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화 원자로실의 대결
콰아아앙!
철갑이 울부짖는 파열음이 거대 이동 요새 [타이탄-01]의 내장을 뒤흔들었다.
수십 톤에 달하는 강화 티타늄 격벽이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스파크가 비처럼 쏟아지는 복도 중앙.
칠흑 같은 검은 머리와 옅은 은빛 회로 선이 돋아난 강진혁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SYSTEM INFO: 천마 프로토콜 (HEAVENLY DEMON PROTOCOL)]
[Warning: 사용자 설정에 따라 시스템 HUD 인터페이스는 영구 OFF 상태입니다.]
[주의: 주변 생체 코어 방출 에너지가 비정상적인 주파수로 증폭 중입니다.]
화면은 꺼져 있었으나, 진혁의 직감과 오감은 그 어떤 HUD보다 선명하게 주변의 흐름을 읽어내고 있었다.
제5단계 [초월천마경].
단전의 출력은 이미 16,200 MW를 상회하고 있었고, 혈관 속을 흐르는 나노머신은 마기와 완벽히 동기화되어 세포 하나하나를 초월적인 무기로 변모시킨 상태였다.
"크… 크윽……!"
피투성이가 된 채 원자로실의 통제 콘솔을 붙잡고 있는 자가 있었다.
티타늄 그룹의 비선 실세이자, 진무극의 사후 실권을 쥐고 요새를 이끌던 한 이사였다.
그의 입가에서는 검붉은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온몸에 두른 4세대 군용 생체 코어 수트는 곳곳이 박살이 나서 내부의 냉각수가 치이익 소리를 내며 증발하고 있었다.
"강…… 진혁……!"
한 이사의 눈에는 공포와 광기가 뒤섞여 있었다.
그는 자신이 지배할 줄 알았던 신서울, 자신이 통제할 줄 알았던 '천마 프로토콜'의 결과물이 이토록 파괴적인 괴물일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진무극이 죽었다.
그토록 절대적이던 회장마저 이 소년의 손에 목이 날아갔다.
하지만 한 이사는 여기서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아니, 물러설 곳조차 없었다.
"미친 놈……! 네가 아무리 강해진들, 이 거대한 원자로의 핵융합 출력을 버텨낼 수 있을 것 같나!"
한 이사가 미친 듯이 웃으며 제어판 중앙에 박힌 거대한 마스터 키를 움켜쥐었다.
끼익- 삐비비빅!
타이탄-01의 중심부에서 심장 박동과도 같은 거대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요새 전체를 지탱하는 핵융합 원자로실의 출력이 강제로 한계치를 돌파하기 시작했다.
과부하(Overload).
[타이탄-01 메인 원자로: 과부하 상태 진입.]
[핵융합 코어 플라즈마 온도: 3,000℃ 상승 중.]
[경고: 3분 뒤, 하층 구도심 반경 10킬로미터가 소멸할 정도의 대폭발이 발생합니다.]
원자로실 내부의 대기가 순식간에 뜨겁게 달아올랐다.
사방의 철제 구조물들이 열을 견디지 못하고 붉게 달아오르며 휘어지기 시작했다.
한 이사가 핏발 선 눈으로 진혁을 노려보며 악을 썼다.
"하하하! 봤나! 이 요새의 원자로는 하층민 300만 명의 생체 코어 네트워크와 직결되어 있다! 내가 이 원자로를 자폭시키면, 신서울 하층가 전체가 이 순간부로 지도 위에서 지워지는 거야! 너 혼자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네가 지키려 발버둥 치는 그 벌레 같은 슬럼가 인간들이 전부 타 죽을 거다!"
그의 목소리에는 일그러진 승부욕과 독기가 서려 있었다.
자신이 가질 수 없다면, 이 세상 전부를 파괴해 버리겠다는 최후의 발악이었다.
하지만 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의 차가운 흑안은 한 이사를 향한 것이 아니라, 요새의 심장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막대한 에너지의 흐름을 향하고 있었다.
"지킨다고 했나."
진혁의 입술이 낮게 열렸다.
