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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48화목차

제48화 생체 파동의 정화

쿠구구구구——!

신서울 제3구역의 대지를 뒤흔들던 잔류 기동음이 잦아들었다.

티타늄 그룹이 야심 차게 풀어놓았던 아수라 부대의 잔해는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고철 덩어리와 찢어진 생체 조직으로 변해 있었다.

그 중심에 강진혁이 서 있었다.

스으으읍…….

깊고 차가운 숨을 내쉬는 그의 입가에서 옅은 백색의 진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단전에서 요동치던 마력의 파동이 온몸의 혈관을 타고 맹렬하게 회전했다.

[SYSTEM INFO: 경고. 단전 출력 14,800 MW 돌파.]

[임계치 접근: 현재 마기 동기화율 91.4%.]

시야 구석에 명멸하던 시스템의 붉은 경고창은 더 이상 진혁에게 방해가 되지 않았다. 인공지능의 통제를 벗어나 순수한 의지와 육체의 감각만으로 제어하는 '초월천마경'의 경지. 그 경지에 도달한 진혁의 눈동자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기이한 광채를 뿜어냈다.

"하아……."

진혁이 낮게 숨을 내쉬며 손을 쥐었다 폈다.

지직, 지지직-!

손끝에서 튀는 미세한 푸른 뇌전이 공기 중의 먼지를 태우며 타직거렸다. 방금 전까지 아수라 부대의 핵심 전사들이 뿜어내던 고출력 생체 공진 파동이 그의 혈관 속에서 완벽하게 분해되어 흡수된 결과였다.

지이잉.

바닥에 처박혀 있던 아수라 부대 잔당의 코어 중 하나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이미 사망한 개체였으나, 그 내부에는 아직 채 소모되지 않은 고순도의 플라즈마 에너지와 특수 신경 회로 데이터가 남아 있었다.

진혁이 그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기다릴 필요도 없겠군."

터벅.

진혁의 군홧발이 아스팔트 바닥을 디디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가 손을 뻗어 잔해 속에 박힌 파란색 코어를 움켜쥐었다.

콰아아앙!

순간, 진혁의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온 흑염의 마기가 코어의 외장 장갑을 종잇장처럼 우그러뜨렸다.

[흡원천공(吸元天功) - 개(改) 작동.]

크아아아악-!

이미 죽은 자의 잔재에서 들릴 리 없는 환청 같은 비명이 공기를 때렸다. 코어 내부에 응축되어 있던 순수한 고압 에너지와 생체 공진 데이터가 붉고 푸른 소용돌이를 그리며 진혁의 손바닥을 타고 역류했다.

"크으……."

목덜미와 손목을 따라 옅게 흐르던 은빛 회로 선이 핏빛으로 물들었다가 이내 푸른 뇌전의 색으로 변해 번쩍였다.

단숨에 체내로 밀려 들어온 에너지는 마기와 격렬하게 충돌했으나, 5단계 '초월천마경'에 도달한 진혁의 육체는 그 폭발적인 출력을 거부 없이 밀어내며 삼켜버렸다.

피스톤이 터질 듯 뛰던 심장이 한 차례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쿵-! 쿵-!

단 한 번의 고동만으로 주변의 공기가 찌그러질 정도의 압박감이 폭발했다.

[단전 마력 누적량: 60년스가량 달성.]

[생체 코어 출력: 4,800 MW 갱신 완료.]

[천마무상체(天魔無相體) 동기화율 96.5% 도달.]

몸 안에서 들끓던 거친 마기가 마침내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정제되었다.

이전까지는 나노머신과 마기가 서로의 영역을 경계하며 간신히 균형을 잡고 있었다면, 지금은 그 경계가 완전히 무너져 하나로 융합되어 있었다. 근육의 밀도가 극한으로 압축되고, 세포 하나하나에 고주파 진동과 마기가 깃들었다.

툭, 투두둑.

진혁이 가볍게 어깨를 돌리자 허공이 미세하게 뒤틀렸다. 단지 육체를 움직인 것만으로도 주변의 기압이 변하며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진혁 씨!"

