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은신처와 화이트 섀도
콰아아앙─!
건물의 외벽이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바깥의 네온빛이 안쪽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빗물과 섞인 콘크리트 먼지가 자욱하게 날리는 가운데, 거대한 그림자 두 개가 굉음과 함께 들이닥쳤다.
"이 안이다! 쥐새끼처럼 숨어 있던 놈들을 전부 뜯어발겨!"
고함소리와 함께 찢어진 벽 틈새로 비틀린 철근이 사방으로 튀었다.
하층 슬럼가의 어둠을 지배하는 사이버 마피아, ‘천마회(天魔會)’.
티타늄 그룹이 버린 마공 실험의 부산물들과 지하 세계의 범죄자들이 엉켜 만들어진 이 기형적인 집단의 습격조는 일반적인 인간의 형상을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우두둑, 우두둑-.
관절이 꺾이는 기괴한 소리와 함께 전신을 전투용 사이보그 의수로 개조한 무뢰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눈알 대신 박힌 적외선 스캐너가 어두운 실내를 붉게 번뜩였다.
"찾았다. 칠흑 회로를 두른 실험체 놈…… 회장님께서 원하시는 완벽한 그릇이 바로 저 자식이다!"
습격조의 대장이 입가에 찢어진 웃음을 걸치며 흉측하게 개조된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그의 팔목에 장착된 3세대 플라즈마 캐논이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푸른빛의 고열 에너지를 모으기 시작했다. 실내의 공기가 순식간에 달아오르며 타는 듯한 오존 냄새가 진동했다.
하지만 그 압도적인 무력 과시 앞에서도 강진혁의 표정은 미동조차 없었다.
흑안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고, 그의 등 뒤로는 여전히 옅은 흑기(黑氣)가 일렁이고 있었다.
"끄…… 윽……!"
진혁의 팔에 목이 잡힌 채 바닥에 반쯤 처박혀 있던 윤아영이 숨을 헐떡였다.
숏컷의 분홍빛 머리카락은 땀에 젖어 이마에 엉겨 붙어 있었고, 그녀의 둥근 눈은 공포와 경악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진혁이 그녀의 목을 쥔 손에 힘을 조금 더 주자, 아영은 숨이 넘어갈 듯한 소리를 내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콜록……! 미쳤어? 저기 저 미친개들이 눈에 안 보여? 저놈들 무기, 하층가 군용 밀수품이야! 직격당하면 네 몸뚱아리도 뼈도 못 추려!"
"시끄럽다."
진혁의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아영의 귓가를 때렸다.
그는 아영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 다만 이 여자에게서 흘러나오던 '천마 프로토콜'의 잔여 주파수, 그리고 자신 외에도 이 시스템에 접근하려는 자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해답을 찾기도 전에 방해꾼들이 먼저 들이닥친 참이었다.
휘익─!
진혁은 아영의 목을 잡고 있던 손을 가볍게 풀었다. 그러자마자 아영은 바닥에 주저앉아 기침을 토해내며 급히 뒤로 물러났다.
콰아앙!
때마침 천마회 대장이 겨누었던 플라즈마 캐논이 발사되었다.
공기를 찢는 고주파음과 함께 일직선의 고열 광선이 진혁을 향해 쇄도했다.
피할 수 없는 거리.
일반적인 인간의 반응 속도라면 이미 한 줌의 재가 되었을 공격이었다.
하지만 진혁의 눈동자 속에서 푸른빛의 시스템 로그가 빠르게 회전했다.
[SYSTEM INFO: 천마 프로토콜 v3.04]
- 적외선 스캐너 궤적 분석 완료.
- 플라즈마 탄도 발사각: 우측 15도 편향.
- [마기융합(魔氣融合)] 경지 가동. 신체 반응 속도 300% 증폭.
"하찮군."
진혁의 입꼬리가 비틀어올라갔다.
그의 단전 부근에서 묵직하게 소용돌이치던 10년 치의 마기가 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스으으윽.
