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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58화목차

제58화 제2계급 중층 공업도시

햇빛은 이곳에 닿지 않는다.

신서울의 상층 마천루가 드리운 거대한 그늘 아래, 천상(天上)의 빛을 모방한 인공 태양등만이 시리도록 하얀 백색광을 쏟아내고 있었다.

거대 철제 파이프와 매연을 뿜어내는 배기구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곳.

제2계급 중층 공업지대.

치익—!

고압의 증기가 배출되면서 사방으로 자욱한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그 매캐한 공업용 기름 냄새와 오존 냄새 사이로, 칠흑 같은 잔상 하나가 매끄럽게 미끄러져 들어왔다.

타앗!

소리 없는 질주였다.

강진혁의 발끝이 지면을 스칠 때마다 미세한 마기가 파문처럼 퍼져 나가며 주변의 진동을 완전히 흡수했다.

[SYSTEM INFO: 현재 사용자 위치 - 제2계급 중층 공업지대 메인터넌스 베이]

[단전 마기 출력: 20,000 MW (안정화)]

[나노머신 동기화율: 99.8%]

시스템의 시각 지원은 이미 영구 차단된 지 오래였으나, 진혁의 망막 안쪽에는 그동안 축적된 연산 패턴이 완벽한 감각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스으읍, 후-.

진혁이 가볍게 숨을 몰아쉬자, 그의 콧등을 스치는 공기 속에서 미세한 금속 가루와 생체 시료의 냄새가 포착되었다.

‘크로노스 바이오 제2연구소로 향하는 보급 라인…… 생각보다 경계가 삼엄하군.’

시야를 가득 채운 것은 티타늄 그룹 직속의 중장갑 보안군들이었다.

일반 시민들이 거주하는 구역과 달리, 이곳은 기업의 핵심 군수 물자와 인체 개조 부품이 생산되는 요충지다. 팔 대신 거대한 플라즈마 개틀링 건을 이식한 사이보그 병사들과, 공중을 유영하는 정찰 드론들이 사방을 메우고 있었다.

그 순간, 진혁의 귀에 장착된 초소형 통신 이어셋에서 윤아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혁 오빠! 위치 확인했어? 지금 네가 서 있는 곳 바로 아래가 제2계급 공업지대의 메인 보급 터미널이야. 티타늄 잔당들이 거기서 연구소로 들어가는 물자를 통제하고 있어.]

"알고 있다."

진혁은 낮게 응수하며 걸음을 멈췄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거대한 철제 컨테이너 박스들이 미로처럼 쌓여 있는 구역이었다. 그곳은 표면상으로는 일반 화물 적재소처럼 보였지만, 내부의 전자기파 파동을 분석하면 명백한 군사 기지의 은닉 통로였다.

[니르바나의 선봉대도 지금 수송 열차를 타고 네 위치 근처로 진입하고 있어. 송수연 언니가 지상에서부터 양동 작전을 펼쳐주기로 했으니까, 그 틈을 타서 연구소 내부로 깊숙이 파고들 수 있을 거야.]

"양동 작전은 필요 없다."

진혁의 흑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그가 천마검의 손잡이를 가볍게 쓸어내렸다. 손끝을 따라 흐르는 칠흑의 마기가 미세한 푸른 뇌전을 머금으며 웅장한 진동을 토해냈다.

[……네? 양동 작전 없이 정면으로 밀고 들어가겠다고?]

"저들이 숨어 있는 방식이다. 벌레들이 웅크리고 있다면, 굴을 통째로 뒤집어엎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지."

차가운 음성과 함께 진혁의 발이 다시 한번 대지를 박찼다.

쾅—!

지면이 거미줄처럼 갈라지며 소음이 터져 나왔다.

보안 드론들이 이상 징후를 감지하고 일제히 회전 카메라를 돌렸다.

- 경고! 미확인 생체 반응 포착! 침입자다!

"저놈을 잡아라!"

메인터넌스 베이를 순찰하던 블랙 가드 예비 분견대와 사이보그 병사들이 일제히 무기를 치켜들었다. 그들의 손에 들린 고주파 진동 라이플에서 푸른빛의 광탄이 빗발치듯 날아들었다.

