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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아래의 가마솥 · 3화목차

제3화 야간 통행금지

자정을 알리는 시계탑의 종소리가 둔탁하게 울려 퍼졌다.

리아나는 숨을 죽인 채 지하 복도의 어둠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아카데미의 야간 통행금지 시간은 오후 열 시. 걸리면 벌점은 물론이고 일주일간 실험실 출입 금지 처분을 받게 된다. 하지만 대학술제 기획서 수정 마감이 고작 사흘 남은 시점에서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목표는 학부 지하 깊은 곳에 숨겨진 '달빛 서재'였다. 금서나 희귀 연금술 문헌이 보관된 이곳은 허가받지 않은 학생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 구역이었다.

리아나는 주머니에서 직접 제작한 시약 병을 꺼내 자물쇠에 한 방울 떨어뜨렸다. 치익 소리와 함께 마법 빗장이 스르르 풀렸다.

"역시 실용 연금술이 최고라니까."

작게 미소 지으며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리아나의 발걸음이 굳어졌다.

서재 안쪽, 희미한 은빛 마력등 아래에 이미 누군가가 서 있었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카락, 각이 잡힌 제복 상의, 그리고 가문의 문양이刻인된 깃털 펜.

카이엘 에스티아였다.

카이엘 역시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완벽하게 유지되던 그의 무표정에 처음으로 균열이 생겼다.

"……리아나 씨?"

"카이엘 씨? 이 시간에 지하 통행금지 구역에는 어쩐 일이세요?"

리아나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카이엘은 흠칫하며 들고 있던 양피지를 슬그머니 뒤로 숨기려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입니다. 학생 규칙 제14조 2항, 야간 출입 금지 위반입니다."

"그걸 말하는 본인도 지금 똑같이 위반 중이잖아요. 혹시 수석의 품격을 유지하느라 법칙도 골라가며 어기시는 건가요?"

리아나의 날카로운 팩트 폭격에 카이엘의 턱 끝이 경직되었다. 그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렸지만, 귓바퀴 끝이 살짝 붉어지는 것까지 숨기지는 못했다.

"……저는 학술제의 완벽성을 위해 자료를 확인하러 온 것뿐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인데요. 서로 밀고할 처지는 아니라는 뜻이죠. 그러니까 비켜요. 저도 그 상자 안의 자료를 봐야 하니까요."

리아나가 걸어가자 카이엘은 엉겁결에 옆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두 사람의 어깨가 스치고 지나갔다. 카이엘의 옷깃에서 은은한 허브향이 풍겼다. 리아나가 책상 위에 놓인 고서를 집어 들려 할 때, 카이엘의 손도 같은 책을 향해 뻗어 나왔다.

손가락 끝이 닿았다. 카이엘은 마치 뜨거운 가마솥에 데인 사람처럼 펄쩍 뛰며 손을 거두었다.

"크흠. 기획서의 안정성 파트를 보강하려면 에스티아 가문의 3차 정제법 이론을 참고해야 합니다."

카이엘이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장엄하게 입을 열었다.

"전통적인 고온 정제 방식이야말로 반응의 순도를 극대화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정통 연금술에서는 열의 가함에 타협이란 없습니다."

리아나는 책을 넘겨보지도 않고 비웃듯 한숨을 쉬었다.

"그건 200년 전 비효율적인 가열 방식일 때나 쓰던 고전 이론이잖아요. 촉매의 결정 구조가 400도 이상에서 붕괴된다는 논문이 작년에 학술지에 발표됐거든요. 귀족 가문의 고서에만 매달리니까 시약 수율이 겨우 30%에 머무는 거 아니에요?"

"무엇이라고요? 가문의 정제법은 수세기 동안 검증된 완벽한 방식입니다!"

"완벽 같은 소리 하네요. 열 손실율이 70%가 넘는데 그게 어떻게 완벽해요? 숫자는 거짓말을 안 해요, 카이엘 씨."

리아나가 고서의 특정 페이지를 손가락으로 딱딱 소리 나게 짚으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수치와 수식을 들어 이어지는 리아나의 공격에 카이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속으로는 반박할 말이 수십 개나 떠올랐지만, 리아나가 제시한 최신 수치가 너무나 정확하여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당신 같은 평민이 가문의 이론을……!"

카이엘의 입에서 울컥 고조된 말이 튀어나오려 했다. 하지만 리아나의 서늘하고 차가운 눈빛이 그를 쏘아보자, 그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맞아, 연금술에서 신분 따위는 아무 의미가 없다.'

