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화 원자로 흡수
콰아아아구궁-!
지축을 뒤흔드는 폭음과 함께 타이탄-01의 메인 관제탑이 반으로 쪼개졌다.
신서울 하층 슬럼가의 밤하늘을 붉게 물들이던 거대 이동 요새의 불빛들이 차례대로 꺼져나갔다.
더 이상 거대 자본과 철갑으로 무장한 군사 요새의 위엄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흉물스럽게 일그러진 고철 덩어리이자, 거대한 무덤일 뿐이었다.
요새의 최상층 돔.
그곳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밤바람을 맞으며 강진혁이 서 있었다.
우우우웅-!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칠흑 같은 마기는 더 이상 단순한 기운이 아니었다.
신천마신공 제5단계 [초월천마경(超越天魔境)].
시스템의 보조와 인공지능의 HUD 없이, 온전히 그의 의지와 기혈의 흐름만으로 완성된 완벽한 신체 밸런스.
그 단전 부근에서 뿜어져 나오는 출력은 이미 16,200 MW를 아득히 넘어치고 있었다.
하지만 진혁의 눈빛은 여전히 차갑고 갈증에 차 있었다.
타이탄-01이 무너졌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다.
이 거대한 디스토피아의 뿌리는 생각보다 훨씬 깊고 질겼다. 티타늄 그룹의 본사와 그 뒤에 숨겨진 '헤븐리 파운데이션'의 진짜 수뇌부로 가기 위해서는, 여기서 더한 힘을 축적해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 그에게 가장 완벽한 연료가 눈앞에 있었다.
지잉- 기이익!
관제탑 바닥을 뚫고 내려간 진혁의 시선이 향한 곳은 요새의 심장부, 메인 원자로실이었다.
쾅!
진혁의 발이 바닥을 박차자, 공간이 일그러지며 검은 잔상이 뻗어나갔다.
[마광신보 - 극(極)].
빛의 궤적조차 남기지 않는 극한의 속도로 원자로실에 진입한 진혁의 눈앞에는, 통제 불능으로 폭주하기 시작한 거대한 핵융합 코어가 푸른 섬광을 내뿜으며 회전하고 있었다.
위이이잉- 과부하 경고음!
[경고! 원자로 코어 온도 한계치 초과.]
[출력 불안정. 자폭 시퀀스 가동률 89% 도달.]
[주변 생체 반응 소멸 중…….]
원자로실 내부의 온도가 순식간에 수천 도로 치솟았다.
일반적인 인간은 물론이고, 4세대 생체 코어를 이식한 특수 초인조차 이 열기와 방사능 수치 앞에서 단 몇 초 만에 뼈와 살이 녹아내릴 터였다.
하지만 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폭주라고?"
진혁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그것은 오만함이 아니었다. 철저한 계산과 무도(武道)의 극의에 도달한 자만이 지을 수 있는 냉혹한 미소였다.
인간의 기술로는 통제할 수 없는 에너지.
하지만 그것은 기계의 언어일 뿐이다.
"내게는 내공이 있다."
콰아아앙!
진혁이 단전의 혈도를 열어젖히며 두 손을 넓게 펼쳤다.
그와 동시에 그의 등 뒤로 거대한 흑염의 날개 같은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만법귀마(萬法歸魔)]!
진혁의 눈에 원자로가 뿜어내는 복잡한 플라즈마 에너지의 주파수와 입자 궤적이 고스란히 투영되었다.
기계공학적 난수, 원자핵의 결합 에너지, 그리고 폭주하는 파동의 맥락.
그 모든 복잡한 물리 법칙이 진혁의 뇌리와 기혈 속에서 순식간에 해석되고 해체되었다.
적의 기술이든, 거대한 핵융합 원자로의 에너지이든 본질은 하나다.
에너지는 흐르고, 흐르는 것은 삼킬 수 있다.
"흡원천공(吸元天功) - 개량(改)."
쿠구구구구궁-!
