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화 빛을 베는 검
화학 약품이 타오르는 구수한 탄내와 함께, 공기 중에는 사방으로 튀긴 고열의 플라즈마 입자가 흩날렸다.
스르릉— 쾅!
신서울 타워의 최상층을 지탱하던 거대한 티타늄 합금 기둥이 반 토막 난 채 바닥으로 처박혔다.
시뻘건 불길이 타오르는 메인 서버실 내부.
그 중심에 서 있는 강진혁의 눈동자는 깊고 차가운 심연을 닮아 있었다.
[SYSTEM INFO: 천마 프로토콜 (HEAVENLY DEMON PROTOCOL) v3.04 - OFFLINE (USER BYPASS)]
[사용자 수동 의지 제어 활성 상태]
[단전 마기 출력: 12,500 MW 안정화 중]
시스템의 자동 내비게이션은 이미 꺼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강진혁의 신체는 그것보다 훨씬 더 직관적이고 완벽하게 주변의 모든 흐름을 감지하고 있었다.
지직-! 찌지직!
그의 어깨와 팔뚝을 따라 흘러내리는 칠흑 같은 마기(魔氣) 위로, 푸르스름한 전류가 뱀의 혓바닥처럼 날뛰었다.
비기(秘技), [뇌전마강(雷電魔剛)].
고대 마교의 폭발적인 내력 압축 기술과 현대 고주파 플라즈마 공학의 원리를 융합하여 만들어낸 새로운 파괴의 궤적이다.
슈우우-.
강진혁의 시선이 서버실 한쪽의 어두운 구석으로 향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천장에 달린 비상 유도등의 붉은 불빛만이 공기 중에서 미세하게 왜곡되고 있을 뿐이다.
티타늄 그룹의 특수 암살 부대, '팬텀(Phantom)'.
그들은 광학 스텔스 수트와 초고속 위상 변환 나노 회로를 이용해 빛을 굴절시키고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는 살인병기였다.
방금 전까지 저항군의 통신망을 교란하고, 진혁의 등 뒤를 노리며 공간을 도려내려던 최정예 암살자.
-키이익……!
허공에서 미세한 기계음이 울렸다.
시공간이 일그러지는 듯한 찌그러진 파동.
그것은 인간의 청각으로는 들을 수 없는, 팬텀의 초고주파 위장 유닛이 가동될 때 발생하는 공진 주파수였다.
"숨어 있는 게 기어들어 온 벌레처럼 흉하군."
강진혁의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서늘한 살기(殺氣)가 그의 전신을 감쌌다.
그가 단전의 마기를 끌어올리며 우측 발을 바닥에 강하게 내리꽂았다.
콰아아앙!
마광신보 - 극(極)!
폭발적인 반발력과 함께 강진혁의 형체가 한 줄기의 검은 번개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아니, 흩어진 것이 아니었다. 너무나 빠른 속도로 움직인 나머지 공간에 잔상만이 겹겹이 남은 것이다.
챙강-!
"크윽……!"
허공의 한복판, 아무것도 없던 빈 공간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빛의 굴절이 깨지며 흉측하게 일그러진 은빛 수트를 입은 사단의 형체가 강제 레이지 상태로 튕겨 나갔다.
팬텀의 에이스였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간파당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떨리는 눈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내려다보았다.
거기에는 칠흑 같은 마검기가 서린 [천마검]의 날이 소리 소문도 없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어떻게…… 내 스텔스 주파수를……."
팬텀의 대장이 피를 토하며 쇳소리를 냈다.
그의 수트는 주변 환경의 빛을 99.9% 흡수하고, 적외선과 열 감지 센서까지 완벽하게 교란하는 최첨단 군사 장비였다.
정상적인 인간의 동공이나 현대의 어떤 군사 레이더로도 포착할 수 없는 유령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강진혁은 달랐다.
그는 눈으로 보지 않았다.
적의 숨결 속에서 흐르는 인공 나노머신의 미세한 진동음, 그리고 그들이 배출하는 열에너지의 대류 현상까지 [만법귀마(萬法歸魔)]의 직관으로 모조리 꿰뚫어 보고 있었다.
"빛을 굴절시킨다고 네놈의 존재 자체가 가벼워지는 건 아니다. 공기를 태우는 열과, 네 심장이 뛰는 맥동까지 지울 수는 없으니까."
