨려 들어갔다.
상대의 공격 에너지를 흡수하고 되돌려주는 흡원천공의 응용 기술.
투두둑, 툭-!
“크아아악…… 아니, 에너지가 역류한다?!”
기계음인지 인간의 비명인지 모를 소리와 함께, 진혁을 감싸고 있던 플라즈마 미라지들의 형체가 순식간에 붕괴하기 시작했다.
액체 금속으로 이루어진 몸체가 마기의 침식에 견디지 못하고 사방으로 튀어 오르며 바닥에 녹아내렸다.
불과 몇 초 만의 일이었다.
최정예 방어 병기라 불리던 플라즈마 미라지 수십 기가 단 한 번의 마기 역류로 완전히 고철 덩어리가 되어 바닥에 나뒹굴었다.
“……대단해.”
송수연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멍하니 진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저 남자는 싸울 때마다 강해진다. 아니, 애초에 차원이 다른 경지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길이 열렸다.”
진혁은 뒤돌아보지도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앞에는 중앙 플라즈마 에너지 타워의 심장부, 거대한 원자로가 있는 통제실의 거대한 이중 방화문이 버티고 서 있었다.
저 문 너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진혁은 잘 알고 있었다.
이현도가 남긴 마지막 명령 코드가 신서울 전체의 전력을 흡수해 부화시키려 한다는 '제2의 최종 그릇'. 그리고 티타늄 그룹의 진짜 뿌리.
쿠구구구구-!
진혁이 천마검을 가볍게 치켜들었다.
검신에 서린 칠흑의 마기와 푸른 뇌전이 하나로 융합되어 타워 내부의 모든 전등을 깜빡이게 만들었다.
“부수고 들어간다.”
쾅-!
진혁의 검이 거대한 방화문을 향해 내리꽂히는 순간, 타워 전체가 거대한 지진이라도 난 듯 요동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