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화 용병왕 제프로스
콰아아앙!
신서울 상층부의 입구를 가로막은 제2계급 공업지대의 철갑 게이트가 폭발과 함께 사방으로 흩어졌다. 짓이기진 철제 파편들이 빗발치듯 쏟아지는 그 한가운데, 칠흑의 잔상을 남기며 강진혁의 발길질이 꽂혔다.
“커헉……!”
아이언 윌의 용병 대장, 제프로스.
4세대 생체 코어를 이식받은 전신 중장갑 파괴자이자, 수많은 전쟁터를 핏빛으로 물들인 '용병왕'이라 불리는 거구의 서양인이 단숨에 수십 미터를 밀려났다.
그의 거대한 체구는 대지 위를 흉측하게 파고들며 멈춰 섰다. 가슴팍에 장착된 4세대 생체 코어가 터질 듯한 굉음을 토해내며 붉은빛의 경고 레이저를 사방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스르륵……. 탁!
진혁의 손에 쥐인 [천마검]의 날끝에서 푸른 뇌전과 짙은 흑색의 마기가 뱀의 혀처럼 얽혀 피어올랐다.
단전 코어 출력 26,700 MW.
초월천마경의 경지에 오른 진혁의 기운은 이제 주변의 중력마저 왜곡할 만큼 압도적이었다.
“후우…….”
가쁘지 않은 숨을 몰아쉬며 진혁이 차가운 흑안으로 앞을 응시했다.
그의 시야에는 시스템의 자동 연산 HUD 대신, 순수하게 단련된 무인의 직관과 마기(魔氣)의 흐름만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시스템의 보조 없이 오직 자신의 의지만으로 세계를 감지하는 감각.
그것은 가히 신의 영역에 가까운 투시력이었다.
제프로스가 거칠게 일어났다.
쾅-! 콰아아앙!
지면이 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연쇄적으로 함몰됐다. 3미터에 달하는 거구, 온몸에 새겨진 붉은 용문신 모양의 나노 회로가 과열된 엔진처럼 번뜩였다.
“크하하하하……! 미친 새끼! 이런 괴물이 신서울 밑바닥에 숨어 있었다고?”
제프로스가 입가에 묻은 검붉은 피를 툭 뱉어내며 거칠게 웃었다.
그의 손에는 일반적인 검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거대한 크기의 대형 고주파 체인소드가 들려 있었다.
브이이이이잉—!
체인소드의 톱날이 초고주파 진동을 일으키며 공기를 찢어발기는 날카로운 파열음을 냈다. 저것 한 방이면 웬만한 전차의 장갑판도 두부처럼 썰려 나갈 터였다.
“강진혁……! 티타늄 그룹이 기르다 만 폐기물 쪼가리가 어디서 건방지게 구중궁궐 같은 상층부 마천루를 기어오르려고 해!”
제프로스의 눈이 핏발로 물들었다.
그는 4세대 생체 코어가 뿜어내는 8,500 MW의 출력을 전신으로 끌어올렸다. 근육을 대체한 인공 섬유 조직이 팽창하며 그의 덩치가 한 치수 더 커진 것처럼 보였다.
쿠구구구궁!
대지가 다시 한번 울부짖었다.
제프로스의 몸이 시야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속도—!
4세대 코어의 출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용병왕의 돌진은 그야말로 음속을 돌파하는 포탄과 같았다.
챙—! 콰아아아궁!
진혁은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필요조차 없었다.
제프로스의 거대한 체인소드가 진혁의 머리통을 박살 내기 위해 내리쳐지는 그 찰나의 순간, 진혁의 발밑에 칠흑 같은 잔상이 겹쳐졌다.
[마광신보 - 극(極)]
챙강강강강강—!
눈이 멀 것 같은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천마검과 고주파 체인소드가 부딪치는 지점에서 발생한 충격파가 주변의 거대한 컨테이너 박스들을 종잇장처럼 구겨버렸다.
“크윽……! 이 자식의 힘은 대체……?!”
