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회로 오버히트와 분석
우우우우웅—!
지하 수력 발전소의 거대한 철문이 이지러졌다.
강진혁의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온 시커먼 마기(魔氣)가 철판의 분자 결합을 파괴하며 비명을 질러댔다.
쿠구구구궁!
십수 톤에 달하는 철문이 안쪽으로 함몰되며 나뒹굴었다.
폐쇄된 발전소 내부의 뿌연 먼지와 함께, 썩은 기름 냄새와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SYSTEM ALERT: 경고, 순간 출력이 임계치를 초과했습니다.]
-[생체 코어 출력: 4,500 MW (Gen-3 튜닝형).]
-[혈관 내 나노머신 동기화율: 84.2%.]
-[경지: 1단계 [마공각성] 후기 진입. 2단계 [마기융합]으로의 전환 프로세스 가동 중.]
시야의 구석, 차가운 푸른빛의 HUD(Heads-Up Display)가 빠르게 점멸했다.
귓가에서 번개 치는 듯한 이명이 울리고, 목과 손목을 따라 흐르던 은빛 회로 선이 붉게 달아올랐다.
‘크윽…….’
부작용이었다.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D급 생체 코어의 에너지를 억지로 쑤셔 넣은 탓이다. 현대의 기계공학적 동력원과 고대 마공의 흡원천공(吸元天功)이 충돌하며, 진혁의 혈관 속에서 미세한 폭발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마치 온몸의 세포가 불에 타는 듯한 작열감.
피부가 터져 나가며 검붉은 혈흔이 옷 위로 배어 나왔다.
-[Warning! 심장 구역 마기 폭주 위험도: 18.9%로 상승.]
-[현재 상태: 회로 오버히트 임박. 즉각적인 운기조식(運氣調息)을 권장합니다.]
AI 설화의 무기질적인 경고음이 머릿속을 후볐다.
하지만 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이 정도 고통은 티타늄 그룹의 생체 실험실에서 겪었던 지옥에 비하면 가려운 수준에 불과했다.
진혁은 비틀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지탱하며 발전소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더벅머리에 양아치 같은 인상을 한 천마회 조직원 수십 명이 황급히 무기를 들어 올렸다. 그들의 손에는 개조된 플라즈마 샷건과 고주파 진동검이 들려 있었다.
“저거 뭐야, 시발! 문을 그냥 부쉈어?!”
“남궁 형님 종자들인가? 아니, 얼굴에 회로 선이…… 저격 대상인 실험체 07호잖아!”
“뭐야, 살아 있었어? 죽여라! 회장님이 생포하랬지만 반병신 만들어도 상관없어!”
두두두두둥!
지하 공간이 요란한 총성과 함께 번쩍였다.
플라즈마 탄환이 공기를 태우며 진혁을 향해 빗발쳤다.
진혁은 차가운 눈동자로 날아오는 탄환의 궤적을 응시했다.
과거였다면 피하기 바빴겠지만, 지금의 감각은 완전히 달랐다.
-[동적 시력 및 신경 전달 속도 350% 증폭.]
-[적의 사격 궤적 예측 완료.]
피할 필요조차 없었다.
진혁의 오른팔을 감싸고 있던 나노머신이 순식간에 재배열되며 검은색 기갑 장갑으로 변형되었다.
챙-, 챙기기긱!
플라즈마 탄환이 진혁의 팔뚝에 부딪히며 스파크를 흩뿌렸다.
장갑 표면이 살짝 그슬렸을 뿐, 충격은 완벽하게 분산되었다.
“말도 안 돼……! 샷건 직격이었는데 방탄복도 안 입은 팔이 멀쩡하다고?!”
조직원들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진혁이 입술을 짓씹으며 낮게 읊조렸다.
“설화.”
-[네, 대기 중입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내 혈관 속 마기와 생체 코어의 전력을 동기화한다. 1단계와 2단계의 경계를 잇는 연산 경로를 짜.”
-[인식 완료. 기혈(氣血)의 흐름을 현대 군사 나노머신의 주파수와 실시간으로 매칭합니다.]
슈우우웅-!
진혁의 단전 부근에서 깊고 무거운 진동이 울렸다.
마치 거대한 용광로가 불을 지피듯, 흡원천공으로 강탈해 온 이명(異名)의 기들이 일정한 법칙에 따라 재정렬되기 시작했다.
툭, 투두둑.
진혁의 전신에서 불필요한 열기와 노폐물이 땀과 함께 증발했다.
오버히트로 인해 끓어오르던 혈관이 순식간에 차가운 냉각수로 씻긴 것처럼 안정되었다.
-[안정화 완료.]
-[생체 코어 출력과 마기(魔氣)의 융합률 91% 도달.]
-[신체 능력 일시적 극대화: [마기융합(魔氣融合)] 2단계의 문턱에 진입합니다.]
이것이 ‘천마 프로토콜’의 진정한 무서움이었다.
고대 마교의 수장이 목숨을 바쳐가며 깨달아야 했던 마공의 운기 법칙을, 현대의 인공지능과 나노머신이 실시간으로 계산하고 최적화해 준다.