강진혁의 목소리는 사신(死神)의 선고처럼 낮고 무거웠다.
"……괴물 같은 놈."
팬텀 대장의 입가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그가 마지막 남은 출력을 짜내어 손목에 장착된 초고주파 블레이드를 진혁의 목을 향해 휘두르려 했다.
자폭 코드를 실행하려는 손가락이 기폭 버튼을 향해 뻗어 나갔다.
하지만 강진혁은 그보다 한 박자, 아니 세상의 시간축보다 더 빠르게 움직였다.
파스슥-!
"끄아아아악……!"
천마검이 사선으로 그어지며 팬텀 대장의 팔목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그와 동시에 강진혁의 왼손이 뻗어 나와 사자의 가슴팍, 정확히 생체 코어가 박힌 단전 부위를 움켜쥐었다.
꾸드득-!
"크하아아아……!"
흡원천공(改)!
강진혁의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온 강력한 마기가 팬텀 대장의 4세대 생체 코어를 강제로 강탈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가 장착하고 있던 광학 스텔스 수트의 핵심 회로, 센서 교란 나노머신, 그리고 최고급 군사 등급의 위장 알고리즘 데이터까지 붉은색 에너지의 흐름과 함께 진혁의 혈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흡수 완료.
- 나노마갑(Nano-Armor) 시스템 연동.
- 신규 기능 추가: [투과형 위장 위상 변환(Active Camouflage)] 활성화.
즈응- 웅.
강진혁의 어깨와 검은 의복의 표면이 주변의 서버실 불빛과 배경을 그대로 반사하며 잠시 투명하게 물결쳤다.
팬텀이 평생을 바쳐 다루던 은신 기술이, 고스란히 강진혁의 새로운 무기로 편입되는 순간이었다.
슈우우욱…….
에너지를 전부 빨아들인 팬텀 대장의 육체는 순식간에 수분이 빠져나간 미라처럼 바짝 말라붙었다.
강진혁은 손에 쥔 빈 가죽 쪼가리 같은 시체를 바닥에 툭 던져버렸다.
쿵.
그의 등 뒤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송수연과 윤아영이 경악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진혁 씨…… 방금 그건……."
윤아영이 작은 입을 벌린 채 중얼거렸다.
"적의 스텔스 기술을 그 자리에서 분석해서 네오-나노마갑에 실시간으로 이식한 거야? 인간이 할 수 있는 연산 속도가 아니야. 아니, 애초에 육체가 그 부하를 어떻게 버텨?!"
아영의 태블릿 화면은 이미 경고음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강진혁의 단전 출력은 12,500 MW를 넘어 12,800 MW를 향해 치솟고 있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심장이 터져 죽고도 남을 초고압의 에너지가 그의 혈관 속을 거침없이 유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혁의 얼굴에는 핏기 하나 밀려나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오히려 더욱 차갑고 또렷해졌다.
"부하? 내 몸은 내가 지배한다. 시스템이 아니라."
진혁이 낮게 읊조리며 천마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검신에 엉겨 붙어 있던 잔여 플라즈마 불꽃이 허공을 가르며 날카로운 파열음을 냈다.
타타타타-!
그때, 서버실 외곽의 비상 통로를 따라 수십 명의 블랙 가드 잔당들이 일제히 몰려오는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진무극 회장은 죽었지만, 그가 남겨둔 사병 조직과 자동 방어 시스템은 여전히 타워를 탈환하기 위해 총공세를 펼치고 있었다.
"저기 온다! 잔당들이야!"
송수연이 대검을 고쳐 잡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얼굴에도 격전의 흔적인 피와 땀이 얼룩져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진혁, 아래쪽 구역과의 연결 통로도 저놈들이 막으려고 해. 여기서 더 올라가면 최상층의 진짜 핵심부야!"
강진혁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타워의 천장, 즉 하늘과 맞닿아 있는 메인 제어실의 거대한 강화 유리 돔을 바라보았다.
그곳 너머에는 신서울의 밤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밤하늘 아래, 티타늄 그룹이 숨겨둔 가장 거대하고 어두운 비밀이 도사리고 있었다.
'진무극은 죽었다. 하지만 그 늙은이가 남겨둔 데이터와 생체 개조 병기들의 뿌리는 아직 뽑히지 않았다.'
