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첫 가마솥 사고
"지금 투입하려는 시약의 순서가 틀렸습니다, 카이엘 님."
공동 실험실 한가운데 놓인 육중한 청동 가마솥 아래로 푸른 마력 불꽃이 요란하게 일렁였다. 리아나는 시약 매뉴얼을 덮으며 카이엘의 손끝을 차갑게 노려보았다.
가마솥 내부에서는 이미 묵직한 약초 향과 찌릿한 알칼리 시약 냄새가 뒤섞여 희뿌연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대학술제 공동 연구 파트너로 배정된 이후, 두 사람이 실전 배합용 대형 가마솥을 함께 다루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카이엘은 칠흑 같은 연금술 정복 소매를 주름 하나 없이 단정하게 걷어붙인 상태였다.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정교한 은제 저울과 보석 장식이 새겨진 시약 숟가락이었다. 동작 하나하나가 마치 왕실 연회장의 춤처럼 흐트러짐이 없었다. 완벽주의자이자 수석 엘리트다운 오만한 위엄이 온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보십시오, 리아나 양. 연금술의 본질은 눈앞의 속도가 아니라 정갈한 기운의 통제입니다."
카이엘은 턱을 살짝 들어 올리며 매끄러운 콧대를 자랑하듯 폼을 잡았다. 그는 보석 숟가락 끝에 영롱한 분홍색 결정 가루를 정확히 15밀리그람 덜어냈다.
"이 별빛 수정 가루를 먼저 투입하여 가마솥 내부의 마력 밀도를 균일하게 맞춘 뒤, 액상 시약을 조심스럽게 첨가하는 것이 연금술 가문의 검증된 정석입니다. 기초적인 순서조차 무시해서는 고품질 시약을 완성할 수 없습니다."
그의 도도한 설명에 리아나는 팔짱을 낀 채 눈썹을 슬그머니 찌뭇했다. 가마솥 안에서 부글거리는 마력 기포의 회전 속도는 지나치게 빠르고 불규칙했다. 결정 가루를 받쳐줄 내열 마력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 순서로 넣으면 폭발할 수도 있어요."
리아나가 날카로운 팩트로 그의 호쾌한 장담을 잘라버렸다.
"지금 가마솥 내부 온도가 기준치보다 섭씨 20도나 높은 상태잖아요. 마력 반응을 안정시키는 액상 시약으로 온도를 먼저 잡아야죠. 거기에 별빛 수정을 떨어뜨리면 마력 충돌이 일어나는 게 당연한 수순인데요?"
카이엘은 그녀의 정곡을 찌르는 지적에 찰나 동안 찔릿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귀족으로서의 체면과 아카데미 수석이라는 자존심이 그의 입을 막아섰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제 정밀한 계산에 따르면 현 상태에서 마력 충돌이 일어날 확률은 0.03퍼센트 미만입니다. 명문 가문의 전통 배합법을 무턱대고 의심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불신입니다."
"확률이 0이 아니라는 건 곧 폭발한다는 뜻인데요."
리아나의 서늘한 비꼼에도 불구하고, 카이엘은 품격 있는 자세를 유지하며 은 숟가락을 기울였다. 영롱한 별빛 수정 가루가 부글거리는 청동 가마솥 중앙으로 스르르 떨어졌다.
스스스스.
수정 가루가 용액 표면에 닿는 순간, 기묘한 정적이 실험실 전체를 짓눌렀다. 카이엘은 자신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듯 옅은 승리감의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보십시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 않습니까? 연금술은 철저한 규칙이자 예견된……."
쿠구구구구-!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가마솥 안의 푸른 용액이 핏빛 보랏빛으로 뒤틀렸다. 솥바닥 전체에서 거대한 마력 기포가 폭발적으로 솟구쳐 올랐다.
"……어?"
카이엘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완벽했던 계산이 산산조각 났다. 가문의 전통 공식이 이 조그만 공동 실험실 가마솥의 변덕스러운 마력 통제 실패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다. 가마솥 전체가 들썩이며 사방으로 분홍색과 보랏빛 시약 줄기가 요란하게 튀어 올랐다.
"위험합니다!"
그 순간, 카이엘의 머릿속을 채우던 귀족의 체면이나 수석의 명예 따위는 전부 날아가 버렸다. 눈앞의 리아나를 향해 튀어 오르는 열기와 충격파를 본 순간, 그의 몸이 이성보다 먼저 튀어 나갔다.
카이엘은 망설임 없이 팔을 뻗어 리아나의 허리를 낚아채듯 감싸 안았다. 그리고 자신의 두꺼운 연금술 정복 망토를 넓게 펼쳐 그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히 덮어 막아섰다.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실험실 중앙에서 화려한 마력 폭발이 일어났다.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시약 방울과 마력 바람이 카이엘의 등과 망토를 거칠게 때렸다.
폭발의 충격파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뒤로 뛰어오른 카이엘이었지만, 그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그들의 바로 뒤편에는 야간 연구 및 자료 조사를 위해 높게 쌓아둔 양피지 책더미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읏……!"
카이엘의 뒤꿈치가 두꺼운 양피지 금서 모음집에 턱 걸렸다. 중심을 잃은 카이엘은 리아나를 감싼 손을 놓지 않으려 애쓰다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두 사람은 푹신하면서도 딱딱한 고서적 더미 위로 요란하게 구르고 말았다.
쿠당탕탕!
수십 권의 두꺼운 연금술 양피지 책들이 빗물처럼 두 사람의 위로 쏟아져 내렸다.
