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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60화목차

제60화 복제된 그릇들

치익—!

지하 500층 '비밀 수조실'의 거대한 철문이 양옆으로 갈라지며 압축 공기를 뿜어냈다.

그와 동시에 코를 찌르는 것은 싸구려 방부제 냄새도, 역한 피비린내도 아니었다. 그것은 완벽하게 멸균된 인공 양수와, 아직 채 익지 못한 생체 조직의 비릿한 생냄새였다.

"헉…… 헉……."

지면을 나뒹굴던 이현도(크로노스)가 바닥을 손톱으로 긁으며 뒤로 물러났다. 그의 하얀 가운은 이미 식은땀과 터져 나온 핏물로 엉망진창이었다.

눈앞에 서 있는 존재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 움직이는 재앙이었다.

신천마신공 제5단계, [초월천마경(超越天魔經)].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2만 MW의 칠흑 같은 마기는 물리적 중력마저 왜곡하고 있었다. 강진혁의 발밑에 깔린 강화 콘크리트 바닥은 이미 형체를 잃고 고운 모랫가루처럼 바스러진 지 오래였다.

"이…… 이럴 리가 없다……! 프로토콜 07호의 데이터는 완벽히 통제되고 있었어! 네놈은 실험체 07호에 불과해! 어떻게 그 프로토콜의 구속을 벗어날 수 있단 말이냐!"

이현도가 광기 어린 눈으로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성이라곤 눈곱만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오직 눈앞의 괴물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만이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진혁은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칠흑 같은 흑안으로 이현도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 시선은 살기조차 품지 않은, 마치 벌레를 내려다보는 듯한 절대적인 무감함 그 자체였다.

스윽.

진혁이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바닥이 쩍쩍 갈라졌다.

"크…… 크윽!"

이현도는 두려움에 질려 주저앉은 채 거대한 수조실의 통제 패널을 향해 기어갔다. 그의 손이 미친 듯이 비상 자폭 스위치와 수조 해제 코드를 두드리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진혁의 시선이 먼저 수조실 안쪽을 향했다.

기이한 푸른빛이 감도는 거대한 유리관 수십 개가 지하 500층의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도열해 있었다.

치익- 치익-!

주기적으로 터져 나오는 기포 소리와 함께, 그 거대한 배양액 수조 속에서 누군가의 실루엣이 어스름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호오."

진혁의 눈썹이 미세하게 틀어졌다.

그것은 시각적 충격이었다.

수조 속에 잠들어 있는 것은 기계 부품도, 형태를 알 수 없는 괴물도 아니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강진혁 자신과 완벽하게 똑같은 생체 구조를 가진 인간들이었다.

목과 손목을 따라 흐르는 옅은 은빛 회로의 흔적. 날카로운 턱선, 칠흑 같은 머리카락, 그리고 아직 눈을 감은 채 차가운 양수 속에서 부유하고 있는 무수한 형체들.

단 한 명, 두 명이 아니었다.

지하 500층의 어둠 속으로 끝없이 이어진 수십, 아니 수백 개의 수조 안에서 전부 강진혁의 복제된 육체가 숨을 쉬고 있었다.

[SYSTEM INFO: 천마 프로토콜 (HEAVENLY DEMON PROTOCOL) - Sub-Routine]

[Warning: 유사 유전자 패턴 다수 감지.]

[분석 결과: 사용자 '강진혁'의 DNA 및 생체 코어 수용률 99.4%의 인공 클론 군단.]

차단되었던 HUD의 잔상이 진혁의 망막을 스쳐 지나갔다. 시스템의 도움 따위 이제 필요 없었지만, 그 시각적 데이터만으로도 진실은 명백히 드러났다.

이현도가 바닥을 구르며 악에 받친 소리를 질렀다.

"크하하하……! 봤나? 봤냐 말이다, 07호!"

입가에 피를 흘리며 미친 듯이 웃어제끼는 이현도의 꼴은 가관이었다.

"그래! 네놈은 특출난 게 아니야! 천마 프로토콜의 데이터가 완성되기 위한 '1차 테스트 그릇'에 불과했다고! 네가 탈출했을 때, 우리 위대한 회장님과 내가 무엇을 했을 것 같나?"

"……."

"네놈의 세포 조직 하나, 네놈이 흘린 피 한 방울까지 전부 채집해서 복제했다! 네가 강해질수록, 네 단전의 출력이 올라갈수록, 이 수조 속의 그릇들은 더욱 완벽하게 진화했지!"

이현도의 눈에 광기가 치솟았다.

"진무극 회장님이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끝난 줄 알았겠지? 틀렸다! 이 육체들만 있으면 된다! 네놈이 2만 MW의 단전을 각성시키며 완성한 완벽한 헌법 구조, 그 기혈의 궤적까지 전부 이 클론들에게 이식하면……!"

이현도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의 손에 들린 비상 기동 키가 시뻘건 경고등을 깜빡였다.

"이현도, 네가 착각하는 게 하나 있다."