저만치 떨어진 구호 병동 입구 쪽에서 송수연이 급하게 달려왔다. 그녀의 뒤를 이어 윤아영이 태블릿을 손에 든 채 황급히 뒤따랐다.

송수연은 진혁의 주변에 널브러진 아수라 부대의 잔해를 확인하고는 경악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방금 전까지 하층민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최정예 개조 병기들이었다. 그런 녀석들이 단 몇 분 만에 완벽한 시체와 고철 덩어리로 변해 있었다.

"이 녀석들…… 전부 혼자서 처리한 거야?"

"시체 정리할 필요는 없겠네. 어차피 다 부서져 버렸으니까."

진혁이 무심하게 대답하며 손에 묻은 검은 기름때를 툭툭 털어냈다.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차분해서, 방금 전까지 대도시의 중심에서 수십 명의 살인병기와 사투를 벌였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윤아영이 태블릿 화면을 빠르게 두드리며 진혁을 향해 걸어왔다. 그녀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진혁 오빠, 잠깐만요. 방금 그 에너지 파동…… 보통 일이 아니에요."

"무슨 일이지."

"티타늄 타워 메인 서버실 쪽에서 비정상적인 데이터 흐름이 감지됐어요. 오빠가 아수라 부대 코어를 흡수할 때 발생한 생체 공진 파동이 타워 최상층의 잔류 네트워크와 공명했어요."

윤아영이 태블릿 화면을 진혁에게 내밀었다.

화면 속에는 타워 최상층의 3차원 단면도가 띄워져 있었고, 그 중심부에서 붉은색 경고 신호가 불규칙하게 점멸하고 있었다.

"공명이라고?"

"네. 회장인 진무극은 죽었지만, 그 영감이 수십 년 동안 연구해 온 '천마 프로토콜'의 원본 코드가 아직 완전히 소멸하지 않은 모양이에요. 타워 최상층의 비밀 지하 벙커…… 그곳에 진짜 본거지가 있어요."

송수연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비밀 지하 벙커? 타워 100층이 끝이 아니었단 말이야?"

"그렇대요. 타워의 하중을 지탱하는 기초 구조물 아래, 일반적인 스캐너로는 탐지되지 않는 별도의 주파수 차단 구역이 있어요. 거기가 바로 티타늄 그룹이 1,000년 전 마교의 유골 데이터와 천마 프로토콜을 처음으로 재현해 낸 발상지예요."

윤아영의 말에 진혁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천마 프로토콜.

자신을 실험체 07호로 만들고, 수많은 이들을 고통 속에 밀어 넣었던 그 저주받은 시스템의 근원. 진무극이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으나, 그 늙은 괴물이 남겨둔 진짜 유산은 아직 그 지하 깊은 곳에 남아 있었다.

"거기에 뭐가 있지?"

"정확한 정보는 접근 권한이 막혀 있어서 안 보여요. 하지만……."

윤아영이 침을 삼키며 목소리를 낮췄다.

"거기서 감지되는 에너지 출력 단위가…… 상상을 초월해요. 방금 오빠가 흡수한 아수라 부대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최소 3만 MW 이상의 거대한 생체 파동이 잠들어 있어요."

3만 MW.

현재 진혁의 단전 출력이 14,800 MW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배에 달하는 출력이 하나의 개체 혹은 시설에 집중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진혁은 잠시 말없이 타워의 거대한 마천루를 올려다보았다.

밤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티타늄 타워의 최상층. 그곳은 구름에 가려져 어둡고 차가운 그림자에 잠겨 있었다.

"가야겠군."

진혁의 입꼬리가 비싯 올라갔다. 그것은 웃음이라기보다는 진정한 적을 만난 자의 서늘한 살기에 가까웠다.

"오빠, 조심해야 해요. 그 데이터의 구조를 분석해 보려고 했는데…… 이상하게도 내셔널 네트워크가 아니라 독자적인 고대 마기 회로와 얽혀 있어요. 잘못 건드리면 오빠의 몸속에 있는 마기랑 반응해서 통제 불능 상태가 될 수도 있어요."

