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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52화목차

제52화 이동 요새 파쇄전

콰아아아구궁-!

신서울의 만년 회색 밤하늘을 찢어발기듯 거대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수십 킬로톤의 장갑판과 중무장 포탑을 두른 강철의 거물, 메가 코퍼레이션 티타늄 그룹의 최종 이동 요새 [타이탄-01]이 하층 슬럼가의 진흙탕 대지를 짓밟으며 전진하고 있었다.

대지가 울고, 비명이 찢겼다.

10층 건물 높이에 달하는 거대한 무한궤도가 회전할 때마다 아스팔트와 판잣집들은 가차 없이 가루가 되어 짓뭉개졌다.

"하하하하! 멍청한 하층민 쥐새끼들! 기어코 티타늄의 지배를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나?"

타이탄-01의 최상층 관제탑.

초대형 홀로그램 스크린 너머로 슬럼가의 참상을 내려보며, 한 이사가 미친 듯이 웃어젖혔다. 그의 얼굴은 광기로 일그러져 있었다. 회장 진무극이 사망한 직후, 그는 타이탄-01의 실권을 장악하고 하층 슬럼가를 완전히 지도에서 지워버림으로써 새로운 군사 독재의 왕좌에 오를 속셈이었다.

-파지지직! 삐- 삐-!

"이사님! 경보입니다! 외부 센서에 비정상적인 열원이 포착되었습니다!"

"뭐야? 잔당들이 도발이라도 해온다는 말이냐? 주포를 전개해! 다 쏴 죽여버려!"

"안 됩니다! 타겟이 너무 빠릅니다! 아스날 링의 방공 포탑들이... 격파당하고 있습니다!"

관제탑 내부가 요란한 경보음과 함께 시뻘건 비상등으로 물들었다.

한 이사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쿠구궁! 콰광!

타이탄-01의 외곽을 호위하던 사거리 10km의 대공 플라즈마 포탑들이 순식간에 고철 덩어리로 변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그 파편 사이로, 칠흑 같은 잔상 하나가 폭풍처럼 치솟고 있었다.

초당 100미터를 상회하는 속도.

인간의 육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초고속 기동이었다.

[SYSTEM INFO: 천마 프로토콜 (HEAVENLY DEMON PROTOCOL) - 오프라인 (사용자 자율 제어)]

[현재 경지: 제5단계 초월천마경 (超越天魔經)]

[단전 출력: 16,200 MW (Stable)]

[나노머신 동기화율: 99.8%]

시스템의 자동 보조가 영구 차단되었음에도, 강진혁의 신체는 그 어떤 기계공학적 연산보다 완벽하고 정교하게 움직였다.

지-잉, 쿠우우웅-!

타이탄-01의 전면 장갑을 보호하기 위해 펼쳐진 A급 에너지실드 장막이 진혁의 앞을 가로막았다. 현대 군사기술의 집약체라 불리는 고출력 방어막. 웬만한 S급 초인의 일격조차 튕겨내는 장벽이었다.

"방해다."

진혁의 입술이 낮게 으슬거렸다.

그의 오른손에 쥔 [천마검]이 푸른 뇌전과 칠흑 같은 마기를 휘감으며 울부짖었다.

슈우우웅-! 콰아아앙!

만법귀마(萬法歸魔)의 원리에 따라 에너지실드의 공진 주파수가 진혁의 눈에 완벽하게 스캔되었다. 허점을 파고드는 단 하나의 참격.

[천마일검 - 개량 (天魔一劍 - 改良)]

팟!

공기가 압축되었다가 터지는 백색의 진공파가 전방을 강타했다.

과부하를 이기지 못한 에너지실드가 유리 조각처럼 산산조각 부서져 내렸다. 방어막의 반동으로 타이탄-01의 내부 회로에서 스파크가 튀며 요새 전체가 거대하게 휘청였다.

"막아라! 저 괴물을 막아내!"

"포격 집중! 모든 화력을 저 녀석에게 쏟아부어!"

타이탄-01의 측면에서 일제히 개틀링 포가 불을 뿜었다. 분당 수만 발의 고폭탄이 진혁을 향해 빗발쳤다.

하지만 진혁의 몸은 이미 물리적 탄도를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마광신보 - 극(極)]

잔상조차 남지 않았다.

