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화 잔상과 스텔스
타워 최상층으로 향하는 비상 계단실.
카랑―!
지독한 금속성의 파열음이 좁은 계단실 벽을 사정없이 두들겼다. 강진혁의 칠흑 같은 흑안이 허공의 한 지점으로 번뜩였다.
부우우웅-!
바닥에 깔린 강화 콘크리트가 미세한 진동과 함께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빛의 파장을 완벽하게 굴절시키는 광학 스텔스 회로. 티타늄 그룹 최정예 암살 부대인 '팬텀'의 잔당이 남긴 허상이었다.
"……."
진혁의 목덜미와 뺨에 얇은 붉은선이 그어졌다. 피가 맺히기도 전에 체내의 나노머신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세포를 봉합했지만, 상대의 공격 궤적이 남긴 고주파 칼날의 여운은 여전히 살굗을 아리게 만들었다.
시각 HUD가 꺼진, 완전한 암흑의 영역.
시스템의 보조와 인공지능 설화의 타겟팅 록온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다. 진혁이 도달한 초월천마경(제5단계)은 기계의 연산 결과물에 눈을 의존하는 경지를 이미 오래전에 뛰어넘었다.
슈우우― 팟!
귀를 찢는 고주파음과 함께 공간이 일그러졌다.
왼쪽 허리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미세한 공기의 대류와 기압의 변화, 그리고 상대가 이동할 때 발생하는 나노머신 고유의 미약한 전자기파가 진혁의 피부에 닿았다.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만, 육체와 마기는 거짓을 고하지 않는다.
'잡았다.'
진혁의 오른손에 쥔 천마검이 묵직한 명암을 그리며 옆구리를 후려쳤다.
쾅―!
허공에서 거대한 섬광이 터져 나왔다. 광학 스텔스 수트의 방어막이 깨지며 흉측하게 일그러진 은빛 형체가 순간적으로 허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컥……?!"
팬텀의 대원이 경악을 금치 못하는 눈빛으로 진혁을 바라보았다. 인간의 반사 신경으로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사각지대였다. 완벽한 은폐율을 자랑하는 스텔스 회로가 단 한 번의 검격에 파열된 것이다.
하지만 진혁은 그에게 자비를 베풀어 줄 여유가 없었다. 타워 최상층 메인 서버실. 하층민 320만 명의 생체 코어와 연동된 자폭 프로토콜의 카운트다운은 단 1초도 멈추지 않고 흘러가고 있었다.
지르르릉―!
진혁의 단전에서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온 12,300 MW의 마기가 천마검의 검신을 타고 격류처럼 휘몰아쳤다. 칠흑 같은 흑염에 미세한 푸른 뇌전이 얽히는 신규 비기, [뇌전마강(雷電魔剛)]의 맹아가 검끝에서 울부짖었다.
"흐읍!"
천마검이 그대로 팬텀 대원의 어깨를 관통했다.
콰아아앙!
단순한 참격이 아니었다. 압축된 마기와 고주파 진동 파쇄가 결합된 일격은 사이보그의 강화 합금 뼈대를 종잇장처럼 구겨버렸고, 그와 동시에 진혁의 가슴 깊은 곳에서 거대한 블랙홀 같은 인력이 치솟았다.
[시스템의 보조 없이 단독 구동: 흡원천공(改)]
슈아아아아―!
팬텀 대원의 생체 코어에 남아 있던 고출력 에너지와 특수 스텔스 회로의 데이터가 진혁의 혈관을 타고 역류했다. 차가운 기류가 온몸의 경락을 타고 돌며 12,300 MW에 머물던 단전의 출력을 단숨에 밀어 올렸다.
- [단전 코어 출력: 12,450 MW 달성.]
- [팬텀 나노 회로 및 광학 굴절 알고리즘 데이터 흡수 완료.]
- [나노마갑(Nano-Armor)의 '위장 투과' 기능이 갱신됩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적의 에너지를 송두리째 흡수한 진혁의 눈빛이 더욱 시퍼렇게 빛났다. 손에 쥔 천마검에서 흘러나오는 뇌전의 불꽃이 한층 더 굵고 거칠어졌다.
