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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42화목차

제42화 반격의 신호탄

푸른 뇌전과 칠흑 같은 흑염이 뒤섞인 잔해가 티타늄 타워의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동식 메카닉의 잔해에서 흘러나오는 냉각수가 지면을 적시며 치솟는 증기 속으로 희뿌연 안개를 만들어냈다.

파지직—!

단전 부근에서 요동치던 12,000 MW의 출력이 비등점을 지나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며 가라앉았다.

인공지능의 차가운 보조 HUD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오직 강진혁 자신의 호흡과, 혈관을 타고 흐르는 묵직한 마기의 고동뿐이었다.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 제5단계: 초월천마경(超越天魔境)]

스스로의 의지로 기혈을 돌리고, 단전의 수치를 육체의 감각으로 치환하는 경지.

시스템의 족쇄를 끊어낸 강진혁의 흑안이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진혁 씨!"

와장창—!

무너진 철제 격벽 너머로 총성을 울리며 뛰어 들어온 것은 송수연이었다.

그녀의 어깨에 걸쳐진 대형 돌격소총의 총구에서는 아직도 화약 냄새가 매캐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뒤를 이어 분홍빛 단발머리를 휘날리며 윤아영이 맥북 형태의 휴대용 해킹 단말기를 두드리며 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후우, 미치겠네. 타워 중앙 메인프레임은 일단 제압했는데…… 잔당들이 움직여요. 진무극 영감탱이가 뒤져도 시스템은 자동 스케줄러로 돌고 있다고!"

윤아영의 손가락이 현란하게 움직이자, 공중에 투사된 홀로그램 화면 위로 붉은색 경고창들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WARNING: '헤븐리 파운데이션' 자폭 프로토콜 가동 중.]

[잔여 시간: 02시간 41분 12초.]

[하층민 생체 코어 320만 개 강제 회수 프로세스 진행 중…….]

송수연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녀가 혀를 차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개새들…… 죽어서도 끝까지 지랄이네. 진무극 그 늙은 미치광이가 하층민 320만 명의 코어를 폭발시키거나 전부 회수해서 타워를 재구축하겠다는 플랜을 심어놓은 거야."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강진혁의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윤아영이 화면을 빠르게 스크롤하며 대답했다.

"두 시간 반 조금 더 남았어요. 하지만 그냥 타워 폭파 버튼을 누른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에요. 저 자폭 프로토콜은 신서울 전역의 하층가 지하에 깔린 메인 물류 보급선과 연결되어 있어요. 즉……."

"원천적인 공급선을 끊고, 물리적으로 서버와 코어 링크를 해제해야 한다."

"맞아요! 타워 상층부에 있는 중앙 제어망뿐만 아니라, 하층가로 내려가는 군수 보급선을 완전히 마비시켜야 이 미친 카운트다운을 멈출 수 있어요."

강진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손에 들린 [천마검]의 검신 위로 은빛의 미세한 파동이 스쳐 지나갔다.

마기 전도율 98.7%.

기계와 무공이 완벽하게 결합된 이 검은 이제 그의 팔다리나 다름없었다.

"하층가로 내려간다."

"하층가요? 거긴 지금 티타늄 그룹의 블랙 가드 잔당들이 비상 경계 태세에 들어갔어요. 특히 제3군수 보급창 쪽은 물류 트럭이랑 3.5세대 군용 생체 코어 수송함이 집결하는 곳이라 병력이 바글바글해요."

송수연이 우려 섞인 눈빛으로 진혁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진혁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말려 올라갔다.

"오히려 잘 됐다."

"뭐가요?"

"찾아갈 필요 없이 한곳에 모여 있다는 뜻이니까."

강진혁의 흑안에서 섬뜩한 살기가 번뜩였다.

티타늄 그룹이 하층민들을 인질삼아 마지막 발악을 하려 든다면, 그 뿌리부터 통째로 뽑아버리는 것만이 유일한 해답이었다.

신서울 하층 슬럼가와 상층 마천루의 경계선, 제3구역 외곽.

차갑고 탁한 인공 비가 내리는 어둠 속에서 거대한 강철 장벽이 거친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후우우웅—!

지면을 울리는 중저음의 굉음과 함께, 티타늄 그룹의 로고가 선명하게 박힌 대형 군수 수송 트럭들이 차례대로 거대한 철문 밖으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3.5세대 군용 생체 코어와 최신형 나노머신 원료가 가득 실린 보급선이었다.

"이동 경로는 확보됐어?"

트럭 무리의 수백 미터 떨어진 옥상 위, 폐쇄된 네온사인 간판 뒤에 몸을 숨긴 윤아영이 무전기에 대고 속삭였다.

그녀의 손가락은 홀로그램 키보드를 두드리며 티타늄 그룹의 내부 인트라넷을 실시간으로 교란하고 있었다.

[물류망 해킹 완료. 제3군수 보급창 내부의 방범 카메라와 센서 루프는 전부 우리 쪽 루프에 묶어뒀어. 앞으로 20분 동안은 그 누구도 너희들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할 거야.]

