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화 아이언 윌 기갑대대의 기습
쿠구구구구구——!
신서울의 제2계급 공업지대.
하늘을 뒤덮은 네온사인과 거대한 배관 시설 사이로, 지축을 뒤흔드는 폭음이 울려 퍼졌다.
비상식적인 출력을 뿜어내는 중장갑 워커들의 철제 발굽이 아스팔트를 잘게 짓이기며 전진했다. 그 선두에 선 것은 글로벌 용병 기업 ‘아이언 윌(Iron Will)’의 기갑대대였다.
"방어벽 무너졌다! 니르바나의 잔당들을 싹 다 쓸어버려라!"
"상부의 명령이다. 포로 따윈 없다. 궤멸시켜라!"
크르릉, 쾅!
아이언 윌의 주력 기갑 전차인 [고스트 헌터 MK-IV]의 포신에서 불화살 같은 플라즈마 포탄이 빗발치듯 쏟아졌다. 반(反)기업 저항군 ‘니르바나’가 거점 삼아 지키고 있던 임시 방어벽이 한순간에 종이장처럼 찢겨 나갔다.
"크윽……!"
"방어막 출력 한계치 초과! 버틸 수 없습니다!"
송수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손에 쥔 대형 군용 도검을 꽉 움켜쥔 채, 밀려오는 기갑 대대를 노려보았다. 제2계급 공업지대의 핵심 전진기지가 이토록 무력하게 뚫릴 줄은 예상치 못했다. 티타늄 그룹이 본사 방어를 위해 아이언 윌 전역을 매수해 투입한 결과였다.
쿠구궁-!
전방에서 날아온 유탄이 방어벽 중앙에 내리꽂히며 거대한 화염 폭풍을 일으켰다. 폭풍의 여파에 저항군 대원들이 사방으로 나뒹굴었다.
"총수님! 피하십시오! 이 장갑차들의 화력은 일반 나노머신 방어막으로 버틸 수 없습니다!"
부대원의 절박한 외침에도 송수연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의 눈동자에 거대 워커의 철제 주먹이 사정없이 내리꽂히는 광경이 가득 담겼다. 이대로라면 기지 전체가 철갑 아래 짓밟혀 피의 바스가 될 터였다.
바로 그때.
슈우우우우욱—!
밤하늘을 가르는 기괴한 공기 마찰음이 전장의 모든 소음을 집어삼켰다.
지평선의 끝, 혹은 신서울의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부터 하나의 칠흑 같은 유성이 사출되듯 쏘아 올라왔다. 아니, 그것은 인간의 형상을 한 존재였다.
콰아아앙!
기갑대대의 선두를 달리던 15톤 트럭 크기의 [고스트 헌터] 워커의 상체에 무언가가 그대로 내리꽂혔다.
단 한 번의 충돌.
그것만으로도 강철 합금으로 단조된 워커의 콕핏이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안으로 함몰됐다.
지면이 진원지를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갈라지고, 충격파가 사방으로 터져 나가며 최전방의 용병들을 순식간에 튕겨냈다.
"……뭐야?!"
"적습이다! 공격해!"
아이언 윌의 용병들이 혼란 속에서도 일제히 총구를 돌렸다. 플라즈마 라이플과 고주파 개틀링 건에서 뿜어져 나오는 탄막이 먼지 자욱한 그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슈우우웅— 콰광, 콰광, 콰광!
대지를 뒤흔드는 탄막의 폭우.
그러나 그 화염 속에서 흘러나온 것은 나지막한 단마디의 호흡이었다.
피식.
바람이 스치는 듯한 미소와 함께, 칠흑의 마기가 폭발했다.
[SYSTEM INFO: 천마 프로토콜 제어 권한 수동 동기화 완료.]
[현재 단전 코어 출력: 26,500 MW (초월천마경)]
[나노머신 동기화율: 99.8%]
강진혁이었다.
그의 전신을 감싼 [나노마갑]은 이전보다 훨씬 더 유기적이고 섬세한 은빛 회로의 맥동을 뿜어내고 있었다. 진혁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수백 발의 플라즈마 탄막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응시했다.
오히려 그 탄막을 향해 맨손을 뻗었다.
콰아아앙!
손바닥과 플라즈마 포탄이 부딪치는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폭발해야 할 고에너지 탄환들이 진혁의 손바닥 주변에서 회로리처럼 감기더니, 그 엄청난 열원과 에너지가 흡원천공의 궤도를 타고 고스란히 단전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흡원천공-개량(改): 에너지 역류 흡수 완료.]
[단전 코어 출력: 26,700 MW로 상승.]