진혁의 손바닥에서 가공할 만한 인력이 뿜어져 나왔다.
그 인력은 주변의 공기를 짜부라뜨리며 원자로의 폭주하는 에너지를 정중앙으로 휘감았다.
키기긱- 콰아아앙!
원자로의 푸른 섬광이 진혁의 손바닥을 향해 역류하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폭포수가 좁은 협곡으로 쏟아져 내리듯, 수만 메가와트에 달하는 핵융합 에너지가 진혁의 양팔을 타고 혈관 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크윽……!"
비록 초월천마경에 도달한 완벽한 육체라 할지라도, 도시 하나를 태울 수 있는 막대한 핵융합 에너지를 단숨에 받아들이는 것은 육신에 엄청난 부담이었다.
진혁의 전신에 새겨진 은빛 회로와 칠흑의 마기 선들이 핏빛으로 달아올랐다.
피부 표면이 미세하게 찢어지고, 그 틈새로 검붉은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진혁은 이를 악물고 단전의 용광로를 더욱 거세게 돌렸다.
기압이 곤두박질치고, 원자로실 전체의 공간이 뒤틀렸다.
쾅-! 쿠루루룽!
"끄아아아악……!"
원자로실 구석, 폭발의 여파로 미처 도망치지 못하고 쓰러져 있던 한 이사가 절망에 찬 비명을 질렀다.
그는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부릅떴다.
인간이…… 핵융합 원자로의 에너지를 맨몸으로 흡수하고 있다고?
저건 기술이 아니다. 과학이 아니다.
그것은 신화 속에나 존재하는 마신(魔神)의 강림이었다.
"이, 미친…… 괴물 자식……!"
한 이사가 피를 토하며 기어올랐다.
그의 몸은 이미 원자로의 방사능과 열기에 의해 세포가 붕괴되고 있었다.
진무극이 죽은 뒤 티타늄 그룹의 실권을 쥐고 신서울의 왕이 되려 했던 그의 야망은, 강진혁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비참하게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진혁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고통을 무시한 채, 한쪽 눈을 돌려 바닥에 쓰러진 한 이사를 내려다보았다.
차가운 흑안에는 일말의 자비도 없었다.
"너희가 만든 기술이다."
진혁의 낮은 목소리가 폭발음 속에서도 한 이사의 고막에 선명하게 박혔다.
"인간을 실험체로 쓰고, 자본으로 세상을 지배하려던 너희들의 기술. 내가 온전히 돌려주마."
콰아아앙-!
진혁의 단전 출력이 마침내 한계치를 돌파했다.
[시스템 경고 해제: 단전 출력 측정 불가.]
[현재 출력: 18,000 MW…… 19,500 MW……!]
[돌파! 20,000 MW 달성!]
쿠구구구구궁-!
단전의 출력이 2만 MW를 돌파하는 순간, 진혁의 주변 공간이 중력장처럼 휘어졌다.
원자로실 전체의 에너지가 단 한 방울도 남김없이 진혁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푸르게 빛나던 타이탄-01의 메인 원자로가 완전히 빛을 잃었다.
핵심 동력을 상실한 거대 이동 요새는 이제 더 이상 공중에 떠 있을 수 없었다.
콰아아아앙-!
타이탄-01의 거대한 동체가 중심을 잃고 아래쪽 슬럼가 공터와 잔해를 향해 수직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안 돼…… 살려줘……!"
한 이사가 발버둥 쳤지만, 진혁은 그에게 더 이상 시선을 주지 않았다.
슈우우욱-!
진혁의 몸이 이미 고철이 되어가는 원자로실의 천장을 뚫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의 손에는 원자로의 잔해에서 강탈해 낸 핵심 데이터 드라이브가 들려 있었다.
거대 요새의 추락과 함께 원자로실 내부가 거대한 대폭발에 휘말렸다.
콰아아아아궁-!
지상에 처박힌 타이탄-01이 거대한 불꽃의 화마 속에 완전히 파묻혔다.