제프로스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자신의 4세대 코어 출력과 고주파 진동이 담긴 일격을 정통으로 받아냈음에도, 진혁의 팔은 흔들림조차 없었다. 오히려 진혁의 검 끝을 타고 흐르는 흑색 마기가 제프로스의 체인소드 표면을 타고 파고들며 나노 회로를 마비시키고 있었다.
“네놈의 기술은 단조롭다.”
진혁의 입술이 차갑게 말려 올라갔다.
그의 흑안은 제프로스의 전신을 휘감은 4세대 코어의 에너지 유입 경로를 꿰뚫고 있었다.
기계 공학적으로 설계된 완벽한 동력원.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타인에게 부여받은' 기계적 수치에 불과했다. 무인의 심법으로 다듬어진 진혁의 26,700 MW 출력에 비하면, 그저 요란하기만 한 불꽃놀이에 지나지 않았다.
“이게 끝이냐, 용병왕.”
“이 자식이……!”
제프로스가 핏발 선 눈을 부릅뜨며 체인소드를 거칠게 튕겨냈다.
하지만 진혁은 그 반동을 그대로 흡수하며 오히려 몸을 한 바퀴 회전시켰다.
[흡원천공-개량(改)]
콰아아앙!
제프로스의 코어에서 흘러넘치던 고열의 플라즈마 에너지가 진혁의 검끝을 통해 역류해 들어왔다. 진혁은 그 에너지를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단전으로 끌어들였다.
지이이익—!
진혁의 전신을 감싼 은빛 회로 선이 일그러지며 푸른 뇌전과 함께 더욱 찬란하게 빛났다.
단전의 출력이 요동치며 포효했다.
[현재 단전 코어 출력: 26,850 MW 상승]
“크흑! 내 코어의 에너지를…… 네놈이 뭘 한 거야?!”
제프로스가 뒤로 급히 물러서며 경악 어린 눈빛으로 진혁을 바라보았다.
적의 에너지를 흡수하는 것은 마교의 금법 중 하나인 흡원천공의 기본이지만, 진혁은 현대의 고출력 생체 코어 에너지와 플라즈마 유체까지 완벽하게 정제하여 자신의 마기로 변환하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무공의 경지를 넘어선, 기술과 무도의 완전한 융합이었다.
“내 에너지는 네 녀석의 뱃속에 있는 그 흉측한 코어와는 달라서 말이지.”
진혁이 천마검을 가볍게 휘저었다.
검끝에서 터져 나온 푸른 뇌전이 허공을 가르며 날카로운 파열음을 냈다.
“네놈이 가진 힘의 뿌리를, 내가 친히 끊어주마.”
“미친 새끼……! 내가 진짜 전쟁을 보여주지!”
제프로스가 미친 듯이 포효했다.
그의 등 뒤에서 숨겨져 있던 보조 무장—대형 플라즈마 개틀링포가 전개되며 총구를 진혁을 향해 일제히 번뜩였다.
위이이이잉— 콰쾅! 콰쾅! 콰쾅!
수백 발의 고열 플라즈마 탄환이 사방을 초토화하며 진혁을 향해 쏟아졌다.
도시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엄청난 화력이었다.
그러나 진혁의 표정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검을 가로로 뉘우치며 숨을 깊게 들이켰다.
머릿속의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오직 제프로스의 탄환이 그리는 궤적과 운동 에너지만이 시야에 슬로모션처럼 박혀 들어왔다.
‘운동 에너지를 역으로 반사한다.’
[만법귀마(萬法歸魔)]의 파동이 진혁의 심장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콰아아아아아아앙——!
플라즈마 탄환이 진혁을 집어삼키며 거대한 폭발의 화염이 공업지대를 하얗게 물들였다.
제프로스는 거친 숨을 내쉬며 자신이 만들어낸 화염의 폭풍 속을 응시했다.
“죽었나……?”
아니.
그럴 리가 없었다.
화염의 중심부에서, 한 줄기의 칠흑 같은 빛이 서서히 태동하고 있었다.
비이이이잉——!
폭풍을 찢고 나온 것은 천마검의 푸른 뇌전이었다.
