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화 용병 기업 '아이언 윌'의 개입
서걱.
지하 최하층의 메인 격리 구역에서 쏘아져 나온 칠흑의 잔상이 상층부의 거대한 철문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박살 냈다.
쾅-!
구름 한 점 없던 신서울의 잿빛 밤하늘을 향해 강진혁의 몸이 한 마리의 흑룡처럼 치솟았다.
단전에서 요동치는 마기(魔氣)의 출력은 이미 25,100 MW를 아득히 상회하고 있었다.
피를 끓게 만드는 열량이 전신을 타고 흘렀고, 혈관 속에서 춤추는 나노머신은 99.8%의 동기화율 속에서 형태를 자유자재로 바꾸며 진혁의 신체를 절대무적의 무기체로 빚어내고 있었다.
-[SYSTEM WARNING: 일시적 외부 네트워크 접속 시도 감지.]
-[경고: 티타늄 그룹 본사 중앙 서버에서 긴급 보안 프로토콜 '아레스(Ares)'가 발동되었습니다.]
머릿속에 내장된 시스템의 HUD는 이미 오래전에 강진혁 자신의 의지 아래 강제 차단되어 있었으나, 대기 중에 흩뿌려진 방대한 전자 파동과 붉은색 경보음의 여파는 그의 만법귀마(萬法歸魔) 감각망에 고스란히 포착되었다.
‘발악인가.’
진혁의 입가에 옅은 조소가 걸렸다.
이현도와 진무극이 쓰러졌음에도 티타늄 그룹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것은 이 거대 메가 코퍼레이션이 단순히 한두 명의 수뇌부에 의해 유지되는 조직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자본과 기술, 그리고 인간의 욕망이 얽혀 만들어낸 거대한 괴물. 그 꼬리를 완전히 짓밟아 뭉개기 전까지는 끝이 날 수 없었다.
슈우우우-!
진혁은 마광신보-극(極)을 전개하며 제2계급 공업지대의 상공을 가로질렀다.
발밑으로는 불야성을 이룬 네온사인이 마치 거대한 회로 기판처럼 번뜩이고 있었다.
상층 마천루의 특권층들은 아직도 아래쪽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유혈 사태를 모른 채, 사치스러운 연회를 즐기고 있거나 혹은 안전한 방공호 안에서 자본의 힘을 믿고 떨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 여유도 여기까지다.’
진혁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 시각.
제2계급 공업지대와 제3계급 슬럼가의 경계선에 위치한 니르바나의 전진 거점.
콰아아앙-!
“대장! 북서쪽 관측소에 비상등이 켜졌습니다! 외부로부터 엄청난 규모의 에너지 반응이 접근 중입니다!”
니르바나의 통신원인 대원이 얼굴에 시커먼 그해를 뒤집어쓴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거점의 지휘 통제실 안에서 붉은 경보등이 미친 듯이 점멸하고 있었다.
송수연은 입술을 꽉 깨물며 가죽 자켓의 품에서 거대한 대검을 빼내어 바닥에 척 소리가 나도록 내리꽂았다.
“이쪽의 움직임이 들킨 건가? 티타늄의 잔당들인가?”
“아닙니다! 에너지 파문 분석 결과는 티타늄 그룹의 블랙 가드나 팬텀 부대와 다릅니다. 이 출력은…… 설마!”
통신원의 얼굴에 완벽한 절망이 서렸다.
그것은 이 신서울의 어둠 속에서 이름만 들어도 하층민들이 공포에 떨어야 하는 최악의 기갑 용병단, 글로벌 군사 기업의 대명사였다.
“……아이언 윌(Iron Will).”
송수연의 미간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티타늄 그룹이 직접 움직이지 못하자, 자본의 힘으로 세계 각지의 전쟁터에서 수많은 인간을 학살해 온 민간 군사 기업(PMC)을 고용한 것이다.
휘이익- 콰구구구궁!
공업지대의 거대한 철제 컨테이너들과 고압 송전탑 사이로, 지면을 뒤흔드는 엄청난 진동이 울려 퍼졌다.
지평선 너머에서부터 밀려오는 것은 군용 장갑차의 대물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철과 강철, 그리고 4세대 생체 코어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뻘건 고열의 플라즈마 에너지로 무장한 거대한 철의 군세였다.
“제기랄……! 저 새끼들이 여기까지 기어들어 왔어!”
송수연이 이를 악물었다.
니르바나의 저항군들이 급조한 화력으로는 저 전면적인 기갑 대대의 포격을 단 몇 분도 버텨내지 못할 터였다.
그 장갑차들의 선두.
지면을 쿵쾅거리며 걸어오는 거대한 실루엣이 있었다.
키가 삼 미터에 육박하는 거구.
온몸에 타이타늄 합금과 중장갑 파괴자용 4세대 생체 코어가 기괴하게 이식된 사나이.
글로벌 용병 기업 '아이언 윌'의 에이스이자, 수많은 슬럼가와 반란군을 무자비하게 도륙해 온 인간 병기.
제프로스였다.
“큭큭큭…….”
제프로스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목소리는 기계음과 쇳소리가 섞여 들어 듣는 이의 고막을 찢어놓을 듯했다.
