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화 크로노스의 처형자들
치익-!
지하 500층의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찢어지는 고주파음이 중앙 홀의 사방을 난타했다.
어둠을 뚫고 쏟아져 나온 것은 단순한 인간의 형상이 아니었다. 전신을 티타늄 합금으로 도배하고, 신경계와 강제 동기화된 4세대 전투 나노머신을 육신 구석구석에 때려 박은 살인 기계들.
티타늄 그룹이 숨겨둔 최후의 칼날이자, 이현도의 수족인 특수 암살 부대 ‘처형자(Executioner)’였다.
“목표 확인. 생체 코어 출력 2만 MW 측정. 프로토콜의 예외 개체, 강진혁을 사살한다.”
금속성 기계음이 섞인 목소리와 함께, 처형자들의 손에 들린 고주파 진동 도검이 시퍼런 플라즈마 불꽃을 뿜어냈다. 그들이 발산하는 살기는 하층민의 생체 에너지를 연료 삼아 극한까지 끌어올려진 상태였다.
순간, 공간이 일그러졌다.
‘늦구나.’
강진혁의 흑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단전에서 치솟아 오른 2만 MW의 마기는 이미 그의 의지와 완벽하게 동기화되어 있었다. 시스템의 보조 HUD가 영구히 꺼진 지 오래였으나, 그의 감각은 그 어떤 인공지능보다 정밀하게 적들의 궤적을 꿰뚫고 있었다.
콰아아앙-!
먼저 움직인 것은 처형자들이 아니었다.
강진혁의 발밑에서 터져 나온 [마광신보 - 극(極)]의 여파가 바닥의 강화 콘크리트를 먼지만 남기고 분쇄했다.
빛의 잔상조차 남지 않는 초고속의 기동.
진혁의 형상이 허공으로 솟구치는 것과 동시에, 처형자들의 도검이 그가 있던 자리를 십자로 난타했다. 바닥이 유체처럼 녹아내리며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소멸해라.”
낮게 읊조린 진혁의 입술 사이로 칠흑 같은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의 오른손에 쥐어진 [천마검]이 푸른 뇌전과 뒤엉키며 폭발적인 굉음을 토해냈다.
[뇌전마강 - 십자참(十字斬).]
쿠구구구구궁-!
진혁의 검신에서 뿜어져 나온 X자 형태의 검강이 중앙 홀의 거대한 공간을 가득 채웠다.
천년 전 마교의 유골 데이터에서 추출한 고대 마공의 폭발력과, 현대 군사 플라즈마 기술이 융합된 절대의 일격.
그것은 물리 방어막 따위는 연산조차 할 수 없는 차원 다른 파괴력이었다.
푸스스슷-!
“끄아아아악……!”
십자참의 궤적에 스친 처형자 세 명의 상체가 순간적으로 멈췄다.
그들의 몸을 두르고 있던 4세대 나노 장갑이 자석에 이끌린 철가루처럼 미세한 분자로 쪼개져 사방으로 비산했다.
이어 그들의 단전 부근에 박혀 있던 고출력 생체 코어가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내부에서부터 폭발했다.
콰광! 쿠쾅!
연쇄적인 폭발이 지하 500층의 넓은 홀을 뒤흔들었다.
철판이 찢어지고 전선들이 끊어지며 사방에 스파크가 튀었다. 하지만 폭음 속에서도 진혁의 옷자락에는 먼지 하나 제대로 묻지 않았다.
털썩.
남은 처형자들의 잔해와 부서진 도검 조각들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단 한 번의 검휘두름. 티타늄 그룹이 자랑하는 최정예 암살 부대가 완전무결하게 궤멸하는 데 걸린 시간은 1초도 되지 않았다.
슈우우욱…….
진혁은 가볍게 숨을 몰아쉬며 천마검의 검신을 툭 털었다. 검끝에서 흐르던 푸른 뇌전이 잔잔하게 가라앉으며 칠흑의 마기로 흡수되었다.