계단 아래쪽에서 숨죽이고 있던 저항군들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 괴물 같은 녀석들……. 블랙 가드의 최정예 암살 부대가 저렇게 허무하게 당한다고?"
"괴물이라니, 강진혁 대장님이야."
송수연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도검을 고쳐 잡았다. 그녀의 이슬 같은 땀방울이 콘크리트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대장, 위쪽의 반응이 심상치 않아! 타워 최상층의 메인 서버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엄청난 출력의 에너지 반응이 감지되고 있어!"
윤아영이 품에서 꺼낸 태블릿을 미친 듯이 두드리며 소리쳤다. 화면 속의 수치는 이미 한계치를 아득히 넘어서고 있었다.
"2만 MW? 아니, 그 이상이야! 방어 병기 [아마게돈 MK-II]의 기동 코어가 완전히 활성화됐어!"
아마게돈 MK-II.
티타늄 그룹이 신서울 전체를 통제하기 위해 숨겨둔 궁극의 인공지능 메카닉이자, 거대 군사 거점을 단숨에 재로 만들 수 있는 전략 병기. 회장 진무극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메인프레임에 입력된 '최후의 방어 프로토콜'은 침입자를 말살할 때까지 멈추지 않도록 설정되어 있었다.
진혁은 피투성이가 된 팬텀 대원의 시체를 바닥에 툭 내던지며 고개를 들었다.
시야는 완전히 어두웠다. HUD는 꺼져 있었고, 오직 자신의 육감과 마기의 파동만이 온 세상을 붉고 푸른 색채의 오라로 그려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감각은 그 어떤 최첨단 군사 레이더보다도 선명하고 정확했다.
"가자."
진혁이 낮게 읊조렸다.
그의 등 뒤로 은빛 회로가 파르스름하게 떨리며 위장 투과 회로가 덧씌워졌다. 마기와 나노머신, 그리고 순수한 무인의 의지가 완벽하게 하나로 융합된 [천마무상체]가 공간의 빛마저 왜곡시키고 있었다.
쾅―!
진혁의 발이 계단을 박차는 순간, 비상 계단실의 콘크리트 바닥이 완전히 붕괴했다.
몸을 아끼지 않는 초고속 보법, [마광신보 - 극].
빛의 잔상조차 남기지 않는 속도로 진혁의 형체가 타워 최상층의 거대한 철문, 그 너머로 도사리고 있는 철의 군주를 향해 쏘아져 들어갔다.
타워 최상층, 메인 서버실.
천장에 박힌 수백 개의 비상등이 피처럼 붉은 빛을 깜빡이고 있었다.
중앙의 거대한 원형 홀.
그곳의 바닥이 쩍 벌어지며, 십 수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철제 거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밀도 티타늄 아머로 전신을 두르고, 양팔에는 플라즈마 게틀링 건과 고주파 진동 대검을 장착한 최종 방어 병기.
[아마게돈 MK-II]
그 거대한 장갑의 눈 부위에서 차가운 푸른빛의 스캔 레이저가 사방을 훑었다. 기계의 인공지능이 침입자의 위치를 포착하고 즉시 화력을 전개하려던 찰나,
슈우욱―!
허공의 일그러짐과 함께 칠흑과 뇌전이 뒤섞인 검광이 거신의 목덜미를 향해 무섭게 파고들었다.
- [경고: 미확인 에너지 반응 근접.]
- [대응 프로토콜 가동—!]
카아아아앙―!
거대한 서버실 전체가 두 쪽으로 갈라질 듯한 거대한 폭음과 함께, 최후의 결전이 그 막을 올렸다.
- [경고: 대형 충격 감지. 티타늄 합금 장갑 경도 98% 유지.]
- [반격 프로토콜: 플라즈마 개틀링 사격 개시.]
타앙, 타타탕, 타타타탕―!
아마게돈 MK-II의 양팔에 장착된 4열 개틀링 건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매초 수천 발의 고열 플라즈마 탄환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메인 서버실의 콘크리트 바닥을 순식간에 녹아내린 용암 지대로 바꿨다.
화염과 먼지가 뒤섞인 폭풍 속에서 진혁의 몸이 허공을 갈랐다.
슈우우우―!