퍼퍼퍼펑-!

광탄이 착탄한 지면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거대한 구덩이가 파였다. 하지만 그 폭발의 연기 속에서 튀어나온 것은 칠흑의 잔상이었다.

[마광신보(魔光身步) - 극(極)]

빛의 궤적조차 남지 않았다.

진혁의 몸이 광탄의 탄막 사이를 유령처럼 파고들었다.

"뭐야……?!"

최전방에 있던 사이보그 병사가 반응하기도 전에, 진혁의 검집이 그의 가슴팍을 거칠게 후려쳤다.

쿠구구궁!

2만 MW에 달하는 단전 출력이 실린 일격은 단순히 물리적인 타격에 그치지 않았다. 병사의 몸체에 내장된 제3세대 생체 코어가 진혁의 마기에 공명하며 내부에서부터 박살이 났다.

콰아앙!

사이보그의 몸이 폭발하며 사방으로 고철 조각이 흩어졌다.

진혁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폭발의 화염을 뚫고 그대로 공중으로 도약했다.

"저, 저 자식을 격추해!"

사방에서 플라즈마 포와 개틀링 건의 총구가 일제히 하늘을 향했다. 수백 발의 탄환이 공기를 찢으며 진혁을 격추하려 들었다.

하지만 진혁의 눈빛은 흔들림조차 없었다.

"시끄럽고군."

중얼거림과 동시에 진혁의 단전이 거대하게 고동쳤다.

지하 500층의 원자로에서 흡수한 핵융합 에너지와 융합된 마기가 전신을 타고 폭발적으로 뻗어 나갔다.

[뇌전마강(雷電魔剛)]

지직- 지지직!

칠흑 같은 마기 속에서 맹렬한 푸른 뇌전이 뱀의 혀처럼 뻗어나와 사방을 휩쓸었다.

진혁이 공중에서 검을 크게 원을 그리며 휘둘렀다.

콰아아아앙-!

벼락이 내리치는 듯한 굉음과 함께, 중층 공업지대의 거대한 인공 조명들이 일제히 깜빡였다.

검강에서 뻗어 나온 뇌전 마기가 허공을 가르며 주변의 정찰 드론 수십 대를 한순간에 고철 덩어리로 만들어 떨어뜨렸다.

- 시스템 오류…… 메인 프레임 과부하……!

- 방어막 붕괴율 100%!

"크아아악!"

보안군 병사들은 마기와 뇌전이 뿜어내는 압도적인 위압감에 밀려 제대로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단 한 번의 검휘(劍揮)만으로 제2계급 중층 공업지대의 메인터넌스 베이가 완전히 제압당하는 데는 채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착지하는 진혁의 발밑으로 부서진 잔해들이 굴러다녔다.

그의 옷자락은 격렬한 전투 속에서도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채 서늘한 흑빛을 띠고 있었다.

[SYSTEM INFO: 제2계급 공업지대 보안 구역 초토화 완료]

[크로노스 바이오 제2연구소로 향하는 하부 승강기 터널 개방 가능]

윤아영의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통신 너머로 그녀가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기척이 전해졌다.

[와…… 오빠, 진짜 괴물 다 됐네. 저 많은 병력이랑 방어 시스템을 혼자서 그냥 갈아버린 거야?]

"시간이 없다."

진혁은 차갑게 일갈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시선은 이미 메인터넌스 베이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수직 승강기를 향하고 있었다. 티타늄 그룹의 심장부로 이어지는 가장 깊고 어두운 지하 500층. 그곳에서 크로노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슈우우우-!

그때, 진혁의 등 뒤로 거친 엔진 소리와 함께 거대한 장갑 차량 몇 대가 미끄러지듯 멈춰 섰다.

차량의 문이 벌컥 열리며 붉은 가죽 재킷을 걸친 여전사가 검을 든 채 내려섰다.

반(反)기업 저항군 '니르바나'의 총수, 송수연이었다.