그 목소리는 끓어오르는 원자로의 소음 속에서도 한 이사의 고막에 선명하게 박혔다.
"누가."
"뭐……?"
"내가 언제 슬럼가를 지키겠다고 했지."
진혁이 천천히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가 발을 디딜 때마다 바닥의 철판이 미세하게 가라앉으며 거미줄 같은 균열이 퍼져 나갔다.
"난 단지, 내 눈앞에 거슬리는 쓰레기들을 청소하고 있을 뿐이다. 그 과정에 니들이 뭘 깔아두었든 상관없어. 전부 내 발밑에 짓밟힐 테니까."
"이, 미친 자식……! 당장 폭발을 막지 않으면 너도 끝이야!"
한 이사가 마스터 키를 완전히 비틀어버리려 했다.
콰광!
그 순간, 진혁의 잔상이 허공에서 사라졌다.
[마광신보 - 극(極)]
빛의 궤적조차 남지 않는 초고속 이동.
공기가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진혁의 형체가 한 이사의 코앞에 나타났다.
"크윽!"
한 이사가 경악하며 방어 코어를 전개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콰아아앙!
한 이사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S급 과부하 방어막이 진혁의 주먹에 부딪히며 산산조각 났다.
방어막의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한 이사의 어깨와 팔을 관통했다.
"커헉……!"
한 이사는 그대로 뒤로 밀려나 통제 콘솔에 처박혔다.
진혁의 손이 그의 목덜미를 쇠사슬처럼 움켜쥐었다.
발버둥 칠 새도 없었다. 초월천마경에 도달한 진혁의 신체 강도는 이미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선 지 오래였다.
"커윽…… 목…… 목이……!"
"시끄럽다."
진혁은 한 이사를 콘솔에 처박은 채, 시선을 고스란히 원자로실 중앙으로 돌렸다.
쿠구구구구구-!
중앙의 거대한 유리 실린더 안에서 푸른빛을 뿜어내던 핵융합 플라즈마가 통제 불능의 상태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주변의 공간마저 열기로 인해 일그러질 정도로 막대한 에너지였다.
만약 이대로 원자로가 폭발한다면, 정말로 하층 슬럼가의 수많은 생명이 휘말릴 터였다.
하지만 진혁의 머릿속에는 다른 생각이 스치고 있었다.
[천마 프로토콜]이 이식된 이후, 그의 단전은 세상의 모든 에너지를 집어삼키고 소화할 수 있는 거대한 그릇으로 진화해 왔다.
고대 마교의 유골 데이터, 티타늄 그룹의 군사 나노머신, 그리고 수많은 초인들의 생체 코어 에너지까지.
그 모든 것을 흡수하고 융합해 완성된 것이 바로 지금의 [초월천마경]이다.
그렇다면――.
'이 원자로의 핵융합 에너지 전체를 내 단전으로 끌어들인다면.'
단순히 폭발을 막는 정도가 아니다.
그 막대한 에너지를 [흡원천공]으로 정제하고, [만법귀마]의 원리로 주파수를 동기화하여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살아남는 것을 넘어, 경지의 한계를 다시 한번 아득히 뛰어넘는 도약이 될 수 있었다.
지이잉- 진동이 더욱 거세졌다.
"키하하……! 미쳤어, 네놈은 정말 미쳤어!"
목이 잡힌 채 숨을 몰아쉬던 한 이사가 피를 토하며 미친 듯이 웃어댔다.
"그 원자로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야! 티타늄 그룹이 1,000년 전 유적에서 발굴한…… 천마의 심장부와 연동된 가동식 인공 단전이다! 네 놈이 그걸 흡수하려고 들면, 네 몸의 혈관과 단전이 그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산산조각 날 거다! 함께 죽는 거야, 강진혁……!"
한 이사의 광기 어린 외침에도 진혁의 표정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산산조각 난다?
제 몸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은 이 실험실에서 도망칠 때부터 질리도록 해온 일이었다.
"천마의 심장부?"
진혁이 입꼬리를 비틀며 낮게 웃었다.