마침 앞서 흡수한 팬텀의 광학 굴절 알고리즘과 나노마갑의 위장 투과 기능이 동기화되었다. 진혁의 형체는 단순한 잔상을 넘어 시각적 스펙트럼 자체에서 지워진 채, 플라즈마 탄우 사이를 유령처럼 미끄러져 나갔다.
'기계의 계산 영역을 벗어난다.'
진혁의 흑안이 번뜩였다.
인공지능 아마게돈 MK-II는 적의 궤적을 예측하기 위해 초당 수억 번의 탄도 계산을 수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물리적 법칙과 센서 데이터에 기반한 연산일 뿐이다.
진혁이 구사하는 [마광신보 - 극]은 공간의 기류와 자신의 의지를 일치시켜 물리 법칙의 틈새를 밟고 도약하는 고대 마공의 극의였다. 기계가 계산을 마칠 때쯤이면, 진혁의 검은 이미 그 사각지대를 꿰뚫고 있었다.
콰구구구궁―!
진혁의 손에 쥔 천마검이 아마게돈 MK-II의 거대한 우측 어깨 관절을 후려쳤다.
단순한 물리적 타격이 아니다. 12,450 MW의 단전 출력에서 뿜어져 나온 고순도 마기와 뇌전마강의 폭발력이 티타늄 합금 내부로 다이렉트하게 파고들었다.
- [경고: 내부 회로 쇼트 발생.]
- [구동계 출력 15% 저하.]
"크윽……!"
거신이 거대한 몸체를 휘청이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2만 MW의 출력을 자랑하는 최종 방어 병기는 이내 푸른빛의 스캔 레이저를 전신으로 뿜어내며 스스로의 제어 시스템을 재부팅했다.
아마게돈 MK-II의 가슴 부위에 달린 고출력 제너레이터가 터질 듯한 굉음을 토해냈다.
위이이이이잉―!
주변의 공기가 고열로 인해 일그러졌다. 거신이 양손에 쥐고 있던 거대한 고주파 진동 대검을 번쩍 들어 올려 진혁의 머리 위로 사정없이 내리꽂았다.
지상 전체가 울부짖는 듯한 파공성이 터졌다.
도망칠 공간조차 없는 완벽한 압박. 하지만 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좋다. 출력을 더 끌어올려라.'
진혁은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단전의 심처에서 소용돌이치던 흑염 마기를 전신의 혈관으로 역류시켰다.
[천마무상체]의 동기화율이 98%를 돌파하며, 진혁의 피부 위로 은빛 회로와 칠흑의 오라가 엉겨 붙어 거대한 갑주 형태를 빚어냈다.
챙―!
고주파 대검이 진혁의 어깨를 직격했다.
파아앙!
도시 하나를 날려버릴 수 있는 파괴력을 지닌 참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진혁의 몸은 밀려나기는커녕 그 자리에서 단단히 박힌 채 검을 받아쳐냈다. 대검의 날카로운 날과 천마검이 맞부딪치며 사방으로 수천 개의 불꽃 파편이 튀었다.
"하ッ……!"
진혁의 입에서 터져 나온 단마가 폭풍처럼 흩어졌다.
손에 쥔 천마검의 검신이 덜덜 떨리며 뇌전마강의 푸른 불꽃이 맹렬하게 요동쳤다.
[만법귀마(萬法歸魔)]의 원리에 따라, 적 대검의 공진 주파수와 에너지 전달 경로가 진혁의 머릿속에 완벽하게 스캔되었다. 기계가 완벽하다고 믿었던 방어막의 단 한 가지 결함, 즉 코어와 무기를 잇는 에너지 전송 케이블의 미세한 틈새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거기에 검을 꽂아 넣는다.
슈아아아아―!
천마검이 잔상을 남기며 아마게돈 MK-II의 가슴팍, 제너레이터의 핵심 코어가 내장된 철갑의 중심부를 정확히 꿰뚫었다.
카아아아앙―!
콰아아아궁―!
지진이라도 난 듯 메인 서버실이 무너져 내릴 듯 흔들렸다.
아마게돈 MK-II의 전신을 감싸던 푸른빛의 스캔 레이저가 순식간에 명멸하며 꺼져갔다. 거신의 거대한 눈 부위에서 스파크가 튀었고, 내부의 핵심 프로세서가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폭발하기 시작했다.