그녀는 사방에 나뒹구는 철갑 부대의 잔해와 고철 덩어리들을 둘러보고는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하…… 야, 강진혁. 우리가 양동 작전 펼치러 오기도 전에 네 혼자서 이 넓은 구역을 다 쓸어버린 거야? 우리 역할이 아예 없어졌잖아."

송수연의 뒤로 니르바나의 정예 선봉대원들이 차에서 내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들이 진격로를 확보하기 위해 준비했던 중화기들은 이미 쓸모가 없어진 지 오래였다.

진혁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거대한 수직 승강기의 제어 패널 앞에 멈춰 섰다.

"뒤처리는 너희 몫이다."

"뭐? 뒤처리라니, 설마 벌써 연구소로 내려가겠다는 거야?"

송수연이 성큼성큼 걸어와 진혁의 옆에 섰다. 그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거기 아래가 어떤 곳인지 알아? 티타늄 그룹이 1,000년 전 마교 유골을 가지고 온갖 인체 실험을 벌인 진짜 지옥이야. 네 혼자 들어가기엔 함정이 너무 많다고."

"지옥이라면 이미 한 번 지나쳐 왔다."

진혁의 손바닥이 승강기 제어 패널에 닿았다.

치지직-!

그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미세한 마기와 데이터 해킹 파동이 패널의 최상위 암호화 방화벽을 단숨에 박살 냈다.

삐비빅-!

[Access Granted: 크로노스 바이오 제2연구소 직통 승강기 가동]

거대한 철문이 양옆으로 갈라지며, 아래로 향하는 끝없는 수직 터널이 모습을 드러냈다.

터널의 심장부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은 시리도록 차가운 공기와, 썩어 문드러진 생체 시료의 비린내였다.

송수연은 그 냄새에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지만, 진혁은 오히려 눈을 가늘게 뜨며 그 어둠 속을 응시했다.

"기다리고 있겠지."

진혁이 망설임 없이 승강기 안으로 발을 디뎠다.

그의 등 뒤로 송수연이 급히 따라붙으며 외쳤다.

"야! 혼자서 가겐 안 둬. 니르바나의 선봉대도 바로 뒤를 따른다. 이번엔 끝을 봐야겠어!"

진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2만 MW의 칠흑 같은 마기가 승강기 내부를 가득 채우며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켰을 뿐이다.

쾅-.

승강기의 문이 닫히고, 그들은 진실과 파멸이 도사린 지하 500층을 향해 수직으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디스토피아의 밤하늘 아래, 거대한 마천루의 그늘 속에서 최종 결전의 막이 서서히 내려앉고 있었다.

치이익—!

수직으로 하강하는 승강기의 철제 바닥이 고속의 공기압과 마찰하며 굉음을 토해냈다.

초속 수십 미터의 속도로 지하 깊은 곳을 향해 떨어질수록, 대기 중의 기압과 산소 농도가 급격히 변하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귀가 터지고 폐가 짓눌려 피를 토했을 압력.

하지만 강진혁의 신체는 나노머신과 마기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천마무상체(天魔無相體)]였다. 그의 육체는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오직 전방의 붉은 경고등만 응시하고 있었다.

[SYSTEM INFO: 지하 350층 통과]

[경고: 고순도 생화학 독소 및 바이오 해저드 반응 감지]

[단전 마기 출력: 20,000 MW (안정적 유지 중)]

승강기 구석에 서 있던 송수연이 방독면의 필터를 단단히 조이며 낮게 침을 삼켰다.

그녀의 전신을 감싼 전투복의 바이오 센서가 미친듯이 경고음을 울려대고 있었다.

"하…… 냄새 장난 아니네. 여기 진짜 지옥이야. 이 밑에서 무슨 짓을 벌였길래 공기 자체에 독기가 서려 있지?"

"티타늄 그룹이 인간을 재료로 삼아 만든 부품 공장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진혁의 목소리는 얼어붙은 강물처럼 차가웠다.

그의 손에 쥐어진 천마검의 검신을 따라 미세한 푸른 뇌전이 뱀의 혀처럼 얽혀들었다.

지하 400층.

지하 450층.

