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화 반사 파쇄(反射 破碎)
콰아아앙!
공간이 일그러지는 것인지, 아니면 시야가 찢어지는 것인지 분간조차 가지 않는 충격파가 헤븐리 파운데이션의 테라스를 강타했다.
제프로스의 거대한 4세대 생체 코어가 뿜어내는 플라즈마 폭풍은 그 자체로 하나의 태양이 폭발한 것과 같은 열량을 내뿜고 있었다. 3,000미터 상공의 차가운 밤바람이 그 고열에 순식간에 증발해 버릴 정도로 압도적인 출력.
8,500 MW라는 수치는 현대 군사 기술이 도달할 수 있는 인간형 병기의 극한이었다.
그 무지막지한 하강 압박 속에서 강진혁의 발밑이 거미줄처럼 갈라져 나갔다. 티타늄 합금으로 조조된 바닥재가 견디지 못하고 먼지로 화해 사방으로 흩날렸다.
"크하하하! 뼛조각까지 증발해라, 실험체 07호!"
제프로스의 눈동자에 광기가 어린 푸른빛이 맥동했다.
그가 휘두른 거대한 철퇴형 의수와 전신을 감싼 4세대 생체 코어의 출력 장치가 굉음을 내며 진혁의 머리통을 찍어 누르려 했다.
하지만.
강진혁의 얼굴에는 일그러짐이나 당황스러움 같은 감정은 추호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칠흑처럼 깊은 흑안이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을 뿐이었다.
즈으으읃-!
진혁의 목과 손목을 따라 흐르던 은빛 회로 선이 불길하게 역류했다.
단전에서 치솟는 27,500 MW의 마기가 온몸의 혈관을 타고 손끝으로 뻗어 나갔다.
[SYSTEM INFO: 경고. 외부 압력이 한계치를 초과했습니다.]
[현재 부하: 99.8%. '만법귀마(萬法歸魔)'의 2차 기전 작동을 개시합니다.]
머릿속에서 시스템의 차가운 보이스가 울려 퍼졌지만, 진혁은 그것을 철저히 무시했다.
더 이상 인공지능의 계산에 의존하지 않는다.
오직 1,000년 전 마교의 비전과 자신이 수백 번의 생사 고비를 넘으며 깨달은 감각만이 그의 신경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흡혈(吸血)이 아니다."
진혁이 낮게 뇌까렸다.
스으으읍-!
제프로스의 플라즈마 철퇴가 진혁의 어깨에 닿기 직전, 진혁의 양손이 도깨비불처럼 기이한 궤적을 그리며 제프로스의 거대한 손목을 움켜쥐었다.
흡원천공-개량(改).
단순히 상대의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제프로스의 4세대 코어가 뿜어내는 고주파 진동 파쇄 파동과 플라즈마의 흐름, 그 자체를 진혁의 손바닥 안으로 빨아들였다가 역으로 압축하는 기예.
"크윽……?! 이, 이게 무슨……!"
제프로스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자신이 쏟아부은 8,500 MW의 출력이 손바닥으로 빨려 들어가는 빨대처럼 흡수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에너지가 고갈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가한 공격의 운동 에너지와 진동 주파수가 완벽하게 역으로 해체되고 있었다.
"네놈이 준 에너니다. 돌려주마."
강진혁의 입꼬리가 섬뜩하게 말려 올라갔다.
콰아아앙! 쿠구구구궁!
[만법귀마 - 반사 파쇄(反射 破碎)]
진혁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온 27,500 MW의 마기와 제프로스가 내지른 플라즈마 폭풍이 진혁의 몸을 매개로 완벽하게 융합되었다.
거기에 칠흑 같은 마기에 얽힌 푸른 뇌전이 폭발적인 스파크를 튀기며 역류했다.
배후로 튕겨 나간 에너지는 단순한 반사가 아니었다.
제프로스가 가한 위력의 정확히 두 배.
여기에 마공의 관통 속성이 더해진 최악의 반격이었다.
"커헉……!"
제프로스의 거대한 몸통이 폭발하는 반사 에너지에 정통으로 맞아떨어졌다.
빠직, 우드득-!