그 안에서 한 이사는 탈출할 새도 없이 자신이 만들어낸 불바다 속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신서울 하층 슬럼가 외곽의 잔해 지대.
"저기 봐라!"
니르바나의 저항군 대원들과 송수연이 숨을 죽인 채 무너져 내리는 타이탄-01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을 뒤덮었던 거대 이동 요새가 완전히 침몰하고, 그 잔해 속에서 한 줄기 칠흑의 섬광이 쏘아져 내려왔다.
슈우우웅-!
쿵!
지면이 가볍게 울리며 진혁이 그들 앞에 착지했다.
두 발을 디디는 순간, 진혁의 주변으로 퍼져 나간 충격파만으로도 사방 수십 미터의 철제 잔해들이 먼지만큼 고와져 사방으로 흩어졌다.
"진혁 씨!"
윤아영이 홀로그램 단말기를 조작하며 황급히 달려왔다.
그녀의 얼굴에는 경악과 경외가 뒤섞여 있었다.
진혁의 주변에서 아른거리는 검붉은 마기의 파동은 이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방금 그 에너지는…… 설마 타이탄-01의 메인 원자로를 통째로 흡수한 거야? 출력이 도대체 어디까지 올라간 거야?"
윤아영의 물음에 진혁은 천천히 눈을 뜨며 숨을 골랐다.
후우-
그가 내쉬는 숨결 하나에 주변의 공기가 얼어붙듯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만하면 충분하다."
진혁의 목소리는 낮고 평온했지만, 그 속에는 세상을 뒤흔들 묵직한 패기가 담겨 있었다.
단전 출력 2만 MW.
신천마신공 초월천마경의 진정한 위력이 전신경락을 타고 요동치고 있었다.
진혁은 손에 쥐고 있던 데이터 드라이브를 윤아영에게 던져주었다.
한 이사의 뇌 회로와 타이탄-01의 메인 기억 장치에서 강탈해 낸 핵심 정보였다.
"이게 뭐지……?"
윤아영이 드라이브를 자신의 포터블 단말기에 곧바로 연결했다.
잠시 후, 그녀의 눈이 커다랗게 벌어졌다.
"이건……! 티타늄 그룹 상층부로 이어지는 비밀 연결 통로의 암호화 키야! 게다가…… 크로노스 바이오의 제2연구소 좌표까지 들어있어!"
그녀의 말에 송수연이 검을 고쳐 잡으며 눈을 빛냈다.
"제2연구소라고? 하층민들을 대상으로 한 생체 실험의 진짜 데이터가 숨겨져 있다는 그곳 말인가?"
진혁은 차가운 눈으로 신서울의 상층부를 올려다보았다.
밤하늘의 찬란한 네온사인 아래, 구름을 뚫을 듯이 솟아 있는 티타늄 타워의 마천루들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하층 슬럼가의 해방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타이탄-01을 부수고 한 이사를 처단한 것은 그 거대한 악의 본진으로 가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일 뿐이었다.
진혁이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칼날 끝에서 칠흑의 마기와 푸른 뇌전이 융합된 [뇌전마강]이 흉포한 기세로 일렁였다.
"슬럼가의 정리는 끝났다."
진혁의 입에서 차가운 선언이 흘러나왔다.
"다음 목표는 제2계급 중층 공업지대다. 그곳의 문을 부수고, 상층부로 올라간다."
진혁의 흑안이 살기를 품은 채 상층 마천루를 향해 번뜩였다.
거대한 복수의 종착지를 향한 그의 발걸음이 다시 한번 거침없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차갑고 무거운 침묵이 잔해 지대를 감쌌다.