진혁의 몸이 잔상처럼 흐려졌다.
초기 마공의 극치인 [마광신보(魔光神步)]가 발동하는 순간이었다.
빛의 궤적마저 비틀어버리는 듯한 기묘한 보법과 함께, 진혁의 형체는 플라즈마 광선이 지나간 잔해 속에서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어……? 어디 갔어?!"
천마회 대장의 붉은색 적외선 스캐너가 사방을 미친 듯이 훑었다.
그러나 진혁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대장의 귓가에, 맹수가 먹잇감의 뒤통수에 숨결을 불어넣는 듯한 낮고 서늘한 목소리만이 꽂혔을 뿐이다.
"너희들이 말하는 그 '그릇'이 어떤 물건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 봐라."
"……뭐?"
퍼억─!
둔탁한 폭음과 함께 천마회 대장의 거대한 사이보그 몸뚱이가 그대로 허공에 떠올랐다.
진혁의 손바닥이 그의 척추 부근에 박혀 있었고, 그 손끝에서는 시커먼 마기가 뿜어져 나와 대장의 2세대 군사형 생체 코어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크아아아아악───!"
비명조차 제대로 지를 수 없었다.
대장의 온몸에 박혀 있던 은빛 나노머신 회로들이 진혁의 손바닥을 향해 역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강진혁이 지닌 가장 잔혹하고도 압도적인 권능, [흡원천공(吸元天功)]의 응용이었다.
[SYSTEM INFO: 천마 프로토콜]
- 타겟의 생체 코어 에너지를 강탈합니다.
- 출력 추출 중: +800 MW 확보.
- 나노머신 동기화율: 84.2% → 89.5%로 상승.
- [마기융합] 2단계 안정화 가속.
"커헉…… 내, 내 코어가…… 몸이 녹아내려……!"
대장은 발버둥을 쳤지만, 진혁의 손아귀는 용접 토치로 용접한 것보다 더 단단하게 그의 등딱지를 붙잡고 있었다.
진혁의 얼굴 위로 핏줄이 불거지며 은빛 회로가 은은하게 빛났다.
적의 힘을 강탈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감각. 세포 하나하나가 불타오르는 듯한 고통 속에서, 진혁의 힘은 매 순간 한계치를 경신하고 있었다.
툭.
에너지가 완전히 바닥나 깡통처럼 말라비틀어진 대장의 육신이 바닥에 흉측하게 내동댕이쳐졌다.
진혁은 차가운 눈으로 시체를 내려다보며 입가를 훔쳤다.
"크루…… 으음."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르던 열기가 한층 더 정제되며 묵직한 내력으로 자리 잡았다.
마기융합 2단계의 초입에서 완전히 중기로 넘어가는 감각이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윤아영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녀는 수많은 해커들과 불법 개조인들, 그리고 티타늄 그룹의 사냥개들을 보아왔다. 하지만 이토록 직관적이고 무자비하게 인간의 생명력과 기계의 에너지를 도려내는 자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저건 무술이 아니었다.
그것은 눈앞의 모든 것을 파괴하기 위해 태어난 사신(死神)의 기술이자, 기계와 인간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저주였다.
"너…… 너 도대체 정체가 뭐야? 티타늄의 실험체 07호라고 했어? 그런 미친 괴물이 그 폐기장에서 살아남았다고?"
아영이 바닥을 손으로 짚으며 채비하듯 뒤로 물러났다.
그녀의 손목에 차인 홀로그램 단말기에서는 여전히 붉은색 경고등이 미친 듯이 깜빡이고 있었다.
진혁은 피 묻은 손을 툭툭 털어내며 고개를 돌려 아영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차가운 흑안이 아영의 심장을 조여오는 듯했다.
"정체는 중요하지 않다."
진혁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서늘했다.
"중요한 건, 네가 가지고 있는 그 단말기다."
아영은 저도 모르게 자신의 손목을 감싸쥐었다.