"잘 됐군. 원래 내 것이었어야 할 물건이다."
퍽!
진혁은 버둥거리는 한 이사의 목을 더욱 강하게 조여 숨통을 끊어버릴 듯 압박한 채, 반대쪽 손을 원자로의 거대한 실린더를 향해 뻗었다.
지이이익-!
진혁의 손바닥에서 칠흑 같은 마기가 뿜어져 나오며 공기를 태웠다.
마기는 단순한 기운이 아니었다.
나노머신과 혈관의 공진을 통해, 주변의 모든 에너지 주파수를 강제로 포획하고 역류시키는 파동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만법귀마 - 파동(波動)] 전개.
우아아아아앙-!
원자로 내부에서 폭주하던 핵융합 플라즈마의 흐름이 진혁의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의 파동에 걸려들었다.
마치 거대한 소용돌이가 해일의 방향을 바꾸듯, 사방으로 뻗어나가려던 고열의 에너지가 일제히 진혁의 손바닥을 향해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크…… 으윽!"
단전에서 거대한 압력이 치솟았다.
16,200 MW를 가리키던 출력이 순식간에 요동치며 붉은 경고음을 울렸다.
과부하.
인간의 육체 따위에 담길 수 없는 핵융합로의 출력이 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밀려들었다.
피부가 찢어지고, 뼛속까지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뇌를 강타했다.
하지만 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는 이를 악물고 단전의 문을 더 넓게 개방했다.
[흡원천공 - 개량(改)]!
쿠구구구궁-!
원자로실 전체가 쩌렁쩌렁 울리며 진동했다.
중앙의 거대한 실린더에 차 있던 푸른 플라즈마가 순식간에 칠흑빛 마기에 물들며 진혁의 팔을 통해 단전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아…… 아아…… 말도 안 돼……."
목이 졸린 채 그 광경을 눈앞에서 지켜보던 한 이사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인간의 육체가 핵융합로의 출력을 통째로 삼킨다?
그것은 과학도, 무공도 아닌, 신의 영역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크하하……."
진혁의 입가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단전의 출력이 미친 듯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17,000 MW.
18,500 MW.
그리고 마침내――.
[SYSTEM ALERT!]
[경고: 단전 에너지 출력이 임계점을 돌파했습니다.]
[현재 출력: 20,000 MW 초과.]
[신천마신공 제5단계 [초월천마경]의 출력이 안정화에 진입합니다.]
우와아아아아-!
진혁의 전신에서 칠흑과 푸른 뇌전이 뒤섞인 거대한 마기 폭풍이 터져 나왔다.
그 폭풍의 여파만으로도 원자로실 전체의 철제 벽면이 먼지로 바스러지며 사방으로 흩날렸다.
타이탄-01의 심장이 멎었다.
실린더 안에서 맹렬하게 타오르던 핵융합 플라즈마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거대 이동 요새의 모든 동력계가 동시에 침묵했다.
지이익…… 치익……!
사방의 불빛이 꺼지며 붉은 비상등만이 깜빡거렸다.
요새는 이제 거대한 철제 관짝에 불과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단전의 열기를 가라앉힌 진혁이 시선을 내렸다.
그의 손아귀에 잡혀 있던 한 이사는 이미 영혼이 나간 눈으로 허공을 응시한 채 축 늘어져 있었다.
원자로의 자폭은 막혔고, 타이탄-01은 완전히 제압되었다.
진혁은 차가운 시선으로 축 늘어진 한 이사의 시체를 바닥에 내던졌다.
그리고는 무너져 내린 통제 콘솔의 잔해 속에서 아직 작동하고 있는 하나의 메인 데이터 단말기를 내려다보았다.
거기에는 타이탄-01의 데이터뱅크에 숨겨져 있던 마지막 파일, 즉 '1,000년 전 마교의 유골 데이터'와 '천마 프로토콜'의 진짜 기원에 대한 로그가 서서히 다운로드되고 있었다.
진혁의 흑안이 짙어졌고, 그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걸렸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란 거군."
