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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무림전 · 9화목차

제9화 양자마도의 함정과 살을 르는 거절

낡은 연립빌라의 철문이 뜯겨나갈 듯 거칠게 흔들렸다. 빗속을 뚫고 뛰어 들어온 큰아들 민준의 얼굴은 이미 사람이 아니었다. 피멍이 든 뺨과 새파랗게 질린 입술이 밤바람에 잘게 떨리고 있었다.

"아버님…… 제발 살려주세요! 저 이러다간 정말 죽습니다!"

스물여섯의 청년은 거실 바닥에 무릎이 짓이겨지도록 쿵 소리 나게 엎드렸다. 손에 쥐고 있던 플렉서블 단말기 화면이 시퍼런 경고등을 깜빡이며 소름 끼치는 진동을 토해내고 있었다.

[긴급 경고: 신경망 양자 자율 토큰 마진콜 발동]

[강제 청산 잔여 시간: 03시간 42분]

[필수 추가 증거금: 1억 2,000만 원 미납 시 신용평가원 이관 및 전 계좌 압류]

영호의 숨이 턱 막혔다. 쉰다섯의 나이에 간신히 다져놓은 평온한 현금흐름의 성벽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환영이 스쳤다.

"이게…… 이게 대체 무슨 짓거리냐, 민준아!"

"친구들과 법인을 세우고 인공지능 양자 자율투자 펀드에 레버리지를 당겼습니다. 알고리즘이 무조건 승리한다고, 원금의 열 배를 벌 수 있다고 해서…… 빌린 돈까지 싹 다 밀어 넣었는데, 텍사스 양자 데이터센터에 불이 나면서 지수가 한순간에 깡그리 증발했습니다!"

민준은 아비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바닥을 쳤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된 얼굴로 악을 쓰듯 울부짖었다.

"할아버지가 남겨주신 주택 정산금이랑 아버지 통장에 묶여 있는 비상금 있잖아요! 저 다 압니다! 딱 1억만, 제발 딱 1억만 빼서 이 불길 좀 꺼주세요. 제가 평생 노예처럼 일해서 갚겠습니다!"

서늘한 기시감이 영호의 등골을 타고 올랐다. 정확히 30년 전, 마흔여덟의 참혹했던 밤에 자신이 여든아홉의 아버지 철수 앞에서 똑같이 부르짖지 않았던가. 어머니의 병원비 명목으로 비상금을 내놓으라며 칼날 같은 눈물 흘렸던 그날 밤의 악몽이 그대로 겹쳐 보였다.

영호의 가슴이 시뻘겋게 도려내지는 듯 아팠다. 자식의 파멸을 눈앞에 둔 아비의 연민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수중에 돈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제3진 완충철포벽에 묻어둔 국채와 비상금 1억 1,000만 원이 고스란히 숨 쉬고 있었다. 스마트폰을 켜고 인증서 비밀번호 몇 자리만 누르면, 5분 안에 아들을 감옥으로 끌고 가는 마도의 빚을 털어내 줄 수 있었다.

영호의 떨리는 손가락이 주머니 속 단말기를 향해 스르륵 움직였다.

'이 돈을 내주면 민준이는 당장의 감옥을 피한다. 내 비상금이 날아가더라도 매달 쏟아지는 교량연금과 배당의 물줄기는 살아 있지 않은가.'

그 순간, 거실 벽에 걸린 아버지 김철수의 영정 사진이 번쩍이는 천둥 번개 속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 속 아버지는 서릿발 같은 눈빛으로 영호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그날 너에게 돈을 주었다면, 네 어머니는 요양병원에서 욕창이 번진 채 길바닥으로 쫓겨났을 것이다. 자식의 눈물 앞에서 방패를 내던지는 순간, 온 집안이 함께 굶어 죽는 생지옥이 열린다!’

귓전에서 연금진인의 음산한 호통이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손을 멈춰라, 김영호!"

영호는 질끈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손가락을 거두어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고, 바닥에 엎드린 아들의 손을 냉정하게 내동댕이쳤다.

"안 된다."

민준이 충격으로 두 눈을 부릅떴다.

"아, 아버지?! 자식이 죽는다는데 그깟 돈이 아까우십니까? 아버지는 매달 400만 원 가까운 돈을 따박따박 받으며 편하게 살면서, 하나뿐인 아들이 파멸하는 꼴을 그냥 보시겠다고요?!"

피를 토하는 아들의 패륜적인 원망이 귓가를 때렸다.

영호는 어금니가 부서져라 턱관절을 악물었다. 피눈물 같은 뜨거운 눈물이 그의 주름진 뺨을 타고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살을 에는 듯한 고통이 전신을 감쌌다.