"크…… 흡수했다고?"
용병들의 얼굴에 경악이 어린 채 물들었다. 인간의 육신이, 그것도 맨손으로 전차의 주포급 플라즈마 에너지를 받아쳐 흡수하는 광경은 그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진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의 손에 쥐인 [천마검]의 검신을 따라 파르스름한 뇌전과 칠흑의 마기가 엉겨 붙었다.
"시작할 시간이다."
콰아아아궁!
진혁의 몸이 사라졌다. [마광신보 - 극(極)]의 경지에 이른 그의 보법은 물리적인 잔상조차 남기지 않았다. 공기 중에 남은 것은 오직 검붉은 궤적뿐이었다.
챙강—! 슥- 툭!
"커헉……!"
아이언 윌의 엘리트 용병들이 탑승한 중장갑 워커의 다리 부위가 두부 썰리듯 매끄럽게 절단됐다. 3미터가 넘는 강철 기갑이 한순간에 균형을 잃고 쓰러지며 요란한 폭발을 일으켰다.
진혁은 멈추지 않았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뇌전마강]의 여파는 주변의 전차들을 그대로 두 쪽으로 갈라놓았다.
"쏘라니까! 왜 안 쏴!"
"못 맞춥니다! 움직임이 눈에 보이지 않아요……!"
용병 부대장의 절규는 진혁의 검끝에 의해 영원히 차단됐다.
진혁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는 공중에서 그대로 검을 아래로 내리꽂았다.
[뇌전마강 - 십자참(十字斬)]
콰아아아아아아방—!
칠흑과 푸른 뇌전이 교차하며 거대한 십자 형태의 검기(劍氣)가 아이언 윌의 기갑대대 한가운데를 강타했다. 지면이 통째로 뒤집히는 듯한 대폭발과 함께, 대대를 이루고 있던 십여 대의 중장갑 워커와 전차들이 형체도 없이 산화했다.
사방이 매연과 잔해로 뒤덮였다.
단 수 분 만에 전장을 지배하던 아이언 윌의 기갑대대는 완전히 괴멸 상태에 빠졌다.
스윽.
진혁이 차가운 발걸음으로 폐허가 된 아스팔트 위에 내려섰다. 그의 목과 손목을 따라 흐르던 은빛 회로가 잔잔한 숨을 쉬듯 미세하게 깜빡였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넋을 잃은 채 서 있는 송수연과 니르바나 저항군 대원들이 있었다.
"강…… 진혁?"
송수연이 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열었다. 그녀는 진혁이 하층을 떠나 상층부로 진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이렇게 압도적인 무력을 과시하며 다시 제2계급 공업지대로 내려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아니, 내려온 것이 아니라 상층부의 외곽 방어선을 완전히 유린하고 관통해 내려온 형국이었다.
진혁은 그녀를 향해 시선을 던지며 낮게 말했다.
"여기서 지체할 시간이 없다."
"진혁 씨, 방금 그들은 아이언 윌의 본진 중 일부야. 이 뒤쪽으로는 용병왕 제프로스가 직접 이끄는 친위대가 버티고 있어. 그 자는 이전의 간부들과는 완전히 달라. 4세대 생체 코어를 탑재한 괴물이라고!"
송수연의 경고에도 진혁의 표정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의 흑안에는 오직 티타늄 그룹의 심장부를 향한 집념만이 타오르고 있었다.
"알고 있다."
진혁이 천마검을 가볍게 휘둘러 검신에 묻은 핏자국을 털어냈다. 검끝에서 튀는 푸른 뇌전이 어두운 공업지대의 밤하늘을 환하게 밝혔다.
"어떤 괴물이든, 내 단전을 통과할 순 없다."
그가 다시 한번 상층부를 향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공업지대의 거대한 메인 엘리베이터 게이트 너머에서, 대지를 울리는 또 다른 거대한 진동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지면을 쿵쾅거리며 다가오는 압도적인 살기.
드디어 아이언 윌의 진짜 주인, 용병왕 제프로스가 그 거대한 모습을 드러낼 차례였다.
[다음 화 예고]
제67화 용병왕 제프로스
콰아앙-!
메인 엘리베이터 게이트의 두꺼운 철제 셔터가 안쪽에서부터 박살 나며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쇳덩이들이 비처럼 쏟아지는 그 먼지 자욱한 회색 회랑 속에서, 지면을 통째로 짓누르는 듯한 거대한 압박감이 흘러나왔다.
쿵, 쿵, 쿵.
심장박동처럼 울리는 발소리 하나에 주변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나왔군."