진혁이 지나간 자리에는 오직 공기를 태우는 마기(魔氣)의 궤적만이 일그러지며 남을 뿐이었다. 고폭탄들은 진혁의 잔상만 스쳐 지나간 채 서로 부딪쳐 공중에서 자폭했다.

콰구구구궁!

그 사이, 하부 슬럼가의 폐허 속에서 검은 리무진들과 중장갑 트럭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반(反)기업 저항군 '니르바나'의 총수 송수연이 이끄는 정예 부대와 윤아영의 해커 팀이었다.

"진행 상황은 어때, 아영!"

- [타이탄-01의 하부 무한궤도 제어 시스템에 바이러스 주입 완료! 앞으로 3분 뒤면 양쪽 궤도의 동력이 완전히 강제 셧다운됩니다!]

윤아영의 목소리가 통신기를 타고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송수연은 가죽 재킷을 휘날리며 대형 군용 도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좋아! 니르바나 대원들 전원 진격한다! 저 거대한 강철 두더지의 다리를 완전히 끊어버려!"

쿠퍼엉! 콰아아앙!

니르바나의 대원들이 화력을 집중하여 타이탄-01의 우측 무한궤도를 지지하는 유압 실린더를 폭파했다. 수만 톤에 달하는 요새의 무게를 지탱하던 균형이 무너지며, 타이탄-01의 거대한 차체가 왼쪽으로 쏠렸다.

-삐비비비빅! 경고! 우측 구동계 파손! 차체 균형 30% 이탈!

"제길! 젠장할 쥐새끼들!"

관제탑 안에서 한 이사는 사색이 되어 콘솔을 내리쳤다.

"놈들을 다 밟아 죽여버려! 이동 속도를 높여!"

"못 움직입니다! 하부 궤도가 완전히 락(Lock)걸렸습니다!"

그때였다.

투구-웅!

관제탑의 상부 천장 돔이 사정없이 찌그러지며 안으로 함몰되었다.

티타늄 합금과 강화 방탄유리로 이루어진 3중 장갑이 마치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뭐, 뭐야?!"

한 이사와 부관들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찢겨 나간 천장 돔의 대형 구멍 사이로, 칠흑 같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차가운 흑안을 빛내는 사내가 내려앉았다.

발소리조차 나지 않는 가벼운 착지.

그러나 그가 발을 디딘 순간, 관제탑 전체의 바닥 철판이 미세하게 금이 가며 찌그러졌다.

"……강, 진혁……!"

한 이사의 얼굴에 질색하는 공포가 서렸다.

진무극 회장마저 처단하고, 수많은 최정예 특수부대를 도륙 낸 사마(邪魔)가 드디어 자신의 눈앞에 도달해 있었다.

진혁은 말없이 [천마검]을 거꾸로 쥐었다.

검신을 타고 흐르는 칠흑의 마기와 푸른 뇌전이 관제탑 내부의 형광등을 일제히 터뜨리며 섬뜩한 빛을 발했다.

"기다렸다, 한 이사."

저승의 사신과도 같은 목소리가 관제탑 전체를 무겁게 짓눌렀다.

한 이사는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으나, 간신히 통신 마이크를 붙잡고 악에 받친 목소리로 소리쳤다.

"오지마라! 이 괴물 자식아! 네가 아무리 강해도 이 타이탄-01의 핵심에는 무엇이 있는지 아나!"

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이사의 입꼬리가 비틀리며 미친 듯한 웃음을 지었다.

"이 요새의 심장부에는 하층 슬럼가 전체의 전력망과 직결된 대형 자기원자로가 설치되어 있다! 네가 나를 죽이는 순간, 혹은 이 원자로가 과부하를 일으키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이 슬럼가에 사는 300만 명의 목숨이 나와 함께 증발하는 거야!"

한 이사의 손이 원자로실의 수동 자폭 레버를 향해 뻗어 있었다.

"하하하! 어때! 나를 죽여보시지! 너 혼자 살겠다고 이 수백만 명을 다 죽일 셈이냐, 천마라는 칭호에 걸맞은 괴물 양반!"

주변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통신기를 통해 상황을 지켜보던 송수연과 윤아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안 돼! 진혁 씨, 저 남자의 말이 진짭니다! 원자로의 출력이 급상승하고 있어요! 타이탄-01 전체가 거대한 폭탄으로 변했습니다!"

