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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무림전 · 14화목차

제14화 연금진인의 재림과 신(新) 사억신공

시우의 손가락이 떨렸다.

낡은 가죽 수첩의 맨 뒷면, 정교한 초전도체 센서와 광섬유 부품들이 가득한 기계 틈바구니에서 뽑아낸 머리카락보다 얇은 나노 칩. 그것을 자신의 개인 휴대 단말기에 접촉하는 순간, 지하 40층의 밀실 전체가 기괴한 푸른빛 노이즈로 뒤덮였다.

지이이잉-하는 묵직한 공명음과 함께 도시의 모든 신경망 통신선이 한순간에 차단되었다.

뒤통수의 신경 잭을 연결하지 않았음에도 허공에 맑고 차가운 푸른빛 안개가 피어올랐고, 이내 펄럭이는 도포 자락의 형상이 뚜렷하게 맺혔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다. 낡은 등산복 차림에 한 손에는 찌그러진 보온병 뚜껑을 쥐고 허허롭게 껄껄 웃고 있는 자, 백 년 전 종로의 비상계단에서 김철수 앞에 나타났고 쉰다섯의 영호 식탁 위에 볼펜을 휘갈겼던 그 존재였다.

"자네가 철수의 증손자 놈인가?"

시우는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털썩 나자빠졌다.

"누, 누구냐! 홀로그램 크래킹인가? 옴니코퍼레이션의 침투성 신경 바이러스인가!"

"바이러스는 네놈 뇌 속에 들어찬 공포와 탐욕이 바이러스지."

노인은 허공에 책상다리를 하고 주저앉아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믹스커피를 후후 불었다. 분명 물리적 실체가 없는 데이터의 잔영이었으나,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옴니코퍼레이션의 중앙 슈퍼컴퓨터보다 더 서늘하고 압도적이었다.

"나는 백 년 전 한 청년의 절박한 수첩에 깃든 잔류 사념이자, 자본주의 무림이 태동한 이래 단 한 번도 멸망하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의 불멸 알고리즘이다. 강호인들은 나를 연금진인이라 불렀지."

"불멸…… 알고리즘이라고요?"

"그래. 세월이 흘러 엽전이 종이돈이 되고 종이돈이 양자 크레딧으로 둔갑했다 한들, 무림이 시작된 이래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철칙이 있다. 남의 시스템에 제 목줄을 맡긴 자는 기필코 노예가 된다는 이치다."

진인이 보온병 뚜껑을 툭 가리키자, 허공에 옴니코퍼레이션이 전 인류를 옭아맨 거대한 신경망 거미줄이 입체적으로 펼쳐졌다.

"너는 지금 저들이 만든 가상의 토큰과 끝없는 구독의 올가미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저들은 매일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이지. 더 많은 크레딧을 벌어 영생을 사라. 네 뇌를 우리 클라우드 메인프레임에 업로드하면 영원한 고통 없는 낙원을 주겠다. 그것이 바로 강호 역사상 가장 악랄하고 흉포한 절대마공, 전뇌흡혈대법이다."

시우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회사에서 최근 추진 중이던 우수 분석관 영구 신경망 업로드 프로토콜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것은 영예로운 승진이 아니라, 육신을 폐기 처분하고 영원히 회사의 데이터 연산 노예로 갈려 들어가는 디지털 순장이었던 것이다.

"진인 어르신, 그렇다면 저는 어찌해야 합니까? 이 거대한 기계 제국의 심장부에서 저 혼자 선을 뽑고 도망친다고 살아남을 수 있습니까? 돔 밖에는 살인적인 독성 스모그와 천문학적인 물가뿐인데요!"

진인의 눈꼬리가 벽력처럼 치켜올라갔다.

"어찌하여 백 년 전 네 증조부와 똑같이 나약한 패잔병의 소리를 지껄이느냐! 철수는 4억으로 시작했고, 영호는 5억 5천으로 13년의 사막을 건넜다. 그리고 지금 너에게는 그들이 목숨 걸고 지켜내어 흘려보낸 백 년의 물줄기가 이미 네 등 뒤에 거대한 호수를 이루고 있단 말이다!"

진인이 허공을 향해 소매를 휘두르자, 아버지가 보여주었던 단말기의 세 수치가 거대한 입체 진형으로 허공에 떠올라 회전하기 시작했다.

"눈을 부릅뜨고 주판을 튕겨 보아라. 네 아비 민준이 남긴 세 물줄기가 합쳐 매달 몇 크레딧이더냐?"

"월, 월 400 크레딧입니다."

"그리고 네가 저 옴니코퍼레이션의 빨대를 뽑아 던지고, 이곳 외곽 자치구에서 인간의 몸으로 숨 쉬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실물 비용은 얼마더냐?"

시우의 머릿속에서 숫자들이 번개처럼 교차했다.