단전의 출력은 여전히 2만 MW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5단계 [초월천마경]에 도달한 그의 육체와 기혈은, 이 정도의 무력 행사에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이, 이게 도대체…….”
멀찍이 떨어진 통제실의 강화 유리 너머.
그 광경을 고스란히 지켜보고 있던 이현도(크로노스)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가셨다.
마르고 신경질적인 그의 얼굴이 공포로 하얗게 질려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손에 쥐고 있던 태블릿PC가 바닥으로 떨어져 박살이 났지만, 그는 그것을 주울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괴물…… 아니, 마신(魔神)이야……! 저런 출력이 인간의 육체에서 나올 리가 없어!”
이현도는 다리가 풀린 듯 제어판을 붙잡고 주저앉았다.
자신이 설계하고 개조한 수많은 살인 병기들이 그저 한 줌의 먼지로 변해버리는 것을 본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원초적인 공포뿐이었다.
달그락, 달그락.
철판 바닥을 울리는 진혁의 무거운 군화 소리가 홀 전체에 울려 퍼졌다.
소리 없는 압박감이 공간을 짓눌렀다.
진혁의 시선이 통제실의 강화 유리를 너머, 그 뒤편에 숨어 있는 이현도를 향해 고정되었다.
사각, 사각.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진혁이 통제실의 두꺼운 방탄 유리를 향해 걸어갔다.
그의 흑안에는 일말의 자비도, 흔들림도 없었다. 오직 자신을 실험체 07호로 만들고 수많은 이들을 지옥에 밀어 넣은 만악의 근원 중 하나를 처단하겠다는 냉혹한 의지만이 가득했다.
탁.
진혁의 손바닥이 강화 유리에 닿았다.
단단한 특수 합금 유리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세한 마기의 진동에 의해 유리의 표면이 거미줄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크, 크로노스 수석님! 방어벽을 더 올려라! 당장 저 괴물을 막아……!”
통제실 안의 다른 연구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메인 제어 콘솔을 두드렸지만, 이미 시스템의 코어 권한은 진혁이 거쳐 온 해킹 회로를 통해 완전히 무력화된 지 오래였다.
빠각-!
우지끈-!
진혁이 손에 힘을 주자마자, 수십 밀리미터 두께의 강화 유리가 유리 조각이 되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커학……!”
폭풍처럼 밀려드는 마기의 압박감에 이현도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바닥을 구렀다.
진혁은 부서진 창틀을 가볍게 밟고 통제실 내부로 진입했다. 그의 군화 끝이 이현도의 구두 굽을 짓밟았다.
“이, 이현도라고 한다……! 나를 죽이면 안 돼! 네가 찾고 있는 그 모든 데이터, 프로토콜의 진짜 비밀이 내 머릿속에 들어있단 말이다……!”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이현도가 바닥을 기며 악을 썼다.
그의 눈에는 눈물과 식은땀이 범벅이 되어 있었다.
진혁이 내려다보는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그는 천마검의 서늘한 검신을 이현도의 목덜미에 갖다 대며 낮게 읊조렸다.
“비밀 따윈 필요 없다.”
“뭐……?”
“네 머릿속에 들어 있는 그 더러운 데이터까지, 전부 씹어 삼켜주마.”
진혁의 손에서 흘러나온 마기가 검신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현도의 얼굴에 절망이 극에 달한 순간, 진혁의 시선이 통제실 너머에 숨겨진 또 하나의 거대한 철문, 그리고 그 문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기묘한 생체 반응을 포착했다.
지하 500층의 가장 깊은 곳.
크로노스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숨겨둔 '비밀 수조실'의 기운이었다.
진혁은 이현도의 목에 대었던 검을 잠시 거두고,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탁-!
이현도의 목덜미에서 물러난 천마검의 날이 허공을 가르며 낮게 울렸다.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살아난 이현도가 바닥을 긁으며 헐떡였다.