하층민들을 볼모로 잡은 비열한 인질극.

메가 코퍼레이션의 권력자들이 언제나 써먹던 최후의 수단이었다.

하지만 강진혁은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차갑고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인질?"

진혁의 검끝이 한 이사를 향했다.

그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16,200 MW의 마기가 폭발적으로 팽창하며 관제탑의 공간을 일그러뜨렸다.

"네가 착각하는 게 하나 있다."

슥, 진혁이 한 걸음 내디뎠다.

공간이 찌그러지는 듯한 이명(耳鳴)이 한 이사의 고막을 때렸다.

"나는 세상을 구하는 영웅 노릇을 한 적이 없다."

[만법귀마 - 파동(波動)]

지이이잉-!

진혁의 눈동자에 원자로실의 미세한 에너지 흐름과 제어 회로의 주파수가 고스란히 담겼다.

원자로가 폭발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3초.

"나는 그저 내 길을 가로막는 쓰레기들을 청소할 뿐이다."

콰아아앙-!

진혁의 몸이 사라졌다.

한 이사가 경악에 찬 비명을 지르며 자폭 레버를 내리려 한 그 순간,

퍼벅-!

"크아아악!"

자폭 레버를 쥔 한 이사의 오른쪽 팔뚝이 검광(劍光)과 함께 완벽하게 절단되어 공중으로 솟구쳤다. 피가 비처럼 쏟아졌다.

진혁은 한 이사의 목덜미를 한 손으로 움켜쥔 채, 관제탑 바닥을 뚫고 타이탄-01의 거대한 원자로실을 향해 그대로 수직 낙하했다.

쿠구구구구궁-!

지하의 심장부로 향하는 진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콰아아아구궁-!

타이탄-01의 철갑을 찢으며 추락하는 진혁의 손아귀에서 한 이사가 피를 토하며 발버둥 쳤다.

"크… 윽! 괴물 자식…! 원자로는 이미… 과부하 상태다! 나를 죽여도 너와 이 하층 슬럼가는…!"

"시끄럽다."

진혁의 흑안이 살기를 품고 번뜩였다.

목덜미를 쥔 손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가자, 한 이사의 기도가 바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컥컥거리는 비명만이 새어 나왔다.

쿠구궁, 쿠우우웅-!

두 사람이 관제탑의 바닥을 뚫고 수직으로 낙하한 곳은 타이탄-01의 최심부, 거대한 푸른빛을 발산하는 원자로실(Reactor Core)이었다.

수십 미터 높이에 달하는 거대한 원통형 공간 안에서, 수만 톤의 중수와 플라즈마가 소용돌이치며 굉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삐비비비빅! [경고: 원자로 코어 온도 한계치 초과! 방사능 누출 위험 98%!]

- [긴급: 자폭 프로토콜 제어권 상실. 강제 융해 프로세스 가동 중!]

원자로실 내부의 비상 경보기가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방호복을 입은 기술진들과 잔당 병력들이 도망치려 발악했으나, 진혁이 발산하는 엄청난 마기의 압박감에 눌려 그 자리 주저앉아 오줌을 지릴 뿐이었다.

"크흐흐… 끝이다… 다 같이 죽는 거야!"

한 이사가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악랄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손가락 끝이 원자로실 중앙의 메인 콘솔을 향했다. 수동 비상 해제 장치를 부수어 완벽한 연쇄 폭발을 일으키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는 한 이사를 원자로의 거대한 투명 방호벽에 내던져 버렸다.

콰아아앙-!

"크윽!"

방호벽에 처박힌 한 이사가 피를 쏟으며 바닥에 굴렀다.

진혁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손에 쥔 [천마검]의 검신에서 푸른 뇌전이 튀며 주변의 공기를 태우고 있었다.

"너희 같은 자본의 기생충들이 착각하는 게 있지."

진혁의 목소리는 굉음으로 가득 찬 원자로실 안에서도 한 이사의 고막에 선명하게 박혔다.

"힘이란 건 말이다, 이런 거대한 기계 장치나 돈으로 사고파는 권력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파지지직!

진혁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온 16,200 MW의 마기가 온몸의 혈관을 타고 역류했다.

[초월천마경(超越天魔經)]의 경지.

