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화 복제 시설의 파괴
크로노스 바이오 제2연구소 지하 500층.
사방을 메우고 있던 투명 배양액 수조들이 처참한 잔해로 나뒹굴고 있었다.
치지지직-!
절연 처리가 무색하게 고압 전류가 사방으로 튀어 오르며 스파크를 뿌렸다. 바닥은 푸른빛과 붉은빛이 뒤섞인 배양액과 차가운 인공 혈액으로 흥건했다. 그 한가운데, 칠흑 같은 검은 머리와 차가운 흑안을 한 청년이 서 있었다.
강진혁.
단전 코어 출력 2만 MW의 경지. 신천마신공 제5단계 [초월천마경]에 도달한 그의 몸 주위로는 일그러진 공간마저 휘어지게 만드는 짙고 무거운 마기가 뱀처럼 스멀거리고 있었다.
진혁의 시선이 수조 파편 속에 처박힌 형체를 향했다.
기괴했다.
얼굴의 반은 기계 회로가 얽혀 있고, 나머지 반은 진혁과 똑같이 생긴 생체 피부로 뒤덮인 인간형의 형체. 아직 완전하게 성숙하지 못한 채 배양액 속에서 급조된, 불완전한 육신이었다.
수십 개, 아니 수백 개에 달하는 수조 속에서 버려지듯 튀어나온 그것들은 모두 강진혁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흐음."
진혁의 입에서 짧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그것은 두려움이나 경악이 아니었다. 지독한 혐오와 함께, 머릿속에서 퍼즐 조각이 딱 맞아떨어지는 듯한 냉혹한 깨달음이었다.
진무극.
그리고 이현도.
그들이 왜 자신을 지상에서 가장 완벽한 실험체로 만들었는지, 왜 하필 고대 마교의 유골 데이터와 천마 프로토콜을 자신의 단전에 강제로 이식했는지 그 근본적인 의도가 비로소 선명하게 드러났다.
"육체용 껍데기."
진혁의 중얼거림이 낮게 가라앉았다.
그것은 단순한 양산형 강화병이 아니었다.
천마 프로토콜을 이식받고 2만 MW라는 미친 출력을 버텨내며 고대 마공의 궤적을 스스로 깨달은 완벽한 육신. 그 육신이 마침내 완성되었을 때, 진무극 같은 늙은 괴물이나 수석 연구원 이현도가 자신의 썩어가는 영혼과 의식을 통째로 갈아 끼우려던 '최후의 그릇'이었다.
자신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들 눈에는 오직 자신들의 불멸을 담기 위한, 가장 단단하고 완벽하게 주조된 소모품에 불과했던 것이다.
"내 껍데기를 이딴 쓰레기장 따위에서 찍어내고 있었다 이건가."
피식.
진혁의 입꼬리가 비틀리며 섬뜩한 미소가 번졌다.
웃고 있었지만, 그 눈빛은 빙하보다도 차가웠다.
더러운 욕망으로 빚어진 복제 시설.
인간의 존엄을 짓밟고 영생이라는 망령에 사로잡혀 만들어낸 가짜 천마의 사육장.
이런 것들이 세상에 단 하나라도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불쾌했다.
콰구구구구궁-!
진혁의 단전이 폭발적인 진동과 함께 요동쳤다.
2만 MW의 출력이 혈관을 타고 손끝으로 역류했다. 심장 부근에 자리 잡은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는 더 이상 단순한 에너지의 형태가 아니었다. 그것은 만물을 소멸시키는 물리적 압력이자, 세상의 모든 이치를 거스르는 천마의 격(格) 그 자체였다.
우두두두두-!
진혁의 등 뒤로 칠흑 같은 날개 모양의 마기 기류가 펼쳐졌다.
공간이 비명을 지르며 찢겨 나갔고, 지하 500층 배양실의 강화 합금 벽면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SYSTEM MESSAGE (Internal Override)]
[Warning! 단전 코어 에너지 출력 상한선 초과!]
[현재 출력: 21,450 MW.]