자신의 발언이 얼마나 졸렬했는지 깨달은 카이엘은 스스로 입을 꽉 다물었다. 품격을 중시하는 그로서는 해서는 안 될 말이 나올 뻔했다. 수치심과 당황스러움이 동시에 밀려오며 그의 귀가 붉다 못해 터질 듯 빨개졌다.

"……."

"왜 말이 없으세요? 평민이 뭐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 언행이 다소 과했습니다."

카이엘은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낮추었다. 고집을 부릴 줄만 알았는데, 의외로 자신의 실수를 즉시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습에 리아나의 눈빛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통행금지 구역에서 밤새 싸울 수는 없으니, 일단 자료를 나눠서 정리해요. 어차피 같은 목표를 위해 온 거잖아요."

리아나가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며 제안했다. 카이엘은 잠시 주저하더니, 맞은편 의자에 곧은 자세로 앉았다.

서재 안에는 종이가 넘어가고 깃털 펜이 사각거리는 소리만 남았다. 은빛 마력등 불빛 아래에서 두 사람은 말없이 연구에 몰두했다.

리아나는 수식의 허점을 찌르고 빠진 배합비를 순식간에 계산해 나갔다. 그녀의 깃털 펜이 움직일 때마다 복잡했던 가열 곡선이 지극히 효율적이고 간결한 형태로 재구성되었다.

카이엘은 자신의 양피지를 정리하는 척하면서, 맞은편에 앉은 리아나의 노트로 슬그머니 시선을 옮겼다.

실용성에만 치우친 무지한 평민이라 생각했건만, 그녀가 적어 내려가는 공식은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가문의 전통 이론이 가진 한계를 완벽하게 보완하는 미선형 재배열 방식이었다.

천재였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 부분만큼은 도저히 부정할 수 없었다.

카이엘의 입술이 미세하게 경련했다. 존경과 감탄, 그리고 오기가 뒤섞인 묘한 감정이 가슴속에서 피어올랐다.

"……이 부분은…… 인정할 만합니다."

카이엘이 자신도 모르게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정말로 혼잣말처럼 나지막하게 내뱉은 소리였다.

하지만 정적만이 흐르던 서재 안에서 그 소리를 놓칠 리아나가 아니었다. 리아나가 펜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뭐라고요? 잘 안 들렸는데 다시 말씀해 주시겠어요?"

리아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카이엘은 흠칫하며 몸을 바짝 세웠다. 귀 끝이 다시 붉은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답을 적지 않았나 확인했을 뿐입니다."

"아, 그래요? 분명 '인정할 만합니다'라고 들린 것 같은데 제 환청인가 보네요."

"환청입니다. 그런 말 한 적 없습니다."

카이엘은 시선을 엉뚱한 천장 구석으로 돌리며 완강히 부인했다. 당황한 나머지 손에 들고 있던 시약 병을 떨어뜨릴 뻔하여 허둥지둥 다시 잡는 모습이 여간 우스꽝스러운 게 아니었다.

"피식. 거짓말할 때 귀 빨개지는 건 귀족 가문의 고귀한 전통인가 보네요."

"……놀리지 마십시오."

카이엘이 나지막하게 웅얼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평소의 위엄 대신 어린아이 같은 투정이 묻어났다.

새벽 여명이 서재 작은 창문 너머로 희미하게 비쳐 들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새벽 순찰대에게 걸리기 전에 지하 서재를 빠져나가야 했다.

정리된 기획서 초안을 품에 안은 리아나가 먼저 일어섰다.

"이 정도면 이론적인 기반은 완성됐네요. 내일부터는 드디어 진짜 가마솥을 다뤄야겠어요."

"……알겠습니다. 실험실 배합에서도 제 가문의 기준을 완벽히 적용할 것입니다."

카이엘이 망토를 둘러메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긴장이 풀린 탓인지, 아니면 의자 다리에 걸린 탓인지 그가 걸음을 옮기다 발을 삐끗했다.

"앗……!"

단정한 완벽주의자 카이엘이 순간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리아나가 놀라 손을 뻗으려 했지만, 카이엘은 가까스로 책상 모서리를 잡고 바로 서며 장엄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네, 네. 참 장관이네요. 아무 일도 없는 모습이."

리아나는 작게 실소를 터뜨리며 지하 서재 문을 열었다.

차갑고 대립하기만 했던 두 사람 사이에, 밤샘 연구라는 작은 균열이 생겨나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시련은 이론이 아닌, 불과 시약이 날뛰는 실험실 가마솥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회차 예고: 제4화 「첫 가마솥 사고」에서 카이엘과 리아나의 가마솥 소동이 이어집니다.

작품명: 《별빛 아래의 가마솥》

현재 회차: 제3화

다음 회차 예고: 제4화 첫 가마솥 사고

연재 일정: 용용 시리즈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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