“크하…… 흣……!”
하지만 진혁은 그에게 더 이상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의 흑안은 통제실 안쪽, 두껍게 차폐된 티타늄 강화 철문 너머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지하 500층의 바닥을 울리며 미세하게 전해져 오는 진동.
그것은 기계의 구동음이 아니었다. 수많은 심장이 동시에 뛰는 듯한, 축축하고도 기괴한 생체 반응이었다.
‘이 현장에 어울리지 않는 파동이다.’
신천마신공 제5단계 [초월천마경]에 도달한 진혁의 감각은 단전의 2만 MW 출력과 맞물려 반경 수 킬로미터 내의 모든 에너지 흐름을 꿰뚫고 있었다.
철문 너머에서 느껴지는 것은 단순한 인공지능이나 개조 로봇의 파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 숨 쉬는 세포, 그것도 인간의 유전자가 강제로 뒤틀리며 증식하는 혐오스러운 생명력의 파동이었다.
끼익- 쿠구구궁!
진혁이 손을 가볍게 휘두르자, 마기로 압축된 검강이 철문의 중앙을 정통으로 강타했다.
수십 센티미터 두께의 특수 방탄 합금문이 종이장처럼 구겨지며 안쪽으로 무너져 내렸다.
스으으읍…….
문이 열림과 동시에, 지하 500층의 공기와는 차원이 다른 지독한 약품 냄새와 비린내가 통제실 안으로 확 밀려들었다.
방독면을 쓰지 않으면 폐가 녹아내릴 듯한 맹독성의 방부제 냄새 속에서, 이현도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쉰소리를 뱉었다.
“거기, 거기는…… 들어가면 안 된다……! 거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완성?”
진혁이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으며 고개를 돌렸다.
이현도는 공포로 일그러진 얼굴로 바닥을 기며 머리를 감쌌다.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온 진실은 광기 어린 연구원의 마지막 유언이자, 티타늄 그룹이 숨겨온 가장 추악한 비밀이었다.
“네, 네놈이…… 네놈이 세상에 나타나기 전부터 회장 진무극과 내가 준비했던 최종 프로젝트다! 천마 프로토콜의 진짜 목적이 뭔 줄 아나? 단순히 마공을 익히는 게 아니야! 천마의 유골에서 추출한 완벽한 육체의 유전자를 복제해, 영원히 썩지 않는 불멸의 그릇을 만드는 것……!”
이현도의 말이 이어질수록 진혁의 눈빛은 더욱 싸늘하게 식어갔다.
“그 첫 번째 완성품이 바로 너야, 강진혁! 실험체 07호! 네 몸뚱아리는 우리가 설계한 완벽한 그릇의 프로토타입에 불과하다고!”
치익-!
이현도의 광기 어린 외침을 끝으로, 진혁은 더 이상 듣지 않겠다는 듯 가볍게 발을 디뎠다.
[마광신보 - 극(極)]의 여파가 이현도의 귓가를 스치며 그의 뺨에 얕은 생채기를 냈다. 이현도는 기절하듯 바닥에 고꾸라졌다.
걸음을 옮긴 진혁이 무너진 철문 너머의 공간, ‘비밀 수조실’ 안으로 완전히 발을 들였다.
“……이런.”
진혁의 입술 사이로 낮게 탄식이 새어 나왔다.
그것은 전투의 광기 속에서도 경악을 금치 못할 만큼 기괴하고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스으으읍, 보글보글…… 타다닥.
거대한 원형 수조들이 거대한 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수조 안에는 짙은 푸른빛을 띤 고농도의 바이오 배양액이 가득 차 있었고, 그 액체 속에는 인간의 형상을 한 물체들이 하나둘씩 잠겨 있었다.
유리 수조 하나하나에 부착된 홀로그램 디스플레이가 깜빡이며 일련번호를 띄우고 있었다.