"민준아. 이 돈은 내 돈이 아니다. 훗날 내가 늙고 병들어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게 되었을 때, 네 녀석의 등골을 파먹지 않고 내 손으로 내 똥기저귀 값을 치르기 위해 쌓아둔 '가문의 마지막 방패'다."

"아버지!!"

"내가 오늘 네 탐욕의 빚 1억 2천을 대신 막아주면, 너는 내일 또 다른 마도의 도박판을 기웃거릴 것이다. 그리고 내 방패는 산산조각이 나겠지. 10년 뒤, 20년 뒤 내가 암에 걸리고 중풍에 걸렸을 때, 신용불량자가 된 네가 내 병원비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 그때는 우리 두 부자가 서로를 저주하며 한강 다리로 가야 한단 말이다!"

영호는 서랍 깊은 곳에서 차갑게 식은 서류 뭉치를 꺼내 아들의 가슴팍에 내던졌다.

"개인회생 및 신용회복 워크아웃 신청서다."

"이, 이게 뭡니까……?"

"날이 밝는 대로 법원으로 간다. 네가 저지른 탐욕의 업보는 네 살점과 네 뼈로 치러라. 법정에 가 무릎을 꿇고 채무 조정을 받아라. 남은 원금은 네가 물류창고를 구르든 공사판 흙바닥을 기든, 앞으로 5년간 정직한 땀을 흘려 갚아라. 그 5년 동안 네가 굶어 죽지 않도록, 내 식탁에 따뜻한 밥 한 숟가락과 된장국은 내어주마. 허나 단 1원의 현금도 네 손에 쥐여주지 않는다."

민준은 넋이 나간 눈으로 법원 서류를 내려다보다가, 마침내 거실 바닥을 쾅쾅 치며 짐승처럼 통곡했다.

바닥을 치며 울부짖던 아들의 통곡 소리가 빗소리와 뒤섞여 좁은 거실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민준은 젖은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아버지의 발목을 다시 붙잡으려 했지만, 영호는 싸늘하게 시선을 거두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방안의 공기는 마치 얼어붙은 강물처럼 무겁고 차가웠다.

"네가 흘리는 그 눈물이 진정으로 반성의 눈물이라면, 법원의 냉혹한 바닥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영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으나 그 안에 담긴 결기는 서릿발처럼 단단했다.

아들이 가져온 단말기의 화면에서는 강제 청산을 알리는 붉은 경고등이 마지막 숨을 몰아쉬듯 깜빡이고 있었다.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 어느덧 청산 시각까지 채 한 시간도 남지 않았다.

민준은 아비의 완고한 눈빛 속에서 더 이상 기적이 일어나지 않음을 깨달은 듯, 털썩 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영호의 뼛속까지 파고들었지만, 그는 억지로 숨을 삼키며 가슴속에서 요동치는 연민의 불길을 짓눌렀다.

자식을 벼랑 끝으로 내몰아야 하는 아비의 심정은 그 어떤 마공의 칼날로 심장을 도려내는 것보다 참혹했다.

하지만 이 순간 방패를 내어주는 것은 아들을 살리는 길이 아니라 두 부자 모두를 자본주의의 거친 심연 속으로 영원히 매몰시키는 자살골임을 영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세상은 자비롭지 않았고, 강호의 빚은 단 1원도 스스로 갚지 않으면 영혼까지 집어삼키는 독충과도 같았다.

잠시 후, 밖에서 요란하게 울리던 빗줄기가 잦아들며 새벽의 푸른 여명이 연립빌라의 좁은 창틈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민준은 바닥에 흩어진 개인회생 서류를 떨리는 손으로 집어 들었다.

구겨진 종이 위에 적힌 차가운 법률 용어들이 비로소 아들의 눈에 박히기 시작했다.

"일어나거라."

영호가 낮고 무거운 음성으로 말했다.

"오늘부터 네가 흘릴 땀방울만이 이 시린 업보를 씻어낼 유일한 명약이다."

자식의 살을 도려내는 잔인한 거절이었으나, 영호는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아버지가 자신을 혹독하게 베어내어 살려냈듯, 영호 역시 살을 에는 거절을 통해 아들의 영혼을 구하고 가문의 방패를 사수해야 했다. 그것이 은퇴 무림의 전승자가 짊어져야 할 가장 시리고 고독한 업보였다.

모질게 버려진 아들은 과연 아비의 서릿발 같은 추상 속에서 스스로의 손으로 업보를 씻어낼 수 있을 것인가?

다음 회차 예고: 제10화 「십삼 년의 모래시계와 오아시스의 문」에서 김철수의 은퇴 강호행이 이어집니다.

작품명: 《은퇴무림전》

현재 회차: 제9화

다음 회차 예고: 제10화 십삼 년의 모래시계와 오아시스의 문

연재 일정: 용용 시리즈 매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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