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전용 사이트예요. 댓글·로그인·좋아요는 준비 중이에요.
‹별빛 아래의 가마솥 · 5화목차

제5화 역할 분담

공동 실험실의 무거운 가마솥 아래서 푸른 마력 불꽃이 거칠게 타올랐다. 벽면에 가지런히 늘어선 유리 시약 병들이 차가운 밤의 달빛을 받아 은빛으로 번뜩였다. 우리는 지금 아카데미 대학술제를 위한 본격적인 연구에 돌입한 상태였다. 기획서 승인이 떨어지자마자 시작된 작업이었지만, 실험실을 채운 공기는 여전히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카이엘은 칠판 앞에 서서 복잡한 연금술 수식을 은빛 지팡이 끝으로 짚고 있었다. 그의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대변하듯, 칠판에는 단 하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기세로 빽빽하게 수식이 적혀 있었다. 그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아졌다.

"대학술제까지 남은 시간은 단 일주일입니다. 지금부터 효율적인 연구를 위해서는 명확한 역할 분담이 필수적입니다."

나는 가마솥 옆에 팔짱을 끼고 서서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겉으로는 위엄을 차리려 애쓰고 있지만, 지난밤 달빛 서재에서 발을 삐끗했던 허술한 모습이 자꾸만 겹쳐 보여 입꼬리가 간질거렸다.

"그래요? 완벽주의자 수석님은 또 무슨 까다로운 규칙이라도 만들 생각인가요?"

"까다롭다니요. 체계적인 절차를 말하는 것입니다. 감정에 치우친 무모한 실험은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카이엘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살짝 피했다. 그의 귀 끝이 미묘하게 붉어져 있었지만, 나는 이번에도 모른 척 넘어가 주기로 했다.

"이론적 설계와 마력 안정화 계산은 제가 맡겠습니다. 그리고……."

카이엘이 말을 잠시 멈추더니,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은색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이 또렷했다.

"당신이 배합을 담당하는 게 효율적이겠군요."

"어라? 제 실력을 드디어 인정하시는 건가요?"

"인정이라기보다는 객관적인 데이터의 결과입니다. 당신의 손놀림은 확실히 변수 통제에 능숙하니까요."

카이엘은 짐짓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손에 쥐고 있던 지팡이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정말이지, 솔직하지 못하다니까요.

"알겠어요. 그럼 이론은 수석님이 철저하게 짜두시고, 실전 배합은 저한테 맡기세요. 후회하지 않게 만들어 줄 테니까."

우리는 그렇게 간단하게 역할 분담을 마쳤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역할이 정해지자마자 카이엘은 즉석에서 새로운 배합 비율을 계산해 내기 시작했다. 그의 깃펜이 양피지 위를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수십 개의 복잡한 마법 기호와 분자 구조식이 순식간에 채워졌다.

"자, 이 수치에 맞춰서 추출을 시작하십시오. 3차 정제 과정에서 온도가 섭씨 2도만 올라가도 반응식이 무너집니다."

"네, 네. 잘 알겠어요."

나는 그의 잔소리를 가볍게 흘려들으며 유리 비커를 집어 들었다. 곧이어 본격적인 시약 배합 작업이 시작되었다. 내 손길은 망설임 없이 빨라졌다. 기본 용액에 정제된 에테르를 떨어뜨리고, 마력 촉진제를 정확한 타이밍에 투입했다. 스포이트를 움직이는 손목의 각도부터 흔드는 횟수까지 낭비가 전혀 없었다.

가마솥 안에서 보글보글 끓어오르던 액체가 점점 투명한 금빛으로 변해갔다.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카이엘은 옆에서 그 모든 과정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입이 살짝 벌어져 있었다. 항상 냉정하고 오만하던 아카데미 수석의 얼굴에 순수한 감탄이 스쳐 지나갔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연금술의 마법 같은 효율성에 말을 잃은 모양이었다. 카이엘은 자신이 감탄하고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내 손끝을 응시했다.

나는 그 시선을 느끼며 일부러 스포이트를 한 번 더 현란하게 돌렸다. 피식,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정적이 감도는 실험실 안에서 오직 시약이 끓는 소리만 귓가를 울렸다. 카이엘은 침을 꼴깍 삼키더니, 무언가 말하려 입술을 달싹였다. 그 순간, 내가 고개를 확 돌려 그와 눈을 정면으로 마주쳤다.