천마 프로토콜.
그리고 1,000년 전 고대 마교의 유골 데이터가 현대 자본과 결합해 만들어낸 혈마병의 진짜 진실.
그 모든 비밀의 단서가 바로 저 위에 있었다.
"막을 놈들은 이미 다 정리했다."
강진혁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칠흑 같은 마기가 주변의 공기를 일그러뜨렸다.
잠시 전 흡수한 팬텀의 스텔스 나노 회로가 발동하며, 그의 어깨와 팔의 윤곽이 주변 배경과 어우러져 한순간 유령처럼 투명하게 지워졌다가 나타났다.
스으읍, 하-….
진혁이 깊게 숨을 내쉬었다.
"올라간다."
콰아아앙-!
그가 발을 구르는 순간, 최상층의 바닥이 거미줄처럼 갈라지며 엄청난 충격파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남은 잔당들이 총을 겨누기도 전에, 칠흑의 번개와 함께 공간이 베였다.
빛을 베고, 시스템을 부수며, 스스로가 곧 파멸의 천마가 된 사나이가 마침내 최후의 진격을 시작했다.
콰아아아구궁-!
강진혁이 휘두른 천마검의 궤적은 단순한 참격이 아니었다.
방금 전 팬텀 대장에게서 강탈한 광학 교란 회로와 뇌전마강의 공진 주파수가 맞물리며, 공간 자체를 도려내는 듯한 시퍼런 진동파가 비상 통로를 가득 채웠다.
"케악……!"
"방어막 전개해! 저 자식의 검이……!"
달려오던 블랙 가드 정예병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올 새도 없었다.
그들이 착용한 4세대 고출력 생체 코어와 전술 방어막은 진혁의 검강 앞에서 유리 조각처럼 산산이 부서졌다.
피와 살점이 튀는 대신, 고열의 플라즈마에 휩싸인 기계 장비들이 녹아내리며 매캐한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타타닥, 툭.
채 3초도 걸리지 않았다.
수십 명에 달하는 최정예 사병들이 단 한 번의 검광에 쓸려나가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강진혁은 그들의 시체 곁을 돌아보지도 않고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발걸음마다 흩뿌려진 마기가 주변의 공기를 차갑게 식혔다.
"저, 저 지독한 괴물……."
후미에 처져 있던 하급 지휘관이 공포에 질린 눈으로 진혁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다리는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선 존재. 자본과 기술로 무장한 티타늄 그룹의 정점마저 짓밟아버린 '천마'의 실체 앞에, 그들은 사병이 아니라 사지(死地)로 끌려온 양에 불과했다.
슈우우- 툭.
진혁이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검을 가볍게 털어냈다.
검신에 엉겨 붙어 있던 핏자국과 금속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며 바닥에 박혔다.
"소란스럽군."
낮게 깔린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그의 시선이 통로 끝에 자리한 거대한 이중 방화문으로 향했다.
그 문 너머가 바로 티타늄 타워의 가장 깊은 곳, 최상층 중앙 제어실이자 진무극 회장이 숨겨놓았던 진짜 비밀의 보물고였다.
지직, 지지직-!
방화문 주변의 비상등이 붉은색 경고등으로 바뀌며 날카로운 기계음을 토해냈다.
[WARNING: 외부 침입자 감지.]
[보안 등급 0급 구역 접근 확인.]
[비상 프로토콜 '아수라' 개방 준비 중.]
윤아영이 진혁의 뒤를 바짝 쫓아오며 태블릿 화면을 빠르게 두드렸다.
분홍빛 숏컷 머리가 땀에 젖어 이마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진혁 씨, 잠깐만요! 데이터 스트림이 이상해. 방금 그 잔당들이 처치당하면서 타워 내부의 모든 예비 전력이 최상층으로 집중되고 있어. 이거 보통 시스템이 아니야!"
아영의 얼굴에 깊은 긴장감이 서렸다.
"진무극이 죽었는데도 메인프레임이 스스로 판단해서 새로운 방어 체계를 가동하고 있어.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말이야."
송수연 역시 대검을 꽉 쥐며 주위를 경계했다.
"회장이 죽었는데 자율 가동된다고? 그럼 저 문 너머에 있는 건 단순한 컴퓨터가 아니란 소리네."