[주변 공간 밀도 급감. 물리적 물질 붕괴 현상 감지.]
머릿속에서 시스템의 자동 보조 HUD는 이미 영구 차단되어 있었지만, 진혁의 육체 감각 자체가 하나의 완벽한 시스템이자 무기로 변모해 있었다. 그는 인공지능의 경고 따위는 귀담아듣지도 않았다.
오직 의지만으로, 마기를 압축했다.
"사라져라."
쿠아아아아앙-!
진혁의 오른검이 허공을 향해 가로질러 그었다.
그것은 검을 휘두른 것이 아니었다. 단전에서 뿜어져 나온 고밀도의 마기와 뇌전마강의 파동이 결합된, 형태 없는 절기였다.
천마일검(天魔一劍) - 개량(改).
파지직, 파지지직-!
검광이 스쳐 지나간 자리마다 공간이 잘게 부서졌다.
수십 개로 나뉘어 있던 배양실의 대형 수조들이 일시에 중심부터 쩍 갈라졌다. 내부에 담겨 있던 차가운 배양액과 불완전한 클론들의 육신이 폭발적인 충격파 속에서 단 한 순간에 먼지로 기화했다.
비명조차 지를 새가 없었다.
고통을 느낄 신경조차 완성되지 못한 복제체들은 진혁이 뿜어낸 마기의 격류 속에서 흔적도 없이 증발했다.
콰아아앙! 쿠궁-!
지하 500층 전체가 통째로 무너져 내리는 듯한 거대한 지진이 일어났다.
천장에서 철골 구조물과 고압 전선들이 비처럼 쏟아졌지만, 진혁의 몸에 닿기도 전에 마기에 부딪혀 가루가 되어 떨어졌다.
단 몇 번의 호흡.
그것으로 충분했다.
메가 코퍼레이션 티타늄 그룹이 수십 년간 지하 깊은 곳에서 비밀리에 진행해 온, 인간을 신으로 만들겠다는 오만한 복제 실험장은 완전히 지상에서 지워졌다.
투두둑, 툭.
천장에서 떨어지는 콘크리트 잔해 사이로, 파괴된 클론들의 생체 코어에서 흘러나온 고에너지 데이터 잔여물들이 허공에 파르스름한 입자로 떠돌았다.
진혁은 그 광경을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며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어디 흡수해 볼까."
스으으읍-.
진혁의 손바닥에서 거대한 흡입력이 발생했다.
흡원천공(吸元天功) - 개량(改).
과거에는 남의 내공이나 코어를 억지로 빼앗아 오는 약탈의 기술이었으나, 지금의 진혁에게 그것은 세상의 모든 에너지를 자신의 통제 아래 재정립하는 지배의 기술이었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에너지의 잔재.
수백 명의 클론들이 남긴 미완의 생체 코어 연산 코드와, 이현도가 수십 년간 연구해 온 마교 유골 데이터의 파편들이 진혁의 손바닥을 통해 핏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우루루루궁!
진혁의 몸 안에서 천둥이 치는 듯한 탁음이 울렸다.
단전의 출력이 2万 MW에서 더더욱 가파르게 요동쳤다.
[단전 코어 출력: 21,800 MW 돌파.]
[클론 군단의 생체 코어 연산 데이터 흡수 완료.]
[고대 마교 유골의 잔류 코드 94.2% 동기화.]
[마기 운기 궤적의 효율성 14.8% 상승.]
머릿속을 스치는 정보의 홍수.
진혁은 그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자신에게 해가 되는 잡다한 노이즈는 단숨에 짓눌러 부수고, 오직 마공의 깊이를 더해줄 핵심적인 원리만을 골라내어 단전에 아로새겼다.
육체 안에서 요동치던 마기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정제되었다.
마치 처음부터 자신의 것이었던 것처럼, 뼈마디 하나, 혈관 하나까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초월천마경의 경지가 더욱 단단해졌다.
후우-.
