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화 부상당한 제프로스의 후퇴
콰아아앙-!
신서울 3,000미터 상공의 헤븐리 파운데이션 테라스가 반 토막으로 쪼개져 내렸다. 공중을 유영하던 강화유리 조각들이 쏟아지는 바람에 하층의 불빛들이 이리저리 난반사되며 기괴한 광채를 뿜어냈다.
그 파편의 비를 뚫고, 거대한 쇳덩어리 같은 형체 하나가 바닥을 질질 끌며 뒤로 물러섰다.
“커헉……!”
입가에서 검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글로벌 용병 기업 '아이언 윌'의 에이스, 4세대 생체 코어 탑재형 중장갑 파괴자 제프로스였다. 그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다크 티타늄 합금 수트는 이미 성한 곳이 없었다. 어깨 부위는 완벽하게 함몰되어 있었고, 가슴팍의 4세대 생체 코어는 불규칙한 스파크를 튀기며 경고음을 울려대고 있었다.
[CRITICAL WARNING: 코어 출력 42% 급감!]
[메인 나노머신 회로 붕괴 임계점 도달!]
제프로스의 눈에 공포가 서렸다.
전투 광신도라 불리며 수많은 전장을 휩쓸었던 그였다. 강자와의 싸움이라면 언제나 환영이었고,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자였다.
하지만 지금 제 앞에 서 있는 존재는 ‘강자’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범주를 아예 벗어나 있었다.
모래성처럼 바스라진 테라스 끝자락.
그 중심에 강진혁이 서 있었다.
치이익-!
진혁의 목과 손목을 따라 흐르던 은빛 회로 선이 붉은빛을 띠며 타오르듯 빛났다. 칠흑 같은 흑안은 감정의 동요조차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고요했고, 그가 쥐고 있는 천마검의 날끝에서는 여전히 푸른 뇌전이 사방으로 튀고 있었다.
단전 코어 출력 27,500 MW.
초월천마경(超越天魔經)의 경지에 오른 그의 기운은 이미 인간의 육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어…… 어떻게……”
제프로스가 부르쥔 거대한 합금 도검이 파르르 떨렸다.
그가 전개했던 4세대 생체 코어의 충격 분산 네트워크는 강진혁의 단 한 차례 검격에 완벽하게 박살이 났다. 자신이 자랑하던 방어막은 만법귀마(萬法歸魔)의 공진 파동 앞에 종잇장처럼 무력했다.
진혁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터벅, 터벅.
바닥을 울리는 군화 소리가 제프로스의 심장박동과 정확히 겹쳐졌다.
진혁의 입술이 낮게 열렸다.
“끝인가.”
“크큭…….”
제프로스는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흉측하게 웃어 보였다. 비록 몸은 부서졌지만, 살아남기 위한 본능만큼은 여전했다. 그는 숨겨두었던 마지막 비장의 수를 꺼내 들었다.
“괴물 새끼…… 하지만 나 혼자 죽을 줄 알았나!”
쾅-!
제프로스가 바닥에 내리꽂은 것은 아이언 윌 특제 전술 연막탄이었다.
단순한 연기가 아니었다. 그 안에는 고농도의 전자기 차단 입자와 특수 신경교란 입자가 섞여 있어 레이더와 나노머신의 시야를 순식간에 암전시키는 군사 장비였다.
쉭-! 촤아아악-!
순식간에 시야가 온통 짙은 회색빛 연기로 가득 찼다.
주변의 모든 광채가 차단되고, 공기 중에 전자기 노이즈가 지지직거리며 진혁의 시야를 흔들었다.
하지만 진혁은 눈을 감지 않았다.
시각 데이터가 차단되는 순간, 단전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마기가 온몸의 감각 세포를 대신해 주변의 공기 흐름과 기압의 변화를 읽어냈다.
‘도망치겠다는 건가.’