진혁의 옷자락은 조금도 그슬리지 않은 채, 그저 차가운 눈빛만이 제프로스의 심장을 겨누고 있었다.
“네가 던진 힘이다. 돌려주마.”
진혁의 검이 허공을 향해 가볍게 내리그어졌다.
[뇌전마강 - 십자참(十字斬)]
콰아아아아궁—!
공간이 두 번 찢어지는 듯한 거대한 십자 모양의 흑색 검기가 제프로스의 전신을 집어삼켰다.
제프로스의 4세대 생체 코어가 마지막 비명을 지르며 산산조각 났다.
“크아아아아악……!”
용병왕 제프로스의 거대한 체구가 완전히 무너지며 바닥에 처박혔다.
진혁은 쓰러진 제프로스를 내려다볼 여유조차 없다는 듯, 다시 고개를 들어 신서울의 가장 높은 곳—헤븐리 파운데이션의 마천루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지하 500층의 클론 군단도, 용병왕의 4세대 코어도 진혁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슈우우우욱—!
2만 7천 MW에 육박하는 마기와 뇌전을 품은 채, 진혁은 다시 한번 신서울의 밤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쏘아 올라갔다.
쿠구구구구궁-!
신서울의 심장부를 가르는 구름 층이 진혁이 뿜어내는 마기의 압력에 의해 두 쪽으로 갈라졌다.
하층과 중층을 지배하던 모든 소음이 짓눌린 채, 오직 상층 마천루를 향해 쏘아 올려지는 칠흑의 유성만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단전 코어 출력 27,000 MW.
초월천마경의 경지에 도달한 진혁의 육체는 이미 단순한 인간의 틀을 까마득히 벗어나 있었다.
마기와 나노머신이 완전 동기화된 [천마무상체]는 대기와의 마찰열조차 흡수하며 그의 전신을 은빛과 흑색의 오라로 감싸 안았다.
슈우우우우욱—!
"경보! 경보! 미지의 에너지 반응이 상층 방어 구역을 돌파 중입니다!"
"목표물 속도 음속의 7배! 인터셉터 미사일 전개 불가! 요격 시스템 무력화!"
헤븐리 파운데이션 본부, 최첨단 방어 관제실의 대형 홀로그램 스크린들이 사정없이 붉은색 경고등을 깜빡였다.
진무극이 사망하고 이현도마저 침묵한 지금, 티타늄 그룹의 잔당들과 수뇌부들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중앙 모니터 속 작은 점 하나에 시선을 박고 있었다.
그 작은 점이 곧 자신들의 목을 베러 오는 사신(死神)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막아라! 블랙 가드의 잔당들을 전부 풀어라! 저 괴물이 상층 마천루 테라스에 발을 들이는 순간, 헤븐리 파운데이션의 모든 자폭 프로토콜을 연동해서라도 공중에서 갈아 마셔 버려!"
임시 지휘권을 잡은 고위 임원의 절규가 통제실을 울렸다.
휘이익-! 콰아앙!
그 시각, 신서울의 구름 위 3,000미터 상공에 치솟은 헤븐리 파운데이션의 테라스.
차가운 밤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그곳에 진혁의 발길이 사뿐히 내려앉았다.
쿵-!
발이 닿은 순간, 강화 티타늄 합금으로 주조된 수천 평 넓이의 테라스 바닥이 거미줄처럼 쩍쩍 갈라졌다.
진혁은 가볍게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는 사방이 유리로 된 거대한 거울 궁전 같은 회장 집무실, 그리고 그곳을 에워싸고 있는 티타늄 그룹의 최종 정예—전신을 사이보그화한 암살 특수부대 '팬텀'의 잔당 수백 명이 은빛 총구를 일제히 겨누고 있었다.
"강진혁……!"
팬텀의 지휘관인 은빛 전면 마스크를 쓴 사이보그가 이를 갈며 거대 고주파 블레이드를 뽑아들었다.