진혁이 낮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입안에서 뿜어져 나온 백색의 기운이 지하 배양실의 남은 열기를 순식간에 얼어붙게 만들었다.
주변은 완전히 침묵에 잠겼다.
더 이상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수조 파편, 짓이겨진 기계 부품, 그리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복제체들의 잔해만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완벽한 파괴였다.
진혁은 부서진 관제탑의 잔해 사이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아직 완전히 파괴되지 않은 하나의 비상용 단말기가 미세한 푸른빛을 깜빡이고 있었다.
치직, 치지직…….
전원이 불안정하게 흔들리던 단말기 스크린 위로, 누군가의 홀로그램 인터페이스가 강제로 사출되었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지?"
음성에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경악과, 그 밑바닥부터 치솟는 광기 어린 분노가 엉켜 있었다.
화면 너머로 보이는 얼굴.
신경질적으로 마른 체구에, 광기 어린 눈빛을 빛내고 있는 남자.
크로노스 바이오 제2연구소의 수석 연구원, 이현도였다.
"강…… 진혁…… 네놈이 감히……! 내가 삼십 년 동안 연구해 온 성과를……!"
이현도의 일그러진 얼굴이 홀로그램을 통해 진혁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진혁은 그 모습을 흥분한 개를 보듯 심드렁한 눈빛으로 내려다볼 뿐이었다.
진혁의 입가에 서늘한 냉소가 걸렸다.
마침 찾아다닐 필요도 없었다.
"시끄럽군."
진혁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흑안을 번뜩였다.
"다음은 네 차례다, 이현도."
이현도의 일그러진 얼굴이 홀로그램 속에서 파르르 떨렸다. 분노로 충혈된 안구는 터질 듯 부풀어 있었고, 연구 가운을 걸친 마른 어깨는 경련하듯 미세하게 흔들렸다.
"내 연구를……! 천 년 만에 부활한 마교의 유전자기술과, 완벽한 천마의 그릇을 향한 나의 평생의 업적을……!"
이현도가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악을 썼다.
그러나 진혁은 그의 발광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오히려 칠흑 같은 흑안을 가늘게 뜨며, 홀로그램 단말기에서 미세하게 뿜어져 나오는 전자기적 파장을 응시했다.
치직, 치지지직―!
물리적으로는 지하 500층의 파괴된 배양실에 서 있었지만, 진혁의 감각은 이미 그 단말기가 송신하고 있는 주파수의 근원지를 향해 뻗어 나가고 있었다.
시스템의 자동 보조 HUD는 꺼진 지 오래였으나, 2만 MW의 초월적인 단전 출력과 99.8%에 달하는 나노머신 동기화율은 그 자체로 거대한 '인간형 레이더'나 다름없었다.
'거기 있나.'
진혁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이현도가 숨어 있는 위치는 단순한 통신 중계지가 아니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상층부의 최정예 통제 구역, 혹은 헤븐리 파운데이션 본부의 가장 깊은 곳. 그곳에서 이현도는 자신의 모니터를 통해 이 파괴의 현장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광기 어린 지랄을 떨고 있는 것이다.
"강진혁! 네놈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진실은 바뀌지 않는다! 너는 내가 설계한 프로토콜의 테두리 안에서 뛰어놀던 쥐새끼에 불과해! 그 몸뚱어리에 흐르는 마기 또한 결국 우리 티타늄 그룹이 주조한……!"
"시끄럽다고 했다."
툭.
진혁의 발가락끝이 바닥 콘크리트 조각을 가볍게 튀겼다.
슈우우웅-!
순간, 공간을 찢는 마광신보(魔光神步)의 잔상이 허공에 족적을 남겼다.
눈을 깜빡할 사이도 안 되는 극단적인 속도.
파앗!
"흣……!"
홀로그램 너머에서 이현도의 숨이 멎는 소리가 들렸다.
진혁의 손바닥이 단말기 화면을 그대로 관통해 버렸기 때문이다. 아니, 단말기뿐만 아니라 그 단말기가 설치된 벽면 전체가 붕괴하며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본부 서버와의 연결 회선이 진혁의 손아귀에 붙잡혔다.
