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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아래의 가마솥 · 8화목차

제8화 학점 위기

중앙 실습실 테이블 위로 툭 떨어진 양피지 서류 봉투에는 붉은색 마법 인장이 묵직하게 찍혀 있었다.

대학술제 중간 평가 결과지였다.

제출된 시약의 순도와 안정성, 그리고 이론적 타당성을 종합하여 산출된 점수가 서류 맨 위에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C+'

실습실 안에는 침묵만이 맴돌았다.

가마솥 아래에서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푸른 불꽃의 일렁임과 끓어오르는 시약의 가벼운 기포 소리만이 두 사람 사이의 정적을 메우고 있었다.

평민 출신으로 언제나 완벽한 실기 점수를 받아 장학금을 유지해 온 리아나에게도, 아카데미 개교 이래 최고 득점을 놓쳐 본 적 없는 귀족 명문가의 수석 엘리트 카이엘에게도 지옥 같은 점수였다.

리아나는 팔짱을 낀 채 붉은 글씨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눈매가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반면 카이엘은 꼿꼿한 자세로 서서 입술을 꽉 다물고 있었다. 등 뒤로 늘어뜨린 창백한 금빛 머리칼이 섬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가 서류의 세부 평가란을 빠르게 훑었다. '반응 속도가 느림', '실용성 부족', '초기 배합의 경직성'.

학술원 평가단이 적어 놓은 문장 하나하나가 카이엘의 자존심에 비수처럼 꽂혔다.

"……배합 과정에서 변수가 있었습니다."

마침내 카이엘이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다.

언제나처럼 흐트러짐 없는 격식체였지만, 음성에 담긴 미세한 떨림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그는 장갑을 낀 손으로 서류 모서리를 꾹 누르며 말을 이었다.

"전통적인 연금술 수식에 따라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시약의 보존 기간을 늘리기 위해서는 촉매의 투입 시점을 늦추는 것이 정석입니다. 평가단이 시약의 즉각적인 효능만을 과도하게 평점 기준으로 삼은 것입니다."

리아나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카이엘을 노려보았다.

그녀의 입꼬리가 비스듬하게 올라갔다. 전혀 웃고 있지 않은 비꼼의 표정이었다.

"변수요? 평가단의 기준 탓이라고요?"

리아나의 목소리가 실습실의 차가운 공기를 갈랐다.

"당신 자존심 때문에 점수 깎였잖아요. 제 의견을 안 들어서."

"리아나 씨."

"제가 분명히 말씀드렸죠? 별빛 아카데미의 연금술 학부 중간 평가는 실전 배합 속도를 중시한다고요. 선배가 고집스럽게 18세기 귀족 양식의 정제법을 고집하지만 않았어도 이 반응 속도 지적은 안 나왔어요."

리아나는 책상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팩트를 폭격하듯 말을 이어 나갔다.

"제가 촉매 투입 시점을 3초만 앞당기자고 했을 때 뭐라고 하셨어요? 정통 수식의 미학이 훼손된다느니, 안정성 비율이 0.2퍼센트 감소한다느니 하면서 제 제안을 싹 무시하셨잖아요."

"……그것은, 시약의 폭발 위험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안전 조치였습니다."

"폭발은커녕 반응이 너무 둔해서 평가단이 시약이 아니라 맹물인 줄 알았다잖아요! 제 실기 경험상 그 정도 온도 차이는 촉매 양을 조절하면 충분히 잡을 수 있는 거였어요."

리아나가 바짝 다가서며 카이엘의 시선을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귀족 가문의 그 고귀한 전통 수식 덕분에 제 장학금도, 선배의 완벽한 수석 타이틀도 한순간에 날아갈 위기에 처했네요. 아, 귀족은 학점 위기도 참 품격 있게 맞이하시네요?"

카이엘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는 속으로 수십 가지의 반박 문장을 떠올렸다.

'자유로운 배합 방식은 가문 전통 연금술의 기초를 무시하는 행위다', '내가 계산한 수식은 이론적으로 완벽했다', '평가단의 시선이 협소한 것이다' 따위의 변명들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리아나의 맑고 날카로운 눈동자를 정면으로 마주한 순간, 그 수많은 반박들은 헛된 자존심의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지적은 단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다.

리아나는 실전 배합의 천재였고, 카이엘 자신이 전통이라는 핑계 뒤에 숨어 그녀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

카이엘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의 하얀 귓바퀴가 순식간에 불꽃처럼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당황함과 수치심, 그리고 그녀의 정곡을 찌르는 지적 앞에 말문이 턱 막혀 버린 탓이었다.