송수연이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니르바나의 대원들도 공포에 질린 눈으로 거대한 회랑 입구를 바라보았다.
먼지를 뚫고 나타난 존재는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벗어난 괴물이었다.
키 3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체구.
그 전신은 일반적인 사이보그 의수와는 차원이 다른, 다크 티타늄 합금으로 도금된 중장갑 파괴자 수트로 무장되어 있었다. 상체와 팔뚝 곳곳에는 붉은색 용 문신이 서슬 퍼런 살기와 함께 번뜩이고 있었고, 심장 부근에 매립된 4세대 생체 코어는 터져 나갈 듯한 고출력의 푸른 광채를 거칠게 내뿜었다.
휘이익—!
그가 손에 쥔 것은 검이 아니었다.
사람 키만 한 대형 고주파 체인소드. 날카로운 톱날이 미친 듯이 회전하며 공기를 찢어발기는 고주파음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크하하하하! 하층민 방어벽을 뚫고 올라온 쥐새끼가 네놈인가?"
용병왕 제프로스.
글로벌 용병 기업 '아이언 윌'의 총수이자, 4세대 생체 코어를 탑재한 현시대 최강의 육체파 초인 중 하나였다.
그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걸렸다.
전신 코어에서 뿜어져 나오는 출력만 해도 무려 8,500 MW에 달했다. 일반적인 1, 2등급 초인들이라면 그 살기만으로도 심장이 멎어버릴 만한 압도적인 중압감이었다.
제프로스가 체인소드를 어깨에 척 걸치며 진혁을 내려다보았다.
"티타늄 그룹의 회장 영감을 지옥으로 보낸 실력이라기에 내심 기대했더니…… 겨우 이런 애송이였다니. 실망시키지 마라. 내 체인소드에 썰려 나가기 전에 조금이라도 재미를 보여달라고!"
콰아아앙!
제프로스의 거대한 몸집이 튀어 올랐다.
그의 폭발적인 물리 출력은 단순한 이동을 넘어 공간을 찢는 수준이었다. 마광신보를 쓸 새도 없이, 제프로스의 거대한 철제 주먹이 진혁의 정면을 향해 그대로 내리꽂혔다.
바람이 터지고, 지면이 함몰되었다.
진혁은 피하는 대신 천마검을 가로로 들어 방어했다.
챙——!
귀를 찢는 고주파 충돌음과 함께 엄청난 충격파가 사방으로 폭발했다.
진혁의 두 발이 아스팔트 바닥을 깊숙이 파고들며 수 미터 뒤로 밀려났다.
'물리 출력만으로 이 정도라고……?'
진혁의 흑안이 가늘어졌다.
지금 그의 단전 코어 출력은 26,500 MW를 상회하고 있었다. 어지간한 괴물들이라면 검의 여파만으로도 반으로 쪼개졌을 터였다. 하지만 제프로스의 4세대 생체 코어는 단순한 출력을 넘어 근육과 장갑의 밀도를 순간적으로 극대화하는 특수 기전(Mechanism)을 품고 있었다.
제프로스가 씩 웃으며 체인소드를 치켜들었다.
"오호라? 내 주먹을 받고도 팔이 멀쩡하다고? 건방진 새끼, 제법이구나!"
지이이이잉—!
체인소드의 톱날이 더욱 빠르게 회전하며 고주파 플라즈마 불꽃을 튀겼다. 제프로스의 몸을 감싼 장갑판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주변의 공기를 순식간에 끓어오르게 만들었다.
진혁은 입가에 묻은 실낱같은 피를 혀로 닦아내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괴물놀이는 그만해라."
[SYSTEM INFO: 천마 프로토콜 수동 제어 개시.]
[만법귀마(萬法歸魔) - 분석 완료.]
[대상 생체 코어 주파수 및 에너지 흐름 파악 완료.]
진혁의 목과 손목을 따라 흐르던 은빛 회로가 찬란한 은백색 빛을 토해냈다.
단전에서 소용돌이치던 26,500 MW의 칠흑 같은 마기가 천마검의 검신을 타고 폭발하듯 뻗어나갔다.
푸른 뇌전과 마기가 뒤엉킨 절대적인 참격이 허공을 갈랐다.
"네놈의 그 단단한 껍데기를, 맨손으로 뜯어주마."
진혁의 몸이 칠흑의 잔상을 남기며 제프로스를 향해 역습으로 쏘아 올라갔다.
쿠구구구구구——!
제2계급 공업지대의 밤하늘 아래, 두 초인의 충돌이 만들어낸 거대한 폭풍이 온 세상을 뒤흔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