4세대 다크 티타늄 합금으로 제작된 전신 수트의 흉갑이 종이짝처럼 구겨지며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제프로스의 입에서 검붉은 선혈이 폭포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의 눈동자에 새겨진 4세대 생체 코어의 출력 게이지가 순식간에 바닥을 치며 경고음을 울렸다.
[WARNING: 코어 출력 폭락. 8,500 MW -> 1,200 MW]
[내부 회로 붕괴율 78%. 시스템 강제 셧다운 임박.]
"크아아아악……!"
제프로스는 자신이 날린 공격에 스스로 처맞은 꼴이 되어 테라스 바닥을 나뒹굴었다.
거구의 용병왕이 발작하듯 몸을 떨며 바닥을 기었다.
그의 자부심이었던 4세대 수트의 어깨 부근은 완전히 용해되어 살갗과 뼈가 흉하게 드러나 있었다.
사박.
진혁의 발걸음이 제프로스의 앞에 멈춰 섰다.
신발 끝에 밟힌 티타늄 파편이 가벼운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대단하더군. 4세대 코어의 출력이라는 건."
진혁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쓰러진 제프로스의 가슴팍에 천마검의 날카로운 검끝을 겨누었다.
검신을 타고 흐르는 푸른 뇌전이 지지직거리며 제프로스의 남은 생체 회로를 태워버릴 듯 위협했다.
"나를…… 죽일 셈인가, 실험체……."
제프로스가 피를 토하며 쇳소리를 냈다.
전투광으로서의 광기는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는 죽음의 공포만이 가득했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려 했으나, 2만 7천이 넘는 출력을 지닌 괴물 앞에 그의 육체는 이미 고철덩어리나 다름없었다.
"죽이는 건 나중이다."
진혁의 왼손이 제프로스의 가슴팍, 흉갑이 박살 난 부위로 뻗어 나갔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실가닥 같은 마기가 뻗어 나와 제프로스의 잔존 생체 코어 회로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크으으윽! 내, 내 코어에 뭘 하는 거냐……!"
"네놈이 자랑하던 4세대 코어의 충격 제어 알고리즘과 에너지 압축 회로의 설계도. 그걸 좀 빌려야겠군."
수천 년 동안 마교의 비전으로 전해 내려오던 흡원천공은 단순히 생명력을 빼앗는 마공이 아니었다.
적의 힘, 기술, 그리고 그들이 가진 데이터의 구조 자체를 나의 것으로 흡수하고 재창조하는 약탈의 극치.
지이잉-!
진혁의 시야 구석에서 시스템의 형태를 띤 잔여 연산 프로그램이 맹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대상: 제프로스 (아이언 윌 에이스)]
[분석 완료: 4세대 생체 코어 출력 제어 알고리즘]
[특성 흡수: 충격 분산 네트워크, 다크 티타늄 합금 동기화율 14.2% 상승]
[현재 단전 코어 출력: 27,500 MW -> 안정화 진행 중]
진혁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제프로스의 코어를 강제로 스캔하고 일부 회로 데이터를 흡수하자, 온몸을 채우고 있던 마기의 흐름이 한층 더 유기적으로 맞물렸다.
단순히 출력을 억지로 끌어올리기만 했던 폭발적인 에너지에 세밀한 제어력이 더해진 느낌이었다.
"크큭…… 괴물 같은 놈……."
제프로스가 실소를 터뜨렸다.
그는 자신이 티타늄 그룹의 돈을 받고 수많은 초인들을 도륙해 왔지만, 이토록 철저하게 존재 자체를 유린당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것은 싸움이 아니었다.
일방적인 수확이자, 약탈이었다.
"고맙다. 덕분에 내 안의 회로가 한 단계 더 맞물렸군."
진혁이 손을 거두었다.
제프로스의 가슴에 박혀 있던 마기가 걷히자, 제프로스는 그대로 테라스 바닥에 대자로 뻗어 버렸다.
숨을 몰아쉬는 그의 눈에는 이미 전투 의지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슈우우우-!
그때, 멀리서 저공 비행을 하며 접근하던 아이언 윌 용병단의 잔존 건쉽 세 대가 헤븐리 파운데이션의 테라스 상공으로 진입했다.
동시에 건쉽의 배면 해치가 열리며 수십 발의 연막탄과 고출력 전자기 차단막(EMP 스크린)이 진혁을 향해 쏟아부어졌다.