카이엘은 마치 사냥꾼에게 들킨 짐승처럼 몸을 움찔했다. 그는 황급히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며 시선을 멀리 던졌다. 시선 처리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벽에 걸린 빈 시약 장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어머? 왜 그렇게 황급히 고개를 돌리세요?"

내가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환기가 잘 안 되는 것 같아서 창문을 보았을 뿐입니다."

"창문은 저쪽에 있잖아요?"

내가 가리킨 곳은 창문이 아니라 빗자루가 놓인 구석이었다. 카이엘의 얼굴이 순식간에 귀까지 확 달아올랐다. 그는 헛기침을 두 번 하더니 지팡이를 바로 잡았다.

"딴짓하지 말고 작업에 집중하십시오. 시간 낭비는 금물입니다."

"네네, 수석님 말씀이 다 맞죠."

나는 킥킥거리며 다시 비커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서기엔 조금 아쉬웠다. 나는 배합이 끝난 완제품 병을 가볍게 흔들며 카이엘에게 다가갔다. 병 안에서 금빛 시약이 영롱하게 빛났다.

"자, 어때요? 방금 제 배합 보고 놀랐죠?"

내 목소리에는 명백한 장난기와 은근한 기대가 섞여 있었다. 카이엘은 내 쪽으로 다가오는 내 얼굴을 피하듯 뒷걸음질을 쳤다. 그의 등 뒤에 실험용 선반이 닿자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듯 멈춰 섰다.

"놀라다니요. 그런 감정은 전혀 없습니다."

카이엘은 여전히 격식체를 고수하며 엄숙한 표정을 지으려 애썼다. 하지만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단순히 제가 계산한 이론적 수치에 부합하는지 분석한 결과일 뿐입니다. 속도가 빨랐을 뿐, 연금술의 예술성 면에서는 아직 개선할 부분이 많습니다."

"아, 그렇군요. 예술성이요?"

"그렇습니다. 전통적인 방식의 미학과 안정성이 결여된……."

카이엘은 구체적인 비판을 늘어놓으려 했지만, 내 눈빛을 마주하자마자 다시 말문이 막혔다. 그는 입술을 꾹 다물고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꽂았다. 귀의 빨간 기운은 식을 줄을 몰랐다.

"말은 잘하시네요. 분석 결과라니."

나는 그의 코앞까지 다가가 속삭이듯 말했다.

"그렇게 제 실력이 놀라웠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귀족 체면이 상하기라도 한대요?"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입니까. 저는 팩트만을 전달했을 뿐입니다. 물러서십시오. 너무 가깝습니다."

카이엘은 손을 허공에 휘저으며 나를 밀어내려 했지만, 손끝이 내 소매 끝에 스치자마자 화들짝 놀라며 손을 거두었다. 마치 불에 데인 것 같은 반응이었다. 그의 뻣뻣한 태도에 나는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알았어요, 그만 놀릴 테니까 그렇게 벌벌 떨지 마세요. 수석님."

"벌벌 떨다니요! 제가 왜 그런 유치한 반응을 보인다는 말입니까!"

카이엘은 끝까지 자존심을 세우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이미 빨갛게 달아오른 귀와 엉망으로 꼬인 발걸음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는 도망치듯 실험실 구석으로 걸어가 자신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오늘의 실험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하지만 카이엘은 밤이 깊어 숙소로 돌아간 이후에도 내내 그 장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책상 앞에 앉아 양피지에 수식을 적어 내려가려 했지만, 자꾸만 내 웃는 얼굴과 눈이 마주쳤던 순간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

카이엘은 깃펜을 책상 위에 툭 떨어뜨렸다. 방 안은 조용했지만, 그의 심장 소리만큼은 유난히 크게 울리고 있었다. 분명 효율적인 배합 속도에 대해 분석하고 있었을 뿐인데, 왜 자꾸 그 눈빛만 떠오르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그는 밤새 잠을 설치며 뒤척여야 했다.

다음 회차 예고: 리아나가 솔라리스 선배와 복도에서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을 목격한 카이엘은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실험실로 돌아와 무리하게 시약을 과다 배합하다가 결국 분홍색 폭발을 일으키고 만다.

작품명: 《별빛 아래의 가마솥》

현재 회차: 제5화

다음 회차 예고: 제6화 질투의 시약

연재 일정: 용용 시리즈 연재 중

다음 화 바로보기 ›
이 작품, 여기까지 어떠셨나요? ★ 별점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