그는 손에 쥐고 있던 시약병을 엉뚱한 용액대에 올려놓으려다 삐끗하며 유리병을 떨어뜨릴 뻔했다.

"앗,"

허둥지둥 손을 뻗어 가까스로 병을 낚아채는 카이엘의 모습은 조금 전까지 품격을 논하던 귀족 엘리트라기엔 너무나 허술했다.

리아나는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빤히 바라보았다.

붉어진 귀를 숨기려는 듯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시선을 피하는 카이엘의 태도에서, 리아나는 그가 단순히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극도로 당황하고 있음을 알아채었다.

실습실에는 다시 적막이 흘렀다.

카이엘은 시약병을 꼭 쥔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체면을 목숨처럼 여기는 그에게 이번 결과와 리아나의 비판은 뼈아픈 타격이었을 것이다.

'또 핑계를 대며 도망치겠지.'

리아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려 했다. 이번에도 "아무것도 아닙니다"라며 자리를 피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카이엘의 입에서 나온 말은 리아나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맞습니다. 제 판단이 틀렸습니다."

카이엘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귓가까지 붉어져 있었고, 시선은 어색하게 허공을 향하고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진지했다.

"리아나 씨의 지적이 옳습니다. 제가 고집을 부렸습니다. 정통성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리아나 씨의 뛰어난 배합 감각을 무시했고, 그 결과 이런 참담한 점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카이엘은 꼿꼿하게 서서 리아나를 향해 허리를 깊게 숙였다.

"제 오만함으로 인해 리아나 씨에게 피해를 입혔습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리아나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늘 완벽하고 도도하며, 어떤 순간에도 귀족으로서의 위엄을 잃지 않으려 애쓰던 카이엘이 이렇게 순순히, 그리고 완벽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은 전혀 몰랐다.

살짝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던 리아나의 입가에 아주 작은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아, 그렇게 고개까지 숙이시면 제가 좀 민망한데요."

리아나는 흠흠, 소리를 내며 목을 가다듬고는 책상 위에 새로운 연구 노트와 깃펜을 펼쳐 놓았다.

"사과는 됐고요. 어차피 같은 조인데 학점 망하면 저만 손해잖아요. 재시험 기회가 일주일 뒤에 있으니까, 당장 재실험 계획부터 다시 짜죠."

카이엘이 깜빡이며 고개를 들었다.

"재실험…… 말입니까?"

"당연하죠. 이대로 C+ 받고 끝낼 거예요? 수석 졸업 하셔야죠. 저도 장학금 받아야 하고요."

리아나가 깃펜을 쥐고 노트에 빠르게 수식을 적어 내려갔다.

"선배의 이론 기반과 촉매 안정성 수식은 훌륭해요. 거기에 제가 제안했던 배합 타이밍과 온도 조절법을 섞는 거예요. 이론은 선배가 보완하고, 실제 배합은 제가 주도할게요. 어때요?"

카이엘은 리아나가 적어 내려가는 노트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제시한 수식은 카이엘의 전통 이론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이론이 가진 단점을 보완해 주는 완벽한 융합안이었다.

리아나는 이미 카이엘의 수식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훌륭합니다."

카이엘의 음성에 다시 차분한 온기가 돌아왔다.

그는 리아나의 곁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연구 노트를 함께 보기 위해 바짝 다가서자, 두 사람의 어깨가 살짝 스쳤다.

카이엘이 흠칫하며 몸을 굳혔지만, 이번에는 자리를 피하지 않았다.

리아나 역시 스쳐 지나간 온기를 느끼며 시선을 노트에 고정했다.

"그럼 이 촉매 투입 구간부터 다시 계산해 보죠. 선배, 귀족 수식 중에 이 온도를 견딜 만한 가문 비전의 용매 공식 같은 거 없어요?"

"있습니다. 제3 가열 단계에서 사용하는 특수 용액 수식이 있습니다. 바로 작성하겠습니다."

카이엘이 장갑을 벗고 깃펜을 들었다.

깃펜을 쥐는 두 사람의 손가락 끝이 닿을 듯 말 듯 간지럽게 얽혔다.

실습실을 가득 채웠던 팽팽한 대립감은 어느새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묘한 동질감과 설렘으로 바뀌어 있었다.

지옥 같은 학점 위기 속에서, 두 사람의 가마솥은 비로소 같은 온도로 끓어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다음 회차 예고: 재실험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가운데, 리아나의 짧은 인정 한마디에 카이엘은 또다시 당황하여 시약을 쏟고 맙니다.

작품명: 《별빛 아래의 가마솥》

현재 회차: 제8화

다음 회차 예고: 제9화 작은 찬사

연재 일정: 용용 시리즈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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