"그래."
강진혁의 흑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는 이미 [만법귀마]의 감지 능력을 통해 방화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심장박동 소리를 느끼고 있었다.
쿵, 쿵, 쿵-!
투구의 구동음이나 기계 모터의 소음이 아니다.
그것은 인공적으로 배양된 거대한 생체 코어와 고대 마교의 마기가 결합할 때 발생하는, 기괴하고도 강력한 맥동이었다.
"진무극 그 늙은이가 내게 보여주려 했던 진짜 그릇의 정체지."
진혁이 천마검을 들어 올렸다.
검신에 서린 칠흑의 마기와 푸른 뇌전이 요동치며 주변의 공간을 일그러뜨렸다.
더 이상 시스템의 안내나 보조 HUD는 필요 없었다.
오직 자신의 눈과, 혈관을 타고 흐르는 12,800 MW의 마기, 그리고 스스로 깨달은 의지만이 그의 전부였다.
콰아아앙-!
진혁이 그대로 검을 앞으로 찔러 넣었다.
만법귀마의 원리를 응용한 공진 파쇄.
방화문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던 초고강도 티타늄 합금의 분자 구조가 진혁의 검끝에서 뿜어져 나온 마기 파동과 부딪치며 찢어졌다.
지이이익- 쾅!
수십 톤짜리 이중 방화문이 종이장처럼 구겨지며 안쪽으로 무너져 내렸다.
스락.
문이 완전히 열리자, 그 안에서 피어오르는 진득하고 검붉은 안개가 서버실 전체를 집어삼키듯 밀려왔다.
안개의 정체는 다름 아닌 고도의 압축 마기와 생체 독소가 혼합된 특수 가스였다.
보통의 초인이라면 단 한 모금만 마셔도 폐가 타들어 가며 즉사할 지독한 독기.
하지만 진혁은 코웃음을 치며 그 안개를 정면으로 흡수했다.
- 흡원천공(改) 가동.
- 맹독성 마기 성분 분석 완료.
- 신규 독문 마공 [천마독기(天魔毒氣)]의 밀도 상승.
슈우우우-.
폐부를 찌르던 독소가 오히려 진혁의 단전을 거치며 정제되었고, 그의 전신을 감싼 나노마갑의 출력을 더욱 폭발적으로 끌어올리는 촉매제로 변모했다.
안개가 걷히고, 제어실의 전경이 완벽하게 드러났다.
그곳의 중앙에는 거대한 원통형 배양조가 자리하고 있었다.
배양조 안에는 푸른빛의 생체 에너지가 소용돌이치고 있었고, 그 중심에서 거대한 실루엣을 가진 형체가 천천히 눈을 뜨고 있었다.
-키이익…… 치익…….
인간의 형상이지만, 팔다리에 장착된 기계 의수와 전신을 뒤덮은 붉은색 혈관 회로는 일반적인 초인의 경지를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크로노스 바이오의 수석 연구원 이현도가 남겨둔 최후의 최고급 생체 개조 병기, '아수라(阿修羅)' 부대의 선봉장.
배양조 안의 존재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단단한 유리 돔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쿠구구구구-!
제어실 전체가 흔들리는 엄청난 압박감.
그것은 지금까지 진혁이 상대했던 어떤 적보다도 거대하고 날것 그대로의 살기였다.
배양조 안의 괴물이 입을 열며 쉰 목소리를 토해냈다.
"……마지막…… 실험체…… 07호……."
괴물의 눈동자가 시뻘겁게 불타올랐다.
그것은 진혁을 향한 증오이자, 프로토콜이 내린 절대적인 말살 명령이었다.
송수연이 숨을 들이키며 검을 겨누었다.
"저건…… 뭐야? 사람이야, 기계야?"
"사람을 재료로 삼아 만든 살인병기지."
강진혁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두려움이나 긴장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지독하게 오만한 미소였다.
그의 눈동자 속에서 칠흑 같은 마기가 소용돌이쳤다.
"잘 됐군. 부수고 흡수하기에 딱 좋은 덩어리다."
진혁이 마광신보를 밟으며 배양조를 향해 몸을 날렸다.
빛을 베고, 시스템의 지배를 부순 참된 천마의 검이 최후의 적을 향해 거침없이 내리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