진혁이 낮게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는 너무나도 차가워서, 지하 500층의 공기마저 얼어붙는 듯했다.

"……뭐, 뭐라 지껄이는 거냐!"

"네가 만든 건 껍데기뿐이다."

진혁의 손에 들린 [천마검]의 검신을 따라 푸른 뇌전과 칠흑의 마기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네 녀석들이 아무리 내 세포를 복제하고, 내 유전자를 배양해 봤자 그 안에 담기는 건 텅 빈 고깃덩어리에 불과하지. 내 몸에 흐르는 것은 단순한 데이터나 전기가 아니다."

지직-! 지지지직-!

"무…… 무슨 소리를……?"

"내가 겪은 고통, 내가 쌓아 올린 혈투, 그리고 내 스스로의 의지로 뚫어낸 이 경지는…… 너희 같은 쓰레기들이 복사 버튼 하나로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파앗-!

진혁의 몸에서 폭발적인 잔상이 터져 나왔다.

[마광신보 - 극(極)]

공간이 찢어지는 듯한 파열음과 함께 진혁의 형체가 이현도의 눈앞에서 증발했다.

"크아악?!"

이현도가 반사적으로 비상 키를 내리찍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푸석-!

진혁의 손이 이현도의 어깨를 그대로 관통했다. 뼈와 살이 바스러지는 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단전에서 뿜어져 나온 고압의 마기가 이현도의 상반신을 완전히 짓눌러 버렸기 때문이다.

"커헉……! 컥……!"

이현도의 입에서 검붉은 내장 찌꺼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는 눈을 희열과 공포로 뒤룩거리며 진혁의 소매를 붙잡으려 했다.

"이…… 이 스위치를 내리면…… 이 수조 속의 모든 그릇들이 일제히…… 각성한다……! 네놈의 복제품들이 전 서울로 쏟아져 나와 네 얼굴을 하고 온통 파괴를……!"

"상관없다."

진혁은 이현도의 귓가에 차갑게 속삭였다.

"어차피 전부 베어버리면 그만이니까."

우두둑-!

진혁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이현도의 어깨뼈가 완전히 가루가 되어 부서졌다. 비명조차 지를 새도 없이 이현도는 정신을 잃고 바닥에 고꾸라졌다.

치익-! 쾅!

바로 그 순간이었다.

통제 패널의 강제 해제 코드가 작동한 것인지, 수조실 전체를 감싸고 있던 비상 경보등이 붉은색에서 시퍼런 살기로 변했다.

기이한 진동음과 함께 수십 개의 대형 배양액 수조에 일제히 전류가 흘렀다.

푸스스스……!

유리관을 가득 채우고 있던 양수가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치익! 투둑!

수십 명의 '강진혁 클론'들이 눈을 번뜩이며 수조 밖으로 발을 디뎠다.

그들의 눈동자는 이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짐승의 것과 같았다. 오직 본능적인 살기와, 진혁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2만 MW의 마기에 반응하는 폭주 상태였다.

크르르릉……!

목과 손목에 새겨진 은빛 회로가 붉게 달아오르며, 클론들이 일제히 진혁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하나같이 똑같은 얼굴.

하나같이 똑같은 기혈의 흐름.

진혁이 걸어온 지옥의 궤적을 껍데기만 흉내 낸 '가짜 천마'들이 무리를 지어 진혁을 에워쌌다.

"크아아아아아-!"

가장 먼저 눈을 뜬 클론 하나가 음속의 속도로 진혁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진혁의 [마광신보]를 그대로 베껴낸 기동성이었다. 공기가 압축되며 거대한 폭음이 수조실의 천장을 때렸다.

하지만 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가짜는 아무리 모아도 가짜일 뿐."

진혁의 손에 쥐인 [천마검]이 푸른 뇌전을 머금으며 허공을 갈랐다.

지————익!

콰아아앙-!

압도적인 마기의 풍압이 수조실 전체를 휩쓸며, 달려들던 클론의 상반신이 단 한 번의 참격에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렸다.

진혁은 핏물이 튀는 검을 가볍게 털어내며, 눈앞을 가득 채운 수십 명의 자신을 향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전부 짓밟아 주마."

콰득, 우두둑-!

단 한 번의 검강(劍剛)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육편뿐이었다.

하지만 가짜 천마들은 통증도, 공포도 모른다는 듯이 사방에서 튀어나왔다.

크르르……!

수십 명의 클론들이 동시에 마기를 뿜어냈다. 비록 본체인 진혁의 2만 MW라는 압도적인 출력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하나하나가 웬만한 S급 특수부대 대장을 상회하는 미친 폭발력을 지니고 있었다.

지직- 지지직!

그들의 손목과 목덜미에 박힌 은빛 회로가 과열로 인해 붉게 달아올랐다. 진무극과 이현도가 수년에 걸쳐 갈고닦은 생체 개조 기술의 정점. 진혁의 유전자를 강제로 주입해 만든 '인공 천마(天魔)'의 군단이었다.

"크아아아!"