쿠구구구궁!
시야를 가득 채우는 백색 연막과 사방으로 흩어지는 전자기 파동이 진혁의 마기 흐름을 미세하게 교란했다.
"대장님을 구출해라! 서둘러!"
"전원 사격 중지! EMP 장막 전개! 저 괴물에게서 떨어져!"
살아남은 용병들이 전면에서 사격과 방어막을 치며 제프로스의 거대한 몸통을 케이블로 감싸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필사적이었다.
진혁이 마음만 먹으면 그 건쉽들조차 공중에서 가루로 만들어 버릴 수 있었지만, 진혁은 굳이 추격하지 않았다.
진혁의 시선은 연막 너머, 헤븐리 파운데이션의 가장 깊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제프로스를 처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과정일 뿐이었다.
진짜 본론은 저 거대한 마천루의 가장 꼭대기, 티타늄 그룹의 뿌리이자 모든 비극의 시작점이 도사리고 있는 곳에 있었다.
"도망치는 건가."
진혁이 차갑게 중얼거렸다.
그의 손에 쥐여진 천마검의 푸른 뇌전이 더욱 거칠게 요동쳤다.
27,500 MW의 출력이 안정을 찾으며 단전 속에서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제프로스의 4세대 코어 데이터를 흡수하면서 얻은 충격 제어 알고리즘이 마기의 반동을 완벽하게 상쇄하고 있었다.
이제 진혁의 육체는 명실상부한 현대 기술과 고대 마공의 완전한 융합체, 그 자체였다.
파앗-!
진혁의 발밑에서 마광신보-극(極)이 폭발했다.
빛의 잔상조차 남지 않는 극한의 고속 보법.
연막과 전자기 차단막을 가르며, 진혁은 후퇴하는 용병들의 건쉽을 스쳐 지나쳐 헤븐리 파운데이션의 최상층 중앙 통제실을 향해 수직으로 쏘아 올라갔다.
콰아아앙!
마천루의 외벽을 이루는 특수 방탄 유리와 티타늄 강화벽이 진혁의 검광 한 방에 종이짝처럼 박살 나며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잔해가 비처럼 쏟아지는 가운데, 칠흑의 유성이 마침내 티타늄 그룹의 심장부로 완전히 침투했다.
삐리릭- 삐리릭-!
[SYSTEM WARNING: 미지의 생명체 침입. 방어 프로토콜 '세이렌' 가동.]
[경고: 중앙 서버실 접근 감지. 최후의 보안 구역이 개방됩니다.]
마천루의 가장 깊은 곳, 붉은색 경보등이 미친 듯이 깜빡이는 중앙 통제실의 거대한 철문 앞에 도달한 강진혁.
그의 흑안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철문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파동.
그것은 1,000년 전 마교의 유골 데이터와 최첨단 인공지능이 융합된, 진정한 '마지막 비밀'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진혁이 천마검을 치켜들었다.
검신을 따라 엉겨 붙은 푸른 뇌전과 칠흑의 마기가 기괴한 소용돌이를 그리며 융합을 시작했다.
"열어라."
우우우웅-!
진혁의 검이 통제실의 거대한 철문을 향해 가감 없이 내리꽂혔다.
콰아아아아궁-!
철문이 반으로 쪼개지며 터져 나간 것은 그야말로 한순간의 일이었다.
수십 킬로그램의 강화 티타늄 합금문이 폭풍을 맞은 마냥 안쪽으로 찌그러지며 사방으로 튀었다.
쿠구구궁!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서 강진혁의 발걸음이 무심하게 중앙 통제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은 지금까지 그가 거쳐 온 어떤 연구소나 격리 구역보다도 거대하고 압도적인 공간이었다.
방의 중앙, 사방이 투명한 방탄 유리로 격리된 거대한 원형 수조가 수십 개나 늘어서 있었다.
그 수조 안에는 푸른빛의 생체 냉각액이 가득 차 있었고, 그 속에서 둥둥 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이런 미친."
진혁의 흑안이 미세하게 가늘어졌다.
수조마다 담겨 있는 것은 놀랍게도 강진혁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인간들이었다.
아니, 인간이라 부르기에는 그 형태가 너무나 기괴했다.