홀로그램 단말기의 화면에는 진혁이 방금 발산한 마기의 파장에 반응하듯, 복잡한 기하학적 문양의 프로토콜 코드가 춤을 추듯 그려지고 있었다.
"이거……?"
아영이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이건 내가 만든 게 아니야. 우리 '화이트 섀도'의 선배가 티타늄 그룹의 메인 서버에서 해킹해 온 잔여 데이터 조각이라고. 세상의 모든 정보는 자유로워야 한다는 신념으로 이걸 파헤치려다가…… 그 선배는 일주일 전에 세상을 떠났어. 아니, 정확히는 티타늄의 사냥개들에게 '청소'당했지."
아영의 눈동자에 짙은 분노와 슬픔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진혁을 올려다보았다.
"너도 티타늄에게 모든 걸 빼앗긴 거잖아? 그 회장이라는 미치광이, 진무극에게 복수하고 싶은 거 아니야?"
진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눈빛이 조금 더 깊어졌을 뿐이다.
진무극. 그 늙은 괴물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인간을 오직 효율과 데이터로만 재단하며, 자신의 육체를 '그릇'으로 쓰기 위해 실험을 자행했던 자.
아영은 진혁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단말기를 집어 들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내 데이터와 너의 그 괴물 같은 무력. 이걸 합치면 티타늄의 중앙 서버를 타격할 수 있어. 어때, 강진혁? 나와 거래하지 않을래?"
진혁은 잠시 아영을 응답 없이 응시했다.
시스템의 보조 HUD 창이 그의 시야 구석에서 깜빡이며 경고음을 울렸다.
[SYSTEM INFO: 천마 프로토콜]
- 경고: 외부 단말기와의 주파수 동기화는 프로토콜의 보안 권한을 침해할 위험이 있습니다.
- 권장: 대상(윤아영)을 제거하거나 차단하십시오.
진혁은 시야 구석의 푸른빛 경고창을 차가운 의지로 짓밟아 지워버렸다.
시스템이 명령하는 대로 움직이는 호구 따위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프로토콜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부리는 도구일 뿐이었다.
"거래의 조건은 하나다."
진혁이 낮게 읊조렸다.
"내 길에 방해가 된다면, 그 어떤 정보든 네 손모가지든 먼저 날아갈 것이다."
아영은 씁쓸하게 웃었지만, 이내 눈빛을 반짝이며 단말기를 진혁에게 내밀었다.
"살벌하기도 하지. 좋아, 계약 성립이야. 자, 그럼 첫 번째로 선물해 줄 만한 정보를 줄게."
아영이 단말기를 몇 번 두드리자, 실내의 벽면에 투사된 홀로그램 화면이 휙 바뀌었다.
그곳에는 신서울 하층가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지하 수로망, 그리고 그 밑에 숨겨진 천마회의 본거지 전체를 조감하는 3차원 지도가 떠올랐다.
"네가 방금 잡은 놈들은 그냥 잡몹이야. 진짜 대장은 따로 있어. 천마회의 진짜 수장이자, 티타늄 그룹의 연구소에서 밀반출된 마공 비급을 독점하고 있는 놈……."
아영의 손가락이 지도의 한가운데를 짚었다.
"코드네임 '광마(狂魔)'. 그놈이 지금 지하 수력 발전소 최하층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어. 아니, 정확히는 네 몸속에 있는 프로토콜의 데이터를 노리고 있지."
진혁의 시선이 홀로그램 지도의 최하층을 향했다.
지하 수력 발전소.
방금 전까지 자신이 진격해 들어가던 그곳이었다.
쾅-! 쿠쿵-!
바로 그때, 아영의 기지 외곽을 둘러싸고 있던 철문들이 일제히 박살 나며 수십 명의 천마회 정예 습격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선두에는 일반 인간의 두 배에 달하는 거대한 체구를 자랑하는 사이보그 무뢰배가 서 있었다.