제프로스의 기운이 연막 너머로 급격히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언 윌의 비상 탈출용 VTOL(수직이착륙기)이 상공에서 그를 회수하기 위해 랜딩 기어를 내리는 파동이 진혁의 만법귀마 망에 고스란히 포착되었다.
당장이라도 마광신보-극(極)을 전개해 그 목을 베어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진혁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지이잉-.
진혁의 시야 한쪽 구석, 비록 시스템 HUD는 영구 차단되었지만, 그의 뇌 속 연산 회로가 제프로스가 남기고 간 잔여 에너지와 4세대 생체 코어의 작동 궤적을 스스로 스캔하여 분석해 내고 있었다.
[분석 완료: 4세대 생체 코어의 충격 분산 네트워크 구조]
[동기화율 산출: 89.4%]
[단전 코어 출력 연산 구조의 효율성 증대 가능]
‘……나쁘지 않은 수확이군.’
제프로스를 쫓아 잔당을 쓸어버리는 것보다, 그가 남긴 4세대 생체 코어의 기술적 파편과 에너지 운용 알고리즘을 흡수하는 것이 지금의 진혁에게는 더 큰 이득이었다.
도망치는 제프로스의 뒷모습을 향해, 진혁은 차가운 눈빛을 던질 뿐 더 이상 추격하지 않았다.
휘이익-!
폭풍처럼 몰아치던 연막이 상공의 제트기 기류에 휩쓸려 순식간에 흩어졌다.
이미 제프로스가 탄 탈출기는 음속의 속도로 신서울의 밤하늘을 가르며 멀어지고 있었다.
테라스에는 부서진 철골과 타오르는 잔해만 덩그러니 남았다.
사위가 다시 고요해졌다.
헤븐리 파운데이션 본사, 붕괴된 중앙 통제실 잔해 속.
진혁은 가만히 눈을 감고 단전의 기운을 가라앉혔다.
제프로스와의 사투에서 얻어낸 4세대 생체 코어의 데이터 조각들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나노머신들과 결합하며, 진혁의 단전 내부에 새로운 회로를 구축해 나가기 시작했다.
탁, 탁.
그때, 무너진 철근 더미를 밟고 다가오는 가벼운 발소리가 들렸다.
“진혁 씨!”
목소리의 주인공은 윤아영이었다.
그녀는 한 손에 데이터 패드를 든 채, 파괴된 통제실의 잔해를 넘어 진혁에게 다가왔다. 숏컷의 분홍빛 머리카락은 먼지로 뒤덮여 있었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지만, 그 눈빛만큼은 흥분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아영은 주변을 훑어보며 입을 떡 벌렸다.
“와…… 대단하네. 아이언 윌의 에이스라는 제프로스가 다크 티타늄 수트까지 입고 있었는데, 그 녀석이 진짜로 튀었다고? 기지 외부 센서에 비상 탈출기 궤도가 잡혔어.”
진혁은 눈을 뜨며 낮게 말했다.
“살려준 셈이지. 지금은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으니까.”
“맞아. 잘 생각했어. 지금 우리에게 더 중요한 건 따로 있으니까.”
아영이 손에 든 패드를 진혁에게 내밀었다.
패드의 화면 위로는 신서울 상층부의 복잡한 3D 지형도와 함께, 거대한 에너지 그래프가 요동치고 있었다.
진혁이 물었다.
“그쪽 상황은 어때.”
“크로노스 잔당들이 본부 서버로 전송했던 94.2%의 데이터 말이야. 그게 어디로 최종 백업되었는지 방금 추적해 냈어. 완벽하게 숨겨져 있었지만, 네가 메인 서버 룸을 박살 내는 과정에서 방화벽이 일시적으로 다운됐거든.”
아영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녀는 패드를 톡톡 두드리며 화면을 확대했다.
화면 속에 나타난 곳은 헤븐리 파운데이션 본부의 가장 깊은 곳, 혹은 그보다 더 상층인 ‘최상단 테라스 기지’가 아니었다.
