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벌레들을 사냥하는 방법
쿠우우웅!
건물의 철제 외벽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비산하는 콘크리트 파편과 흩날리는 네온사인의 잔해 속에서, 기계식 의수를 장착한 거구의 사이보그들이 어둠을 뚫고 밀려들었다.
사이코패스처럼 눈에 붉은 안광을 번뜩이는 신마교의 행동대원들이었다. 그들의 척추 부근에 장착된 2세대 전투용 코어가 기괴한 고주파음을 토해내며 주변의 공기를 뒤흔들었다.
"거기 서라, 실험체 07호! 회장님께서 네 녀석의 뇌를 온전한 상태로 가져오라 엄명하셨다!"
맨 앞을 가로막은 거구의 사이보그가 흉측하게 변형된 유압식 주먹을 내지르며 포효했다. 바람을 가르는 압풍이 진혁의 뺨을 스쳤다. 일반인이라면 바람 압력만으로도 고막이 터졌을 맹공.
하지만 강진혁의 시야는 놀라울 정도로 차갑고 고요했다.
[SYSTEM INFO: 대상의 움직임 벡터 분석 완료.]
[적정 회피 경로 및 카운터 타이밍 계산 중...]
[경고: 현재 단전 구역의 마기 밀도 안정화 필요. 12%의 오버히트 가능성.]
머릿속을 스치는 HUD의 음성은 차가웠으나, 진혁의 육체는 그보다 한 박자 더 빠르게 반응하고 있었다. 그는 시스템의 안내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았다. 이미 2단계 ‘마기융합’의 경지에 접어든 그의 혈관 속에서는 나노머신과 고대의 마기가 하나로 얽혀 펄스처럼 고동치고 있었으니까.
화아악!
진혁의 두 발이 바닥을 짓밟는 순간, 공기가 가볍게 찢어지는 비명이 울렸다.
[마광신보(魔光神步)].
빛의 궤적을 비틀어 잔상을 남기는 극한의 보법.
거구의 사이보그가 휘두른 철권은 진혁이 남긴 잔상만을 꿰뚫었다. 허공을 가격한 주먹의 충격파가 뒤편의 콘크리트 기둥을 완전히 박살 냈다.
"……어?!"
행동대장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기도 전이었다.
그의 시야 속에서 이미 사라졌던 진혁의 형체가 어느새 거구의 품 안쪽으로 파고들어 있었다.
파지지직!
진혁의 오른손에 시퍼런 검기가 응축됐다. 현대의 고주파 진동 파쇄 기술과 고대 마교의 살인기예가 완벽하게 융합된 ‘마검기(魔劍氣)’. 그것이 사이보그의 두꺼운 티타늄 장갑을 두부 깎듯 부드럽게 관통했다.
푸쉭!
"크윽……!"
행동대장의 가슴팍에서 검은 피와 함께 화염이 튀었다.
진혁은 망설임 없이 손을 깊숙이 밀어 넣었다. 상대의 흉강 깊은 곳에 박혀 있던 2세대 군사형 생체 코어가 진혁의 손아귀에 붙잡혔다.
- 흡원천공(吸元天功), 기동.
콰지지직-!
"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발전소 지하를 메웠다.
사이보그의 코어에서 뿜어져 나오던 고출력 에너지가 역류하며 진혁의 팔뚝을 타고 혈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상대의 신경망을 타고 흐르던 나노머신 회로마저 강제로 해체되어 진혁의 세포 속으로 흡수되었다.
[SYSTEM INFO: 2세대 군사 코어 에너지 및 나노머신 데이터 흡수 완료.]
[생체 코어 출력 상승: 720 MW → 800 MW 돌파.]
[나노머신 동기화율: 81.5% 도달.]
[경고: 일시적인 에너지 유입으로 인한 부하 발생. 기혈 순환을 정비합니다.]
진혁의 단전이 뜨겁게 달어올랐다.