시스템의 보조 없이, 오직 자신의 의지와 육체적 통제력만으로 끌어올린 극점의 내공이었다.

"네놈이 만든 이 거대한 철 덩어리와 원자로는…"

진혁이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그의 등 뒤로 칠흑 같은 마기가 거대한 마신(魔神)의 형상으로 피어올랐다. 원자로의 푸른 빛과 어우러져 기괴하고도 압도적인 풍경을 만들어냈다.

"내 검 한 방에 썰려 나갈 장난감에 불과해."

"미친… 짓거리…!"

한 이사가 벌벌 떨며 물러서려 했지만, 진혁의 검광이 이미 그의 퇴로를 완전히 차단하고 있었다.

[만법귀마 - 파동(波動)]

[천마일검 - 개량 (天魔一劍 - 改良)]

슈우우웅-!

소리마저 지워진 절대적인 정적.

뒤이어 터져 나온 것은 우주가 갈라지는 듯한 거대한 파공성이었다.

콰아아아아아궁-!

진혁의 검에서 뻗어 나간 칠흑의 참격이 한 이사를 스쳐 지나가며, 그 뒤편에 있던 거대한 원자로의 메인 제어 코어를 정중앙으로 관통했다.

지이이잉- 팟! 쾅!

원자로를 보호하던 S급 과부하 방어막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핵심 냉각 회로가 박살 나며 폭발하기 시작한 푸른 플라즈마 에너지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크아아아아악-!"

한 이사는 비명조차 지를 겨를도 없이, 진혁이 날린 참격의 여파와 폭발하는 마기에 휘말려 그 자리에서 형체도 없이 뼛가루로 산화했다.

콰구구구구궁-!

타이탄-01의 심장부가 파괴되는 순간이었다.

연쇄적인 폭발이 요새 내부의 모든 회로를 타고 역류했다.

-삐- 삐- 삐비비빅! [치명적 오류! 동력로 완전 정지!]

- [타이탄-01 붕괴 시작. 탈출하십시오.]

타이탄-01의 관제탑과 외벽이 사방으로 균열을 일으키며 무너져 내렸다.

수만 톤의 강철 거물이 내부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폭발에 밀려 하층 슬럼가의 대지 위로 거대하게 고꾸라졌다.

콰쾅! 쿠구궁-!

지상에서 타이탄-01의 붕괴를 지켜보던 송수연과 니르바나 대원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하층민들을 짓밟으며 공포를 뿌리내리던 철의 요새가, 단 한 사람의 침입으로 인해 내부에서부터 완벽하게 붕괴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 저걸 혼자서 해냈다고……?"

송수연은 경악 어린 눈으로 무너지는 타이탄-01의 최상층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서, 칠흑의 잔상을 남기며 공중으로 솟구치는 한 사내가 있었다.

파앗-!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화염과 파편을 뚫고 진혁이 가볍게 지상에 착지했다.

그의 옷자락에는 미세한 먼지조차 묻어 있지 않았다.

- [수고하셨습니다, 진혁 씨!]

윤아영의 밝은 목소리가 통신기를 타고 들려왔다.

- [타이탄-01의 메인 컴퓨터 잔해에서 티타늄 그룹의 숨겨진 데이터뱅크를 확보했어요! 그 안에는… 우리가 몰랐던 엄청난 비밀이 들어있습니다.]

진혁은 차갑게 가라앉은 흑안으로 무너져 내리는 요새의 잔해를 내려다보았다.

티타늄 그룹의 회장 진무극을 죽이고, 그들의 이동 요새까지 박살 냈음에도 진혁의 가슴속에는 여전히 가시지 않는 응어리가 있었다.

1,000년 전 마교의 유골 데이터.

그리고 자신을 실험체로 만들었던 '천마 프로토콜'의 진짜 기원.

진무극의 뒤편에서 이 모든 판을 설계하고 조종하던 진짜 배후의 실체가 그 데이터뱅크 속에 잠들어 있었다.

"데이터를 분석해라."

진혁이 낮게 읊조렸다.

"다음 타격 지점을 잡는다."

신서울의 밤하늘은 여전히 메가 코퍼레이션의 마천루들이 뿜어내는 네온사인으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지만, 그 불빛 아래에서 칠흑의 검을 쥔 진짜 천마(天魔)의 진격은 이제 막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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