물론 그 대가로 육체는 매 순간 극한의 부하를 버텨야 했지만, 꺾이지 않는 정신력만 있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진혁의 입꼬리가 비틀리며 섬뜩한 미소가 그려졌다.
“시작하지.”
콰아앙!
지면이 폭발하듯 무너졌다.
진혁의 몸이 사라졌다. 아니, 너무나 빨라 잔상조차 남지 않았다.
“어……?”
가장 앞에 있던 조직원의 목덜미에 서늘한 손바닥이 박혔다.
꾸드득-!
“커학……!”
흡원천공(吸元天功).
조직원의 몸 안에서 생체 코어의 미약한 전류와 생명력이 순식간에 빨려 들어왔다.
단 0.5초 만에 한 명이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져 바닥에 쓰러졌다.
진혁은 그 시체를 발판 삼아 허공으로 솟구쳤다.
마광신보(魔光神步).
그림자가 사방으로 분열하며 발전소의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비명 소리 내지 마라. 한 번에 끝내줄 테니까.”
어둠 속에서 사신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챙강! 튜우웅!
고주파 진동검이 허공을 갈랐지만, 진혁의 잔상만 베어낼 뿐이었다.
조직원들은 패닉에 빠져 사방으로 총을 난사했다. 하지만 그들의 공격은 이미 각성한 진혁의 동적 예측 시스템과 마기 실드에 막혀 무용지물이었다.
파각! 퍼벅!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천마회 조직원들이 하나둘씩 쓰러졌다.
단 3분 만에, 수십 명에 달하는 무장 조직원들이 전멸했다.
발전소 내부는 다시 적막에 휩싸였다.
오직 진혁의 거친 숨소리와, 흡수한 에너지를 정제하느라 단전에서 울리는 미세한 진동음만이 공간을 채웠다.
진혁은 바닥에 나뒹구는 조직원의 시체 위로 발을 올린 채, 차갑게 식은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제된 마기: 약 5년 치 축적 완료.]
-[경지 안정화: 마기융합 2단계의 초입을 완벽히 소화했습니다.]
“후……”
진혁이 낮게 숨을 내쉬며 어깨를 풀었다.
그때였다.
-[SYSTEM ALERT: 경고, 외부로부터의 비정상적인 데이터 패킷 감지를 탐지했습니다.]
-[위치: 지하 발전소 외부, 하층 도시 4구역 네온가판대 상공.]
-[해킹 트래픽 분석 중…….]
진혁의 눈빛이 매섭게 가라앉았다.
시야의 HUD 상단에 붉은색 경고 창이 떠올랐다.
‘나를 추적하고 있다고?’
-[아닙니다. 추적이 아니라…… ‘관찰’입니다.]
-[이동 경로와 전투 패턴, 그리고 천마 프로토콜의 고유 주파수를 외부에서 실시간으로 스캔하고 있습니다. 상대의 해킹 실력이 상당합니다. 티타늄 그룹의 추적 부대와는 다릅니다.]
AI 설화의 목소리가 이례적으로 긴장감을 띠었다.
‘티타늄 그룹이 아니라고?’
-[네. 상층 마천루의 기업망이 아니라, 하층 슬럼가의 암흑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고도의 은닉형 프록시 서버입니다. 상대는 우리의 시스템을 완벽하게 뚫지는 못했지만, 주변의 전력 파동을 통해 당신의 위치를 정확히 짚어내고 있습니다.]
진혁은 피투성이가 된 검을 다시 고쳐 잡았다.
티타늄 그룹의 사냥개들인 줄 알았더니, 또 다른 변수가 튀어나온 모양이었다.
하층 도시에 이런 수준의 해킹 능력을 가진 자가 존재한다?
기억을 뒤져봐도 슬럼가에서 이 정도 기술력을 다룰 수 있는 자는 손에 꼽혔다. 아니,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재미있군.’
진혁은 입술을 쓸어내렸다.
자신이 천마 프로토콜을 손에 넣고 움직이기 시작하자마자, 하층 도시의 숨은 포식자들이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역추적(Trace) 프로토콜을 가동하시겠습니까?]
-[상대의 발원지를 특정하는 데 약 43초가 소요됩니다.]
“가동해.”
진혁의 명령과 동시에, HUD의 중앙 화면이 푸른빛에서 붉은색 인터페이스로 전환되었다.
데이터의 바다 속에서 은밀하게 줄기를 뻗고 있는 상대의 흔적.
그 해킹의 발원지를 향해, 진혁의 차가운 시선이 고정되었다.
“네가 누구든 간에…… 내 영역에 기어들어 왔다면, 밑바닥까지 파헤쳐 주마.”
진혁은 지하 발전소의 부서진 철문을 뒤로한 채, 하층 도시의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등 뒤로, 마기(魔氣)가 칠흑 같은 오라처럼 피어올랐다.
-[역추적 경로 확인 중…… 30%, 50%, 80%……]
시야 구석에서 HUD의 게이지가 빠르게 차올랐다.