온몸의 세포가 환희에 찬 듯 팽창했다. 800 MW를 돌파한 생체 코어의 출력이 온몸의 신경망을 전율시켰고,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묵직한 마기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터벅, 투둑.
진혁이 손에 쥐고 있던 생체 코어를 그대로 짓뭉개며 시체를 바닥에 내던졌다.
핏투성이가 된 손을 가볍게 털어내자, 그의 은빛 회로가 흐르는 손목 주변으로 미세한 플라즈마 방전 현상이 일어났다.
"컥…… 미친 새끼……."
주변에서 달려들던 다른 신마교 행동대원들이 그 끔찍한 광경을 보고 멈칫했다.
동료의 코어가 단 몇 초 만에 강탈당하고, 고철 덩어리가 되어 바닥에 나뒹구는 모습을 본 이들의 얼굴에 공포가 서렸다. 이들은 뒷골목에서 마약을 팔고 사람을 사냥하던 잔인한 범죄자들이었으나, 진혁이라는 존재 앞에서 그들은 한낱 사냥감에 불과했다.
"도망쳐라! 저건 괴물이다!"
"쏴라! 뒈져라, 이 씹새야!"
우르릉-!
남은 무뢰배들이 일제히 휴대용 플라즈마 건과 고주파 연발총을 꺼내 들어 진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파란색 화염과 고열의 탄환들이 빗발치듯 진혁을 향해 쏟아졌다. 사방이 불바다로 변하며 공간이 뜨거운 열기로 일그러졌다.
하지만 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휘리릭-!
진혁의 몸이 유령처럼 흔들렸다.
마광신보의 가속이 한계까지 끌어올려지며, 눈앞에 쏟아지는 플라즈마 탄막 사이로 수십 개의 잔상이 겹쳐졌다. 탄환들은 진혁의 옷자락조차 스치지 못한 채 허공을 갈랐다.
파앗!
가장 가까이에 있던 행동대원의 코앞에 진혁이 홀연히 나타났다.
남자의 눈이 커졌다. 진혁이 천천히 팔을 들어 올리며 손날을 세웠다.
툭.
"커헉."
소리도 나지 않는 간결한 일격.
남자의 목뼈가 기괴한 각도로 꺾이며 그 자리에서 풀썩 주저앉았다.
진혁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사방으로 흩어지는 잔상을 이용해 남은 무뢰배들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우드득! 파각!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철판이 찌그러지는 소리가 교차했다. 마검기를 두른 손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신마교 대원들의 의수와 방어구는 무력하게 박살 났고, 그들의 생체 코어 에너지는 어김없이 진혁의 흡원천공에 의해 빨려 들어갔다.
불과 1분도 지나지 않아, 거대한 지하 수력 발전소 입구는 수십 구의 시체와 고철 잔해로 뒤덮였다.
휴우……윽.
진혁이 가볍게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서 멈춰 섰다.
입술 사이로 뿜어져 나온 백색의 기운이 차가운 공기 속에서 하얗게 흩어졌다. 800 MW로 치솟은 코어 출력이 몸에 완전히 자리 잡으며, 근육의 섬유 조직 하나하나가 강철처럼 단단하게 재구성되는 감각이 느껴졌다.
[SYSTEM INFO: 전투 종료.]
[흡수된 데이터 파편 조각을 재구성합니다.]
[‘신마교(Neo-Ma-kyo)’ 내부 통신 로그 복원 중…….]
진혁의 시야 구석에 푸른빛의 HUD 창이 펼쳐지며 데이터가 흘러내렸다.
단순히 마약을 밀수하고 뒷골목을 주무르던 하부 조직인 줄 알았으나, 그들의 통신망에서 오고 간 데이터는 생각보다 훨씬 깊고 어두운 진실을 품고 있었다.
- <티타늄 그룹 제3연구소 프로젝트 코드: '천마(天魔)'>
- <실패작 처분 및 하부 조직 위장 운영 지침>
- <총책임자: 코드네임 '광마(狂馬)'>
"……티타늄이 버린 개들 중에서 가장 미쳐 돌아간 놈들이 이 신마교란 말이지."