매캐하고 분홍빛이 도는 연기가 실험실 안을 은은하게 채우며 천천히 걷혀 갔나 갔다. 실험실 바닥은 온통 흐트러진 낱장 서류와 책 표지, 분홍색 시약 얼룩으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서재 책더미 한가운데, 두 사람은 극도로 밀착된 상태로 굳어 있었다.
카이엘이 리아나의 몸 위에 완전히 엎드린 형태였다. 그의 긴 두 팔은 리아나의 머리 좌우를 짚어 그녀를 감싸고 있었고, 굳건한 가슴은 리아나의 얕은 숨결이 느껴질 만큼 바짝 밀착되어 있었다.
리아나의 부드러운 머리카락 향기와 맑은 밤하늘 같은 눈동자가 카이엘의 시야에 들어왔다. 망토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온기와 시선 속에서 카이엘의 신체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
카이엘의 호흡이 뚝 멈췄다. 완벽하게 빗어 넘겼던 그의 검은 머리칼 위로 양피지 조각 하나가 툭 떨어졌지만, 그는 움직이지 못했다.
리아나는 자신을 보호하느라 온몸으로 충격을 막아낸 카이엘의 단단한 어깨와, 코앞에서 가쁘게 헐떡이는 뜨거운 숨결을 느꼈다. 쿵쿵거리는 심장 소리가 가슴을 울렸는데, 그것이 자신의 것인지 위엄 넘치는 수석 도련님의 것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았다.
리아나는 어둠 속에서 조용히 눈을 반짝이며, 머리 위에서 경직된 카이엘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특유의 날카롭고 담담한 존댓말로 팩트 폭격을 날렸다.
"아, 귀족은 이렇게 구하시는군요."
리아나의 나그네 같은 비꼼이 정적을 깨뜨렸다.
그 순간, 카이엘의 굳어 있던 창백한 얼굴에 순식간에 붉은 피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선명한 붉은 기운은 목덜미를 타고 올라가 순식간에 그의 귓바퀴 끝까지 새빨갛게 물들였다.
"……조용히 하십시오."
카이엘은 책 더미 속에서 겨우 쥐어짜듯 작게 입을 열었다. 완벽하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속으로는 '내가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몸을 던진 것이지 결코 사적인 감정이나 딴맘이 있었던 게 아닙니다! 이 무례한 상황을 오해하지 마십시오!'라는 수십 가지 반박 문장이 솟구쳤지만, 입 밖으로는 단 한 마디도 낼 수 없었다. 리아나의 시선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다.
"말씀은 그렇게 하시면서 귀는 터질 것처럼 빨간데요. 시약 때문은 아니죠?"
"시약의…… 열기와 마력 충격파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 감정 없습니다."
카이엘은 더 이상 이 가깝고 치명적인 거리를 버티지 못하고 황급히 일어나려 했다. 완벽주의자답게 품격과 위엄을 되찾으며 가뿐하게 몸을 일으키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쯧.
그가 짚고 있던 두꺼운 양피지 표지가 바닥에 흩뿌려진 미끈거리는 액상 시약에 젖어 있었다.
"어……?"
휘청!
균형을 잃은 카이엘이 중력을 거스르지 못하고 다시 한번 아래로 푹 무너져 내렸다.
"앗,"
리아나가 미처 몸을 피하기도 전이었다. 카이엘은 다시 한번 리아나의 위로 엎어지고 말았다. 이번에는 그의 이마가 리아나의 쇄골 부근에 턱 소리를 내며 살짝 부딪혔고, 미끄러지지 않으려 발버둥 치던 카이엘의 긴 손가락은 리아나의 허리 옆 비단 옷자락을 꽉 움켜쥐고 말았다.
실험실 안에는 다시 한번 완벽하고 오묘한 정적이 흘렀다.
두 사람의 거리는 아까보다 더 좁아져 있었다. 카이엘은 이제 얼굴 전체가 뜨거운 화로처럼 달아올라 제대로 숨을 쉬는 법조차 잊어버린 듯했다. 겉으로는 차갑고 고고한 엘리트였지만, 리아나의 피부 온도가 닿는 모든 곳에서 그의 체면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리아나는 자신의 가슴에 이마를 묻은 채 경직되어 있는 카이엘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쿵쾅거리는 소리에 리아나는 결국 작게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도련님, 구해주시는 건 정말 고마운 전개인데요."
리아나가 카이엘의 굳어버린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나비처럼 가볍게 속삭였다.
"두 번이나 연속으로 엎어지는 건 아무래도 사심으로 오해받기 딱 좋잖아요?"
"……!"
카이엘은 입을 쩍 벌린 채 말문이 완전히 막혀 버렸다. 부정의 말을 꺼내려 했으나 혀가 꼬여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유서 깊은 가문의 자랑이자 아카데미 최고의 수석 천재. 그 완벽했던 카이엘의 품격이, 작고 허름한 가마솥 폭발 사고 하나와 평민 장학생의 팩트 폭격 앞에서 완벽하게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산산조각 난 틈새로, 걷잡을 수 없이 강렬한 설렘의 불꽃이 튀기 시작하고 있었다.
다음 회차 예고: 폭발 사고 이후 카이엘은 이론과 설계를, 리아나는 실전 배합을 맡기로 합의하지만, 그녀의 비범한 손재주를 관찰하던 카이엘의 심장이 다시금 걷잡을 수 없이 뛰기 시작합니다.
작품명: 《별빛 아래의 가마솥》
현재 회차: 제4화
다음 회차 예고: 제5화 역할 분담
연재 일정: 용용 시리즈 연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