"통제 불능?"

"네. 시스템이 오빠를 '주인'이 아니라…… '완성해야 할 그릇'으로 인식하는 신호가 포착됐거든요."

그 말에 진혁은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그릇?"

"……."

"내 몸은 내가 정한다. 그게 시스템이든, 1,000년 전에 죽은 늙은 천마의 유골이든 말이야."

진혁이 손에 쥐고 있던 천마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검신을 따라 흐르던 칠흑의 마기와 푸른 뇌전이 허공을 갈라지게 만들며 날카로운 파열음을 냈다.

"가자."

진혁의 시선이 타워 상층부를 향했다.

"뿌리를 뽑아야 끝이 나는 법이다."

파앗-!

진혁의 발밑에서 '마광신보 - 극(極)'이 터져 나왔다.

빛의 잔상조차 남지 않는 극한의 고속 보법. 그와 함께 진혁의 몸은 밤하늘의 칠흑 같은 유성처럼 티타늄 타워의 최상층을 향해 쏘아 올려졌다.

동시에, 티타늄 타워의 가장 깊은 곳.

빛이 닿지 않는 지하 최하층의 밀폐된 배양실 안쪽.

수십 년 동안 작동을 멈추고 있던 거대한 원통형 배양조의 유리면에 미세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치익- 피식-.

김이 서린 유리 안쪽에서, 인간의 것과 같으나 압도적으로 거대한 실루엣이 눈을 번뜩였다.

배양액 속에서 부글거리며 떠오르는 기포와 함께, 차갑고 기계적인 음성이 밀폐된 공간을 울렸다.

[프로토콜 재배치 완료.]

[적합도 99.9%의 그릇이 접근 중.]

[……신천마(新天魔)의 강림을 준비합니다.]

어둠 속에서 푸른빛의 흉측한 생체 회로가 뱀처럼 꿈틀거리며 타워 전체의 전력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타워의 하중을 지탱하는 거대한 철골 구조물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지하 최하층에서부터 밀려 올라온 이질적인 에너지 파동은 단순한 전력의 흐름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천 년 동안 봉인되어 있던 고대의 마기와 현대의 첨단 유전공학이 결합된, 흉악하고도 거대한 생체 자장의 폭풍이었다.

"크윽……!"

타워 하층부의 잔해를 정리하던 송수연이 가슴을 움켜쥐었다. 갑작스럽게 대기를 타고 흐르는 압박감에 호흡이 턱 막혔던 것이다.

옆에서 태블릿을 두드리던 윤아영 역시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비명을 질렀다.

"이, 이럴 수가……! 타워 전체의 전력이 한곳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어요! 방금 그 지하 벙커에서 시작된 공명 파동이…… 메인프레임의 방화벽을 전부 태워버리고 있어!"

화면 속에서 초록빛으로 빛나던 보안 코드가 순식간에 시뻘건 경고 색으로 물들며 붕괴했다. 그것은 단순한 시스템 해킹이 아니었다. 물리적인 회로 자체가 고열의 마기에 녹아내리고 있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그 압도적인 폭풍의 중심을 향해 돌진하는 이가 있었다.

콰아아앙!

티타늄 타워의 외벽을 타고 수직으로 솟구치던 강진혁의 몸이 급정거했다.

그의 시야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온몸을 감싸고 있던 칠흑의 마기와 푸른 뇌전이 적의 파동에 반응하듯 거칠게 역류하고 있었다.

[SYSTEM WARNING: 고대 생체 공진 주파수 감지.]

[경고: 대상의 파동 패턴이 사용자(강진혁)의 단전 맥락과 99.8% 일치합니다.]

[강제 동기화 프로세스가 외부에서 유도되고 있습니다.]

시스템의 HUD가 꺼졌음에도 불구하고, 진혁의 뇌 속 깊은 곳에서 직접 울리는 듯한 경고음이 머릿속을 후벼 팠다.

"내 패턴과 일치한다고?"