그곳은 신서울의 모든 전력을 틀어쥐고 있는 거대한 심장부였다.
“여긴……?”
“제2계급 공업지대의 한가운데 박혀 있는, 티타늄 그룹의 진짜 에너지 자원 공급처야. ‘중앙 플라즈마 에너지 타워’.”
아영이 말을 이었다.
“크로노스 이 미친 영감탱이가 남긴 최종 데이터와 생체 실험 백업본의 찌꺼기들이 전부 저 타워의 메인 코어로 몰려들고 있어. 만약 저게 완전히 기동되면, 하층 슬럼가나 제3계급뿐만 아니라 신서울 전체의 전력을 강제로 흡수해서 무언가를 다시 부화시키려고 할 거야.”
진혁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클론 군단과 천마 유골의 연장선인가.”
“응. 그 이상일지도 몰라. 이현도가 죽기 직전에 남긴 마지막 명령 코드가 저 타워의 자동 제어 시스템과 연동되어 있거든.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그 타워가 스스로 에너지를 증폭해서 제2의 ‘최종 그릇’을 만들어낼 거야.”
송수연이 이끄는 니르바나 저항군 잔당들도 어느새 진혁의 뒤쪽으로 모여들었다.
송수연은 거대한 대도검을 어깨에 걸치며 씩 웃었다.
“호오, 그럼 다음 타겟은 저 거대한 전력 타워라는 소리네? 어쩐지 상층부로 올라오는데 전기가 깜빡거리더라니.”
“맞아. 저 타워가 살아있는 한, 티타늄 그룹은 언제든 우리를 다시 위협할 수 있어. 완전히 뿌리를 뽑으려면 저기서 나오는 모든 전력선을 끊고, 중앙 코어를 직접 박살 내야 해.”
아영이 긴장한 표정으로 진혁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문제가 있어. 저 타워는 신서울 전체의 70%에 달하는 플라즈마 에너지를 직접 제어하는 곳이라, 외곽 방어막의 출력이 상상 이상이야.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접근조차 불가능해. 정문부터가 테라바이트급 양자 암호화 방화벽으로 잠겨 있거든.”
진혁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천마검을 가볍게 쥐었다.
암호화 방화벽? 양자 방어막?
그런 것은 무인에게 있어 물리적 장벽에 불과했다. 혹은 자신이 가진 ‘만법귀마’의 파동으로 주파수를 뜯어내면 그만이었다.
진혁이 낮게 읊조렸다.
“방화벽이든 뭐든, 부수면 된다.”
“물론 네가 부술 수 있다는 건 아는데…… 그래도 시간 지연을 최소화하려면 내가 안에서부터 보안 시스템을 살짝 건드려야 해. 타워 바로 앞까지 침투해서 내부 단말기에 내 해킹 툴을 꽂아야 완벽하게 문이 열릴걸?”
“좋다.”
진혁은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단전 속에서 27,500 MW의 출력이 다시 한번 힘차게 고동치며 전신경을 타고 흘렀다. 제프로스에게서 흡수한 4세대 코어의 잔여 데이터가 완벽하게 동기화되면서, 그의 움직임은 아까보다 한층 더 매끄럽고 잔인할 정도로 정교해져 있었다.
티타늄 그룹의 진짜 심장이자, 모든 악의 근원이 도사리고 있는 곳.
‘중앙 플라즈마 에너지 타워’.
진혁은 부서진 헤븐리 파운데이션 테라스의 끝에 멈춰 서서, 신서울의 밤하늘 아래 거대하게 솟아 있는 또 하나의 마천루를 바라보았다.
타앗-!
칠흑 같은 흑마기가 폭발하며, 진혁의 몸이 한 줄기 번개처럼 밤하늘을 찢고 제2계급 공업지대를 향해 쏘아져 내려갔다.