진혁의 손가락 끝에서 푸른 뇌전과 칠흑의 마기가 뒤엉켰다.
만법귀마(萬法歸魔) - 파동(波動).
적의 통신 주파수를 역추적하여, 그 반대편에 있는 상대의 신경망과 단말기 시스템에 직접 충격을 가하는 가공할 기술이었다.
-끼익, 기기긱-!
"크아아악……! 이게, 이게 무슨 짓이야?! 내 단말기가…… 내 망막 HUD가……!"
홀로그램 속 이현도의 비명이 절규로 바뀌었다.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던 연구소 관제 모니터들이 진혁이 역류시킨 마기 파동에 휘말려 연쇄적으로 폭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퍼엉! 퍼퍼벙-!
"끄아아아……!"
"여기 좌표, 정확히 잡혔다."
진혁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역추적된 통신 회선을 타고 이현도의 고막 속으로 직접 내리꽂혔다.
마치 귀신이 등 뒤에서 속삭이는 듯한 오싹한 음성. 화면 너머에서 이현도가 겁에 질려 뒤로 자빠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숨어 있을 곳은 없지, 이현도."
진혁이 손을 가볍게 쥐었다.
빠각!
단말기 액정이 완전히 박살 나며 스파크와 함께 홀로그램이 팟- 하고 꺼졌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이현도가 발악하며 연결을 끊으려 애썼지만, 진혁의 뇌 속에는 이미 그가 숨어 있는 좌표와 주파수 궤적이 완벽하게 각인된 뒤였다.
쿠구구구궁-!
지하 500층 잔해 속에서 진혁이 천천히 고개를 들았다.
상층부를 향해 뚫려 있는 거대한 수직 샤프트. 크로노스 바이오 제2연구소의 방어선은 완전히 무너졌고, 이제 남은 것은 그를 기다리고 있는 티타늄 그룹의 마지막 잔재들뿐이었다.
그때였다.
투두두두두둥-!
머리 위, 수직 샤프트의 어둠 속에서 거대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단순한 건물 붕괴의 여파가 아니었다. 그것은 수십 톤에 달하는 중장갑 메카의 보행음이자, 티타늄 그룹이 숨겨둔 최종 처형 병기의 등장을 알리는 불길한 포효였다.
치지지직-!
"감히…… 나의 연구소를 쑥대밭으로 만든 쥐새끼가 거기 있나."
샤프트 상단, 어둠을 찢고 거대한 철제 투구와 전신을 뒤덮은 티타늄 합금 장갑의 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살인 병기, 골리앗(Goliath).
이현도가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으로 풀어놓은 최정예 처형대장이었다.
높이 5미터에 달하는 거구. 그 어깨 위에는 플라즈마 개틀링 건과 고주파 진동 대검이 번뜩이고 있었다.
골리앗의 붉은 단안 센서가 진혁을 향해 팽팽하게 붉은 광선을 뿜어냈다.
[TARGET LOCKED: 강진혁.]
[제거 대상 확인. 즉각 사살을 개시한다.]
치이익-!
골리앗의 등 뒤에서 고압 가스가 분출되며 거대한 중장갑 메카가 그대로 진혁을 향해 도약했다.
지하 500층 바닥이 내려앉을 정도의 압도적인 중량감.
하지만 진혁은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입꼬리를 비틀며, 손에 쥐고 있던 [천마검] 검신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치이잉-!
2만 MW의 단전 코어에서 뿜어져 나온 마기가 천마검 날을 따라 격렬하게 요동치며 푸른 뇌전을 동반한 검강을 토해냈다.
"잘 걸렸다."
진혁의 흑안이 어둠 속에서 섬뜩하게 빛났다.
복제 시설 파괴는 끝났다. 이제는 상층부로 가기 위한 길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베어버릴 차례였다.
콰아아앙-!
칠흑의 검광이 허공을 가르며, 골리앗을 향해 쏘아 올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