타이탄-01의 잔해를 뒤로한 채, 진혁은 어둠에 잠긴 신서울의 상층부를 향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데이터 단말기의 스크린 위로 푸른빛의 파일 목록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PROJECT: HEAVENLY DEMON - ROOT ORIGIN]
[TARGET: 1,000년 전 구(舊)무림 마교 본산 지하 유적]
[추출 데이터 대상: 천마(天魔)의 잔여 유골 및 뇌신경 회로 구조 분석]
그것은 단순한 고대 유물의 발굴 기록이 아니었다.
티타늄 그룹이, 아니 그 배후에 도사린 자들이 천마의 육신을 어떻게 해체하고 현대의 사이버네틱스와 결합해 이 거대한 디스토피아를 설계했는지에 대한 뼈저린 진실이었다.
"흐음."
진혁이 낮게 신음하며 단말기의 화면을 손가락으로 툭 쳤다.
20,000 MW를 돌파한 단전의 여파로 손끝에서 미세한 흑염의 잔재가 스파크처럼 튀었으나, 데이터 패킷은 손상되지 않고 완벽하게 그의 뇌내 신경망으로 스며들었다.
[데이터 동기화 완료.]
[추가 위치 정보 획득: 신서울 상층부 마천루, '헤븐리 파운데이션' 본부 최상층 코어 룸.]
타이탄-01은 그저 전초기지에 불과했다.
진무극이 죽고, 한 이사가 처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벌여놓은 판의 진짜 설계자는 여전히 상층 마천루의 구름 위에 숨어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꽈아아릉!
그때, 완전히 멈춰 선 줄 알았던 타이탄-01의 거대 잔해 아래쪽에서 기괴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원자로가 흡수되어 동력이 끊겼음에도 불구하고, 요새의 외벽 장갑 틈새에서 비상 기동 예비 코어가 켜지는 붉은 경고등이 번쩍였다.
스스로 움직이는 방어 프로그램.
혹은, 이미 진혁의 움직임을 예견하고 심어둔 마지막 자동 응징 시스템이었다.
"끈질기군."
진혁의 입가에 짙은 냉소가 걸렸다.
그는 망가진 통제 콘솔을 가볍게 걷어찼다.
쿠구궁-!
수 톤짜리 철판이 종잇장처럼 날아가며 원자로실의 천장을 뚫고 외부의 차가운 밤공기가 밀려들어왔다.
신서울의 밤은 여전히 네온사인과 불법 개조된 비행정의 굉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상에서는 저항군 '니르바나'의 대원들과 윤아영이 요새의 잔해 주변을 확보하며 진혁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혁은 무너진 돔의 모서리를 밟고 올라섰다.
바람이 그의 칠흑 같은 머리카락을 거칠게 헤집었다.
전신을 휘감고 있는 20,000 MW의 압도적인 단전 출력은 폭발하기 직전의 화산처럼 묵직하게 가슴을 울리고 있었다.
"진혁 씨! 타이탄-01의 메인 데이터 회수가 끝났어요! 상층부의 잔당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당장 빠져나와야 해요!"
윤아영의 다급한 목소리가 통신기를 통해 들려왔다.
하지만 진혁은 통신기를 끄지 않은 채, 차가운 눈으로 신서울의 가장 높고 화려한 마천루, 티타늄 타워의 첨탑을 올려다보았다.
도망칠 생각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아영."
"네? 진혁 씨?"
"내 뒤를 밟는 잡것들은 전부 네가 처리해라."
진혁이 목소리에 마기를 실어 낮게 읊조렸다.
"난 진짜 꼬리를 끊으러 간다."
쾅-!
발밑의 강화 티타늄 바닥이 산산조각 나며 짓이겨졌다.
마광신보 - 극(極).
빛조차 따라잡지 못하는 칠흑의 잔상이 신서울의 밤하늘을 수직으로 가르며 쏘아아아아아-! 뻗어나갔다.
스스로 완성한 신천마신공 제5단계 [초월천마경]의 힘을 품은 채, 진혁은 이 디스토피아의 심장부를 향해 거침없이 추락하듯 질주했다.
진짜 게임은 이제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