진혁은 거친 숨을 고르며 어둡고 축축한 발전소 통로를 빠져나왔다. 귓가를 때리던 기계음이 잦아들자, 하층 슬럼가의 탁한 공기가 코끝을 찔렀다.
네온사인이 명멸하는 구도심의 밤거리는 언제나처럼 혼돈으로 가득했다.
폐급 생체 코어를 이식한 하층민들이 비틀거리며 거리를 오갔고, 머리 위로는 티타늄 그룹의 상층 마천루가 뿜어내는 오색찬란한 홀로그램 광고판이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상대의 해킹 신호는 그 번잡한 마경(魔境)의 한가운데를 가리키고 있었다.
-[역추적 완료.]
-[발원지 위치: 하층 도시 4구역, 폐기된 데이터 센터 지하 ‘오버클럭 바(Bar)’.]
-[거리: 약 1.2km 전방.]
“거기였나.”
진혁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올라갔다.
단순한 정보 브로커나 흥신소 놈들이라면 그저 골칫거리에 불과하겠지만, 만약 티타늄 그룹과 연계된 놈들이라면 이 자리에서 씨를 말려버려야 했다.
진혁은 발걸음을 옮겼다.
마기융합 2단계의 문턱을 밟은 육체는 이전보다 훨씬 가볍고 단단했다. 골목길의 어둠 속으로 스며들듯 움직이는 그의 모습은 마치 한 마리의 맹수와도 같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낡은 철판과 녹슨 컨테이너 박스가 미로처럼 얽혀 있는 4구역의 골목 끝에, 허름한 간판 하나가 깜빡이는 바(Bar)가 나타났다.
『OVERCLOCK』
겉보기에는 슬럼가 양아치들이나 드나드는 저급한 술집이었지만,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전자기파의 주파수는 일반적인 것이 아니었다.
슈우욱-
진혁이 바의 철제 출입문 앞에 멈춰 서자마자, 문가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가 푸른빛을 깜빡이며 그의 안면을 스캔했다.
-[SYSTEM ALERT: 내부에서 외부 침입을 감지했습니다. 방화벽 기동 중.]
“방화벽이라.”
진혁은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그가 손을 뻗어 철제 문고리를 움켜쥐었다.
우득, 우두두둑!
단전에서 끌어올린 마기가 손바닥을 타고 흘러넘쳤다.
기계식 잠금장치와 디지털 암호화 회로가 진혁의 손아귀 안에서 분자 단위로 붕괴하며 비명을 질렀다.
쾅-!
묵직한 철문이 안쪽으로 통째로 날아가며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안개처럼 자욱한 담배 연기와 함께, 전자 음악 소리가 쩌렁하게 울리던 바 내부가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뭐야, 이 새끼는?!”
“미친, 문을 손으로 뜯었어?!”
술을 마시던 건달들과 해커 무리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눈에 비친 것은, 온몸에 핏자국이 묻은 채 서늘한 흑안을 번뜩이고 있는 강진혁의 형상이었다.
진혁은 그들의 시선조차 무시한 채, 가게 안쪽의 카운터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거기에는 숏컷의 분홍빛 머리를 한 젊은 여자가 홀로 앉아 있었다.
그녀의 무릎 위에는 수십 개의 홀로그래픽 화면이 떠 있었고, 손가락은 잔상만 남길 정도로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화면들 중 하나에는 방금 전까지 진혁이 머물렀던 지하 발전소의 CCTV 영상과, 그가 발산하던 마기의 파동 데이터가 선명하게 띄워져 있었다.
여자의 얼굴에 짙은 당황스러움이 스쳤다.
“……설마,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윤아영이었다.
그녀는 황급히 터미널의 전원 케이블을 뽑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진혁의 잔상이 허공을 가르며 그녀의 코앞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서늘한 검끝이 아영의 목 바로 앞에 멈춰 섰다.
챙-!
공기가 얼어붙는 듯한 살기에, 아영은 침을 꼴깍 삼키며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와, 잠깐만요! 살인마 아저씨, 진정해요. 나 적대하려는 거 아니니까!”
진혁의 흑안이 아영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손목에 감긴 데이터 링크 장치에서 진혁이 익숙하게 보아온 ‘천마 프로토콜’의 잔여 주파수가 희미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 뒤를 밟은 이유가 뭐지.”
진혁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바 내부에 울려 퍼졌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윤아영의 눈동자는 반짝거리며 진혁의 몸을 스캔하듯 훑고 있었다.
“이유요? 간단해요. 난 그냥…… 티타늄 그룹이 숨기려는 가장 거대한 장난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호기심이 생겼을 뿐이거든.”
아영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그리고 보아하니, 그 장난감은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짜릿한 물건 같고 말이지.”
진혁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그 순간, 바깥 골목 어둠 속에서 지독하게 불길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쿠구구구궁-!
건물의 외벽을 부수며 거대한 강철 장갑의 무리가 난입했다.
흉측한 사이보그 의수와 화려한 화기를 장착한 자들. 하층가를 지배하는 사이버 마피아, ‘천마회’의 습격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