마침내 승강기의 하강 속도가 서서히 줄어들며, 전방의 묵직한 철제 격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쾅-.

승강기가 최하층인 지하 500층에 멈춰 섰다.

슈우우-!

압력이 해제되는 소리와 함께 격벽이 양옆으로 갈라졌다.

그 순간, 터널 밖에서 밀려온 것은 단순히 역겨운 생체 시료의 냄새가 아니었다. 그것은 살기(殺氣)였다.

지독할 정도로 차갑고, 기계적인 죽음의 냄새가 진혁과 송수연의 코끝을 무자비하게 찔렀다.

"……왔나."

넓게 펼쳐진 연구소의 중앙 홀.

사방의 강화 유리 벽 너머로 수십 개의 대형 배양액 탱크가 늘어선 그곳에서, 기괴한 금속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드륵, 드르륵…….

어둠 속에서 푸른색 레이저 포인터들이 일제히 켜지며 진혁의 전신을 조준했다.

그 빛의 끝에 서 있는 것은 인간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생명체의 온기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살인 병기들이었다.

[SYSTEM ALERT: 미확인 전투 개체 다수 포착]

[분류: 크로노스 바이오 연구소 직속 특수 암살 부대 - '처형자들']

배양액 탱크의 잔해가 바닥에 쏟아지는 소리와 함께, 전신이 고주파 진동 도검으로 무장한 수십 명의 처형자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눈동자는 이성을 잃은 채 기계적인 붉은 빛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홀의 가장 안쪽, 거대한 중앙 콘솔 앞에 백발을 풀어헤친 채 미친 듯이 웃고 있는 노인이 서 있었다.

크로노스.

그가 광기 어린 눈으로 진혁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래, 네 녀석이 그 불청객이군! 내 완벽한 연구를 방해하러 온 쥐새끼가 바로 너였어! 처형자들! 저 녀석의 가슴을 도려내고 단전의 코어를 회수해라!"

크로노스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다.

치이익-!

처형자들이 들고 있던 고주파 진동 도검이 초고속으로 떨리며 공기를 찢는 고음의 파열음을 토해냈다. 그들의 발이 지면을 박차는 순간, 홀 전체가 진동으로 요동쳤다.

수십 명의 암살 병기가 일제히 진혁을 향해 쇄도했다.

마치 사방에서 날아드는 은빛 사신들의 칼날이 진혁의 목숨을 거두기 위해 좁혀져 들었다.

하지만 진혁의 눈빛은 흔들림조차 없었다.

그는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그 칼날의 폭풍 속으로 몸을 던졌다.

"시끄럽다."

콰아아앙-!

2만 MW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온 칠흑의 마기와 푸른 뇌전이 진혁의 몸을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팽창했다.

진혁이 천마검을 십자로 거칠게 휘두르며 허공을 갈랐다.

[뇌전마강(雷電魔剛) - 십자참(十字斬)]

지직- 지지지직-!

검끝에서 뻗어 나온 칠흑의 검강이 뇌전과 뒤엉키며 거대한 십자 형태의 파괴광선으로 변모했다.

그것은 인간의 무공이라기보다는, 천지를 뒤흔드는 재앙의 벼락에 가까웠다.

퍼퍼퍼펑-!

처형자들의 고주파 진동 도검이 진혁의 검강과 부딪치는 순간, 세련된 특수 장갑판들이 가랑잎처럼 산산조각이 났다.

"크아아악—!"

비명조차 지를 새도 없었다.

처형자들의 생체 코어가 내부에서부터 과부하를 일으키며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지하 500층의 거대한 연구소 홀 전체가 눈이 멀 정도로 찬란한 푸른 뇌전과 흑빛 마기의 홍수로 뒤덮였다.

쿠구구궁-!

수십 명의 암살 병기가 단 한 번의 검휘 아래 종잇장처럼 찢겨 나가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사방에 흩어진 고철 덩어리와 스파크가 튀는 잔해 속에서, 진혁은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천마검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그의 차가운 시선이 사색이 되어 떨고 있는 크로노스를 향해 곧바로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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