어떤 것은 팔다리가 세 개였고, 어떤 것은 상반신 전체가 기계 장치와 융합된 채 눈을 감고 있었다.
크로노스 바이오 제2연구소에서 보았던 클론 군단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곳의 클론들은 저마다 고대 마교의 유골에서 추출된 칠흑 같은 마기를 뿜어내며 실시간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SYSTEM ALERT: 경고. '천마 프로토콜'의 모체 데이터가 동기화 중입니다.]
[잔여 동기화율: 98.4%. 최종 페이즈 진입 임박.]
머릿속에서 무기질적인 시스템 보이스가 울려 퍼졌다.
비록 자율 제어와 독립을 선언한 진혁이었지만, 본능적으로 이 공간이 자신과 떼려야 떼 수 없는 연관이 있음을 직감했다.
이곳은 단순한 연구소가 아니었다.
진무극이 영생을 얻기 위해, 그리고 '완벽한 천마'의 육체를 강탈하기 위해 1,000년 전의 마교 유골과 진혁의 유전자를 배양해 온 최종 요람.
"내 육체를 탐하다 죽어간 영감탱이의 유산치고는 꽤 화려하군."
진혁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천마검을 바닥에 툭 떨어뜨렸다.
검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뇌전이 바닥의 메인 전산 회로를 타고 지그재그로 뻗어 나갔다.
지직, 지지직-!
통제실 전역에 설치된 수백 개의 모니터가 일제히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거대한 메인 화면에 한 장의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사망한 줄 알았던 이현도, 아니 그가 남겨둔 최종 인공지능 기록이었다.
[……네가 이곳에 올 줄은 몰랐다, 실험체 07호. 아니, 이제는 천마(天魔)라고 불러야 하나.]
홀로그램 속 이현도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네가 부수고 올라온 모든 것은 결국 우리의 계획을 완성하기 위한 단단계였지. 네가 마기를 흡수할 때마다, 네가 단전을 확장할 때마다, 네가 새로운 무공을 창조할 때마다——그 모든 데이터는 이 중앙 서버에 누적되었다.]
"알고 있다."
진혁이 무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실가닥 같은 마기가 피어올랐다.
[그래? 네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이곳에 온 이유가 무엇인가. 설마 이 모든 클론을 때려 부수면 끝이라고 생각했나?]
"끝을 내러 온 거다. 네놈들이 뿌려 놓은 그 기괴한 인연의 씨앗을."
진혁의 눈빛에 살기가 서렸다.
그는 더 이상 홀로그램의 지루한 유언비어를 들을 생각조차 없었다.
27,500 MW의 출력이 단전 안에서 거대한 폭풍을 일으키며 척추를 타고 전신으로 뻗어 나갔다.
[크하하하! 어리석은 놈!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미 늦었다! 천마 프로토콜의 최종 페이즈는 오직 하나의 육체만을 원한다. 그리고 그 육체는——]
이현도의 목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파앗-!
마광신보-극(極)의 보법이 발동했다.
빛의 잔상조차 남지 않는 칠흑의 궤적이 통제실의 공간을 두부처럼 가로질렀다.
푸드득-!
진혁의 손이 메인 서버의 중앙 코어를 움켜쥐었다.
단순한 물리적 타격이 아니었다.
흡원천공-개량(改)의 진수가 서버 전체의 전산망과 마기 회로를 동시에 강탈하기 시작했다.
"시끄럽다."
우두두둑-!
서버실 전체가 진혁의 손아귀 안에서 찌그러지며 비명을 질렀다.
푸른색으로 빛나던 모니터들이 일제히 붉은색 오류 코드를 뿜어내며 암전되었다.
수조 속에서 꿈틀거리던 클론들의 육체가 단 한 번의 파동에 의해 일시에 정지했다.
지————익.
완벽한 침묵이 통제실을 채웠다.
홀로그램이 깨지며 흩어지고, 진혁은 멍하니 멈춰 선 수조들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그 순간, 진혁의 단전 깊은 곳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지독한 한기가 치밀어 올랐다.
[SYSTEM WARNING: 치명적인 오류 발생.]
[프로토콜 00호의 잠금 해제. 본체(本體)의 기운이 감지됩니다.]
진혁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서버가 파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통제실 가장 깊은 지하 바닥에서부터 천지를 뒤흔드는 거대한 마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