그의 거대한 어깨에 장착된 20mm 중기관포가 자동 조준 시스템의 불빛을 번뜩였다.
“들판의 쥐새끼들 같았는데, 생각보다 좀 기어오르는군. 티타늄 회장님이 비우신 자리를 네놈들이 차지하겠다고?”
제프로스의 입가에 잔인한 웃음이 걸렸다.
그의 단전 부근에 박힌 4세대 생체 코어가 울부짖듯 붉은 광채를 뿜어냈다.
출력 8,500 MW.
현대 군사기술의 최정점에 선 인간이 낼 수 있는 거의 극한의 무력 수치였다.
“들국화 같은 반란군 찌꺼기들. 전부 소각해 버려라. 한 놈도 살려두지 마!”
제프로스의 포효와 함께, 뒤편에 도열해 있던 수십 대의 중장갑 워커와 전투 차량들이 일제히 포신을 들어 올렸다.
콰아아앙-! 콰콰쾅!
대지를 뒤흔드는 포성이 신서울의 밤하늘을 불태웠다.
수십 발의 고폭 플라즈마 포탄이 니르바나의 전진 거점을 향해 빗발치듯 날아들었다.
지형이 통째로 증발하며 엄청난 폭풍과 화염이 솟구쳤다.
“막아라! 방벽 전개해!”
송수연이 대검을 휘둘러 날아오는 파편을 쳐냈지만, 압도적인 화력의 폭풍은 그녀와 저항군 대원들을 사방으로 날려버렸다.
열사의 바람과 함께 지옥 같은 고열이 피부를 태웠다.
“크윽……!”
송수연이 피를 토하며 바닥에 나뒹구렀다.
눈앞이 아득해졌다.
이대로 저 철갑의 군세에 짓밟힌다면, 자신들이 쌓아 올린 모든 것은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질 것이 뻔했다.
제프로스가 거대한 철갑 부츠로 땅을 울리며 전방으로 걸어 나왔다.
“참가비 치고는 너무 싱겁군. 하층민의 목숨이라는 건 어차피 데이터 쪼가리보다도 가치가 없지.”
제프로스가 중기관포의 방아쇠를 당기려던 그 순간이었다.
지평선 위, 칠흑의 어둠을 찢고 한 줄기의 붉고 푸른 뇌전이 폭음과 함께 내리꽂혔다.
콰아아아앙-!
지면이 반으로 쪼개지며 거대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제프로스의 거대한 장갑 수트가 그 충격에 밀려 저절로 반보 뒤로 물러났다.
“……뭐야?”
제프로스의 붉은 시야 센서가 번쩍였다.
폭풍과 먼지가 걷히고, 그 중심에 서 있는 한 사나이의 모습이 드러났다.
칠흑 같은 흑발.
목과 손목을 따라 은빛 회로 선이 옅게 흐르고 있으며, 두 눈에는 세상의 모든 생명을 가소롭게 여기는 듯한 서늘한 흑안이 빛나고 있었다.
강진혁이었다.
“강…… 진혁?”
송수연이 부서진 방벽 틈새로 고개를 들며 경악 어린 목소리를 뱉었다.
진혁은 그녀를 돌아보지 않은 채, 차가운 시선으로 전방에 도열한 아이언 윌의 기갑 대대를 응시했다.
그의 등 뒤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는 상층부의 밤하늘을 온통 칠흑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어디서 잡초 같은 놈들이 엉겨 붙나 했더니.”
진혁의 입술이 미소처럼 일그러졌다.
그것은 웃음이 아니었다.
뼈와 살을 으스러뜨리고 영혼까지 갈아 마셔주겠다는 천마(天魔)의 사형 선고였다.
“용병이라. 돈 몇 푼에 목숨을 파는 쓰레기들에게는 그에 걸맞은 지옥을 보여주는 것이 인지상정이지.”
제프로스가 기분 나쁘다는 듯 흉측하게 웃으며 중기관포를 겨누었다.
“이 새끼가 바로 그 쥐새끼 대장이군! 미친 마기를 두르고 있다고 해서 네 녀석의 육신이 내 4세대 코어의 포화 속에서도 멀쩡할 것 같나? 갈아 마셔주마!”
제프로스의 명령과 함께, 아이언 윌의 중장갑 워커 수십 대가 일제히 강진혁을 향해 플라즈마 개틀링건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타다다다다다다-!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수천 발의 고열 탄환이 진혁을 향해 쏟아졌다.
사방이 완전히 불바다로 변하며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화염이 일어났다.
하지만.
“……!”
제프로스의 붉은 센서가 경악으로 흔들렸다.
화염의 중심.
그곳에서 강진혁은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있었다.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것은 나노머신과 마기가 융합된 궁극의 신체 강화 병기, [나노마갑 2단계]였다.
날아오는 플라즈마 탄환들은 진혁의 몸에 닿기도 전에 사방으로 튕겨 나가거나, 흡원천공의 강력한 마기장(魔氣場)에 붙잡혀 그 형태를 잃고 흡수되어 버렸다.