진혁이 공중에 멈춰 서며 낮게 뇌뱉었다.

아수라 부대나 진무극이 쓰던 기술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것은 마치 1,000년 전 마교의 유골 데이터, 그리고 자신이 실험체 시절부터 뼛속 깊이 주입당했던 '천마 프로토콜'의 원본이 살아 숨 쉬는 듯한 감각이었다.

그 순간, 진혁의 뇌리에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티타늄 그룹의 지하 폐기장. 은빛 회로가 온몸을 조여오며 뼈를 깎아내리던 고통 속에서 처음으로 목격했던 푸른빛의 화면.

진무극이 자신을 향해 지었던 오만한 미소.

“너는 내가 만든 최고의 그릇이다.”

진무극은 죽었지만, 그가 남긴 시스템의 뿌리는 아직 살아 있었다. 아니, 진무극조차 그 거대한 시스템의 장기말에 불과했던 것인가.

"흥."

진혁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비틀렸다. 두려움이나 당황스러움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의 눈동자에는 지독한 광기와 함께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한 투지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릇이라고? 내가?"

진혁이 손에 쥐고 있던 천마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검신에 서려 있던 칠흑의 마기가 폭발적으로 팽창하며 주변의 어둠을 집어삼켰다.

지직- 지지직-!

14,800 MW를 넘어 15,000 MW를 향해 치닫는 단전의 출력이 혈관을 터뜨릴 듯 포효했다. 5단계 '초월천마경'의 경지에 도달한 육체가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외부의 강제 동기화 파동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투두둑!

진혁의 어깨와 팔뚝에 얽혀 있던 은빛 회로들이 붉게 달아오르다 이내 짓이기듯 끊어져 나갔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프로토콜의 간섭을 육체의 물리적 힘과 순수한 마기로 강제 절단해 버린 것이다.

[경고: 외부 시스템과의 연결이 강제로 차단되었습니다.]

[사용자 자아 독립성: 100% 유지.]

"내 안의 것은 내가 지배한다. 시스템 나부랭이가 아니라."

진혁이 낮게 으르렁거리며 발을 구르었다.

쾅-!

공기가 두 번 찢어지는 음속의 폭음과 함께, 그의 몸이 타워의 최상층 외벽을 박살 내며 내부로 들이닥쳤다.

비밀 지하 벙커.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 거대한 공간의 중앙에는, 수십 개의 굵은 케이블과 생체 관으로 연결된 거대한 배양조가 버티고 서 있었다.

치이익-!

배양조를 채우고 있던 고압의 냉각수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유리벽을 깨고 나온 것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그 전신이 살아있는 생체 조직과 고성능 티타늄 합금으로 뒤엉킨 기괴한 괴물이었다.

눈꺼풀이 없는 붉은 두 눈이 번뜩였다. 그 시선이 향한 곳은 천장이 박살 나며 그곳으로 내려서는 한 명의 사나이, 강진혁이었다.

[프로토콜 00호.]

[완성된 마신(魔神)의 육체를 수복한다.]

괴물이 입을 열 때마다 주변의 공간이 일그러질 정도로 엄청난 중압감이 짓눌러 왔다.

진혁은 차가운 눈으로 그 괴물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실험체 번호는 07호였다. 그렇다면 그 이전, 01호부터 06호까지의 실패를 딛고 티타늄 그룹이 마침내 완성해 낸 진정한 '천마의 그릇'이 바로 저 자리에 있는 녀석이라는 뜻이었다.

"기다리고 있었나."

진혁이 천천히 천마검을 들어 올렸다. 검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뇌전과 칠흑의 마기가 융합되어 거대한 검강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네가 진짜 천마든, 시스템의 부산물이든 상관없다."

진혁의 입가에 서늘한 살기가 어린 미소가 떠올랐다.

"오늘 여기서, 그 모든 허상을 완전히 베어버릴 테니까."

콰아아앙-!

신서울의 밤하늘을 울리는 최후의 충돌이, 지하 최하층의 어둠을 가르며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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