[SPECIMEN - 01]
[SPECIMEN - 02]
[SPECIMEN - 03]
……
[SPECIMEN - 06]
그리고 그 옆, 가장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특수 배양 수조.
그곳에는 다른 이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하고 완성도 높은 인공 육체가 부유하고 있었다.
칠흑 같은 검은 머리칼.
목과 손목을 따라 흐르는 은빛의 회로 선.
그리고 차가운 감은 눈까지.
그것은 놀랍게도, 강진혁 자신과 완벽하게 똑같은 외모를 한 복제품이었다.
‘클론…….’
진혁의 미간이 미세하게 구겨졌다.
티타늄 그룹은 단 하나의 실험체만을 만든 것이 아니었다. 만약 강진혁이 폐기장에서 죽거나 프로토콜을 이겨내지 못하고 폭사했을 경우를 대비해, 혹은 진무극이 자신의 영혼을 이식할 더 완벽한 육체를 대량 생산하기 위해 그의 유전자를 복제해 수십 개의 '그릇'을 배양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조 속의 클론들은 아직 완벽하게 눈을 뜨지 않은 상태였으나, 그들의 단전 부근에서는 진혁이 품고 있는 것과 유사한 기묘한 마기의 파동이 몽환적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티타늄 그룹의 진짜 음모.
그것은 단순히 강진혁 하나를 실험체로 쓰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천마의 유골 데이터를 이식할 수 있는 최적의 유전자 조합을 찾아내기 위한 거대한 '인간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던 셈이다.
삐- 삐- 삐-!
갑자기 수조실 전체의 경보음이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진혁이 배양 수조 앞에 멈춰 선 순간, 중앙 수조의 홀로그램 디스플레이가 푸른빛에서 선혈 같은 적색으로 변환되며 새로운 시스템 로그를 띄웠다.
[WARNING: 외부 침입자에 의해 프로토콜 07호의 클론 군단이 비정상 각성 상태에 진입합니다.]
[시퀀스 99-B: 마기 동기화율 상승. 복제 그릇들의 자가 면역 체계 가동.]
지이잉-!
수십 개의 배양 수조를 감싸고 있던 강화 유리들이 일제히 미세한 진동을 시작했다.
배양액 속에서 눈을 감고 있던 클론들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그 칠흑 같은 흑안이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진짜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수십 명의 복제품들.
그들의 눈동자에는 자아도, 감정도 없었다. 오직 마기에 지배당한 채 강진혁을 향해 적대적인 살기를 뿜어내는 빈 껍데기들뿐이었다.
달그락, 쿠구궁-!
가장 가까이에 있던 [SPECIMEN - 06]의 수조 유리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안에서부터 흘러나온 마기가 유리를 밀어내며 당장이라도 밖으로 튀어나올 듯한 기세를 뿜어냈다.
진혁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천마검의 검신을 가볍게 고쳐 잡았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과거의 자신, 혹은 자신이 될 수도 있었던 흉측한 잔해들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동정심이나 공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만든 힘은, 그 어떤 복제품 따위가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진혁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올라갔다.
단전의 2만 MW 출력이 다시 한번 폭발적으로 요동치며, 그의 온몸을 칠흑 같은 마기와 푸른 뇌전으로 물들였다.
콰아아앙-!
가장 먼저 유리를 깨고 튀어나온 첫 번째 클론이 날카로운 손톱을 세우며 진혁의 목을 향해 짓이겨 들었다.
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천마검을 허공으로 가볍게 휘둘렀다.
푸스스슷-!
복제품의 육체가 빛의 입자로 흩어지며 순식간에 양옆으로 갈라졌다.
하지만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였다. 수십 개의 수조가 일제히 터져 나가며, 수많은 '강진혁'들이 동시에 칠흑의 살기를 품고 진혁을 향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신서울 지하 500층의 암흑 속에서, 진정한 자신과의 처절한 사투가 막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