"네놈이 아무리 날뛴다 한들, 이곳은 티타늄 그룹의 영혼이 담긴 본사다! 네놈이 흡수한 그 힘 따위, 이 안에서는 전부 리셋된다!"
"시끄럽다."
진혁의 입술이 차갑게 일그러졌다.
그가 손에 쥔 [천마검]의 날끝에서 투둑, 하고 푸른 뇌전이 튀었다.
시스템의 보조 HUD가 없어도 상관없었다.
적들이 뿜어내는 미세한 생체 코어의 진동 주파수, 나노 회로의 맥동, 그리고 대기 중에 흐르는 전류의 흐름까지—진혁의 오감은 이미 모든 것을 완벽하게 꿰뚫고 있었다.
"너희가 만든 그 영혼의 실체라는 게 얼마나 허황된 쓰레기인지, 내가 직접 짓밟아 주마."
탁!
진혁의 몸이 사라졌다.
[마광신보 - 극(極)]
빛의 궤적조차 남지 않았다.
공간이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팬텀 부대의 최전방에 서 있던 사이보그들의 몸이 허공에서 그대로 두 동강 났다.
챙강-! 카지지직!
"커헉……?!"
반응할 시간조차 없었다.
진혁의 검은 단순한 참격을 넘어, [만법귀마]의 파동을 통해 적들의 나노 회로 공진 주파수를 정확히 타격하고 있었다.
검이 지나간 자리마다 사이보그들의 코어가 연쇄적으로 폭발하며 사방으로 불꽃이 튀었다.
"쏴라! 전면 사격!"
우르릉쾅쾅쾅쾅—!
수백 정의 플라즈마 개틀링과 레이저 포병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테라스 전체가 하얀 화염과 고열의 플라즈마 폭풍으로 완전히 뒤덮였다.
사방이 불바다로 변한 그 폭풍의 중심에서, 진혁은 눈을 감은 채 서 있었다.
그의 전신을 감싼 [천마무상체]의 은빛 회로가 맹렬하게 빛나며 쏟아지는 화력을 고스란히 흡수했다.
[흡원천공-개량(改)]의 경지는 이제 주변의 열에너지와 폭발의 충격파마저 자신의 마기로 치환하는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이럴 수가…… 에너지를 전부 흡수하고 있어?!"
지휘관의 절망 어린 목소리가 통신기를 타고 퍼져나갔다.
진혁이 서서히 눈을 번뜩였다.
그의 흑안에는 더 이상 인간의 온기가 남아 있지 않았다. 오직 절대적인 마기(魔氣)와 차가운 살기만이 그윽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끝이다."
진혁이 천마검을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들었다.
단전 코어 출력 27,200 MW.
진혁의 등 뒤로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칠흑의 천마(天魔) 형상이 환영처럼 떠올랐다.
그 환영이 손에 쥔 거대한 검을 내리꽂는 순간과 함께, 진혁의 참격이 폭발했다.
[천마일검(天魔一劍)]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궁——!
신서울 상층부의 밤하늘을 가르는 거대한 암흑의 검기가 헤븐리 파운데이션의 테라스를 시작으로 본사 건물의 상층부 전체를 가로질렀다.
눈이 멀 것 같은 섬광과 함께, 티타늄 그룹의 자부심이자 신서울의 지배를 상징하던 거대한 마천루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콰아아앙! 쿠당탕탕-!
수천 톤에 달하는 콘크리트 잔해와 철제 파편들이 비처럼 쏟아지는 그 장엄한 파괴 속에서, 진혁은 천마검을 가볍게 털어내며 잔해 위로 착지했다.
지하의 폐기장에서 시작되어, 슬럼가를 거치고, 마침내 세계의 꼭대기를 무너뜨린 순간이었다.
하지만 진혁의 시선은 무너져 내린 잔해를 넘어, 마천루의 가장 깊은 곳—아직 꺼지지 않은 채 미세하게 진동하는 한 개의 거대한 메인 서버 룸을 향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아직 파괴되지 않은, 천마 프로토콜의 진짜 기원에 대한 마지막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스으으읍.
진혁이 천마검을 쥐고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그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