가상 낙원의 접속료, 신경 가속제, 회사의 강제 소비 패키지와 배달 구독을 모조리 걷어내고 순수하게 실물 음식과 기본 산소 필터, 그리고 기초 전력만을 소비한다면.

"월, 월 250 크레딧이면 충분합니다."

"보아라! 네 등 뒤에는 이미 매달 150 크레딧의 난공불락 흑자 방패가 세워져 있다! 네 아비와 할아비가 피눈물을 흘리며 구축해 둔 불멸진형 덕분에, 너는 이미 저 네오-마교에 구걸하지 않아도 굶어 죽지 않는 절대의 자유를 손에 쥔 군주란 말이다!"

시우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자신은 언제나 빚더미에 허덕이는 최하층 데이터 노예인 줄로만 알았다. 통장에 잔고가 420 크레딧밖에 없어 내일의 구독료를 걱정하며 신경 잭에 목을 매달던 비참한 부품인 줄 알았다.

그러나 진실은 정반대였다.

회사가 뇌 속에 주입한 가상의 공포와 탐욕의 굴레에서 걸어 나오기만 하면, 그는 이미 3대에 걸친 조상들의 방패 안에서 완벽히 자립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인이었던 것이다.

진인이 허공에 가죽 수첩의 첫 장을 투영하며 백 년 전의 무공을 새로운 언어로 새롭게 번역해 내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초지능 시대를 살아갈 네 무공의 이름은 신 사억신공, 주권삼합진이다. 뼈에 새겨라."

첫째, 탈망단전공. 신경망의 빨대를 뽑고 군살을 베어내라.

"옴니코퍼레이션의 사내 신경망 접속을 즉각 해제하고 표준 생체 인터페이스로 회귀하라. 뇌를 혹사해 버는 가상 크레딧의 신기루를 버려라. 접속을 끊는 순간 네 뇌세포는 치유되기 시작할 것이며, 매달 빠져나가던 200 크레딧의 인지 관리 구독료와 신경 안정제 비용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지출의 칼날을 안으로 휘둘러 군살을 단칼에 베어내는 것, 이것이 방패의 첫 번째 두께다."

둘째, 실물자산용혈보. 디지털 허상을 버리고 실물 에너지의 지분을 쥐어라.

"저들이 화면 위에서 깜빡거리는 가상 토큰 따위에 영혼을 팔지 마라. 인공지능이 제아무리 신의 경지에 오르더라도 결국 물리적인 전기를 먹어야 움직이고, 실제 대지와 물과 태양빛을 필요로 한다. 네 아비가 묻어둔 외곽 태양광 발전 인프라 지분과 수소 공급관 리츠의 배당을 철저히 사수해라. 기계 문명이 화려해질수록 그 기계를 돌리는 근원적 에너지를 장악한 자가 진짜 무림의 패자가 된다."

셋째, 인간생체철포삼. 기계가 침범할 수 없는 땀의 성벽을 쌓아라.

"남는 150 크레딧의 흑자를 방치하지 마라. 그 은전으로 외곽 자치구의 흙을 사고 독립형 스마트 온실을 세워 네 손으로 직접 채소를 기르고 전력을 생산하라. 기계의 배급선에서 벗어나 제 손으로 먹을거리를 생산할 수 있는 인간은 어떤 초지능 알고리즘도 무릎 꿇릴 수 없다. 실물 식량과 독립 에너지를 손에 쥔 자만이 자본주의 강호의 영원한 주권자가 된다."

진인의 음성이 시우의 단전 깊숙한 곳을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시우야. 돈이란 통장에 찍히는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원치 않는 자의 부당한 명령을 단칼에 거부할 수 있는 권력이며, 내 온전한 하루 24시간을 내 의지대로 쓸 수 있는 권한이다. 증조부 철수가 종로에서 지키려 했던 것도, 할아비 영호가 지켜냈던 것도 오직 그것 하나뿐이었다."

허공의 푸른빛이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노인은 마지막으로 껄껄 웃으며 믹스커피 보온병을 흔들어 보였다.

"칼을 뽑아라, 시우야. 백 년 동안 네 핏줄 속에서 벼려온 방패를 들고 저 거짓된 전뇌 낙원의 문을 부숴라!"

팟- 하는 소리와 함께 노인의 잔영이 사라졌다.

사방은 다시 흙먼지 날리는 외곽의 고요 속으로 가라앉았으나, 시우의 눈동자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백 년의 세월을 뚫고 날아온 거대한 화두가 그의 영혼에 확고한 닻을 내리고 있었다.

거대한 기계 제국의 심장부를 향해 걸어가는 시우의 손에는 과연 어떤 결별의 칼날이 들려 있는가?

다음 회차 예고: 제15화 「사직서라는 이름의 결별도」에서 김철수의 은퇴 강호행이 이어집니다.

작품명: 《은퇴무림전》

현재 회차: 제14화

다음 회차 예고: 제15화 사직서라는 이름의 결별도

연재 일정: 용용 시리즈 매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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