진혁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말려 올라갔다.
그들은 단순한 범죄 집단이 아니었다. 티타늄 그룹이 고대 마교의 유골 데이터를 바탕으로 마공 실험을 자행할 때, 그 과정에서 뇌가 망가지거나 마기 폭주를 일으켜 버려진 '인간 실험체'들의 잔해였다.
그리고 그 수장이자, 티타늄 그룹의 연구 시설에서 천마의 비급 데이터를 들고 도망친 놈이 바로 이 지하 수력 발전소 최하층에 도박판과 격투장을 차리고 숨어 있었다.
"찾았군."
진혁이 차갑게 중얼거렸다.
그때, 뒤쪽에서 부서진 철제 컨테이너를 기어오르며 숨을 몰아쉬던 윤아영이 진혁의 등 뒤를 바라보며 입을 떡 벌렸다.
"야…… 너, 미쳤어? 저 수십 명의 사이보그들을 혼자서 이 1분 만에 다 썰어버린 거야? 네 단전 안에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윤아영의 분홍빛 숏컷 머리가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녀가 태블릿 PC를 두드리며 진혁의 상태를 스캔하려 했으나, 진혁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거대한 마기의 파동 때문에 화면이 지직거리며 에러를 뿜어냈다.
"시끄럽고."
진혁이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여기가 네가 말했던 '광마'가 있는 지하 최하층 가는 길이 맞나?"
"어……? 어, 맞아! 발전소 메인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거기가 신마교의 본거지이자 지하 격투장이야. 근데 거기에는 광마 이 미친 놈이 직접 개조한 괴물들이 우글거린다니까? 그리고 그 밑에는 티타늄 연구소와 연결된……."
윤아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쿠구구구구웅-!
발전소 전체가 진동하며, 지하 최하층으로 내려가는 메인 엘리베이터의 거대한 철문이 찢어질 듯한 소리와 함께 좌우로 열렸다.
그 어둡고 깊은 심연 같은 지하 격투장의 입구에서,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거대하고 야만적인 살기가 훅 끼쳐 들어왔다.
- 키득, 키득키득…… 쥐새끼들이 많이도 기어들어 왔군.
엘리베이터 안쪽의 어둠 속에서, 기괴하게 개조된 뇌와 시두(視頭) 회로가 번뜩이는 거구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천마 프로토콜의 03호 실패작이자, 지하 격투장의 절대자 '광마(狂馬)'였다.
진혁은 그를 향해 차가운 시선을 던지며, 피 묻은 검을 땅바닥에 가볍게 끌었다.
슥- 긁히는 소리와 함께, 복수의 밤이 한 층 더 깊어지고 있었다.
치익, 지직―!
광마의 어깨에 박힌 노출형 시두 회로에서 전류가 튀었다. 일반적인 인간의 뇌 구조를 개조해 전투 연산 능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잔해. 그 부자연스러운 신체는 격투장 바닥을 짓밟을 때마다 둔탁한 지진파를 만들어냈다.
"네 놈이…… 회장 영감이 그렇게 찾아 헤매던 실험체 07호인가?"
광마의 입가에 찢어진 흉터가 기괴하게 벌어졌다. 그의 손에 쥐여진 대형 슬러그 건과 의수로 변형된 거대한 철퇴에서는 시퍼런 전류가 쉴 새 없이 흘렀다.
"꼴에 마기를 두르고 있군. 그래 봤자 티타늄의 버림받은 개 새끼일 뿐이야! 네놈의 단전을 뜯어내어 내 코어에 박아주마!"
쾅!
광마가 바닥을 박차며 급습했다.
마광신보를 뛰어넘는 미친 폭발력. 2세대 군사 코어와는 격이 다른 3세대에 근접한 출력이 광마의 육체를 포탄처럼 쏘아 올렸다.