그의 어깨에는 중기관총이 장착되어 있었고, 입가에는 기괴한 기계음 섞인 웃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쥐새끼들, 다 찾았다. 회장님의 '그릇'을 회수한다!"
습격조의 함성과 함께 실내로 수많은 탄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진혁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철검을 집어 들었다.
검신을 따라 칠흑 같은 마기가 소용돌이치며 푸른빛의 은백색 회로와 뒤엉켰다.
"기다릴 필요도 없겠군."
진혁이 피식 웃으며 허리를 낮추었다.
흑안에 살기가 짙게 배어났다.
"벌레들을 청소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콰아아아앙──!
기지의 정문이 완전히 박살 나며 터져 나오는 폭발음과 함께, 천마회 정예 습격조의 세력이 사방으로 들이닥쳤다. 중기관총을 난사하는 사이보그들의 화력은 단순한 범죄 조직의 그것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그것은 명백히 티타늄 그룹의 군사 공작대에 준하는 살인 기술이었다.
윤아영은 기지 구석의 철제 콘솔 뒤로 몸을 숨기며 단말기를 급히 두드렸다.
"진혁! 저기 선두에 있는 놈 보여? 일반 개조인이 아니야! 티타늄 그룹에서 유출된 3세대 전투용 코어가 내장된 녀석이라고! 정면으로 맞부딪치면 오버히트가 올 수도 있어!"
아영의 다급한 외침에도 진혁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입가에 짙은 냉소가 걸렸다. 오버히트? 10년 치의 마기를 정제해 단전에 쑤셔 넣은 지금의 자신에게, 그딴 기계적 부작용은 사치스러운 경고에 불과했다.
챙-!
진혁이 손에 쥔 철검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검신에 엉겨 붙은 마기와 나노머신이 고주파의 진동음을 내며 시뻘건 공기를 갈라놓았다.
"오냐, 그 코어의 출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직접 확인해 주마."
진혁의 몸이 순식간에 시야에서 지워졌다.
[마광신보(魔光神步)].
빛의 굴절마저 왜곡하는 극한의 보법이 발동하자마자, 진혁의 형체는 빗발치는 탄막 사이를 유령처럼 미끄러져 나갔다. 총알들은 잔상만을 꿰뚫을 뿐, 그의 옷자락조차 스치지 못했다.
"어…… 어디로 갔어?!"
"눈을 찢어서라도 찾아내! 당장 저 녀석을 포획해야 한다!"
천마회 습격조 대장이 당황하며 포격 지시를 내리려던 그 순간이었다.
대장의 등 뒤, 공간이 일그러지듯 진혁의 형체가 불쑥 솟아올랐다.
"너무 시끄럽군."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진혁의 철검이 허공을 갈랐다.
재질을 알 수 없는 무식한 장갑판을 두른 사이보그 대장의 목덜미를 향해, 칠흑빛 마검기(魔劍氣)가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퍼걱─! 콰직!
방어막의 주파수를 완벽하게 간파한 검신이 티타늄 합금 장갑을 종잇장처럼 찢어발겼다.
대장의 거대한 목덜미에서 시뻘건 윤활유와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SYSTEM INFO: 천마 프로토콜]
- 타겟의 3세대 생체 코어 데이터 스캔 완료.
- 추가 에너지 흡수 개시.
- 출력 상승: 800 MW 돌파.
- [마기융합]의 궤적이 한 단계 더 완고해집니다.
"커헉……!"
대장이 눈을 부릅뜬 채 고꾸라졌고, 진혁의 손아귀는 이미 그의 가슴팍에 박혀 있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그 광경을 지켜보던 윤아영은 말문이 막힌 채 마른침만 삼킬 뿐이었다.
인간의 육체와 기계의 경계를 단 한 번의 검격으로 박살 내는 괴물.
진혁은 피 묻은 손을 거두며 차가운 흑안으로 남은 천마회 무뢰배들을 둘러보았다.
벌레들을 사냥하기에 이보다 더 완벽한 밤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