- [치명적인 시스템 손상 감지.]
- [제너레이터 코어 강제 셧다운…….]
- [방어 프로토콜…… 붕괴.]
거대한 철제 거신이 무릎을 꿇었다.
지면이 쿵 하고 내려앉으며 엄청난 먼지가 일어났다. 진혁은 숨을 고르며 거신의 가슴팍에 박힌 천마검을 뽑아들었다.
검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마기는 여전히 시퍼렇게 타오르고 있었다.
"대장……!"
비상 계단실을 통해 메인 서버실로 뛰어들어온 송수연과 윤아영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외쳤다.
그들의 눈앞에는 신서울 최강의 군사 병기라 불리던 아마게돈 MK-II가 반으로 쪼개진 채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며 주저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잔해의 중심에 강진혁이 고요히 서 있었다.
윤아영이 태블릿 화면을 확인하며 경악 어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저, 저것 봐! 아마게돈 MK-II의 코어 에너지가 완전히 소멸했어! 그리고…… 타워 전역의 방어망이 차단됐어!"
송수연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진혁의 등 뒤를 바라보았다.
"그럼…… 하층민 320만 명의 생체 코어와 연동된 자폭 프로토콜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이었다.
타워 최상층 중앙의 대형 홀 벽면에 설치된 거대한 디스플레이가 붉은빛에서 푸른빛으로 극적으로 전환되었다.
[SYSTEM INFO: 헤븐리 파운데이션 자폭 프로토콜]
[상태: 긴급 중단 (User Override)]
[남은 시간: 00시간 42분 15초 -> 강제 해제 완료.]
[신서울 하층민 320만 명의 생체 코어 연동 해제. 모든 권한이 메인 서버로 이관됩니다.]
치이익―.
서버실 환기구로 하얗게 뿜어져 나오던 냉각 가스가 멎었다.
동시에 신서울 전체를 짓누르던 무거운 압박감과 슬럼가의 거주민들을 옥죄던 원격 강제 구속 회로의 신호가 완전히 끊어졌다.
지하의 깊은 곳, 햇빛조차 들지 않던 하층 슬럼가의 수많은 판잣집과 거리에 늘어선 불법 개조체들의 시야(HUD)가 일제히 맑게 트였다. 그 누구도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해방의 순간이었다.
"해냈어……."
윤아영이 주저앉다시피 하며 태블릿을 품에 안았다. 그녀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자폭 코드가 풀렸어. 티타늄 그룹의 중앙 메인프레임이 완전히 우리 손에 들어왔다고!"
송수연 역시 주먹을 꽉 쥐며 부르르 떨었다. 그녀는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눈으로 강진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파괴되고, 모든 음모가 가루가 된 그 자리.
하지만 진혁의 표정은 여전히 차갑고 가라앉아 있었다.
초월천마경 제5단계의 여파로 그의 전신 혈관을 따라 흐르던 흑염 마기가 서서히 가라앉으며, 단전의 출력은 12,500 MW에서 안정세로 접어들었다.
진혁은 말없이 천마검을 거두어 허리춤의 검집에 꽂았다.
"끝난 게 아니다."
낮고 묵직한 진혁의 음성이 서버실의 잔해 속을 울렸다.
송수연과 윤아영의 표정이 일순간 굳어졌다.
"무슨 소리야? 자폭 프로토콜도 해제됐고, 회장 진무극도 죽었잖아. 이제 티타늄 그룹은 완전히 무너진 거 아니었어?"
진혁은 고개를 들어 타워 최상층의 통유리 너머를 바라보았다.
끝없이 펼쳐진 신서울의 야경.
그 화려한 마천루의 상층부, 일반 시민들은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구름 위 지하 벙커의 영역에서 또 다른 기이한 전자기파가 미세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진무극이라는 거대한 괴물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남겨둔 유산과 진짜 비밀은 아직 완전히 파헤쳐지지 않았다.
고대 마교의 유골 데이터, 그리고 '천마 프로토콜'이라는 이름 아래 숨겨진 진짜 목적.
슈우우우―
진혁의 흑안이 먼발치에 있는 미지의 은거지를 향해 예리하게 빛났다.
"진무극은 시작에 불과했다."
진혁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진짜 뿌리를 뽑으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