가장 가까이에 있던 클론 세 명이 동시에 진혁의 사각을 파고들었다.

그들의 주먹에는 진혁의 [흡원천공]을 흉내 낸 검붉은 기류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사방의 공기를 빨아들이며 단전의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흉악한 일격.

하지만 진혁은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탁.

진혁의 부츠가 바닥을 가볍게 짓밟았다.

그 순간,

콰아아앙-!

진혁의 몸을 중심으로 반경 십여 미터의 공간이 완전히 뒤틀렸다.

[만법귀마 - 파동(波動)]

적들의 무공 궤적과 기혈의 흐름을 연산할 필요조차 없었다. 2만 MW의 압도적인 단전 출력 그 자체를 물리적인 파동으로 치환하여 사방으로 터뜨리는 극초기형 마기 진동.

"커헉……!"

돌진해 오던 클론들의 안면이 파동에 부딪히며 움푹 찌그러졌다. 그들의 단전에 억지로 주입되었던 인공 마기 회로가 진혁의 본질적인 마기와 공진(共振)을 일으킨 것이다.

투두둑, 투두둑!

회로가 버티지 못하고 터져 나가며 클론들의 눈과 코에서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단 한 번의 파동 전개만으로도 진격을 멈춘 클론들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현도가 남겨둔 비밀 수조실의 배양액 공급 장치는 여전히 윙윙거리며 다음 타자의 생성을 알리고 있었다.

치익-!

수십 개의 빈 수조에서 또다시 양수가 터져 나오며 새로운 클론들이 눈을 뜨기 시작했다.

"끝이 없군."

진혁의 흑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복제된 그릇들.

진무극이 영혼을 갈아 끼우기 위해 준비해 둔 '완벽한 껍데기'들.

그것들은 스스로 사고하지도, 자신의 의지로 경지를 쌓지도 못한 채 오직 명령과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인형에 불과했다.

"내 이름을 더럽히는 쓰레기들."

진혁이 천마검을 거꾸로 쥐었다.

검신에 흐르던 칠흑의 마기와 푸른 뇌전이 하나로 융합되며, 견딜 수 없는 고주파의 진동음이 지하 500층의 공기를 찢어발겼다.

[뇌전마강 - 십자참(十字斬)]

지직- 지지지직-!

공간을 베어 가르는 십자 모양의 검강이 허공에 새겨졌다. 그것은 단순한 참격이 아니었다. 2만 MW의 단전 출력이 응축된 마기 폭풍이 빛의 궤적을 지우며 전방을 쓸어버렸다.

콰아아아아아방-!

지하 500층의 거대한 철문과 강화 콘크리트 벽면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수십 명의 클론들이 십자 참격의 폭풍 속에 휘말려 형체조차 남기지 않고 산산조각 났다.

비산하는 피 냄새와 타버린 생체 조직의 악취가 진동했다.

단 몇 초 만에, 수조실을 가득 채우고 있던 인공 클론 군단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쿵.

진혁이 바닥에 검을 짚으며 숨을 골랐다.

그의 이마에 미세한 땀방울이 맺혔지만, 2만 MW의 단전은 여전히 폭발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며 요동치고 있었다. 시스템의 보조 HUD가 꺼진 지 오래였지만, 진혁의 감각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했다.

치익…….

그때, 산산조각 난 통제 패널의 잔해 속에서 미약한 불빛이 깜빡였다.

완전히 파괴된 줄 알았던 메인 서버의 보조 디스플레이가 강한 전류를 받으며 마지막 로그를 띄워 올리고 있었다.

[SYSTEM INFO: 경고. 크로노스 바이오 제2연구소 코어 시스템 붕괴율 98.7%.]

[Emergency Protocol Activated.]

[기록 전송 대상: 상층 마천루 '헤븐리 파운데이션' 본부 중앙 서버.]

[데이터 패킷 전송 완료율: 94.2%…….]

"……?"

진혁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이현도는 단순한 연구소 소장에 불과했다. 그가 벌인 생체 실험과 클론 양산은 티타늄 그룹 전체의 거대한 계획 중 아주 작은 조각에 지나지 않았다.

진무극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남겨둔 시스템은 여전히 어딘가로 자신들의 데이터를 송신하고 있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건가."

진혁이 차갑게 입꼬리를 올렸다.

스스로를 신(神)이라 칭하며 인간을 데이터와 그릇으로만 취급하던 자들. 티타늄 그룹의 진짜 뿌리가 박혀 있는 곳, 신서울의 가장 높은 곳에서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거대 악의 본산.

[헤븐리 파운데이션].

진혁은 검을 들어 올렸다.

지하 500층의 잔해를 태우는 붉은 경보등 빛이 그의 칠흑 같은 검신 위에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파앗-!

진혁의 잔상이 지하 500층의 어둠을 가르며 수직으로 뻗은 승강기 터널을 향해 쏘아아아아아-! 빗발치듯 질주했다.

신서울의 밤하늘을 향해, 모든 악의 원흉을 부수기 위한 마지막 진격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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