진혁의 시야가 다시 한번 빠르게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SYSTEM INFO: 적의 돌진 벡터, 회피 불능 구역 감지.]
[대응 기동: 단전의 마기를 최대로 압축하여 전면 방어 전개 요망.]
하지만 진혁은 시스템의 권고를 무시했다.
방어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이미 800 MW를 돌파한 생체 코어와 10년 치의 마기가 혈관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폭발적인 출력을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막지 않는다. 뚫는다.’
진혁의 흑안에 시퍼런 마기가 역류했다.
그가 검을 거꾸로 쥐며 몸을 낮췄다. 2단계 [마기융합]의 진수를 끌어내는 순간, 진혁의 전신에 얽혀 있던 은빛 회로가 태양처럼 맹렬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슈우우욱!
광마의 철퇴가 진혁의 머리통을 박살 내기 직전, 진혁의 형체가 신기루처럼 허공으로 꺼졌다.
광마의 공격이 공기를 갈라내며 뒤편의 철제 컨테이너를 종잇장처럼 구겨버렸다.
"어디로 숨었지, 이 벌레 새끼가!"
광마가 눈을 부릅뜨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진혁은 도망친 것이 아니었다. 이미 광마의 사각, 그 거대한 등짝 위로 올라타 있었다.
파지지직!
"기분 나쁘군."
진혁의 입에서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의 오른손이 광마의 척추 부근, 3세대 개조 코어가 박힌 부위를 정확하게 움켜쥐었다.
- 흡원천공(吸元天功), 개방.
콰아아앙!
"크아아아아악――!"
광마가 비명을 지를 새도 없었다.
진혁의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온 시커먼 마기와 나노머신 역류 현상이 광마의 신경망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광마가 자랑하던 압도적인 코어 출력과 개조된 뇌 회로의 에너지가 역류하며, 그의 눈과 귀에서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SYSTEM INFO: 3세대 개조 코어 데이터의 비정상적 에너지 흡수 시작.]
[생체 코어 출력 급상승: 800 MW → 1,100 MW 돌파!]
[경고: 과부하로 인한 혈관 파열 위험. 즉각적인 기혈 안정을 권장합니다.]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미친 듯이 울렸지만, 진혁은 손아귀의 힘을 풀지 않았다.
오히려 마기를 더 깊숙이 밀어 넣으며 광마의 생체 코어를 단숨에 박살 내 버렸다.
우드득, 콰직!
"커헉…… 컥……."
거구의 광마가 무릎을 꿇었다.
그의 가슴팍에는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안에서 타다 남은 회로가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진혁은 피투성이가 된 손을 빼내며 차가운 시선으로 바닥에 고꾸라지는 광마를 내려다보았다.
단숨에 1,100 MW를 넘어선 코어 출력 덕분에 온몸이 터질 듯한 열기로 가득 찼지만, 진혁의 표정은 일그러짐 하나 없이 평온했다.
뒤에서 이 광경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지켜보던 윤아영이 덜덜 떨며 중얼거렸다.
"미쳤어…… 진짜 괴물이잖아 저거……."
진혁은 피 묻은 검을 바닥에 툭 떨구며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광마가 지키고 서 있던 지하 최하층의 어두운 통로. 그 끝에는 티타늄 그룹의 진짜 비밀 실험실과 연결된 거대한 철문이 은은한 푸른빛을 내뿜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티타늄이 숨기고, 천마회가 감추려 했던 진짜 진실이 그곳에 있었다.
"윤아영."
진혁이 고개를 돌려 윤아영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 없이 방황하던 시선이 진혁의 단단한 어깨에 닿자, 윤아영은 저도 모르게 긴장을 풀고 침을 삼켰다.
"어, 어? 왜?"
"문 열어라."
진혁의 흑안이 서늘한 살기로 물들었다.
티타늄 그룹의 목을 조르기 위한 첫 번째 장기판은 이미 정리되었다. 이제 진짜 사냥을 시작할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