윤아영은 단말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침을 꼴깍 삼켰다. 화면 위로 쏟아지는 데이터는 단순한 통로의 좌표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티타늄 그룹이 수십 년간 숨겨온 인체 개조의 실상과, 상층부로 향하는 철옹성 같은 보안 방벽의 취약점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진혁야, 이거 봐. 제2계급 중층 공업지대로 연결되는 보급 열차 선로가 있어. 보안 등급이 최상위로 잡혀 있지만, 한 이사의 보안 키를 마스터 코드로 변환하면…… 충분히 뚫을 수 있어!"
윤아영의 손가락이 홀로그램 키보드 위를 현란하게 날아다녔다.
지이잉-!
단말기 화면에 푸른색 프로토콜 창이 뜨며 신서울 전역의 입체 지도가 펼쳐졌다. 하층 슬럼가를 뒤덮고 있던 붉은색 경고등들이 차례대로 소거되면서, 상층부로 향하는 새로운 진격로가 뚜렷하게 빛났다.
송수연이 대형 도검을 어깨에 메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하층의 잔당들은 니르바나의 저항군들이 완전히 소탕하고 있다. 슬럼가의 320만 명은 이제 안전해. 진혁, 네가 열어준 길이다. 우리도 함께 가겠다."
송수연의 눈빛에는 비장함과 함께 수십 년간 억눌려 있던 해방의 열망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진혁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낮게 말했다.
"너희는 여기에 남는다."
"뭐? 혼자서 상층부로 가겠다는 소리야?"
"제2계급 공업지대부터는 하층과 차원이 다르다. 티타늄 그룹의 정예 사병들과 자율주행 전투 메카가 사방에 깔려 있지. 니르바나의 전력으로는 소모전밖에 되지 않는다."
진혁의 차가운 단호함에 송수연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분하지만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진혁이 혼자서 움직이는 것이 압도적으로 빠르고 효율적이었다.
"대신, 길은 열어주마."
진혁이 차가갑게 시선을 던지며 몸을 돌렸다.
우우우웅-!
그의 단전에서 다시 한번 2만 MW의 거대한 기가 요동쳤다.
초월천마경의 경지에 오른 마기는 주변의 공기를 뒤틀며 칠흑빛 파동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슈우우욱-!
진혁의 잔상이 밤하늘을 갈라놓으며 제2계급 공업지대를 향해 쏘아져 내려갔다.
그의 뒤를 이어 윤아영이 급히 통신을 열었다.
"진혁 씨! 보급 열차가 곧 제2계급 진입 컷아웃 구역을 지난다! 화물칸에 잠입하면 하부 보안망을 완벽하게 우회할 수 있어!"
치이익-!
고속으로 선로를 질주하는 티타늄 그룹의 중장갑 보급 열차.
그 선두 화물칸의 두꺼운 티타늄 장갑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콰아앙!
열차 내부로 낙하한 진혁의 부츠가 바닥을 찍으며 거대한 충격파를 일으켰다.
화물칸을 지키고 있던 2계급 보안 경비병들과 자동 전투 로봇들이 일제히 무기를 들어 올렸다.
"적격자 침입! 요격 개시—!"
경비병들의 입이 다물어지기도 전에 진혁의 검이 흑빛 궤적을 그리며 횡으로 스쳐 지나갔다.
[천마검 - 뇌전마강(雷電魔剛)]!
파지지직-!
칠흑의 마기와 푸른 뇌전이 융합된 검강이 화물칸 내부를 순식간에 휩쓸었다.
총을 겨누던 경비병들은 단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바스러졌고, 철제 로봇들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정교하게 조각나 바닥에 나뒹굴었다.
진혁은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천마검을 스르륵 거두며 앞칸의 철문 앞에 멈춰 섰다.
제2계급 중층 공업지대.
그리고 그 너머에 숨겨진 티타늄 그룹의 본사와 크로노스 바이오의 제2연구소.
진혁의 흑안이 어둠 속에서 더욱 깊고 진하게 빛났다.
"시작해 볼까."
그의 낮고 묵직한 혼잣말과 함께, 보급 열차는 더욱 가속화된 속도로 신서울의 어둠을 뚫고 적의 심장부를 향해 폭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