이어폰 너머로 들려오는 송수연의 목소리였다.

[니르바나 저항군 결사대도 보급창 양옆의 퇴로를 전부 차단했다. 진혁 씨, 신호 떨어지면 바로 진입해.]

"알았다."

말을 마친 강진혁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슈우우욱—!

마광신보(魔光神步) - 극(極).

빛의 궤적조차 남지 않았다.

단 0.5초 만에 수백 미터를 주파한 진혁의 형체는 이미 제3군수 보급창의 거대한 철제 지붕 위에 소리 없이 내려앉아 있었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수십 명의 블랙 가드 경비병들과 전투용 사이보그들이 철통같은 경비를 서며 사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야, 경계 강화해. 타워 중앙 통제실과의 통신이 끊겼어. 뭔가 이상하다고."

"후방 사령부에서 내려온 지침이야? 회장님 사후 비상 매뉴얼 작동 중이니까 잡념 버려."

"칫, 하층민 새끼들이 언제 기어 올라올지 모르니까 눈 똑바로 떠라."

철모에 장착된 야간 투시경을 반짝이며 경비병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들의 가슴팍에는 최신형 4세대 생체 코어가 탑재되어 있어, 미세한 기(氣)의 흐름마저 감지할 수 있는 센서가 내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감지 범위는 이미 진혁의 차원을 아득히 벗어난 상태였다.

툭.

지붕 위에서 가벼운 소리 하나 나지 않았음에도, 강진혁의 발끝에서 터져 나온 흑염의 파동이 공기를 잘게 부쉈다.

[마기융합 (魔氣融合) - 뇌전마강(雷電魔剛) 맹아.]

지직, 지지직—!

칠흑의 마기 속에 얽혀들기 시작한 푸른 뇌전이 진혁의 검신을 감쌌다.

더 이상 시스템의 연산 보조는 필요 없다.

오직 12,000 MW에 달하는 단전의 출력을 자신의 신경계와 근육, 그리고 검에 온전히 실어 나르는 완벽한 일체화.

"거기 누구냐!"

지붕 아래를 순찰하던 블랙 가드 분대장 하나가 위를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한 쌍의 차가운 흑안과, 세상을 찢어발길 듯이 포효하는 검붉은 검강(劍剛)이었다.

피지지직—!

"……뭐지, 저건?"

황급히 중기관총을 치켜들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콰아아앙!

강진혁이 지붕을 박차고 내려오며 휘두른 천마검이 공기를 갈라놓았다.

단 한 번의 휘두름만으로도 지면 전체가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거대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쿠구구구궁!

"크아아악!"

"적이다! 습격이다—!"

보급창 마당 전체가 일시에 아수라장으로 변모했다.

블랙 가드들이 황급히 방어막을 전개하고 플라즈마 라이플을 난사했지만, 진혁의 몸을 두른 [나노마갑 lvl.3]과 마기 방어막은 그 어떤 공격도 흠집조차 내지 못하고 튕겨냈다.

오히려 진혁이 검을 가볍게 휘두를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마검기(魔劍氣)가 경비병들의 장갑차를 두부 깎듯 반으로 갈라놓았다.

쿠웅!

거대한 수송 트럭 한 대가 폭발하며 시뻘건 화염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그 화염 속에서 강진혁의 은빛 회로 선이 목덜미를 따라 거칠게 빛났다.

"멈춰라!"

보급창 안쪽의 메인 통제실 문이 박살 나며, 거대한 체구의 사이보그 장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양팔에는 고주파 진동 블레이드가 장착되어 있었고, 눈에는 붉은색 전투 시뮬레이션 레이저가 번뜩이고 있었다.

"네놈이 바로 그 이단자 강진혁이구나! 감히 티타늄 그룹의 군수 물류선을 건드려? 네놈의 단전을 강제로 도려내어 쇳물에 녹여주마!"

슈우우웅—!

사이보그 장교가 음속을 돌파하며 진혁을 향해 돌진했다.

양팔의 고주파 블레이드가 공기를 진동시키며 시퍼런 고열의 칼날을 만들어냈다.

일반적인 3등급 초인조차 한 방에 두 쪽으로 갈라놓을 수 있는 일격이었다.

하지만 강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의 입가에 냉소적인 미소가 걸렸다.

"도려내?"

지직, 지지직!

진혁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12,000 MW의 출력이 폭발적으로 증폭되었다.

[만법귀마(萬法歸魔).]

적의 고주파 블레이드가 지닌 공진 주파수와 에너지 회로의 빈틈이 진혁의 머릿속에 완벽한 좌표로 찍혔다.

시스템의 도움 없이, 오직 자신의 감각과 직관만으로 분석해 낸 상대의 사각지대.

"그 대사는 내게 실험실에서 따귀를 치던 놈들이 유언으로 남기던 것과 똑같군."

스으윽.

진혁의 몸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사이보그 장교의 측면으로 미끄러지듯 파고들었다.

마광신보의 극의.

잔상조차 남지 않는 완벽한 은신 기동.