[SYSTEM INFO: 천마 프로토콜 대체 연산 - 사용자 의지 기반 강행 돌파 개시]
[목표: 중앙 플라즈마 에너지 타워 파괴 및 잔당 숙청]
신서울의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진혁의 검 끝에서 피어오르는 푸른 뇌전이 디스토피아의 어둠을 가르며 타워를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타아아앗-!
칠흑의 흑마기와 푸른 뇌전이 엉키며 신서울의 허공에 거대한 궤적을 그렸다. 진혁의 몸은 마치 음속을 돌파하는 미사일처럼 낙하하여 제2계급 공업지대의 거대 아스팔트 바닥에 박혔다.
콰아아앙-!
지반이 사정없이 함몰되며 사방으로 콘크리트 파편이 비처럼 쏟아졌다.
진혁이 착지한 곳은 티타늄 그룹의 심장부로 통하는 관문, ‘중앙 플라즈마 에너지 타워’의 거대한 정문 앞이었다.
타워는 높이가 수천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원기둥 형태의 구조물이었다. 그 외벽 전체가 고출력 플라즈마 에너지로 코팅되어 있어, 근처에 다가서는 것만으로도 살이 타들어 갈 듯한 고열과 고압의 전자기장이 피부를 짓눌렀다.
치이익-!
진혁의 어깨와 팔뚝을 감싸고 있던 천마무상체가 미세하게 진동하며 그 열기를 밀어냈다.
지이잉- 탁!
그 뒤를 이어 윤아영과 송수연, 그리고 니르바나 저항군의 정예대원들이 들이닥쳤다. 아영은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포터블 터미널을 타워의 메인 외부 단말기에 거칠게 연결했다.
“후우, 기동성 하나는 진짜 괴물 같다니까……! 자, 잠깐만 비켜봐. 방화벽 해제 시도할 테니까.”
아영의 손가락이 가상 키보드 위를 미친듯이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타워의 거대한 철문 위로 붉은색 경고등이 번쩍이며 수백 개의 암호화 코드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WARNING: 외부 침입자 감지.]
[보안 프로토콜 '오메가'가 작동합니다. 침입자를 즉시 소각합니다.]
슈우우우-!
타워의 외벽에 설치된 수십 문의 자동 방어 터렛이 일제히 진혁 일행을 향해 포신을 돌렸다. 플라즈마를 응축한 포신들이 붉은 광채를 뿜어내며 발사 직전의 굉음을 내기 시작했다.
송수연이 대도검을 치켜들며 얼굴을 구겼다.
“앗, 저 자식들 봐라? 타워 전체가 벌써 방어 태세에 들어갔어!”
“기다려.”
진혁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그는 터렛들이 발사 준비를 마치는 것을 지켜보며, 천마검의 손잡이를 더욱 굳게 움켜쥐었다. 단전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27,500 MW의 출력이 검신을 따라 전율했다.
아영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비명을 질렀다.
“다 됐다! 방화벽 30% 다운……! 문 열린다, 진혁 씨!”
카아아궁-!
지축을 울리는 엄청난 소리와 함께, 수십 톤 짜리 강화 합금 문이 양옆으로 쩍 갈라지며 내부의 푸른빛 광채를 드러냈다.
하지만 문이 열리는 그 찰나, 타워 내부의 어둠 속에서 인간의 형상을 아득히 벗어난 거대한 그림자 수십 개가 튀어나왔다.
크르릉……!
이현도가 남겨둔 최후의 경비 병력, 전신을 개조한 자율형 사이보그 처형수들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고주파 진동 블레이드와 중화기가 들려 있었다.
“기어 나오는군.”
진혁의 흑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는 아영과 저항군을 뒤로 물리며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더 이상의 잔챙이 토벌은 필요 없다.
타워의 심장을 부수고, 그 안에 숨겨진 모든 악의 근원을 끝장내기 위해 진혁은 천마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푸른 뇌전이 밤하늘을 집어삼킬 듯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