-[SYSTEM NOTIFICATION: 외부 에너지 흡수율 상승. 단전 출력 25,300 MW 돌파.]
“이럴 리가……!”
제프로스가 경악을 금치 못하며 소리쳤다.
“공격해! 모든 화력을 집중해! 저놈을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
“늦었다.”
진혁의 낮은 목소리가 폭음 속에서도 전장의 모든 이들의 고막에 선명하게 내리꽂혔다.
휘릭-!
마광신보-극(極)의 보법이 발동되는 순간, 진혁의 잔상이 허공에 수십 개로 갈라졌다.
눈으로 쫓을 수도 없는 속도였다.
사방으로 흩어진 잔상 중 하나가 가장 앞에 있던 중장갑 워커의 정면으로 파고들었다.
진혁의 손에 들린 [천마검]이 푸른 뇌전과 칠흑의 마기를 동시에 토해내며 허공을 가로질렀다.
스으윽- 콰창!
삼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철제 워커가 종이짝처럼 두 쪽으로 갈라지며 폭발했다.
안에 타고 있던 용병의 비명조차 지를 새도 없는 일격이었다.
“크아아아악!”
“뭐야 저 괴물은?!”
“쏘아라! 저 새끼를 맞춰!”
아이언 윌의 용병들이 패닉에 빠져 무차별적인 난사를 시작했지만, 진혁의 궤적은 그들의 조준 시스템보다 훨씬 빨랐다.
만법귀마-파동의 연산력이 용병들의 탄도 예측선을 전부 읽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혁은 뇌전마강의 참격을 사방으로 뿌리며 기갑 대대의 진형 한가운데를 문자 그대로 유린하기 시작했다.
철판이 찢어지고, 기름과 피가 튀었다.
글로벌 최정예 용병 기업이라 불리던 아이언 윌의 부대가 단 몇 분 만에 무참히 도살당하는 가축 떼처럼 바닥에 나뒹굴었다.
“이…… 미친 새끼가……!”
제프로스가 이성을 잃고 자신의 4세대 생체 코어 출력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렸다.
그의 양팔에 장착된 타이타늄 블레이드가 시뻘건 플라즈마 고열을 뿜어내며 진혁을 향해 내리꽂혔다.
“죽어라, 강진혁!”
“우스꽝스럽군.”
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저 단전의 25,000 MW 출력을 오른팔에 집중하며, 천마검을 가볍게 치켜들었을 뿐이었다.
쾅-!
거대한 블레이드와 칠흑의 검신이 부딪친 순간, 공기가 압축되며 엄청난 충격파가 주변의 컨테이너들을 먼지처럼 날려버렸다.
“크윽……크아아아!”
제프로스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자신의 전력을 다한 일격이, 진혁의 검 끝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진동과 압축 마기에 의해 단숨에 상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블레이드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치이익-!
“네 녀석이 가진 그 4세대 코어라는 것…….”
진혁의 흑안이 제프로스의 시야 센서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 서늘한 눈빛에 제프로스의 심장이 얼어붙는 듯했다.
“내 단전의 밥값으로는 조금 모자라지만, 아쉬운 대로 쓰기에 나쁘지 않겠군.”
“개소리 마라! 나, 나는 아이언 윌의……!”
“소란스럽다.”
진혁의 손목이 가볍게 비틀렸다.
동시에 흡원천공의 진수가 제프로스의 4세대 생체 코어를 향해 폭발적으로 밀고 들어갔다.
콰드득- 찌지직!
“아아아아아아악-!”
제프로스의 비명 소리가 신서울의 밤하늘을 찢어놓았다.
그의 가슴팍에 박혀 있던 붉은빛의 생체 코어가 진혁의 손아귀에 붙잡힌 채 강제로 추출되기 시작했다.
기계와 살점이 뜯겨 나가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8,500 MW에 달하는 에너지가 진혁의 몸 안으로 거침없이 빨려 들어갔다.
-[SYSTEM NOTIFICATION: 4세대 생체 코어 에너지 강제 흡수 완료.]
-[단전 출력 26,500 MW 돌파.]
-[나노머신 동기화율 99.9% 도달.]
털썩.
에너지를 완전히 빨려 껍데기만 남은 제프로스의 거대한 육신이 무력하게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그의 눈동자에서 붉은빛이 완전히 꺼져 있었다.
주위를 에워싸고 있던 아이언 윌의 남은 용병들은 그 광경을 목격하고는 더 이상 싸울 의지를 잃어버렸다.
무기에서 손을 떼고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도망쳐…… 저건 괴물이야! 인간이 아니라고!”
“살려줘……!”
하지만 진혁은 그들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의 시선은 이미 제프로스의 시신을 넘어, 신서울의 가장 높은 곳에서 밤하늘을 내려다보고 있는 '헤븐리 파운데이션'의 거대한 마천루를 향하고 있었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차가운 빗방울 속에서, 진혁이 천마검의 뇌전을 더욱 거칠게 번뜩이며 입을 열었다.
“잔당은 거기까지다.”
칠흑의 날개를 펼치듯, 진혁의 몸이 다시 한번 신서울의 상층부를 향해 수직으로 쏘아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