"커헉……?!"

장교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자신의 공격 궤적이 완전히 읽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퍼엉—!

강진혁의 손바닥이 사이보그 장교의 가슴팍, 4세대 생체 코어가 내장된 중심부에 그대로 박혀들었다.

[흡원천공(吸元天功) - 개(改).]

콰아아아궁!

장교의 몸 안에서 울부짖는 듯한 기계음과 함께, 코어의 출력이 강탈당하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장교의 눈, 코, 귀에서 시뻘건 마기와 푸른 냉각수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의 온몸에 내장된 나노머신과 생체 에너지의 잔재가 역류하며 진혁의 단전 속으로 맹렬하게 빨려 들어갔다.

[단전 출력 상승: 12,150 MW → 12,300 MW.]

"크…… 으윽…… 괴…… 괴물……."

덜컥거리던 장교의 몸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툭 떨어져 내렸다.

진혁은 눈을 감은 채 들이마신 마기를 부드럽게 정제하며 허공에 시선을 던졌다.

보급창 너머, 더 깊은 어둠에 잠긴 제4구역의 상공에서 무언가 거대하고 불길한 그림자가 고요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윤아영의 다급한 목소리가 무전기를 타고 흘러들었다.

[진혁 씨! 경보 울렸어요! 제3구역 상공으로 티타늄 그룹의 블랙 가드 정예 암살 부대…… 광학 스텔스와 고주파 단검으로 무장한 특수 2대장 '팬텀'이 당신 쪽으로 접근 중이에요!]

어둠 속에서 매끄러운 은빛 회전음과 함께, 형체를 가늠할 수 없는 투명한 잔상들이 일제히 진혁을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스윽, 공기가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빛의 굴절률을 임의로 조작하여 주변 환경과 완벽히 동화되는 광학 스텔스 슈트. 그 안에서 번뜩이는 건 오직 살기를 머금은 고주파 단검의 냉혹한 은빛뿐이었다.

‘나왔나.’

강진혁은 검을 거두지 않은 채 무심히 고개를 돌렸다.

시야의 가장자리에 잡히는 것은 없었지만, 피부를 스치는 기류의 미세한 파동과 공간의 압력이 그들의 위치를 고스란히 고발하고 있었다.

시스템의 보조 HUD가 없어도 상관없었다.

제5단계 [초월천마경]에 도달한 무인의 감각은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을 포착하고 있었으니까.

슈우우욱—!

사방의 어둠 속에서 동시에 네 개의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음속을 돌파하며 짓이겨진 공기가 폭음을 터뜨렸고, 사방의 사각을 완벽하게 봉쇄한 고주파 단검이 진혁의 목과 심장, 그리고 단전 부근을 향해 일제히 쇄도했다.

단 1초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암살 기동.

일반적인 4등급 초인이라 할지라도 이 일격을 피하기는커녕 자신의 목이 잘려 나가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즉사할 터였다.

하지만 강진혁의 입가에 척연한 미소가 떠올랐다.

“속도가 조금 빠르다고 해서, 궤적이 보이지 않는 건 아니다.”

콰아아앙!

진혁의 두 발이 지면을 찍어 누르는 순간, 단전에 축적된 12,300 MW의 마기가 폭발적으로 역류했다.

발밑의 콘크리트 바닥이 거미줄처럼 갈라지며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천마무상체(天魔無相體) - 뇌전마강.]

찌릿—! 쾅!

칠흑의 마기와 푸른 뇌전이 뒤섞인 거대한 원형의 마기 폭풍이 진혁의 육체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스텔스 슈트로 몸을 숨기고 있던 팬텀 부대의 암살자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며 급하게 궤도를 비틀려 했다.

“뭐야……?!”

“공격이 통하지 않아?!”

파지직—!

마기 폭풍과 고주파 단검이 부딪친 접점에서 눈이 멀 정도로 찬란한 스파크가 튀었다.

암살자들의 은빛 슈트가 진혁의 마기에 휘말리며 광학 스텔스 기능이 순식간에 해제되었다.

허공에 드러난 그들의 일그러진 얼굴 위로 진혁의 천마검이 묵직한 잔상을 그리며 내리꽂혔다.

퍼엉—!

가장 먼저 접근하던 암살자의 단검이 부러지며 그의 상체가 반으로 쪼개졌다.

진혁은 멈추지 않고 몸을 회전시켜 두 번째 암살자의 복부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흡원천공.]

“크아아아악!”

암살자의 4세대 생체 코어에서 흘러나오는 에너지가 진혁의 팔을 타고 거꾸로 빨려 들어왔다.

단전의 출력이 다시 한번 미세하게 요동치며 포효했다.

남은 두 명의 팬텀 부대원이 공포에 질려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이미 진혁의 살기가 그들의 퇴로를 완벽하게 옭아매고 있었다.

“어디로 가나.”

차갑게 내뱉어진 진혁의 음성이 밤하늘의 인공 비를 갈랐다.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마검기가 어둠을 찢고 눈부신 궤적을 그리며 뻗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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